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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2019.08.26 나무
소설2021. 9. 7. 02:17

 

낮꿈

 

 

 

 

인간은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살기 ‘때문에’ 산다……

- 에른스트 블로흐 『희망의 원리』 중에서

낮꿈이란 기이한 말을 처음 들은 것은 그리 덥지도 않은 어느 여름날이었다. 생소한 이름의 병균으로 뒤덮여버린 봄날 하루하루가 초록 빛 냄새도 없이 어물쩍 지나가더니, 여름이라 해도 따가운 햇살이 주는 순간의 행복감도 없이 웬 장마만 내내 찔끔거리고 있었다. 거기다가 마스크 속에 얼굴을 묻고 사는 이 요상한 일상은 기온 따라 더 답답하기만 할 때였다.

서기 2020년 - 팬데믹 세상을 지배하는 신의 이름은 불신이었다. 언제부터인가, 비단 확진자 관련뿐만 아니라 온갖 뉴스들이 참으로 믿기 어려운 공포이거나 난해함 그 자체였다. 사건들은 누가 작성하느냐에 따라서 완전히 다른 내용이 되기도 하고, 무엇보다 서로 진실임을 주장하고 있었다. 태어나서 내가 썩 괜찮은 부류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지만, 지금처럼 내가 바보일까 하는 생각이 든 적도 없었다. 누구는 나 바보에게 이 말을 주입시키고, 다른 누구는 나 바보에게 저 말을 주입시키려는 것 같았다. 환자와, 정확히는 재가요양보호 수급자를 대하는 직업상의 만남 외에는 다른 모임들이 아예 없으니까, 평소처럼 수다 속에서 어느 정도 생각을 정리해 나갈 기회도 줄고 있었다. 아, 그리운 수다! 일 할 때 일하고, 간단히 모여서 먹고 떠들고 다이어트 산책을 즐기고……, 이런 단순무식한 행복감을 송두리째 도둑맞은 느낌이었다.

 

여름에 들면서 다행히 확진자 수는 줄고 있었다. 마스크 착용이 의무화되어서 그럴까. 전쟁 같았던 분위기는 잠시 주춤, 해외에서 들어오는 환자를 빼면 하루 여남은 명 정도에 그쳐서 조금 숨을 돌리고 있었다. 그때 때맞춘 듯 돌발사건이 터졌다. 의협이 파업을 선언하며 ‘의료 4대악’ 철폐를 주장하자, 나 같은 사람, 간호보조사로 평생을 살아온 사람도 조금은 의아했다. 의료계 밖의 보통 사람들은 더 이해를 못하는 것 같았다.

그날도 재가요양보호 서비스를 나가는 날이었다. 점심이 끝나고 식탁에서 막 커피 잔을 들 때 보호자가 말을 꺼냈다.

지 선생님, 의대 정원 확대를 4대악의 하나라고 하네요. 의사 정원 늘리려는 것이 악이다! 공공 의대 증설도 악법이라! 믿을 수 없는 표현이요. 이 불안 불안한 나날, 언제 또 환자수가 폭발할지 모르는 판에, 의사 인력이 많아지면 수월해질 거 아니요!

글쎄요. 그게 아주 간단한 문제는 아닐 거예요. 일단 의사 숫자가 갑자기 많이 늘게 되면 희소가치가 떨어지고, 나중엔 수입도 보장할 수 없고. 나는 나도 모르게 의료계 편이 된다.

나중이라뇨? 물론 나야 잘은 모르지요, 병원 근무에 관해서는 꽝이니! 근데 기득권자가 신규 의사면허 막는 것은 횡포로 밖에 안 보이네.

어찌 보면 나중 생각해서 밥그릇 싸움으로 보이긴 하죠. 경쟁사회니까 어쩌겠어요. 꿈을 이루었는데 명예와 혜택을 나누라고 하니까. 의사면허는 꿈의 상징이죠.

꿈…….

병원 세계에서 봐요, 아, 무서운 사다리예요. 저 같은 간호보조사 입장에서 보면 의사란 못 올라갈 나무였죠. 그래봤자 의사 위에 판검사, 판검사 위에 장사라지만요!

예? 천하장사 그런 것?

아아뇨! 세상을 돈이, 장사들이 좌지우지하잖아요. 유전무죄!

어, 그러네, 기업이 결국 장사니까. 사농공상 – 봉건시대 서열 순서가 완전 뒤집혔네요, 서열이란 아예 없어져야할 것이지만.

맞아요, 서열은 없어지는 게 아니라 새로 생겨나요. 암튼 의사는 큰 꿈 중의 하나죠!

그렇겠네요. 그런데 그런 건 꿈이 아니고, 꿈나라 꿈이 꿈이죠. 의사되기 이런 건 낮꿈이라고요, 낮꿈.

거기에서 낮꿈이라는 말이 튀어 나왔다.

낮꿈? 낮꿈이라니요? 무슨 꿈이…….

 

그때 이 할머니가 소리 없이 자리를 떴다. 말없이 사라지는 것, 특기다. 낮꿈이라는 말, 무슨 말인가? 물어보고 싶었다. 내가 와있는 동안 외출이 일상인데 나가버리려나? 다행히 이번에는 외출이 아니었다. 어르신이 안방에 그대로 누운 것을 확인하더니 거실로 나가 앉는다. 마른 빨래를 걷어들고 따라갔다. 빨래는 당근 어르신 것만 내가 한다. 나는 이야기를 계속하고 싶었다.

저 그런데, 낮꿈이 뭔데요? 그런 말 첨 들어봤는데요.

낮에 꾸는 꿈요!

낮잠 자다 꾸는 꿈요? 밤잠이건 낮잠이건 꿈은 꿈이죠!

다르죠. 내가 만든 말 아니고요, 독서죠. 아이 참, 옛날에 읽은 책 이야기를 꼭 하게 만드네. 『희망의 원리』 라는, 많이 어려운 책이요. 다는 못 읽고 시작하다 말았지요, 것도 옛날에. ‘더 나은 삶에 관한 꿈’을 낮꿈이라 했을 때, 그땐 감탄 그 자체였어요. 낮꿈 없이는 어느 누구도 살아갈 수 없고, 오직 낮꿈을 통해서만 냉정한 시각을 소유하고, 직접 삶에 뛰어들게 한다고. 자아의 보존을 넘어서 우리의 저열한 사회적 환경에 대한 개혁의 희망이 들어있다고.

뭐야, 개혁이라니, 설마 운동권 같은 소릴 하네! 말투도 변한다. 이 할머닌 대체 무슨, 뭘 하던 사람일까. 사적인 이야기는 별로 하지 않아서, 큰애 둘째라고 하는 아들, 그리고 대화 중에 여자애 이름도 있으니까 딸 하나 있는 정도 외에는 아는 건 없다. 사실 이런 한시적인 일자리에서 가족정보가 필요하지도 않다.

젊었을 때니까 감동도 컸죠. 하지만 그건 옛날이야기라니까요, 지금은 완전히 변질되었죠. 사회적 희망 보다는 개인의 욕망만 하늘을 찌르는 세상. 우르르 몰려가서 서열 정하고, 이긴 쪽은 우쭐하고 진 쪽은 주눅 들고……. 이런 세상에서 낮꿈 꿀 필요가 있나요?

그래도 삶의 목표라고 하는 것이 있어야.

남들보다 더 잘 사는 꿈요? 글쎄 그건 욕망이라니까요. 내 삶과 세상을 개혁하려는 의지가 담겼던 원래의 희망과는 전혀 다른. 암튼 낮꿈 보다는 밤꿈이 꿈이죠. 자연스럽게 꿈을 꾸는 것이니까. 참, 밤중에 꿈 잘 꾸나요? 혹시 돌아가신 분을 꿈에 본다거나.

아주 가끔, 슬쩍요.

 

아버지가 어른거렸다. 내가 그리워하는 꿈이라면 딱 한 가지다. 아버지를 만나러 가는데 함께 가던 형제자매들이 갑자기 사라져버리고 나 혼자서 뎅그러니 서 있고, 아버지가 멀리에 서 계시는데 얼굴이 안개에 쌓인 듯 희미하다. 얼굴이 안 보인다. 그래도 아버지인가. 그래도 아버지이다. 놀라서 깨면 꿈이다. 가끔 그 비슷한 꿈을 꾼다.

큰언니는 내가 임종을 못해서 마음에 남아있는 것이라고, 아버지 돌아가신 것이 언제인데, 그만 잊고 털어버리라 하신다. 어머니도 내 꿈 이야기를 언니한테서 들으셨는지, 은이 니가 아부지 젤로 좋아혀서 그랴, 그러신다. 아니라고 내숭 뵈지 말어야. 자석이 아부지 좋아혀서 나쁘가니.

 

 

밤꿈은 갈망의 표현이라지만 허무맹랑하죠, 때론 놀라운 일도.

내가 다른 생각으로 도망간 뒤에도 보호자는 꿈 이야기를 계속하고 있다. 말을 시작하니까 엄청 잘 한다.

난데없이 돌아가신 은사님이 꿈속에 나타나셨어요. 넘 이상한 모양으로. 그래서 꿈이죠, 그냥 꿈.

…….

늦가을이면 겉이 단단하게 익은 늙은 호박 알아요? 보통은 껍질이 누런 색깔인데 이건 어두운 진초록색이라. 그런 호박 속을 파내고 그 껍질로 베트남 사람처럼 큰 모자를 쓴 모습이라니. 깨어나서는 웬일일까 싶었지만, 잠시 고개를 갸우뚱하다 말았어요.

엥? 호박껍질 모자요? 무슨 동화 속 나라예요?

그러게요. 암튼 다음날 아침에도 눈을 뜨면서 그 꿈이 어른거렸고, 그래, 돌아가신 분 생각하느니 살아계신 분 안부나 묻자 싶었죠. 오랫동안 언니 비슷 친구처럼 지내는 선생님이에요, 톡도 하고. 전화를 거니까 깜짝 반가워하시며, 어머나, 나도 전화를 해볼까 했어, 난데없는 꿈 땜에, 그러시는 거예요.

텔레파시?

아니, 그게 믿기지도 않았어요. 내가 꿈에 본 그 은사님 꿈을 꾸셨다니 말이 되요? 두 분은 남녀에 나이 차이도 있으시고, 그냥 냉랭한 동료였을 뿐인데. 암튼, 전화를 끊고도 넘 이상했어요. 제자에게 동료에게 꿈에 나타나시다니, 웬일일까. 그러고 보니 돌아가신 10주기라, 딱 그 달에. 내가 떠난 지 10년이다, 기억하거라, 그런 메시지잖아요.

