새가 있었다. 아마도 그가 아는 새다. 거기 산책로는 천변이고, 얕은 물에서 살아가는 큰 새들은 서너 마리에 불과했다. 이름이 훌륭한 백로도 처량해 보이기는 마찬가지다. 천변의 버드나무들은 운치가 있었지만, 개량사업 탓에 뽑혀나가고 한 두 그루만 남았다. 백로가 올라가 앉곤 하던 큰 나무들도 많이 사라졌다. 나무들을 뽑아내고 무엇을 개량했는지. 새들은 이전만 훨씬 못해 보이는, 시멘트로 갈무리된 물에서 살아간다. 안쓰러운 풍경이다.
어려서 그가 알게 된 처음의 새는 참새였다. 전깃줄에 앉은 참새들의 이야기에서다. 책에서만 그렇게 쓰인 것이 아니라 참새들은 정말로 전깃줄에 앉아 있었다. 전깃줄은 참새들의 철봉이거니 생각했다. 난생 딱 한 번 보았던 줄 타는 아저씨에 비하면 전깃줄 위 참새들의 묘기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 아니, 묘기 중의 묘기였다.
장맛비가 많이 내렸던 어느 날, 경식이 엄니는 읍내 길가에서 쓰러졌고 그렇게 경식이는 어머니를 잃었다. 감전사! 전기에 맞아 감전이 되어서 사망했다는 해괴망측한 소식이었다. 참새에 비할 수 없이 큰 몸집의 경식이 엄니는 전깃줄에 올라가기는커녕 전깃줄을 건드리지도 않았는데 그랬다. 수군대는 말들로는 전깃줄 하나가 끊어져 내려 우체국 앞 인도에 있었다는 것이다. 아, 그럼 전깃줄을 밟았다고? 그럴 리가 없다! 그럴 리가 없는 얌전한 아짐이었단다. 남자들 그림자도 밟지 않는 사람이 전깃줄을 밟았다는 일은 죽었다 깨어나도 아니라고 했다. 그때 픽 웃음이 나서 입을 틀어막았다. 죽어다 깨어날 수 있음 얼마나 좋을까. 무슨 영문인지, 하필 우체국 앞 거긴 드물게 흙바닥이 아니고 듬성듬성 패인 시멘트 길이라서 물이 많이 고였단다. 물을 밟았을 뿐인데 전기가 저절로 물을 타고 건너왔다니,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아이들은 한동안 하늘을 쳐다보지 않았다. 전깃줄을 피하자면 온 하늘을 다 피해야 했다. 땅이 웬수도 아닌데 쿡쿡 차고 부비고 다녀서 신발들은 더 더러워졌고 더 닳았다. 구멍도 났다.
감전이란 몸에 전류가 흘러 전기적인 충격을 주는 현상입니다. 감전은 몸체의 두 부분 사이에 전위차가 생길 때 전류가 흐르게 되어 몸체에 전기적 충격이 가해질 때 발생합니다. 전류는 저항이 작은 쪽으로 흐르기를 좋아합니다. 그러니까 더 쉬운 길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말했다.
학교에서 나중에 감전이란 단어를 배우게 되었을 때는 더욱 소름이 끼쳤다. 그는 놀람에 앞서 이해가 되지 않았다. 경식이 엄니가 더 쉬운 길이었다니. 사람이 물건보다 더 쉽다니.
선생님, 전기라면 자기랑 짝꿍인 전깃줄 쪽으로 가야지 왜 사람 쪽으로 흘러요? 그럼 그 쪼만한 참새들은요? 사람이 참새보다도 못하냐고요? 그는 서투른 질문을 해댔다.
아, 그건, 참새는 병렬을 알아서예요. 두 다리로 전선 위에 올라 서기 때문에, 두 다리 사이의 전깃줄 부분과 새의 몸통이 서로 병렬로 연결된답니다.
…….
그게요, 전류가 흐르려면 전위차가 있어야 해요. 참새와 전선의 전위차는 ‘0’이라서 감전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물도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잖아요. 여러분, 세숫대야에 물을 받아 봐요. 그대로 있지요. 물 높이가 같으니까요. 그런데 기울이면 금방 낮은 쪽으로 흐르잖아요. 물로 실험해 볼 수 있어요. 전기로는 절대 실험 금지입니다.
무서운 전기와 별 무서울 것 없는 물을 함께 말하다니. 선생님은 죄가 없었다. 경식이 엄니가 장맛비 오는 날 감전된 것을 모르시니까. 다만 물과 전기라는 이 두 가지 상극이 같은 성질이라는 것에서 두 배로 세 배로 화가 날 뿐이었다. 어쨌거나 여전히 어린 마음으로 그 둘을 따로 보기를 원했을 뿐이다. 그런데 흔히 보게 되는 것은 물이었다. 물은 눈에 보였으니까. 숟가락 위의 물은 손을 떨기만 해도 이리저리 움직이다가 곧 수평이 되었다. 수평이 보기에 좋았다.
아들, 밥 묵다가 뭣 허고 있어어! 어서 묵어, 투틸로, 다 식는다아! 엄니는 딴 생각에 빠진 아들도 이쁘기만 했나 보다. 엄니는 아들의 이름이 승욱이라는 것을 평생 잊고 사신다.
옳지, 그것이구나. 수평을 이루고 나면 흐르지 않는 것, 그것은 물과 전기만이 아니었다. 아님을 느끼게 되었다. 훨씬 나이를 먹고 나서였다. 사랑이라는 것도 똑같은 이치임을.