그런 꿈이, 말도 안 되는 게 진짜 꿈이라는 거군요.

그러죠. 내 인생의 계획과는 아무 상관없는, 내 의지와도 아무 상관 없는 것. 헌데, 꿈 땜에 돌아가신 날을 기억해 냈으니, 그건 어찌된 건가! 과학적으로는, 뭐 정신의학적으로는 떠나실 때 못 가뵌 것이 마음에 눌려 있다가 10주기에 무의식이 튀어나온 것이라고 하려나.

그렇게 마음에 남은 분이면 장례식엔 왜 못 가셨는데요?

내가 오늘 따라 오지랖이다. 수급자 일이 아닌 보호자의 일에 시시콜콜 뭘 묻고말고. 하긴 어르신이 낮잠을 자면 딱히 할 일도 없어서 이야기나 하는 거다.

그게 울 어머니 49재중이었어요. 죄인이라 다른 초상집엔 못 가죠.

어머나, 그러는 거예요?

종교도 모르면서 부처님 오신 날 지장전에 영가등을 켜드렸어요. 어머니 등 켜러 가서.

뭐예요? 불교신자세요?

아아뇨. 어머닌 맞아, 열심 신자였어요. 등은 그냥 기억하고 있다는 뜻으로. 그러고 보니 내가 고아가 됐을 때 은사님도 떠나셨네.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 말했어도, 아, 그래, 하셨을, 무작정 믿어주셨던 분인데. 내가 어떤 안 이쁜 짓을 해도 미워하지 않을 사람, 부모님 안 계시면 그런 사람은 세상에 없는 거요.

아니, 남편이랑 가정이…….

우리 이쁜 지선생님, 순진무구하셔라! 남편이란 내가 잘하는 동안, 이쁜 짓을 하는 동안에만 날 이쁘다고 생각하는 존재랍니다.

……?

내가 어리둥절해 있는 사이, 할머니는 자리에서 일어선다. 시장에라도 나갈 폼이다.

피잇, 30년을 넘게도 지금도 설레는 부부간의 사랑을 몰라도 한참 모르시네!

이런 말은 물론 삼킨다. 하기야 칠팔십 대 부부의 삶이라는 것이 그저 그럴 수도 있겠다. 모를 일, 우리도 나이 들면 저리 될까?

낮꿈이란 이상한 단어가 신경이 거슬리는 채로 안방에 들어가 보니 어르신은 새록새록 꿈나라였다. 낮에도 꿈나라다. 웬 잠을 저리 주무실까? 간밤에 꿈꾸느라 못 주무셨나? 아이들도 아닌데 무서운 꿈을 왜 꾸실까? 그렇게 하루하루 시간이 갔다.

 

여름 내내 지독한 태풍에 늘 반복되는 수재, 수재민들 뉴스다. 어딘가는 둑이 터지고 도심까지 잠겼다. 섬진강 쪽으로 집지어 갔던 아는 언니는 울상으로 사진을 보내왔다. 한옥 마루가 아슬아슬, 댓돌은 보이지도 않게 물에 잠겼다. 황룡강 변에 선산이 있다는 이 댁도 전화 통화로 난리를 위로하고 있었다. 자연환경까지 반란이 났고, 역병의 어려움은 극에 달했다. 봉쇄가 무엇인지 거리두기가 무엇인지 학습할 사이도 없이 낯선 환경들이 밀려닥쳤고, 격리라는 엄청난 단어도 일상이 되었다. 자고 나면 다시 오늘이 되는 영화에서처럼, 판에 박은 일상이 시간만 죽이고 있었다. 그래도 달은 차면 기울고를 반복하더니, 어느새 바스락거리는 나뭇잎들이 날리며 찬바람이 얼굴을 스친다. 겨울이 성큼 닥친 것이다. 정지되었나 했지만 삶은 계속되었나 보다.

 

봄 여름 가을 겨울, 무엇을 하고 살았을까요? 365일 노랑 옷 팬데믹에 절망들만 묻혀있네. 지 선생님은 젊으니 좀 나은가?

어느 날 보호자의 한탄스런 말투에 갑자기 나를 돌아다보았다. 집 관리, 세입자 관리, 수급자 서비스, 주말 농부, 이런 것들이 내가 사는 일일까. 그러고 보니 일 년 내내 노랑 옷들이 티비 화면을 차지하고 있었고, 다른 가능성이 없으니 그게 유일한 대면이었고, 그것도 남편이 들어오면 채널은 뉴스로 한정되었다. 가깝고 먼 곳곳에서 드러나는 더 참혹한 죽음들을 지켜보아야만 했다. 학교에서의 수업 내용 때문에 참수를 당하기도, 다만 얼굴색이 달라서 총에 맞기도, 그런 일들이 선진 문명국가라는 곳곳에서도 일어나고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날마다 일어나는 안전사고 소식에는 머리가 돌 지경이었다. 일터는 지뢰밭이고, 웃음을 잃지 않고 일터에 가는 것이 어려운 시험 같은 시절이었다.

 

우리 은이는 잘 웃어서 이뻐. 어여, 웃어봐. 이빨도 가조로니 얼마나 이뻐. 노상 그러고 살어.

주문처럼 어머니의 말을 외우며 집을 나서곤 한다. 참 어려운 나날이었다. 내가 필요해서 일하는 지금, 이만하면 안정된 조건이다. 입술을 당기자, 씨익. 그래도 겨울은 정말 싫다. 춥다는 것은 생각만으로도 싫다. 아, 다행! 입구 가까이에 주차 라인이 비어있다. 서두르면 2분 안에 따뜻한 아파트에 들어간다.

 

 

몸 파는 스무 살이라고, 들어 봤어요? 머리가 아파요.

밑도 끝도 없이 내뱉는 주인의 말에 흠칫 놀란다. 알아서 대문을 열고 태그를 찍고 들어온 요양보호사에게 내뱉을 첫 말은 아니다. 보호자라면, 어서 오세요! 주말 잘 지냈어요? 이 이는 별 탈 없었답니다. 그런 말이 먼저 나와야 정상이다. 게다가 나로서는 이 집 출근 만 일 년이 되는 특별한 날인데. 뭔가 특별한 것을 기대한 것은 아니지만 일주년은 일주년 아닌가.

 

왜요, 무슨 일 있으세요? 어르신은 좀 어땠나요? 감기 드신 건 아니구요? 오늘 검사 가실 컨디션 되지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사실은 환자 관련이 아니라면 보호자의 말은 천천히 들어도 된다. 화장실 입구에 가방을 내려놓은 채로 소독젤로 손을 씻고는 어르신에게로 향한다. 거실 소파의 지정석이다.

어르신, 주말 잘 지내셨어요? 오늘 병원 가시는 것 아시지요?

대답 대신 오른 손을 들어올린다. 반가움의 인사다. 그러면 기분이 좋다는 뜻이다.

 

일단, 어서 식사요! 식사 차려 놓아도 지 선샘이 와야 건너오시네. 이제 완전히 습관이 되었나 봐.

부엌에서 보호자가 채근이다.

네에, 갑니다. - 어르신 식사, 식사하시게요. 손 씻으시고!

바쁘다, 바빠. 양쪽으로 답을 해야 할 때가 있다. 보호자는 개인적인 요청 사항은 거의 없다. 밥상 앞에서 나는 열심히 어르신을 챙긴다. 잠깐 오전 일을 했을 때는 여기 와서 함께 점심을 먹기도 했다. 즐거운 식사 시간이 된다. 보호자는 누룽지까지 챙겨오고서 자리에 앉으면 늘 그러듯이 가만히 앉아서 허공을 본다. 어서 드세요! 왜 안 드세요! 그렇게 채근하면, 반찬 준비하면서 코로 이미 다 먹어버렸기 때문에 식욕이 나지 않는다고 한다. 사람은 20분이면 포만감을 느낀다고. 다이어트를 하려면 천천히 먹는 것이 해결책이겠네여, 라고 말하려다가 참곤 한다. 이 집에서는 어울리지 않는 말이다. 대신 오늘은 병원 함께 가시려면 좀 잘 드셔야죠! 하고 만다.

 

인지검사가 있는 날에는 보호자 2인이 함께 병원에 가야한다. 코로나 방역으로 보호자를 줄이지만, 인지검사를 마치고 보호자도 따로 상담을 해야하니까 그 잠깐이라도 환자 옆에 누군가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한 시간 반 이상 걸리는 검사 시간 동안 속절없이 기다려야 한다. 처음 얼마간은 커피숍에 가 있자고 해서 같이 내려갔다가 놀랐다. 폐쇄된 것이다. 하긴 병원 내에서는 음료수도 마시지 말라고 종이에 써 붙여 놓았다. 검사실 밖 의자에 한 칸을 떼고 앉았다. 그래도 말은 하고 싶었다.

저, 아까 집에서 말씀 하신 몸 파는 스무 살 어쩌고…….

아, 미안해요. 오전에 읽은 기사가 계속 머리에서 떠나질 않아서요.

그러니까 젊은 애들이 일자리는 없고 성매매에…….

아니, 몸 판다고 하니까 그렇게 들렸나 보네. 그런 건 곳곳에 곪아 터져 있으니 이젠 놀라지도 않아요. 오늘 읽은 신문기사에 헤드라인이 ‘몸 파는 스무 살……’ 그러더라고요.

뭔데요?

…….

말을 잇지 않던 보호자는 어르신 이야기로 옮겨가버린다.

어제, 그러니까 그젯밤에는 자리에 누워서 오늘 뭘 하고 지냈나 생각이 잘 안 난다고 그러잖아요. 아들애가 왔다 간 것을 잊다니, 이해가 안 되네, 어쩌면 애들 이름을 잊기도 하고. 검사를 잘 할지 모르겠네. 청력 때문에도 고생일 걸, 검사하는 분도.

한 두 번 해 보셨잖아요. 잘 하시겠지요. 건망증인지 뭔지는 참 이해가 안 가는 일 많아요. 저도 요즘 완전 웃겨요, 핸드폰 안 가지고 나와서 시동 걸다가 다시 들어가고, 그런 건 일상이에요. 마스크도 차 안에 몇 장씩 넣어둬야 하구요.

건망증이 뭔지, 사람들을 위로하려다 보면 나도 이미 심각하다 싶어 오싹해진다. 하지만 오늘 나는 ‘몸 파는 스무 살’ 그 이야기가 궁금해서 자꾸 말을 걸게 된다.

 

그런데 아까 집에서요, 그 스무 살은 무슨 말이세요?