ㄱ이 ㄴ을 마음에 두고 애가 단다. ㄴ도 조금 그런가. 알 길이 없다. 이런 전위차에는 무한정으로 흐르는 것이 사랑이라는 전류다. 헌신적인 짝사랑이 그렇다. 그 반대도 똑같다. ㄴ이 ㄱ을 마음에 두고 애가 단다. ㄱ도 조금 그런가. 알 길이 없다. 이런 전위차에는 무한정으로 흐르는 것이 사랑이라는 전류다. 헌신적인 짝사랑이 그렇다. 사랑은 그때에 한한다. 흐를 때가 사랑이다.
사랑이라는 단어를 생각해 낸 것은 중학교를 졸업하기도 전이었다. 아직 어른이 되기도 전에 누군가가 눈에 들어오면 그것은 어설픈 희비극이 된다. 앞에 가는 종종걸음을 내가 스쳐 지나가면 종종걸음은 나를 눈여겨보리라. 눈길을 느끼면 돌아서서 마주 보아야지. 놀란 눈일까, 따뜻한 눈일까. 아니, 눈을 뜨고 나를 보기나 할까. 웬걸, 가슴이 뛰어서 뒤돌아보기는커녕 마구 달리다시피 교문을 들어선다. 나를 보았을까. 내가 분명 옆을 지나서 앞섰으니 내 모습을 보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닌가. 아니다, 종종걸음이 나를 본 것이 아니라, 내 모습이 그저 보이기만 했을 수도 있다. 아차, 지나치는 순간에 팔을 잘못 뻗은 시늉으로 가방이라도 건드려 볼 걸. 입으로는 미안하다고 말하면서 눈으로는 눈을 들여다볼 수도 있었을 것을. 그는 애가 달았다.
종종걸음의 눈은 무슨 색일까. 설마 푸른 눈일까. 그 어린 시절에 푸른 눈에 대한 오묘한 동경의 이미지는 어디에서 왔을까. 어쨌거나 그는 주변에서 푸른 눈을 본 적은 없었다. 서양사람이 아닌 바에야 누구의 눈도 푸를 수는 없겠지만, 종종걸음의 눈은 신선하고 푸른 기운을 내뿜을 거다. 그것은 상상에서 확신이 되어갔다. 종종걸음의 눈빛은 푸르고 눈동자는 새까만 포도알 같을 것이다. 까만 눈동자란 것도 이미지였을 뿐일까. 실제로 또래들의 눈동자는 다 같이 누런 흙빛이었다.
그런데 그에게는 놀라운 상상이 피어올랐다. 종종걸음은 어쩜 내 앞에서만 종종걸음이 되는 거야. 하필 내가 교문 께에 이르는 바로 그 시간에. 종종걸음은 누군가 뒤따르고 있다는 것을 아는 순간에 더욱 종종걸음이 되는 것 같았다. 아니, 틀림없이 그랬다. 다른 친구들은 아무 것도 몰랐으니까. 저만치 종종걸음이 보이기 시작할 때부터 계속 눈에 넣고 따라가다 보면, 왼쪽 다리가 살짝 짧은가 싶기도 했다. 짧았다. 균형이 100퍼센트가 아니었다. 똑똑똑똑 걷는 것이 아니라, 또독또독 걷는 느낌이었다. 아무도 몰라, 그만 아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에게만 주는 리듬 메시지일 수도 있었다. 그들이 배운 노래들 중에서 어떤 리듬인가를 찾아 맞추어보려고도 했다. 뭔가 발견한 것 같은 날에는 꾸물대다가 옆을 스쳐 지나는 일은 잊곤 했다. 종종걸음이 교문에 들어가 버리면 그때는 가방을 흔들어대면서 완전 갈지자걸음으로 교실을 향했다. 교실에서는 ‘내 사랑 종종이’를 볼 수 없었다.
칠판에 선생님이 써놓은 글자들을 배경으로 떠있는 그림, 그게 예쁜 절름발이다. 절름발이도 편차가 있다. 사알짝 두 발을 다르게 딛고 걸어가던 아이, 종종이의 걸음은 2/4 박자 강약강약. 그것이 강약중강약으로 살짝 변형되기도 했다. 수평으로 잘랐을 단발머리가 살짝살짝 수평을 깼다. 물론 다시 수평이 되었다. 그렇게 방학이 되었고, 아쉽게도 그 다음 방학은 졸업이었다. 면단위 중학교, 그 이상 인문고는 없었다. 성적이 좋아도 형편까지 좋아야 읍내로 또는 도시로 진학할 수 있었다. 졸업과 함께 종종이도 속사랑 같은 것도 사라졌다. 밋밋한 고등학교는 오직 대입준비로 지나갔다.
88년도 대입학력고사, 12월 그날은 날씨까지 얼어붙어 기껏 13~14도에 종일 두 손을 떨었다. 답안을 작성하는 오른손 말고 왼손도 함께 떨었고, 마음은 더욱 떨었다. 논술은 없어졌지만 선지원 후시험이라니, 밤중에 고르지 않은 숲길을 걷는 기분이었다. 게다가 예상경쟁률은 3.5대 1이라고 더 높아졌다 했고, 정원은 18만 6,340명이라 했지만, 전년보다 1만 명 이상이 줄었다 했다. 응시생 26.9%가 입학 가능하다고 했으니, 열 중에 셋도 살아남지 못한다는 무서운 전망이었다. 그런데 살아남았다. 날개 없이도 날아갈 것 같았다. 창공을 가르는 새의 이미지를 떠올렸다. 거기에 전깃줄은 없었다.