아, 참, 생각하기도 싫은 일들. 무심코 튀어나온 말이네요, 뉴스 땜에. 뉴스니까 거짓은 아닐 테고. 자꾸 걸려서. <8일에 127만원, 하루 18번 바늘꽂는 20대> 그런 기사요. 직장이 폐업하거나 웬만한 알바 자리들 탈락하다보니까, ‘몸 팔러왔다’는 자조로 실험대상이 되는 거 말예요.

아, 마루타 알바요? 꿈을 이루기 위해서라면 뭣인들 못 참나요? 복제약 만들려면 임상실험이야 늘 있는 거죠. 옛날에도 계속 그랬어요.

나야 그런 일들이 그리 뉴스거리도 아닌데, 이 할머니는 많이 놀랐나 보다.

그 아이 입에서 ‘여긴 자본주의의 끝’이란 단어가 나왔어요. 꿈은 놔두고 우선 생계를 위해서 몸을 파는, 피를 뽑는 20대라니. 삶의 극이야.

극?

예, 극값!

생동성 실험, 그거 안전하게 관리할 텐데요. 죽지는 않아요.

알바하다가 죽는 이야기는 뭣 하러!

말을 꺼냈던 보호자가 외려 외면하고 일어서버린다. 괜히 검사실 문앞으로 가서 안쪽에 귀를 대는 시늉을 한다. 죽는다는 말은 내가 심했나?

 

 

알바 나갔다가 죽는다? 머쓱해진 기분이 되어 생각해 본다. 모처럼 알바 구해서, 아님 늘 하던 대로 아침에 일터에 나갔다가 죽는 이야기가 어제 오늘 일인가. 계산의 시작은 아무래도 본인 몫이다. 감당할만한 일인가. 따져본 다음에 시작해야 한다. ‘아무 기술이 없이 별 고생도 않고’ 라는 조건의 광고라면 다른 보이지 않는 위험을 상상했어야지. 그러니까 수당이 올라도 고민이라던가……. 그러고보니 쿠팡인지 어딘지 등등 택배 노동자가 과로사했다는 뉴스를 올해 들어 열 번도 넘게 들은 것 같다. 그런 뉴스를 들을 때마다 택배아저씨들은 어떤 기분일까. 아니나다를까 엊그제 또 다시 뉴스였다. 올해 들어 열여섯 번째 죽음, 이번에는 34살 젊은이다. 7월부터 일했다고 하니까 택배 반년에 목숨을 잃었다. 새벽 6시 출근해서 밤 9시나 10시에 퇴근했단다.

이 아파트에도 늘 보는 택배 아저씨가 있는데, 실은 최근 2주 3주 보이질 않는다는 생각이 났다. 이 집에서는 띵똥 소리가 나면 가끔 음료도 건네고 추석엔 참기름도 짜주는 걸 보면 임의롭게 지내는 사이 같다. 한번은 더운 여름이었는데, 이모, 이러다 죽으먼 어쩌까요, 돈 다 벌어서 언제 쓰까이! 그러더란다. 올 봄 이후 하루 300개를 주더니 점점 400개로, 어떤 날은 500개 가까이 물건을 싣는단다. 크고 작고 가리지 않고 개당 750원이면 일당이 30만원이 넘는 날도 있단다. 수입이야 짭짤하다. 그런데 그 배달을 다 마치기 위해서는 점심을 거의 못 먹는단다. 굶어가면서 일당 올리는 건 아니라고 일러 줘도 소용없단다.

그 말을 들은 후로는 괜스레 편치 않았다. 아 참, 이 보호자를 택배 아저씨는 ‘이모’라 부르나 보다. 일년을 매일 보는데도 나랑은 덜 친한가? 이렇게 저렇게 부르라는 말이 없다. 직접 부를 일은 없으니까 우물쭈물 지내지만, 가리켜 말하려면 ‘주인, 보호자, 할머니’를 왔다갔다 하게 된다.

암튼 어르신이랑 산책을 하는 시간에 택배 아저씨랑 마주치면 내가 말을 건다. 점심은 드셨어요? 잘 드셔야죠! 먹으려고 사는데요! 내가 그러면 씨익 웃기만 한다. 처음 볼 때보다 더 말랐다.

 

보호자가 다시 의자로 돌아오자 이번에는 내가 택배아저씨 말을 꺼냈다.

저 그런데요. 요즘 아파트 택배 아저씨 안보이던데요. 무슨 일 없겠죠?

왜요, 갑자기?

이삼 주 넘었어요. 전화 한번 해 보실래요, 괜스레 궁금하네요.

어, 그래요? 문 앞에 잘 놓고가니까 그냥 별일 없는가 그러는데. 설마 무슨 일이사…….

물론 설마죠.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괜히 불안했다.

나중에요, 지금 한창 배달할 시간이겠네. 아, 문자나 남겨 놓을까. 사실 요즈음엔 누구라도 밥을 벌기 무지 힘들지. 여자들은 좀 나은가? 노동 강도가 세지 않아서…….

아무래도. 여차하면 취집이면 되니까요. 얼굴 되는 애들은 그게 상책이랬지요.

뭐요? 취집?

예, 취직하거나 시집가거나. 시집을 잘 가면 취직할 필요 없고. 우리들 병원 근무 때 보면요, 간호사들 대부분이 의사한테 시집가는 꿈을 꾸죠. 물론 그때도 이미 의사들은 간호사 차지가 안 되었죠. 아는 언니가요…….

아는 언니도 참 많아! 인정 많게 잘 사나 봐요!

그건 아니구요. 서울서 병원 다닐 때요. 그때도 누구 하나 의사한테 시집가면 로또랬지요. 연애는 해요, 희망적으로다가. 하지만 결혼은 안 되더라고요. 그 남자는, 그 의사는 의과대학도 이름 있는 대학 출신이었는데, 좀 어려운 가정환경으로 수간호사 언니랑 서로 의지하며 지냈대요. 보드 딸 때 마지막엔 언니가 남자 집에까지도 도움을 주고 그랬대요. 하지만 곧바로 병원집에서 픽업, 집게로 인형 뽑듯 쫘악 집어가 버렸어요. 결혼 시켜서 바로 미국 유학, 크게 배워와서 병원 운영하라, 뭐 그런 식이었대요. 별반 화제 거리도 안 되고, 올 것이 왔다 그 정도였죠. 그러니까 돈 문제가 우리 인생을 좌우하는 건 한참 되었어요. 어제오늘 일이 아녀요.

맞아요, 일찍 알았네요. 돈이 지배하는 세상.

누구든 부~자 되고픈 꿈을 꾸죠. 부~자라야…….

그런 꿈은 낮꿈이라 해야 맞다니까요. 자면서 꾸는 그런 꿈이 아니니까.

아, 네, 그 낮꿈! 언제도 꼭 그렇게 말 하시더니……

그래요, 더 잘 살아보자는 낮꿈요. 낮꿈이 뭐라고 매달려요? 부질 없죠. 게다가 욕망이란 끝간 데를 모르기 때문에, 사람이 목표에 꽂히면 내일 땜에 오늘을 망치기도 하고요.

낮꿈이, 희망이, 욕망이, 뭐든 간에 그런 것이 오늘을 망쳐요?

내일만 바라보고 걷다보면 오늘을 사는 건 아니잖아요. 내일이 없을 수도 있고. 그러니 선택의 문제예요. 오늘 사는 쪽으로 또는 내일을 희망하는 쪽으로.

선택…….

그러다가 짓궂게 내가 물었다. 왜 그랬을까.

아니, 어떻게 꿈을 가지지 않을 수가 있어요? 꿈이 좌절된 적 있으세요?

무리한 희망을 갖다가 좌절할 틈이 어딨어요. 피 터지는 경쟁밖에 아닐 텐데, 미리 안 갖는다니까요! 봐요, 내일을 위한 희망을 계획을 가지고 거기 매달린다 칩시다. 그래요, 올인! 그게 자칫 오늘을 좀먹는 거요. 오늘 굶주리면서 죽은 뒤에야 받을 보험을 드는 일, 그게 뭐냐고! 오늘을 충분히 살아야지요. 오늘이라도 찬찬히 충분히.

오늘을 잘 살라고? 내일을 꿈 꿀 나이도 아니구만, 치, 나는 속으로만 틱틱거렸다. 이 할머니의 말은 어느 부분부터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 꿈을 꾸고 가꾸고 노력하는 일들을 내일에 대한 욕심이라고 하질 않나. 신앙이 없는 사람이니까 그러겠지만, 내일을 믿기는커녕 기대도 하지 않는다니 좀 심했다. 내일이라는 희망으로 계획도 세우고, 계획에 맞춰서 사는 내 삶에 대해서 뭘 안다고 저러는가. 이 세상에 재테크는 기본이고, 건물주라는 기본 꿈을 이룬 지금도 그 다음 꿈을 향해서 나가는 내가 나는 자랑스럽다. 서로 그렇게 채근하며 동행하는 남편이 믿음직하다.

우리만 그러는 것이 아니다. 남편 친구네 하나는 경매물건 전문으로 꽤 잘 나간다. 여자가 더 잘한다고도 그런다. 내가 그 친구네 이야길 슬며서 했더니, 이 할머니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흉년에 논 사는 것 아니다, 그런 말 괜한 말 아녀요! 상대가 안쓰러운 경우에 이득 봐선 안 된다는 가르침이죠. - 경매는 다를 걸요, 직접 상대하는 것도 아니고. 또 어차피……. 그쯤에서 말을 끊었다. 말이 잘 안 통한다.

 

 

소통이 잘 될 사이는 아니다. 70대와 50대, 아예 모녀 사이도 아니고. 그러다가 무엇인가 전혀 예상밖의 말을 듣게 되는 재미도 있다. 언젠가 들은 은행계좌 이야기도 그 하나였다. 어르신이 통장이며 카드며 사용 실적이 없다고 은행에서 연락이 왔을 때였다. 주거래은행이 아닌 곳이라나. 그렇다면 그쪽은 그대로 정리를 해도 될 것 같은데요, 라고 내가 참견을 했다. 그런 일은 내가 훨씬 낫다고 생각했다.