노승욱에서 이번에는 새내기라고 - 새는 아니고 - 독특한 공동이름을 부여받은 1학년 생활은 일단은 희망과 부채감의 뒤범벅이었다. 경식이들은 고향에 남았고 고향을 떠나온 몇 안 되는 우리들은 처참한 날들에 내맡겨졌다. 어머니의 밥이 없는 나날들, 공부가 뭔지, 이 삭막함으로 무엇을 얻어낼 지 막막했다.
수강신청을 하면서 시작되는 대학생활에서 우선 교양과목이란 단어가 생경했다. 교양이란 ‘가르쳐서 기름’을 뜻하니까, 전체가 교육이거늘 새삼 교육과 비슷한 단어를 쓰는 것이 이상했다. 자세히 알아봤더니, 기껏 사전적 정의였지만, 학문, 지식, 사회생활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품위, 또는 문화에 대한 폭넓은 지식을 교양이라 했다. 아직 사회생활다운 사회생활에 다가가지 못한 대학생들에게 교양과목이란 학문, 지식, 품위, 문화 그런 단어들의 조합인 교양을 심어주는 것이겠거니 했다. 그들에게 실제적으로 주어진 필수 교양과목들은 ‘국’자 중심이었다. 국민윤리, 국어, 국사……. 역시 나라가 주인공이었다. 선택과목들은 도무지 무슨 과목을 선택하여야 할 지, 서로 다른 열매들을 달고 손짓을 하는 나무들 앞에 선 느낌이었다.
법학개론 – 사시를 꿈도 꾸어보지 않았던 그가 굳이 법학 과목을 선택한 것은 사람이 사회 속에서 살아가자면 법은 어느 정도 알아야 될 것 같은 예감 때문이었다. 나중에 습득한 대로 이해하자면 그의 희망은 타자의 희망들, 헛것들이었지만, 물론 당시에는 새로운 것은 늘 대단한 가치로 보였다. 우와, 법학개론은 최고의 선택이었다. 그를 혼돈에 빠뜨린 문장들이 오히려 그를 사색의 바다로 안내했다.
‘법의 목적은 평화이며, 그것을 위한 수단은 투쟁이다.’ - 교수님이 이 한 문장만큼은 외워야 하리라고 강조했을 때, 법은 막연히 정의라고 생각했던 그는 상식이 무식이었음을 느꼈다. ‘권리 추구자의 권리주장은 그 자신의 인격주장이다.’ 권리가 인격이라니! 이러한 문장들을 알려고, 그래서 대학생이 되려는 것이구나 싶었다. ‘자기 존재의 주장은 살아있는 모든 피조물의 최고의 법칙이다.’ 처음으로 그는 ‘나, 나의 인격’이라는 단어를 직시했고, 그 존재를 알았기 때문에 자신을 탐구하고자 했다.
마침 함께 선택한 철학개론은 샘 깊은 물이 되었다. 그때 만난 책은 동서양철학이 함께 쓰인 책이었다. 하지만 개론이라는 말의 인상처럼 홀가분한 개론서가 아니라 4차원 혹은 5차원의 방정식 같았다.
서론에 쓰인 예지의 활동이라거나, 정신의 탄력성을 길러 삶의 의미를 깨닫고 바른 방향 설정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문장들, 아, 어려움 그러나 아름다움 그 자체였다. 인간다움의 조건으로서의 철학 공부, 근원적 진리 탐구, 나아가서 이런 책을 집필할 수 있는 인간, 그를 철학인이라고 불러도 될까. 그 역시 기꺼이 철학인이 되고 싶었다. 사학과 학생이니 역사학, 그 중에서도 역사철학을 중점적으로 공부하면 될 터였다. 그러나 사색의 대양에서 나침판도 없이 허둥대면서 동서남북 방향을 잃었다. 믿거나 말거나 그해 여름 온 나라를 집어삼킨 열정의 도가니 올림픽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최빈국 대한민국의 쾌거라느니, 냉전 종식의 밑거름이 될 거라느니, 그러려무나. 아돈케어! 오직 철학이 그의 날개가 될 터였다. 그는 좌고우면 없이 진정으로 학문에 진력했다. 가끔 최루탄 가스가 강의실까지 뚫고 들어오는 일도 있었지만, 그 그리고 상당수의 학생들은 공부만 했다.
그렇게 2학년이 되었다. 공부만 하려는 귀에도 세상의 어수선함은 도를 넘었다. 노동절 즈음 느닷없이 부산이 전쟁터로 바뀌었다. 어느 대학교에서 학생들이 잡혀가자 반대로 전경 납치 폭행사건이 일어났다. 결과는 처참했다. 화마에 휩쓸리거나 불길을 피하려다가, 사고 당일 현장에서 경찰관이 6명이나 사망했다. 중상자는 부지기수였다. 90여명이 잡혀갔다. 신성한 학문의 전당은 어디에도 없었다. 광주에서는 수배 중이던 대학생이 수원지에서 수상쩍은 익사체로 발견되었다. 어린이날도 어버이날도 없는 살벌한 봄이었다. 도서관에 골방에 틀어박힌 젊음은 젊음도 아니렷다 싶었다.
여름방학이 시작되는가 했더니, 폭탄이 아니라 미사일급 엄청난 사건이 터졌다. 날개 달린 새도 아닌 한 여학생이 비행기를 타고 또 타고 공포의 철조망을 넘어갔다. 누군가가 북한을 가려면 베이징을 통해서 갔을 것을, 그 여학생은 일본 관광 핑계로 나갔더란다. 그리고는 도쿄에서 베를린으로, 거기서 모스크바로 갔다는 것이다. 아, 모스크바! 상상에도 없는 도시! 한국인 여권으로 그런 것도 가능한 것인지. 한국인 생각으로 어떻게 그런 생각이 가능한지. 그는 정말로 의아했다. ‘반공 민주 정신에 투철한 애국 애족이 우리의 삶의 길이며, 자유세계의 이상을 실현하는 기반이다.’ 태어나기 전부터 존재했다는 국민교육헌장을 듣고 또 듣고 보고 또 보고 외운 그들 아닌가. 반공이 곧 민주이거늘, 그로서는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아무튼 13차라던가, 평양에서 열린 세계청년학생축전에 참가한 것이랬다. 7월의 1주일 남짓 177개 국가에서 22,000명이 참가했다는, 이전의 모스크바 대회만큼은 아닐 지나 대성황을 이루어 서울의 88올림픽과 비교될 평양축전임을 자랑했더란다.
온 나라가 들썩였다. 대학가의 진통은 당연히 올림픽 때를 능가했다. 자신만의 세계에 몰두해있던 그에게도 충격이었다. 아직 학생이면서 어떻게 그런 대담한 행동을……. 한 달 여 행사를 마치고 나서, 세상에나, 이번에는 날개를 접고 휴전선을 두 발로 걸어서 남으로 넘어왔다. 한반도 군사분계선이 가로막힌 이후 첫 공개적 일이라 했다. 물론 그 순간 바로 안기부에 구속되었고.
휴전선 소식을 들었을 때에도 그는 도서관에 있었다. 그때 그는 이상한 전기를 느꼈다. 볼펜이 들려 있던 오른손 엄지검지 사이에서 시작되어 순간적으로 온몸을 찌르는 전기였다. 딱딱한 나무 의자와 연결된 엉덩이가 불에 덴 것 같았다. 이건 전위차인가? 어디선가 번개 같은 전류가 흘렀다.
참새 같은 작은 새는 두 다리로 전선 위에 올라 서기 때문에 병렬로 연결된답니다. 그러면 전위차가 ‘0’이라서 감전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그 말이 귓속에서 소용돌이침과 동시에 그는 귀를 싸매면서 옆으로 쓰러졌다. 근처에 있던 누군가가 그를 일으켰다. 낯모르는 여학생이었다. 여학생은 그를 밖으로 이끌었다. 벤치에 뉘였다.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는 그의 눈에 하늘이 아닌 땅의 모습이 보인다. 듬성듬성한 풀밭에 흑백으로 널브러진 날개, 커다란 새. 180도를 회전해서 다시 하늘이 보인다. 전신주 꼭대기, 커다란 새 한 마리가 앉아 있다. 다른 한 마리가 유유히 날개를 펼치고 날아오더니 주위를 도는가 싶다. 다음 순간, 어쩌면 전깃줄에 내려앉는 순간인가 싶다. 풀썩, 그대로 땅바닥으로 꽂힌다. 멋진 깃털 날개가 파르르 떨더니 이불처럼 몸뚱이를 덮는다. 바람에 여진이 인다. 감전사 – 왜 이 큰 새가 떨어지는가. 작은 참새들도 잘들 알고 피하는 것을.
참새류와 달리 한쪽 날개 길이가 1미터 가량 될 정도로 몸집이 큰 황새는 다른 새에 비해 전깃줄 감전 위험이 높을 수밖에 없습…….
언제 적이었더라. 낭랑한 아나운서의 목소리를 듣는다. 뭐야, 그러니까 큰 새들이 더 위험하다고. 그러니까 경식이 엄니도, 어쩌면 나도……. 그는 의식을 잃는다.
그게요, 전류가 흐르려면 전위차가 있어야 해요. 이 황새는 참새와 달리……. 그는 알 수 없는 소리를 중얼거렸다.
형, 쉿, 조용히! 조용히 있어 봐요! 여기 황새가 어디 있다고!
형? 여자애가 그를 형이라고 불렀다. 그는 부르르 떨었다. 남자 선배들에게 형이라고 부르는 애들은 다 그쪽 애들이다. 교정 풀밭에서 1:1 교육을 받는다는 애들 말이다. 네가 나를 찍었더냐, 나를 설마? 그는 눈을 감았다. 어디서 봤던 애더라? 그는 무엇인가에 감전된 것인가. 여자애는 손으로 그의 팔을 가만히 누르면서 머리맡에 앉아 있었다. ㄱ의 손바닥과 ㄴ의 팔은 전류가 통하는 것일까 아닐까. 생각 때문에 눈을 감고 있었고, 깜깜한 세상 속에서는 가늘지만 번쩍번쩍하는 전류만 보였다. 소리 없는 마른 번개였다. 감은 눈을 치켜뜰 힘도 없었고, 뜰 수 있었다 해도 뜨고 싶지 않았다. 살살 간질거리는 머리카락 때문에 다시 한 번 전류의 습격이 왔다. 그는 팔을 떨어뜨렸다. 지면과 연결된 철탑이나 전봇대에 닿으면 참새든, 사람이든 감전을 피할 수 없습니다. 선생님의 말이 귀를 때렸다.