그러고는 느닷없이 - 웃기는 일이었다 - 내가 건물주가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통장을 가지고 얼마나 알뜰하게 저축을 했었는가 좀 자랑삼아 이야기를 했다. 빨래 줄이려고 하얀색 티셔츠는 입어보지도 않았다는 그 말도 또 곁들여서. 그랬더니 나더러 참 예쁘게 산다고 하면서, 남녀차별 없는 은행계좌는 한국인의 특권이라는 말을 해서 너무 놀랐다. 친구 큰언닌가 하는 누군가가 서독 간호원 파견 때 독일에 가서 보고 너무 놀랐다는 이야기를 전해주는데, 내가 더 놀랐다. 그때가 60년대 초였는데, 현지 독일인 간호사들의 사회적 형편이 상상도 안 가는 수준이었다고. 여자가 은행계좌를 만들 수 있던 것이 1958년인가 59년인가. 그 전까지는 여자들은 은행계좌가 없으니, 친정서 결혼 때 가져온 지참금도 남편계좌로 들어가고 당연히 남편이 관리했고. 여자는 직장에 노동계약서 쓸 때도 남편의 승낙이 먼저였다니. 그러고도 서양일까. 우리는 서양은 여성상위쯤으로 알았는데.

시대가 달라졌다. 사실 우리 주변에서 보면 숨죽이고 사는 여자들은 별로 없다. 다들 돈도 벌고, 남편보다 더 잘 버는 아내들도 꽤 있다. 돈을 벌지 않으면서도 돈 버는 남편들을 꼼짝 못하게 하고들 산다. 전에 옆집 살던 아주머니는, 나보다 한참 위였는데, 중학교에선가 아무튼 남편이 정년퇴직을 하자마자, 밥은 이제 당신이 해요, 라고 밥솥을 넘겨버렸다는 이야기를 자랑삼아 했다. 평생 밥 해줬으니 이제 당신이 할 차례라고 했단다. 그렇다면 이제 여자가 나가서 돈을 벌어오겠다는 말인가. 그건 또 아니랬다, 후훗. 우린 그때 놀라면서도 배웠다, 저리 살자!

 

 

멀리 복도 끝 창밖을 보니 눈발이 날린다. 첫눈인가 싶다.

첫눈 오는 날 약속……, 지 선샘, 그런 것 없나요? 올해도 눈이 많이 오려나? 겨울이 더 어렵겠지요? 당장 생활비 걱정으로 머리 아픈 젊은이들 말예요. 몸을 팔다 보면, 이제 곧 영혼을 파는 알바도 나올 것이니.

영혼을 팔아요?

하긴 영혼이 있나, 있어야 팔지.

뭐예요, 영혼을 믿지 않으시나 봐요.

영혼을 믿는다는 일, 그거 쉬운 일인가요, 어디.

영끌이 있잖아요, 영혼까지 끌어다가 집 산다고! 영혼이 있으니까 끌어다가 쓴다는 것인데…….

예, 있다고 해둡시다. 영혼이 있어야 팔 테니까, 있는 쪽으로다가.

우리 맘대로요?

아니 좋은 쪽으로. 무엇이든 있는 것이 없는 것보다야 낫겠지요. 영혼을 판 이야기는 엄청 유명한 것 있어요! 이보시오, 살아생전에 하고 싶은 것 다 들어줄 테니, 다시 이팔청춘으로 돌려줄 테니 멋대로 살고, 죽어서는 영혼을 내게 다오 – 뭐 그런 악마의 유혹.

아, 메피스토! 알아요! 남편 친구가 두고 쓰는 말인데요! 너희들 오늘 저녁엔 영혼 내게 팔아, 내 멋지게 살게 해주마! 그냥 재밌게 놀자고 설치는 말인데, 그이 십팔번이예요! 어쨌거나 영혼이 있다는 전제네요!

어, 그런 재미있는 친구가 있어요? 스스로를 악마라고?

그냥 웃자고 그래요!

메피스토펠레스라, 악마이건 뭐건 세계적인 세기적인 인물이네.

네? 메피스토는 그럼 줄인 이름인 거네요. 하긴, 소크라테스 보다 테스형이 완전 유명하잖아요!

그런가. 근데 테스형은 좀 웃겼지. 메피스토펠레스를 메피스토라 줄이지 레스라고 하나? 끝자를 따서 테스라 하다니.

끝자?

봐요, 아킬레우스, 오르페우스, 프로메테우스……, 그런 이름들은 모두 우스라 줄이나? 우스, 테스 그런 건 그냥 끝소리라니까요!

그냥 끝소리라뇨? 우리 순이, 금이, 은이처럼?

지순이, 금이, 은이 – 우리는 자매들은 거의 외자 이름이나 같다. 순아, 금아, 은아 그렇게 부르기도 하고, 어쩔 땐 은! 그러기만 한다. 그러니까 테스는 뜻 없는 ‘이’나 같다니 맥이 풀린다. 가수는 좀 그래도 ‘테스형’ 노래는 꽤 인기였는데! 하긴 인기 트롯 프로그램도 남편이 끔직해하는 채널에서 해서 거의 못 본다. 고향이 여기라서 그런지 확실히 편파적이다. 직접 대놓고는 그런 말은 삼간다. 여기 사람들은 건드리면 안되는 어떤 부분이 있는 것 같다.

 

시간 참 지루하다. 검사가 한 시간 반이라더니 두 시간이 다 되어 간다.

지 선생님, 그런데 결과가 더 나쁘진 않겠죠? 걱정 한 가지, 저이가 요즘엔 잠을 너무 자는 것 같아서. 낮에도 산책은 이런저런 핑계만 대고 잠만 자려고 하잖아요.

보호자 머릿속에는 어르신 뿐인가 보다.

추우니까 그러시겠죠. 그럼 밤에 잘 안주무세요?

밤에도 자는 편이예요. 하루로 치면 너무 많이 자니까 불안하기도 해요. 계속 잠을 자면 언제 사느냐고요.

사는 것 되게 중요시 하세요!

그럼 사람이 사는 것이 사는 것이지. 살아야 살아있는 것 아닌가.

네, 다들 열심히 살 잖아요, 꿈을 가지고 노력하고! 젊은 시절 그렇게 사셨을 거 아녜요.

무지개가 피었습니다~ 하고서 다 같은 무지개를 쫒아 살면 다 같이 도달하남? 다른 곳으로, 더러는 반대로 향하는 것이 사는 거란 말이라.

꿈의 반대로요? 뭐가 되려고요?

반대가 아니라, 뭐가 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꼭 그런 힘든 외사다리로 몰려야 하냐고. 성공해서 인정받으면 뭐가 달라지는데? ‘남들의 가치 기준에 따라가면서 목표를 세우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 그건 내 가치를 깎아내리는 바보짓’이라고. 것도 어디서 읽은 말이요.

하지만 가치라는 게 대부분…….

대부분 말고요. 남들의 꿈을 따라가면서 어차피 뒤쳐지는 사람들은 우수수 얼마나 불행할지.

그래도. 시작이라도.

남들 따라 같이 할 건 없다니까요. 나는 나죠. 누군가 나를 무시해도 나는 나이고, 누군가 나를 칭찬해도 나는 나이고.

넘 냉정하세요!

냉정? 냉냉, 쌀쌀맞아 죄송하요!

그러고는 일어서더니 복도 끝 창쪽으로 걸어간다. 앉아있기도 힘이 들다면 힘들다. 실은 나도 좀이 쑤신지 한참 되었다.

 

그건 그렇고, 왜 이리 불편한가. 이 할머니랑 이야기를 하다보면 무언가 편치 않을 때가 있다. ‘몸 파는 스무 살’ 이야기 때문에 어두운 상념들이 사방팔방에서 밀려왔다. 아까도 알바하다 죽는 이야기를 꺼낸 건 자동적이었다. 맨날 듣는 뉴스가 그러다보니 온갖 사고사들까지 한꺼번에 되살아나서 살이 아파왔다. 전동차 스크린에 끼어서, 들여다 본 기계에 빨려 들어가서, 크레인에서 떨어져서, 비계 위에서 함께 떨어져서 아래에서 깔려서, 크레인 기사라 해도 소용없고, 비계 기능사라 해도 그렇다. 자격증들이 무슨 소용! 어라, 자격증들이 죽음으로 이끄는가. 낼 잘 살려고 오늘 죽는다? 그 비슷한 말, 내일을 위해 오늘 죽음 속으로 들어간다는 저 불편한 말이 맞는 것일까. 어쩌나, 이 동네 말라깽이 택배 아저씨는…… 무사하겠지. 괜한 걱정에 볼에서 열감이 느껴진다.

아니야, 나는 아무렇지도 않다. 사는 것이 그런 것이다. 도처에 사건도 있고 사고도 있다. 그런 것에 흔들려서 절망하고 그러면 안 된다. 무심하게, 정직하게만 살면 된다. 명사가 못 될 바에야 오직 재테크만이 인정받는 세상이다. 최소한 살아내기 위해서라도 무엇이든 팔아야 하는 세상, ‘몸 파는 스무 살’ 이야기가 어때서. 가슴이야 좀 아프다. 하지만 나도 남편도 영혼을 끌어냈으므로 가난에서 탈출했다. 누군들 영끌이 필수인 것을 어쩌라고.

그런데 어딘가에 지뢰가 묻혀있다. 허기 말이다. 잘 살아왔다고 믿었었는데 어딘가 채워지지 않는 허기란 놈이 으르렁거린다. 오늘을 살았다는 기억이 없이 내일을 위해서 달려왔다는 말이 맞다, 두 주먹을 불끈 쥐고서. 이 허기의 대가로 노후는 충만할 거야…… 설마. 안락한 노후는 계속 유혹의 손길에 가려져 있는가. 혹시 노후 준비가, 노후 걱정이 낮꿈이란 말인가? 그럼 당연히 낮꿈을 꾸어야 한다. 아니, 노후 준비란 오히려 낮꿈 없애기일까, 손바닥을 펴고…….

 

아, 드디어 검사실 문이 열린다. 어르신의 얼굴이 조금 상기되어 있다. 힘드셨을 것이다. 인지검사의 질문이라는 것이 예상되는 말이 아니니까 청력장애면 더욱 이해하기 어렵다. 괜찮았어요? 다가온 보호자가 미처 말을 시작도 하기 전에, 안에서 보호자를 부른다. 잠시 또 어르신과 둘이 되어서 진료실 복도에 앉는다. 낮꿈은 잠시 접어 두고.(84장)

 

_________________________

[2021] 작가교수세계 - 한국작가교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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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서용좌
소설2021. 7. 10. 22:35

 

초겨울

 

 

 

초겨울이다. 느낌으로는 초겨울이 제일 춥다. 한낮인데도 쌀쌀함은 누그러지지 않는다. 뺨이 더 팽팽하게 긴장되는 것은 오늘 시작할 새 일자리로 인해서다. 요양보호사 – 명칭은 길지만 하는 일은 짧다, 시간제 돌봄이다. 첫날은 조건 때문에 밀당도 해야 한다. 흔하디흔한 아파트 대문 앞에서 숨을 고르는 찰나, 첫 번째 시험은 초인종이었다. 하필 초인종이 두 개가 있을 게 뭔가. 첫 동작부터 실수를 하고 싶지 않아서 신경이 곤두선다. 염려는 기우였다. 띵 똥 한 번에 재빠른 답이 온다. 예에, 하는 소리와 부드러운 발자국 소리가 함께 다가온다. 대문이 열리면서 나타난 얼굴은 - 누굴까? 돌봄 어르신은 80대 남자라던데, 그러니까 보호자인 모양이다.