그러는 사이 사람들 몇이 몰려들었다. 인문대 벤치 쪽에서 몰려왔을 것이었다. 누군가가 건넨 찬물을 먹여준 그 여자애는 성연이, 과 후배라 했다. 그날 이후 가끔씩 만난 연이는 새내기 주제에 아는 것이 꽤나 많았다. 무슨 애가 이리 유식한가. 기분이 나빴다. 입학하자마자 소위 운동권에 포섭된 걸까. 알고 보니 큰오빠가 독일어 선생님인데, 전교조 소속 해직교사라 했다. 큰오빠에게서 이런 저런 것을 듣는 모양이었다.
전교조? 그런 단어도 모르고 있던 그는 사회 속의 인간이, 더불어 사는 인간이 아님을 느꼈다. 4.19 혁명과 함께 조직되었던 교원노조가 5.16 쿠데타로 바로 해체되어 버렸다가 정신만큼은 살아남아서 20년 30년 세월이 흐른 그해 초 교직원노동조합으로 결성되었다 했다. 봄 학기 시작하자마자 전교조 활성화 움직임이 일었고, 2만 명도 넘는 교사들이 합류했단다. 그런 활동에 따른 탄압의 소용돌이는 불 보듯 뻔했고, 1,500명도 넘는 교사들이 파면되거나 해임되었다고 했다.
교사가 노동자? 노동계급으로서의 교사? 노동자의 시각에서 학생들을 가르친다? 역사 선생님이 되는 미래를 생각하고 있었던 그로서는 혼란스러웠다. 뭔가 참담했다.
철조망을 넘나든 새에 관해서는, 정확히는 여학생의 방북 활동 그리고 구속에 관해서는 찬반 견해들로 정신이 사나웠다. 연이를 통해서 그 가정의 사연을 - 사연이라는 말이 왠지 미안하지만 – 그 사연을 들었을 때는 소름이 돋았다. 인생이라고 하는 것이 왜 그리도 끔찍한 사연들로 점철되는 것일까. 누구라도 고2 때, 6년 터울의 오빠가 죽었다면. 하필 전방 부대에서 죽었다면. 다음 날 가족 면회가 예정되었던 오빠가 죽었다면. 그것도 자살했다고 한다면. 여고생에게 그 충격은 평생 갈 것이었다. 그 방북 여학생은 그들 또래 아님 바로 위 누나 정도였다.
그러고 보니 이태 전 그들이 고3 때 학교 정문 앞 시위에서 최루탄에 사망한 대학생도 그들의 바로 위 형 또래였다. 연이는 그 사연도 잘 알고 있었다. 그 형은 운동권이면서 공부에도 엄청 열심이었고, 운영하던 만화동아리도 위장이 아니라 진심으로 이끌고 있었다고 했다.
그렇게 또 2학기가 시작되었다. 연이는 그를 느닷없는 독일현대소설이라는 과목으로 이끌었다. 큰오빠가 추천해준 과목이라 했다. 유럽의 현대사회를, 학생운동을 곧바로 알 수 있는 과목이랬다.
나 학생운동 별 관심 없는 줄 알면서.
학생운동 빼놓고 어떻게 유럽의 현대사를 알아? 우리 역사전공 아냐!
우리 과 학생들이 읽을 필독서는 따로 있잖아.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때 못 들었어? 유럽의 역사라면 앙드레 모루아의 『프랑스사』, 『영국사』 그거면 되는 것 아냐. 또 가볍고 폭 넓게 『이야기세계사』 두 권도 있잖아. 고대 오리엔트부터 중세까지, 르네상스부터 제2차 세계대전까지. 젊은 사학자들이 써서 재미있어. 이건 과 선배로서 진지하게 하는 말이야. 공부 좀 제대로 합시다, 성연이 학생!
형은! 내 말을 끝까지 들어보기나 해! 독일현대소설 수강하면 틀림없이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라는 소설도 공부하게 될 거래. 노벨문학상 수상자 하인리히 뵐! 모르지? 나도 몰라. 암튼 70년대 중반에 발표 되자마자 곧 영화화 되었고. 소설에 부제가 붙어 있는데, ‘폭력이 어떻게 발생하며 어떠한 결과를 낼 수 있는가’ 라네.
기껏 폭력 이야기구만.
아니 그보다도 더한 살인 이야기. 너무도 평범한 독신 여자가 댄스파티에서 우연히 만난 남자랑 마음이 맞아 자기 집에 갔어. 이튿날 아침 무시무시한 가택수색을 당한 거야. 은행강도를 은신시켰다는 죄목이었대. 강도란 물론 누명이었고. 그럼에도 순간에 매장당하는 거지. 당연히 신문들의 보도태도가 한 평범한 여자의 명예를 짓밟아버린 것이야. 여자는 가치관의 혼란 끝에 극도의 절망 속에서 기자를 살해하게 된다는.
뭐야, 멀쩡한 기자를? 다만 명예를 실추시킨 왜곡 보도 때문에? 당했으니 원수 갚고…… 그렇고 그런 평범 그 자체구만.
형! 울 큰오빠, 전교조 해직교사 이전에 독문과 졸업생이라니까, 과대도 했고! 독문과 졸업생이 독문과 강의를 추천할 때는 그만한 가치가 있지 않겠어?
독일현대소설 – 이 과목 첫시간은 다른 놀람의 순간이었다. 언젠가 깨진 강의동 유리창 사이로 스며드는 최루가스에 코를 막고 달리다가 층계참에서 맞닥뜨렸던 여자, 아무에게나 치약을 나누어주던 바로 그 사람이었다. 순간 멍했다. 독일현대소설은 다만 소설이 아니라 사회적 배경에 집중되는 강의였다. 연이의 말을 듣기를, 연이오빠 독일어 선생님을 믿기를 잘했다.
어쩜 좋아, 10월의 어느 날엔가 연이가 울상이 되었다. 흙빛 얼굴이었다.
형, 세상은 너무도 잔인해. 이번 사고가 하필 y대 그 만화동아리에서 터진 거야. 이oo열사가 그렇게 떠난 뒤에도 계속 동아리는 유지되고 있었다 거든. 어떻게 그런 일이. 하필 거기에서.
무슨 사고? 연이 넌 입만 열면 사고 소식을 물고 오더라.
듣고 보니 끔찍했다. 참혹했다. 비참했다. 예상을 상상을 모든 것을 넘었다. 그 만화동아리에 드나들던, 만화에만 진심이던, 정말 애먼 전문대생이 소위 운동권 대학생들에게……. 4년제 대학생이 아니니까, y대생도 k대생도 아니니까 틀림없이 프락치라는 오해로 인해서…….
그 이름은, 그 일은 글로는커녕 말로도 옮길 수 없다. 그런 뉴스는 듣지 않은 것으로, 내 머리에 입력되기 전에 귓가만 스쳤을 때 회수해 갔으면 했다. 세상에는 입술을 달싹거려서도 안 되는 일들이 있다. 인간에, 인간 세상에 관해서는 어쩌면 침묵이 답이다.
침묵은 당연한 결과였다. 말은 입술 안에 갇혔고, 글자들은 책 속에서 먼지 조각들이 되어 증발해버렸다. 강의실에서 펼쳐진 책들은 뿌연 공간으로 흐늘거릴 뿐이었다. 교수님들의 강의 목소리며 동기들의 말소리들이 귓바퀴에서 바람처럼 쓸려 나갔다. 소리들을 따라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 올라가던 그는 어떤 순간 나락으로 떨어지곤 했다. 그는 여기 이곳을 피해서 날고 싶었다. 날개가 없었다. 그는 새가 아니었다.
10월 초, 그러니까 그 무서운 일이 벌어지기 바로 일주일 전에 요한 바오로 2세가 한국에 왔었다. 두 번째 한국방문이었다. 그에게, 어머니에게 교황이 누구인가. 그가 열 살 때였을까, 어머니가 하도나 숨 가쁘게 교황님 교황님을 불러댔다. 바오로 1세, 요한 바오로 1세, 요한 바오로 2세로 교황의 이름이 바뀌던 그해, 어머니의 불안한 슬픔과 기쁨의 교차는 당시로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어머니에게 교황은 하느님 바로 다음이라고 각인된 것 같았다.
그러다가 한국인 순교자들에 대한 시성식이 있던 1984년의 한국 방문은 어머니에게는 천국이 이 땅에 열린 날이었다. 교황이 한국에 와서 첫 번째로 방문한 곳이 전라남도 광주시, 그때는 아직 광주시였다. 미사집전을 위해서는 광주공항에서 무등경기장으로 바로 가면 되었을 것을 5.18 민주화운동 눈물의 현장 전라남도 도청을 돌아서 갔다. 그런 결정은 바티칸에서부터 했기 때문에 아무도 막지 못했다고, 어머니는 틈만 나면 강조하곤 했다. 전남도청 앞과 금남로에 그렇게 많은 인파가 모인 것은 1980년 5월 이후 처음이었다고 했다. 사실 어머니는 교황의 광주 방문 전날부터 광주로 나갔고, 차가 끊겼다던가 무슨 핑계로 이모 집에서 주무셨다. 다음날 아침 미사에 늦지 않기 위함인 걸 누군들 몰랐으랴.
또 뭐냐! 투틸로! 교황님이 글쎄 그 먼 데 소록도 나환자촌엘 가시겠다고 작정하셨대. 솔직히 우리들 모두 그 무서운 사람들과는 배라도 같이 탈라고 했더라냐! 선착장도 따로따론데, 그런 데를!
아무튼 어머니는 서울 여의도광장에서 열린 103위 순교자 시성식을 겸한 한국천주교 창립 200주년 기념대회까지 못 가신 것을 너무도 애석해하셨다. 시상에나, 미사도 한국말로 보신다는데…….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땅에 입을 맞추며 ‘순교자의 땅’이라고 하셨대. 한국말이라고? 어머니가 잘 못 아신 줄 알았다. 실제로 교황님은 10개 국어를 하신다는 걸 듣고는 2개 국어도 잘 하지 못하는 그는 그때 아직 중3이었음에도 몹시 부끄러웠다. 평생 3개 국어라도 하게 될까? 하긴, 그는 뭐 사제가 될 것도 아니었으니까.
그러고 나서 지금은 그가 대학생이니 5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런 교황이 한국에 다시 왔으니, 시성식 때만은 못했어도 대단한 뉴스였다. 서울에서 열린 제44차 세계 성체대회라나. 65만 명이 몰린 여의도광장 행사에서 남북한 화해를 기원하는 평화메시지를 낭독했더란다. 이번에는 또 어떤 한국인을 몰래 만나서는 ‘쉿, 혼나’라고 위트를 남발했다는. 그래서 고향의 어머니가 또 얼마나 좋아하실까 생각하며 무심코 흠뻑 웃었더니만.
그런데 그런 기억조차 하얗게 세어버렸다. 세상에 종교가 있는 것일까. 하느님은 존재하는가. 어떻게 대학생들이 대학생을. 살아있는 사람을. 어머니의 교황님은 무엇이라 하실 것인가. 교황님이 다녀가신 서울에 그를 통한 은총 같은 것은 그림자도 남지 않았다. 1주일의 효력도 없는 은총이라니, 은총은 빈총이었다.