어서 오세요! 혼자 오시는 거죠?

아, 네. 오늘 저 혼자 오게 되었어요.

아무려나, 어서 오세요. 아파트 쉽게 찾으셨지요?

네, 뭐.

 

첫 인상은 푸른 나무들로 계절이 겨울인 것을 잊어버리게 하는 집이었다. 넓지도 않은 거실인데 한쪽으로 베란다로 통하는 유리창 쪽으로는 크고 작은 화분들이 즐비했다.

밖에선 얼겠지, 겨울 추위에. 그런데 환자 있는 집에 무슨 화분들을! 하긴 강아지나 고양이들이 튀어나오는 것 보단 낫겠다 싶었다.

그리고는 흔한 아파트 풍경이었다. 텔레비전, 소파 그리고 탁자. 좁은 거실에 탁자는 크고, 탁자 위에는 신문 잡지들이며 뭔가가 수북하다. 노인들이라니! 소파에 누워있는 사람이 내가 돌 볼 어르신일 게다. 소파에 누운 채, 낮인데, 그래서 아픈 거로구나, 생각을 하는데, 사람이 들락거려도 반응이 없다.

저, 그런데 태그는 어디다가, 출근부 말예요.

일단 집에 들어왔으므로 출근부에 태그를 해야 시간이 기록될 테니까 그것부터 물었다. 여자가 가리키는 곳은 신발장이었다. 뭐야, 날마다 신발장부터 열어야 한다고? 하필 냄새나는 신발장을! 하긴 어떤 집은 환자가 이 낯선 물건을 훼손하곤 해서 싱크대 문짝 안쪽에 붙여놓기도 한다더라. 싱크대고 신발장이고 냄새는 피할 수 없는 자리다. 뭐, 찌든 담배 냄새만 없어도 다행이다.

 

올라오세요. 오늘 이 양반 꿈쩍을 안 하네요. 점심 다 식는데도.

그러고 보니 식탁이 차려진 채다.

집안은 음식 때문이었을지 아늑할 정도로 따뜻하다. 아, 다행이다!

그럼 어르신이 오늘 특별히 아프신 거예요? 치매 5등급, 1939년생, 남자, 그 외엔 별 특이사항 말 없었는데요.

아뇨. 뭐랄까, 반응이 없는 것이 특징이라면 특징이지요. 원래도 말이 적은 사람인데, 최근에는 아예 입을 닫고 살지요. 하고 싶은 말은 겨우 눈으로 해요.

눈으로 말을 해요?

예, 그런 셈이에요. 뭔가 필요하면 그 쪽을 쳐다봐요. 그럼 냉큼 집어다 주면 또 말없이 받아들고. 그러니까 탁자 위 신문을 쳐다보면 신문을, 리모컨을 보면 리모컨을 집어달라는 것이고, 저쪽으로 멀리 냉장고를 쳐다보면 물을 달라는 식이지요.

갑자기 말문이 막힌다. 이 집 보호자는 내가 환자 상태를 체크를 하는데도, 내 이름이 뭐냐, 오기로 확정한 것이냐 등을 묻지도 않고, 내가 온 것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듯 편안하게 말을 하고 있다.

예상 외로 젊은 분이 오셨네요. 나이 지긋한 분 부탁했었는데요. 헌데 진짜 젊은 분이 오니까 집안이 갑자기 팔팔 살아나는 것 같은데요.

 

이건 또 뭐야. 그러니까 내가 기대한 것보다 한참 많이 젊은데, 그런데도 통과라고? 아무튼 이 할아버지 서비스를 맡으려면 조건은 미리 확실히 해두어야 한다.

저, 그런데 여기 서비스 와달라는 시간이…….

아, 시간요. 시간이 왜요?

저랑은 딱 맞지는 않은데, 과장님이 일단 가보라고 해서요. 저는 1시에 오는 것이라야 맞거든요.

1시라야 된다고요? 그럼 1시 반이면 못 오시나요? 그런 거예요?

그게 좀, 오전 끝나고 중간에 시간이 많이 떠서요.

어쩌나. 1시부터면 4시에 끝날 것인데, 내가 가끔 4시 좀 지나서 집에 오게 되니까 4시 반까지는 봐주셔야 하는데. 참, 선생님 이름이 지은이 씨라고? 차 과장님이 전화했어요. 지 선생님은 추가시간은 안 하실 거라고도.

네, 저는 해당 서비스 시간만 봐드리고는 끝이에요. 저는 아무래도 1시부터면 좋겠는데요. 점심시간에 집에 들어갔다가 오기는 너무 멀고, 그냥 오자면 시간이 어중간하게 남아서요.

…….

저쪽에서 말을 쉰다. 생각이 길어지나 보다. 아쉬우면 나한테 맞추겠지 뭐. 난 쉽게 생각했다. 일단 세게 나가자 싶었다. 초면인데 알게 뭐야, 아니면 말고.

시간이 정 맞지 않으시면, 그게. 아무튼 오늘은 제가 일단 왔으니까 세 시간은 해드리고 갈 거고요.

아니, 잠깐만. 뭐, 1시 반부터면 못할 수도 있다고요? 그럼 서로 15분씩 양보하면 어때요? 1시 15분부터, 난 혹시나 늦어도 4시 15분엔 돌아오고.

 

이번에는 내가 잠시 말문이 막혔다. 방심하고 있다가 갑자기 밀린 것이다. 스스럼없이 시간을 정하고 만다. 어물쩍 넘어가서는 안 될 일인데 15분을 밀렸다니!

그렇다면 나머지라도 확실히 못을 박아야 한다. 우리 요양보호사가 해드리는 것들 서비스 범위는요, 라고 말을 뺐는데 그것도 쉽게 통과였다. 환자 아닌 가족을 위한 생활지원은 금물이라는 것부터, 책에 써진 것 외우듯이 다 읊어댔다. 내가 놀라는 눈빛을 하자, 센터에서 보낸 파일 안에 다 있어서 알고 있다는 말이었다. 다만 부엌에서는 점심 설거지만 부탁한다면서, ‘설거지만’이라고 강조했다. 나는 머릿속으로 환자 밥 챙겨 먹이는 것 - 만들고 먹이고 설거지하고 - 그것과 2인분 설거지만 하는 것의 노동량을 따져보려다가 말았다. 음식 만들기가 더 까다로울 테니까. 엉거주춤, 그것도 밀린 사이에 보호자는 말을 이어갔다.

것보다 문제는, 뭐냐면 우리 양반이 말을 잘 안 들어요. 누가 뭐라고 해도 신청도 안한다니까요. 그게 좀 힘드실 거요.

네에, 그거야 우리 일이니까요. 그런데 또 하나, 우리가 움직이는 반경은 멀리는 안 되는 것 아시지요? 이번에는 내가 먼저 쐐기를 박았다.

멀리요? 산책은 멀리 안 가시는데, 못 가는데.

심부름 같은 것 말이죠, 혹시라도 무슨 심부름이나.

심부름이요? 심부름 무슨?

심부름을 이해 못하는 것이 이 집에선 심부름은 없나 보다. 잘 되었다. 보통 혼자 사는 어르신들 돌 볼 때에는 이것저것 해달라는 부탁들이 많다. 마트며 반찬가게 들르라는 것은 기본이고, 가끔은 엉뚱한 부탁도 한다. 진짜 엉뚱한 심부름 말이다. 심지어 폐지나 병 같은 것, 모아놓은 고물을 팔아다 달라는 부탁을 해서 고민이라는 동료도 있었다. 고물을 모을 정도인데 재가방문요양 서비스라고? 잠깐 의아했지만, 아서라! 복지사회는 좋은 것, 긁어 부스럼 낼 일은 아니다 싶기도 했다.

아, 물론 병원 가실 때는 함께 모시고 가죠! 병원엔 멀리 가더라도 환자의 진료 기록이 컴퓨터에 뜨니까요. 우리 요양보호사 행동반경과 환자가 함께 있으니까요.

엄격하군요. 그래야 하겠지만요. 암튼 그럼 되었네요. 1시 15분에 오시는 걸로.

우물쭈물 일은 결정이 났다. 이 보호자는 일을 너무 쉽게 결정한다. 내가 그만 그 페이스에 밀렸다. 평상시 내 일은 아니다. 뭐, 정 아니면 한 달만 하고 말지. 아쉬운 건 언제나 노인들, 내가 갑이면 갑이지 을은 아니다. 일 할 데는 널려있다. 뭐, 잠시 안하고 쉬면 쉬는 거다. 나는 결코 생계형 노동자는 아니니까.

 

이쪽으로 와 보세요. 여기 안방이 환자가 쓰는 방. 여기 욕실 쓰고. 그런데 주로 거실에 저러고 있지요. 그런데 지금도 자고 있는 것은 아니거든요. 우선 점심 먹을 수 있게 해야겠어요.

여기요, 일어나 보세요. 오늘 새로 지 선생님이 왔어요. 말동무 해드릴 거요. 손잡고 산책도 하고. 나는 비틀거리잖아요! 어디, 일어나 봐요!

눈치를 보니 내 차례다.

어르신, 안녕하세요! 저는 지은이라고 하는데요. 오늘부터 어르신 돌봐드리러 왔답니다. 어르신, 일어나 보세요. 점심시간이 늦었거든요.

…….

사람을 빤히 쳐다보는 눈매가 촉촉하다. 계속 감고 있어서 물기인가? 아니, 80대라고 했는데 소년 같은 눈망울이네. 백발의 소년이네.

어르신, 저는 지은이고요. 이제 일어나셔요, 식사하시게요. 식사하시고 나서…….

뭐? 지 - 은 - 이? 지은이라? 책을 썼다고? 지은이라면 내가 지은인데, 이게 대체?

입을 연 것은 반가우나, 하필이면 내 이름이 귀에 걸렸나 보다. 인사가 엉뚱한 방향으로 튀어버렸다. 어르신이 벌떡 일어나더니 탁자에서 신문이며 책들을 주섬주섬 치우면서 무엇인가를 찾는다.

아니, 내 책이, 책이 어디로 갔나.

무슨 상황인가. 무슨 책을 찾을까. 부엌 쪽에서는 내색이 없다.

엄마아, 준이 엄마, 내 책이!

갑자기 목소리를 높여 아내를 찾는 모양인데, 그런데도 보호자는 무반응이다.

아니, 어르신, 뭘 찾는 건 나중에 하시고요. 우선, 인사드릴게요. 처음 뵙겠습니다. 제 이름이 지은이라고요. 이름이 지은이.

아하, 지가 은이라고. 지씨라. 어디 지씬가?

충주 지씨예요. 어르신은 이름이,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나, 나는……, 에이, 애들이 어른 함자를 묻나. 내가 내 이름을 모를까 봐?

아유, 어르신, 죄송해요. 어서 일어나셔요. 식사시간이에요.

 

그렇게 해서 점심 식탁에 모여 앉는 데까지 또 십여 분이 흘렀다. 그 상황에 더해서 손을 씻고 오느라고 그런 것이다. 노인들이 화장실에 가면 십분은 기본인 경우도 많은데, 이 어르신도 그런 건가 보다. 대소변 문제는 없나? 화장실 쪽으로 따라가면서 직업적인 걱정이 섞인다. 그 사이 냄비들이 가스레인지 위로 다시 왔다 갔다 하는 모양이었다. 밥과 국이 올라온 뒤에도 한참을 레인지 앞에 서 있던 보호자가 숭늉과 누룽지를 내온다.

뭐야, 숭늉을 먹는 집도 있어? 의외이기도 하고, 이러다가 된통 힘든 집에 걸린 것이나 아닌가 하는 불안도 스멀거렸다.

지 선생님, 이쪽으로 앉으세요.

아, 네.

보통은 1시 반까지는 밥상이 끝나요. 오늘은 늑장을 부려서는.

상관없어요. 어떻게 드시나 볼게요. 근데 엄청 골고루 차리셨네요.

뭘 먹을지 몰라서요. 아무튼 이제 말 좀 걸어 보세요! 그것이 문제랍니다. 말을 들어야 뭘 골고루 먹게 하거나 말거나.

맞다, 내 차례다.

어르신, 맛있는 것 많이 차려주셨네요. 여기 동치미, 이 국물부터.

내 목소리는 원래 큰 편이다. 또 여기 사람들과는 다르게 서울말투를 쓴다. 그래서일까? 말을 듣지를 않는다던 어르신이 뜻밖에 반응을 보였다. 비뚤게 앉은 자세도 ‘달래서’바로 잡았다. 그런데 먹는 일에 조금은 문제가 있어 보였다. 이것 드셔보세요, 그러면 그것을 그릇째로 다 비우려고 한다. 저것 드셔보세요, 그러면 그것을 또 그릇째로 다 비우려고 한다. 아, 얼핏 보기에는 정상인데 인지문제가 있기는 있구나.

 

 

아주 엉뚱하게, 혼자 단출하다 못해 초라한 밥상 앞에 앉아있을 어머니가 아른거린다. 일하는 중에 다른 쪽으로 빠지는 일은 드문데, 스스로 갑작스럽다. 어머니는 아예 밥상을 차리지도 않는 끼니가 많을 것이다. 나는 어머니의 밥상을 챙기는 대신에, 돈을 번답시고 생면부지 ‘어르신’의 밥 시중을 들고 있다.

내갈비도 여적이고마 또 도가니탕을 보냈디야. 그리 보내쌓면 뭘햐. 느그덜이나 노나 먹지야. 느그 아부이가 계심사…….

홈쇼핑에서 갈비탕을 사서 보내드렸더니 전화를 하셨다. 어머니는 맛있는 것을 앞에 두고서 아버지 생각을 하신 거다. 그러고서 냉장고에 그냥 쌓아둔다. 누가 집에 찾아가서 함께 굽거나 끓이거나 해서 드려야 드신다. ‘내’갈비라고 하시는 것은 LA를 ‘내’라고 읽으시기 때문이다. 에이자 위쪽이 넓게 쓰여서 그리 보이기도 한다. 아무려면. 드시기만 한다면. 그런데 아버지 말씀 꺼내시는 것이 수상타. 아버지가 고기반찬을 좋아하신 것은 맞지만, 돌아가신 것이 대체 언제 적 이야기인가 말이다. 아버지는 아직도 살아계신다. 장롱 속에서 모자로도 살아있고, 화장대 서랍 속에도 살아있다. 이 참빗이야, 느그……. 여전히 아버지를 집안 어딘가에 숨겨 놓고 사시는 통에, 우리는 어머니 앞에 가면 조심해야 한다. 아버지가 언제 되살아나서 우리랑 섞여 앉아계실지 모르는 일이니까.

점심은 드셨을까. 요즈음 엄마한테는 둘째언니가 챙겨 보내는 뉴케어가 답인가 보다. 연명은 되실 테니까. 아버지부터 우리 형제자매들, 그러니까 온통 거구들인 지씨들에 비하면 어머니는 원래 작은 체격이다. 나이 드시면서는 더더욱 작아져서 아기 같다. 아기 같은 어머니는 유난히 추위를 탄다. 내가 엄마를 닮았다. 이런 겨울 날, 추워서 방문일랑 열지도 않고 방안에서 무얼 하실까. 전화라도 하고 지낼 형제자매도 없으시다. 손위 외삼촌 한 분은 돌아가셨고, 다른 식구들은……. 어머니는 문경 외가 말씀을 극히 삼간다. 문경을 떠난 것이 하도 오래전 일일 뿐 아니라, 생각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공포에 잠기신다. 문경의 채씨 세거지의 비극, 아니 참상, 아니 학살은 - 멍해 있는 사이 점심이 대충 끝난다.

 

점심 뒤처리를 하는 동안 - 오늘은 첫날이라고 함께, 주로 주인이 치웠다. - 어르신은 다시 거실로 나가서 소파에 ‘제 자리’하고 있었다.

커피 하죠? 점심 후엔 일단 피곤을 덜기 위해서 한 모금. 잠깐 이리 오세요.

저는 가지고 왔는데요. 두 잔째 커피를 따르던 보호자의 말을 내가 막으며 에코백에서 보온병을 꺼내왔다. 꺼내 입으려했던 오리털 조끼가 거기 그대로 있었다. 이집은 정말 따뜻하다.

예? 커피를 가지고 다녀요? 우리 집에 오면서 커피를 들고 왔다고요? 앉은 자리에 풀도 안 나겠어요.

아니, 서비스 다니다 보면 커피를 전혀 안 드시는 어르신들이 많아서. 또 제가 원래…….

원래고 뭐고, 집에 커피 둘 다 있어요, 아메리카노도 양촌리도.

양촌리요?

아, 밀크설탕커피, 왜 옛날 농촌드라마에서 달달하게 마시던 커피요. 거기가 양촌리였나 뭐 그래요. 아무렇거나, 오늘은 우선 이 양반 병력을 보실래요? 가만, 건강메모 - 여기 맨 앞에는 평생 큰 병 앓은 내력이고, 그 다음으로는 올해 이 요상한 발병부터 간간히 메모 해 둔 것들.

아무렇지도 않게 핸드폰을 내민다. 갤럭시 노트다.

그러니까 지병이 꽤 있었다가, 아, 네, 약간의 인지문제 그거야 보통 그러지만, 루이소체? 이런 종류는 처음인데요. 가만, 환시와 악몽이 문제라고요?

엠알아이며 브레인페트까지 다 검사 했어요. 환시라는 것 첨엔 무섭더라고요. 심한 착각, 착시 그런 거죠. 가끔씩 엉뚱한 질문에 놀라곤 해요.

어떤…….

조용히 앉아 있다가, 우리 지금 둘이만 있는 사는 거 맞아? 이러는 거예요. 누군가랑 셋이서, 어떤 때는 여럿이서 함께 살고 있다고 믿고 있어요. 의사선생님 말로는 실제로 보여서 그렇다니, 좀 섬뜩할 때가.

그러시겠네요. 그럼 처음보다 더 나빠지신…….

내가 아나요, 병원에서도 검사를 해서 수치가 나와야 알던데요 뭐. 아무튼 오늘은 어떻게 해서든지 말을 좀 시켜 보세요. 소뿔은 단 김에 빼랬다고, 1라운드가 중요할 것 같아요. 이리 오세요.

 

등을 떠밀리다 싶게 거실로 나온다. 뒤따라 나오던 보호자는 다시 한 번 우리를 소개한다. 상황을 확실하게 해두려는 것 같다.

저기요, - 남편한테, 저기요? - 조금만 앉아서 쉬다가 누우세요! 오늘 지 선생님, 여기 지 선생님 만나서 반갑지요? 우리 애들 또래 같아요. 먼 데 사는 딸이 왔구나, 그리 생각하세요! 자, 지 선생님!

공이 내게로 넘어 왔다.

어르신, 오늘 저 만나서 기쁘시죠?

대뜸 내 말에 어리둥절한 표정을 하던 보호자는 자리를 뜬다. 큰일이다. 첫 번째 펀치에서 성공해야할 텐데……. 은아, 힘내자! 할 수 있어!

 

환자의 의식을 깨우기 위해, 나에게로 집중시키기 위해 내가 가진 기술을 발휘할 때다. 어르신들을 보면 아버지 생각이 난다, 그런 식으로 시작하는 것이 보통이다. 전혀 먹히지 않는다. 빤히 쳐다보기만 할뿐 입은 꽉 다문 상태다. 주변을 돌아보았다. 유리창 쪽 제법 큰 화분들 앞쪽으로는 자잘한 다육식물들과 선인장들이 있었다. 촘촘한 가시들이 불안하다. 어찌 보면 위험할 수도 있지 않을까. 일단 눈앞에 보이는 화분들로 화제를 옮겨 보기로 한다.

어르신, 아파트에서 어떻게 이렇게 큰 나무를 키우셨을까? 이 키다리, 아니 이렇게 잎들 무성한 것도 있네요. 이 가지는 제 키만 하겠어요!

들은 척도 하지 않는다.

어르신, 그런데 이것들 이름 좀 가르쳐 주실래요? 제가 처음 본 것들이라서 궁금하거든요. 요것들은 다육이라죠? 다육이라도 따로 이름이 있다던데. 이 솜털만 많은 꼬맹이 선인장들, 이것들은 또…….