형, 이런 기적 같은 일이!
연이는 정말 호박씨를 물어 오는 제비처럼 소식을 물어 날랐다. 그 애는 전깃줄에서 지직~ 하고 떨어질 바보 같은 새는 아니길 빌어야 했다. 사실 그는 소식보다 찰랑거리는 단발이 좋았다. 달까말까 스치는 머리카락이 은근히 그리웠다.
저기 베를린에서, 그러니까 동베를린 군중들이 베를린장벽을 밤사이 망치로 무너뜨렸다는 뉴스요! 들었죠? 동독의 국경이 전쟁 그런 것 없이 완전히 개방되었다고요.
사실 그는 뉴스를 잘 듣는 편은 아니었다. 고향에 살 때부터 뉴스는 어머니가 성당에서 듣고 오는 것이 전부였다. 세상 바깥일에 관심이 적었다고나 할까. 집에 라디오도 없었고, 도서관에서도 신문을 챙겨 보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그렇더라도 동구의 상황은 좀 알고 있었다. 철의 장막이 붕괴되는 소리는 여름부터 들려왔었다. 오스트리아와 헝가리 사이가 사실상 개방되었다. 그 가을 라이프치히에선가 7만 명 시위대가 ‘우리는 민족이다.’를 외쳤다고 해서 ‘민족’이 무슨 뜻일까 살짝 고민도 했었다. 정관사를 썼을까, 부정관사를 썼을까. 그 문장 때문에 여름에 철조망을 높이 넘어 날아간 새가 북에서 읊었다던 표어 ‘조국은 하나다’를 다시 떠올리기도 했었다. 그렇더라도 베를린장벽이 붕괴되었다고? 사람들 수천이 몰려드니까 밤사이에 수비대가 장벽을 열었고, 사람들은 장벽을 깼고, 낯선 사람들끼리 만나서 포옹하고 노래하고 춤을 추었다니. 만우절도 아닌데 사실이겠지.
형! 듣고 있어요? 사람들은 왜 왕창 서베를린 쪽으로 몰렸을까!
말이 나오지 않았다. 잘 아는 것도 없고. 다만 동서 할 것 없이 유명한 텔레비전 탑들로 양 방향 방송이 터진 건 오랜 일이고, 한 해 500만 600만씩 단기 방문여행이 가능했다는 기사도 보았었다. 한쪽의 풍요로운 경제지표도 다 알려진 사실이었고. 뭔가 자유로운 분위기, 강요된 안정 보다는 선택하는 무엇, 하다못해 나태 같은 것. 그러니까 실업급여 같은 것, 왠지 잠시 덜 먹고 놀 수도 있을 것 같은 자유…… 그 비슷한 것을 상상했다. 상상만 했다. 기적과도 같은 분단국 독일의 소식에도 그는 무감각했다. 세상에 대고 언급할 단어들이 사라져 버렸다.
침묵 속은 희뿌연 공간이었다. 어딘가로 탈출할 방법을 찾아야 했다. 그 나름 온전한 길이라고 믿었던, 면학을 통해서 성과를 내고 어엿한 직장인이 될 것이라는 막연한 정석은 깨어지고 없었다. 미래가 보이지 않는 현재를 어떻게 살까. 어디로 도망갈까. 돌부리를 차고 걸었다. 연이는 그를 슬슬 피하는 눈치였다. 슬픈 무서운 진실들을 날갯짓에 날라 오는 일에 스스로 소스라쳐 하는 것 같았다.
강의실 대신 책방을 기웃거렸다. 혼을 빼놓을 책을 읽자. 시집에서 안정감을, 언감생심 낭만을 찾게 되려나. 그렇더라도 한편으로 당시 인기 절정의 『홀로 서기』 같은 것, 그건 아니었다. 베스트셀러에 대한 이상한 거부감이 아니라, 숙명적으로 홀로 서 있는 인간이 웬 홀로 서기 주장인가 싶어서였다. 이렇게 날이 넘어서야 무슨 시를 읽나. 좋아, 우리들의 자화상을 읽자. 그는 ‘우리’를 골랐다.
『슬픈 우리 젊은 날』 - 〈기쁜 우리 젊은 날〉이라는 로맨스 영화에 대한 반발로 이름 붙였다는 시집이었다. 대학가의 서클룸, 화장실 벽, 술집, 카페의 메모장에 적은 낙서까지 수집해 놓은 글들이라면 그들 대학생들 모두가 필자일 터였다. 어라, 그때의 살짝 놀람이 지금도 생각난다. ‘너무 맑아 서러운 날’이라는 1부의 맑은 서러움을 넘기면, 2부는 역시 ‘혼자 서는 연습’이었다. 홀로, 혼자가 역시 젊은이들의 화두였다.
제비 - 나는 겨울이 싫지만 어쩔 수 없이 겨울에 이땅을 찾아옵니다. 나는 날개가 있어 자유롭게 날아다닐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따뜻한 곳으로 날아가지 않느냐고요? 왜냐하면 따뜻한 곳으로 가면 희망이 사라질까봐 그래요. y대 자유교양이라는 써클의 누군가가 쓴 낙서의 일부였다. 희망을 잃지 않기 위해 얼어붙은 땅에 온다고? 눈이 내리면 얼어서 죽고 – 역시 제목이다. 정말 낙서인지 시인지 공감 가는 글들이 많았다. 게서 구한 것은 위로도 낭만도 아니고 아픔이었다. 그는 아파서는 안 되고 건강하게 학업을 마치고 건전한 직업인이 되어야할 숙제를 살고 있었는데도, 고개를 들어보니 도처에 아픔뿐이었다. 슬픔까지는 그 나름 낭만적으로 느껴지는 어휘였지만, 아픔은 달랐다. 아픔은 아픔이었다.
멍든 하늘을 이고 살아가는 청춘들, 애초에 하늘은 시퍼런 멍이 들었는지 모른다는 상상에 공감하면서, 그 가을 겨울에는 철학에도 지진이 일었다. 서적은 뒤죽박죽이었다. 믿거나 말거나 그는 68운동을 들여다보았다. 지금까지와 달리 어둠에서 구한 금지된 책들을 읽었다.
아, ‘금지하는 것을 금지한다.’ 서구의 68운동의 모토는 그냥 너무 멋있는 문구였다. 1945년 종전으로 시작된 프랑스의 영광은 기울고 있었고, 50년대 탄생한 독일 라인강의 기적도 영원치는 않았다. 1960년대, 우리나라는 독재스타일 대통령의 결단으로 경제가 살아나고 있었던 그때, 전쟁에 팔려(?) 가서도 달러에 환호하던 그때, 서유럽과 미국에서는 혁명의 기운이 시작되었다더니, 68년 베트남 구정 대공세를 기점으로 유럽의 대학생들은 폭발했다. 자본주의 국가들의 경제성장도 사회주의 국가들의 복지제도도 모든 인간의 해방을 가져오지는 못했다. 그러니까 자유로운 인간들의 평등한 세상은 어느 곳에도 없다는 인식에 폭발했다.
그는 그들이 꿈도 크다고 생각했다. 그들이 읽는 『희망의 원리』라는 책에서는 그런 꿈을 낮꿈이라고 했다. 낮꿈이라고? 그는 눈을 크게 떠보았다. 아무리 크게 떠도 물고기 눈이었지만.
밤꿈이 리비도의 충동에 기인한다면, 낮꿈에는 자아의 고유 의지가 보전되어 있다. 밤꿈은 정신분열적, 낮꿈은 편집광적이다. 낮꿈은 세상을 개혁하려는 의지가 담겨있다. 결핍과 장애가 낮꿈을 꾸게 하므로, ‘만일 구운 비둘기가 식탁에 널려 있다면’ 사람들은 낮꿈을 꾸는 것을 시작하지 않을 것이다. - 라는 내용이었다.
다른 한편 세상에 만연한 관료주의가 자유를 억압하는 데에 지친 그들은 ‘굶어 죽더라도 지루한 건 못 참겠다.’라고 외쳐댔다. 벌써 20년 전에. 그때 그리고 20년이 지난 그날도 한국 국민들은 얌전히 반공 민주정신으로 살고 있었는데. 살아야 했는데.
침묵 속에서, 낮꿈이 무엇인지, 구체적 유토피아가 무엇인지, 아무 것도 아는 것이 없어서, 아는 것도 말할 수 없어서 입을 닫아야 했던 나날들이었다. 침묵 속에서 결정한 첫 번째 행동이 입대였다. 불안 속으로 들어가는 일이었다. 전방에 배치될까. 그는 운동권이 아님은 물론 단순 시위 전력도 없었다. 그래도 대학생이니 전방으로 가게 되려나. 가게 되면 갈 일이었다. 우연히 죽게 되면 죽나? 막연한 공포로 미칠 것 같았지만, 험할지라도, 무서울지라도 넘어야 할 산이었다.
그러고 보니 과에는 친구가 없었다. 법학개론에 훅 갔다가 철학서에 빠져서는 단 한 치도 옆을 돌아보지 않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학교를 빼먹어도 누구 하나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학기 중간에 넋이 나가버렸으니 학기를 망쳤다. 학기를 망치다니! 그런 단어는 상상해 본 적이 없었는데 일은 그리 닥쳤다. 2년의 대학생활에서 세 학기만 건져 놓은 채 입대를 하게 된 것이다. 인생은 차곡차곡 블록쌓기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벌써부터 절름발이 블록이 되었다.
연이, 입대를 결정하고 나서 연이를 보아야 했을까. 무슨 말이라도 해야 했을까. 모르겠다. 이제 침묵은 회색 숲을 넘어 블랙홀처럼 그를 빨아들였다. 덜컹거리는 맘을 접었다. 흔들리는 각도를 접는다. 사랑 같은 것이라 하더라도 수평이 되어버리면, 수평이 되어버린 사랑은 순간에 멈춘다. 안다.
사람은 어떠냐고요? 사람도 이론적으로는 참새와 마찬가지입니다. 두 손으로 전선에 매달려도 감전되지 않습니다. 제발 몸으로 시험하지 말아요. 아득히 선생님의 말이 들려온다.
전깃줄의 참새는 둥지에 넣을 사철쑥을 입에 물고 가다가 쉬는 것일까. 참새가 두 발로 한 줄에 서듯, 그도 두 손으로 한 줄에 매달리면 된다. 그는 무얼 하다가 전깃줄에 닿았을까. 그는 어쩌면 감전되었었다. 감전되기를 바랐었다. 아니, 새들은 유리창에 부딪쳐서도 죽는다. 바닥에 떨어진 새의 왜소한 몸뚱이가 눈앞에 일렁였다. 숨은 쉬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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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1. 『국제PEN광주』 , 국제PEN광주위원회, 400~4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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