이런 것들 처음 보나? 뭐가 그리 궁금하나?

옳거니. 선인장에서 끌려왔다. 계속 선인장으로 가보자.

이렇게 어찌 보면 못 생긴 것들인데, 죄송해요, 근데 귀하게 귀하게 키우시네요.

갑자기 눈을 들어 이리저리 돌린다. 사람을 찾는가 보다. 보호자는 어느새 사라지고 없다. 아까 방문 소리가 나더니 어느 방에 들어가 있는지 아무 기척이 없다. 어르신이 턱을 들어 부엌 쪽을 가리킨다. 보호자를 오라는 건지, 보호자를 가리키는 건 맞는 것 같은데 뜻을 모르겠다.

보호자분요? 할머니요? 안 보이시는데요. 왜요?

저 사람 거요.

아니, 여기서 주인이 따로요?

그것만 중하게 보듬는다 말이요.

보듬어요? 선인장을?

아, 보듬어 키우다시피 한단 말이지. 물어봐요. 밖에도 끔찍이 챙기는 것들 있어.

베란다 쪽으로 턱을 들면서 말한다. 옳거니, 화초들에 관해서 이견이 있구나. 호불호가 다르다 이 말이겠다.

밖에 또 화분들 많아요? 그러네요. 밖에도 많네요. 그럼 어르신은 어떤 것들을 좋아하시나요? 밖에 내다보고 올게요. 같이 보실래요?

아이쿠, 성공이다. 화초를 뭐라 가르쳐줄 게 있는지 부스스 일어난다.

이쪽으로, 예. 자, 가시게요.

정말 베란다에는 놀라울 정도로 크게 자란 선인장들이 고개를 꺾고 있었다. 천장에 닿지 않으려고 몸을 웅크리고 자란 것들이다. 불쌍타. 이 추위에 너른 창이 반쯤 열려 있는데도 베란다 볕이 좋은 듯 했다. 아예 온실처럼 푸른 잎들이 무성하다. 넝쿨로 자라는 것들도 여럿 걸려있다.

우와, 선인장들, 소철인가, 아예 꽃집 같은데요. 어르신은 어떤 걸 젤 좋아하세요?

해피트리, 요거 해피트리야.

아, 그런 이름도 있었군요. 해피……. 그럼 이 엄청 큰 나무는요? 나무 가지 요거 젤 큰 거는 제 팔 길이만 하네요. 고무나문가요?

맞아, 요거 잎 끊어지면 그 자리에서 하얀 고무액이 흘러요. 눈물같이 뚝뚝.

눈물 같이요? 어머나 시를 쓰시는 분 같아요.

시를?

예, 시인 같으세요.

시만 쓰면 다냐, 살림이 기우는데…….

네?

몰라, 다 잊었어. 나는 다 잊었어.

입을 다시 꼭 다문다.

어르신, 어르신?

다 잊었어, 다.

그것뿐이었다. 눈을 다시 반쯤 감더니 그런 채로 소파로 향한다. 키 큰 등의자에 부딪지 않게 하려면 손을 잡아야 했다.

 

방법이 없었다. 잠시 말을 잇지 못하고 정적이 감돌았다. 사뿐 발자국 소리와 함께 보호자가 나타났다. 뭐라고 부르지? 잠깐 고민이 되었다. 울 어머니 또래는 한참 아닌데 어머님이랄 수도 없고. 보호자님이라고 하자니 너무 딱딱하고. 이래서 독거노인 돌봄이 속 편한 것이구나. 이게 뒷북이다, 그런 생각을 이제야 하다니. 돌봄 대상과 단 둘이가 아니라 보호자와 삼각관계가 되나 보다. 삼각관계라는 것이 연애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어. 돌봄 시간 내내 보호자가 함께 지켜보고 있을 것이라는 데에 생각이 미치자 불편감이 확 밀려왔다. 지금이라도 말아? 집을 나서면서, 아니 나서기 전 5분 전에 조용히 말하면 된다. 곰곰 생각해 보았는데요, 저한테는 시간이 아무래도 맞지 않아서요. 이렇게 말하면 감정 섞이지 않은 허물없는 이유가 되어 줄 것이다. 일단은 호칭 없이 말만 하자.

어르신이 다시 주무시려나 봐요. 정말 말씀 없으시네요. 시만 쓰면 다냐, 어쩌고 그러시던데, 무슨 말씀이셨을까요? 어르신 시인이세요?

…….

아무 대꾸 없는 것이 노부부가 똑 같네, 뭐. 어처구니가 없기도 하다. 사람이 말을 하는데 무슨 반응이 저러나. 보호자는 말은 없이 무슨 주머니 같은 것을 들고 부엌으로 간다. 잠 잘 것 같다는데 부엌엘? 정적이 괴롭다. 부엌에 따라 들어가 보니 구석에 있는 전자레인지에 그것을 돌리고 있다. 구수한 향기가 피어난다. 꺼내 온 것을 보니 핫백이다.

낮잠 청하니까 발 따뜻하게 해주려고요.

아, 네, 핫백 냄새가 좋으네요. 뭐예요?

현미 자루. 몇 년 쓰면 알게 모르게 점점 타버려서 바꿔줘야 해요. 한 번 바꿔 넣었어요. 이건 안심이죠. 전기방석은 온도조절 잘 못하면 큰일 나겠더라고요.

아, 그래요. 그러네요. 냄새 너무 좋아서 저절로 잠이 올 것 같네요.

정말 그랬다, 잠에 취할 것 같은 느낌이다. 이 따뜻함! 향기!

 

 

서울의 겨울은 정말 추웠다. 벌써 30여 년 전, 서울 살이 첫 해, 봄여름은 눈코 뜰 새 없이 지나갔고 갑자기 겨울이 닥쳤다. 갓 상경한 젊은 애들을 위한 방은 하나같이 딱 한 뼘 마루, 얄따란 방문, 그리고는 방이었다. 반대쪽에 달랑 봉창이 있었지만, 황소바람은 냉돌까지 내려꽂혔다. 시골 고향을, 따뜻한 아랫목을, 더 따뜻한 엄마 품을 떠올리면 저절로 눈물이 났다. 눈물이 나면 눈까지 얼굴까지 얼어붙는 것 같았다.

우리가 결혼을 했을 때, 그해 겨울에는 따뜻한 몸이 옆에 있었다. 아, 사람도 따뜻하구나. 엄마가 아니어도 따뜻하구나. 처음에는 나보다 더 따뜻한 몸이 내 차가운 몸을 차갑게 느낄 것이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어느 날이었을까. 애기 기저귀가 모자라서 자다가 밤 빨래를 하고 이불 속으로 들어갔을 때, 잠들어 있던 그이가 내 손에 깜짝 놀라 움찔했을 때서야 깨달았다. 내 손이 차가울 때마다 얼마나 차가웠을까. 깨달음이란 언제나 늦게 온다. 그 뒤로는 그이가 내 손을 잡아줄 때라도 손이 자꾸 움츠러들었다. 방안을 따뜻하게 해놓고 살기 위해서 열심히 살아온 것이 맞다. 보일러 더 올릴까? - 뭣 하러, 충분하잖아! 정 추우면 옷을 더 입지! 혹시 이런 대답이 두려워서 추위를 그냥 견뎠다. 지금은 보일러 더 올릴까 물어보지 않고 더 올린다. 춥지 않아도, 춥기 싫어서, 추웠던 날들 생각을 하지 않기 위해서. 어디에서나 따뜻해야 몸이 풀리고 마음이 풀린다. 이 집은 일단 따뜻하다. 그것은 합격점이다!

 

지 선생님, 잠이 온다고요?

아아니요!

핫백 같은 것, 이이는 전엔 뜨거운 걸 참 싫어하더니. 나이 들면서 바뀌네요, 사람이. 시만 쓰면 다냐, 그랬다면, 그거 「넋두리」란 시예요. 젊어서 술을 마냥 마시고 다닐 때면 내가 놀렸어요. 시만 쓰면 다냐 / 살림이 기우는데 / 시만 쓰면 다냐 / 공자 말씀에 토나 달고 앉아서 / 술잔에 코를 박고 졸기나 하고, 그런 비슷한 시요. 그땐 못들은 척 하더니만, 그걸 어찌 기억하냐. 소싯적 이야기구만, 왜 갑자기 생각났을까? 그런데 사람이 엄청 변해요. 먹는 것도 완전 달라져서, 게다 새우다 먹는 시늉만 겨우 했던 것들을 지금은 엄청 좋아해요. 평생을 살고도 속마음은커녕 좋아하는 음식도 짐작을 못하네요. 지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해요? 사람이 늘 한결같던가요?

 

사람이 한결 같은 존재인가, 나이 들어 또는 어떤 상황에서 성품이 바뀌기 마련인가. 생각해 본 일이 없었던 것 같다. 이 할머니, 사람을 통째로 연구할 일 있나. 무슨 뜻으로 말하는 걸까. 인지문제가 생겨서 사람이 달라졌다는 말일까. 그래도 생뚱맞다, 우리가 언제 봤다고 철학을 하재? 그래도 대꾸는 해야 했다.

별로 생각해본 적 없는데요. 그래도 사람이 변하는 거라서, 애들 두고도 이혼도 하고.

아무리 얼결이라도 그렇지, 갑자기 내 말이 왜 이혼으로 튀는지 나도 모를 일이었다. 내 인생에 이혼은 찾아 볼 수 없는 단어이다. 자라난 곳 청원의 시골 정서에 더해서 가톨릭 신자이다 보니, 한 번 맺어진 인연은 하늘에서 내린 것이라고 배웠다. 요란하게 연애하다가 달리 결혼하는 일들도 가까운 주변에는 없었다. 그런 내 입에서 느닷없는 이혼 소리가 튀어 나오다니.

아니 제 말은요, 연애결혼 해놓고도 싸우기도 하고 혹시 이혼도 하고 그러는 걸 보면요.

 

그렇게 말하면서 정순이 생각이 났다. 일하다가 만난 친구인데, 동갑이라서 친구하는 사이다. 세상에나, 시어머니 중풍 간호를 8년씩이나 해냈다는 착한 정순이. 그때는 요양병원이 흔치도 않았고, 입원한다 해도 병원비가 만만치 않았겠지. 뇌졸중이 중풍으로 끝나도 온전히 가족의 몫이었다. 그랬던 정순이 이혼을 했다. 이혼을 당했다. 일찍 정년을 한 남편이 단란주점 여자한테 빠졌더란다. 어찌 보면 너무 뻔하고 흔한 스토리인데, 그런 일이 드라마가 아니라 눈앞에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양심은 있었던지 당시 1억5천쯤 하는 너른 집을 팔아서 5천인가를 아내에게 위자료로 줬다는 소문이었는데, 쌤통, 지금 시가로는 15억도 더 간다 했다. 정순은 노총각 동창생을 만나서 재혼도 했으니 덜 불쌍하다. 그래도 흠은 흠이다, 이것이 나 꼴통의 생각이다.

우리는, 나는, 이혼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이상하게도 그이에 대한 내 감정은 여전히 처음의 설렘에서 퇴색되지 않았다. 불만이 있어도, 내가 싫어하는 일을 그이가 하더라도, 내가 싫은 일을 내게 하게 하더라도, 결국 다 이해해버리고 마는 나는 바보 멍청이다.

그래도 천성이라는 것도 있고, 글쎄요. 얼른 말을 바꾸었다.

나는 아무래도 흑백으로 나누어서 답하는 데에 익숙하지 못하다. 딱 잘라서 이것은 옳고 저것은 그르다 하고 정해본 일이 드물다. 정식으로 이유를 대면서 이 일은 해야 하니까 한다 라거나, 하지 말아야 해서 하지 않는다는 판단은 서지 않는다. 물론 손익은 반드시 따진다. 계산이, 예상이 틀릴 수도 있겠지만, 어딘가로 쏠리면 하고, 아니다 싶으면 안 한다. 그뿐이다. 이런 대화는 머리 아프다.

 

 

익은 멜로디, 핸드폰 벨소리가 울린다. 내 것이다. 죄송해요, 라고 하면서 얼른 집어 들었다. 속으로는 다행이다 싶었다. 일단 어색한 대화에서 빠져나왔으니까.

응, 데레사 언니. 나 지금 일하고 있어서. 아니, 괜찮아요. 좀 있다 저녁에 내가 전화할게, 으응.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데레사, 세례명인가 보다. 엿듣게 되네요, 들리니까. 지 선생님 성당 다니요?

아, 네. 집안이 다요. 얼른 알아들으시는 것 보니까, 여기 어르신들도 혹시?

아니요. 우린 아니에요. 사람은 결국 평생 장님이라는데, 신앙도 없고.

장님요? 평생?

예, ‘사람은 평생 장님이다.’ 괴테라던가, 어디서 본 명언이요. 산다는 게 뭘 모르고 그냥 살아가는 것이니까 장님이라는 거죠.

 

괴테고 뭐고, 평생 장님이라니. 이 아줌마, 사람 멍 때리게 하네. 미래를 설계하고 참고 견디면서 준비하면 보람된 내일을 맞을 것이라고, 그렇게 의심 없이 살아온 나로서는 듣기 허망한 말이다. 기도하고 노력하고 주님의 인도에 따르고. 그런데 이 사람은 신앙인이 아니라니 의지할 데가 없겠다 싶었다. 일 없이 나는 신앙을 권면하는 역할놀이에 들어갔다. 저는 믿나이다, 저희는 믿나이다, 라고 무조건 시작해보시라고, 피라클리토 성령에 관해서도 말하기 시작했다. 들은 척 마는 척이었다. 이 집 사람들은 노부부가 다 내숭이다. 보호자랑 맞을 필요는 없겠지만, 뭔가 영 엉뚱하다.

지 선생님, 면전에서 좀 그렇지만, 밝고 긍정적인 분위기 참 좋으요. 거기다가 신앙까지, 복 받은 사람이요.

제가 복을? 복을요? 웬 복?

전복을! 농담! 지 선생님은 전혀 50대로 안 보이요. 해맑고 건강한, 몸과 맘 둘 다 건강한 사람 인상이라서 너무 좋으네. 잘 살아왔다는 증거인가.

무슨 소리야. 언제 봤다고 농담씩이나! 요양보호사나 하고 있는 나더러 잘 살아온 것 같다고? 보통은 내가 이래 뵈도 어엿한 건물주라는 것을 알 리 없으니, 다들 그저 도우미나 알바 취급 아니던가. 물론 나는 잘 살아왔다. 당장 돈 아쉬워서 일 하는 것도 아니니까. 하지만 여기까지, 시내에는 3층 건물을, 시골에는 농가주택을 가지고 안정적인 노후를 기대할 수 있기까지, 얼마나 맘 추슬러가며 일하고 모으고 일하고 모으면서 살아왔는데. 곁눈 팔지 않고, 곁눈 팔지 않으려고 맘 잡고, 맘 잡고, 맘 잡고! 그러니까 잘 살아왔는데, 잘 살아왔을 거라고 남이 말하니까, 갑자기 잘 살아오지 못한 느낌이 드는 건 또 뭔가. 지금 어쩌자고 두 타임씩이나 일을 하려는 것인지. 이 자체가 잘 살아왔다는 말과 맞지 않는 것 같기도 하고.

그런데도 정말 이상하다. 인상 좋다는 말, 어색하긴 해도 듣기 좋은 말들이라서 이 집을 거절하고 갈 이유가 적어진다. 당장 도움이 필요해서 나를 붙잡으려는 뻥튀기는 아니겠지, 설마. 그런데 이 할머니, 날 언제 봤다고 의심 없이 믿는 눈치네. 어쩐다?

 

보호자는 순간 어르신 쪽으로 다시 가더니 들여다본다. 아무런 소리도 없었는데 그냥 살핀다. 살짝 건드리면서 깨운다.

보세요! 여기 지 선생님이랑 사귀어 봐야지요. 무슨 말이든 해 봐요. 심심하면 지 선생님이 내일 우리 집에 안 올지도 몰라요.

협박 아닌 협박이다. 그런데 그 말에 움찔 반응을 보인다. 어르신이 몸을 일으킨다.

아, 다행이네. 지 선생님, 이쪽으로, 여기 함께 이야기도 나누고 그러세요. 우리 둘만 있으면 정말 심심해요. 그동안 할 말을 죄다 해버려서 새로 할 말들이 없거든요.

정말 내 차례다.

어르신, 네, 그렇게 앉아서 기지개도 켜시고, 자리에서 운동도 하고 그러시게요. 자, 우선 두 손을 쥐었다 폈다! 이렇게요. 팔도 흔들어 보시고, 어깨도 들썩! 제가 처음이라 잘 몰라서 그러는데요, 걸음은 잘 걸으시는지. 자, 일어나서 조금 걸어보실래요?

보호자가 어리둥절해 하는 사이, 어르신이 일어나 앉았다. 어깨도 들썩들썩 해 보인다. 아, 다행이다. 반응이 너무 없었더라면 사실 할 일이 없으니 어색할 노릇이다.

자, 이렇게요! 으샤, 으샤! 그런데 혹시 밖에 나가보실 생각 없으세요? 오늘 쌀쌀해도 바람 별로 없어요, 지금 햇볕이 너무 좋아요. 조금 있음 해가 사라지잖아요.

어르신이 두리번거린다. 아내를 찾는다. 아내는 어느 새 반코트를 가지고 나온다. 체크 머플러도 함께다. 더러 산책을 나가곤 했는지, 어르신 혼자서 천천히 겉옷을 입고, 장갑도 끼고 마스크까지 챙긴다. 아내가 머플러를 고쳐 매준다. 예쁘게 매만져주기를 기대하는 소녀처럼 얌전하게 내맡긴다.

마스크까지 중무장이시네요, 요기 아파트 마당만 갈 거 아녀요?

아, 황사를 싫어해서 마스크를 꼭 끼고 나가신대요. 겨울엔 따뜻해서 좋으니 일석이조죠, 그렇지요?

아내도 겉옷을 챙겨 입고 나선다. 자, 그럼, 오늘은 셋이서 함께 산책을 나가 보죠.

오늘 셋이서 함께.

어르신이 똑같은 말을 반복한다. 갑자기 즐거운 기운이 감돈다.

대문을 열자 찬 기운이 확 밀려든다. 좁은 대문을 앞서거니 뒤서거니 엉켜서 나서면서 나는 이들과 함께 다시 이 따뜻한 집안으로 들어오는 상상을 한다. 어쩌면 내일도 그 다음 날도.(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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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간문예 2021 여름호 통권 64호, 208 - 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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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서용좌
소설2021. 6. 4. 08:39

 

                                                                              감정이 종교의 근본적인 기관이라면 신의 본질은

                                                                              감정의 본질 이외의 것을 표현하지 않는다.

                                                                                               - 포이어바흐 『기독교의 본질』에서

 

 

 

    지레 겁먹은 듯 소리 없이 와 있었다. 봄이라고 들킬세라. 그럴 것이, 봄눈 녹는 물소리며 아지랑이 일렁이는 계절이 봄이라면, 2020년 이 봄은 봄도 아니었다. 사람들 마음은 꽁꽁 얼어붙은 채 겨울 언저리에서 멎어버렸다. 계절로는 우수도 경칩도 지났지만, 사람들은 움츠러들 대로 움츠러든 어깨로 바닥을 향한 자세로 코앞만 보고 걸었다. 좌우 곁눈질을 하면서, 어느 때보다 이상한 동질감을 느끼는 기분이었다. 다 같이 발가벗고 공평하게 위험에 노출된 상태로.

사순절도 사순절이 아니었다. 쌩쌩한 겨울이 녹고 봄이 파릇파릇 자태를 드러내는 그 40일 동안이 연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계절이다. 그런데 올해는 첫날부터 재앙이 생겼다. 하필 재의 수요일 미사가 금지되다니!

재의 수요일 미사 또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미사이다. 일년 동안 십자고상에 걸어두었던 편백의 성지는 불태워져서 재가 되고, 신부님은 ‘하느님 …… 저희 머리에 얹으려는 이 재에 강복하소서.’라고 기도하시고는 재를 이마에 찍어 주신다. ‘사람아,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갈 것을 생각하여라.’ - 신부님의 목소리는 성당의 높은 천장을 넘어 하늘까지 퍼져나간다. 내 머릿속에서는 ‘나는 흙에서 왔고 흙으로 돌아갈 것이다.’라는 의식으로 구체화된다. 흙은 내 어린 시절부터 나를 에워싼 환경이었다. 그래서인지 한 세월 지난 대도시 생활에도 주말이면 농막이 딸린 작은 농지에 가서 흙을 만지는 일이 좋다.

 

    재의 수요일 미사가 있을 그날이 2월 26일, 그날 아침 1,146명의 확진자가 나왔다는 발표가 있었다. 그 중 사망자가 11명이나 되었다. 대구 하나의 도시에서만 700명 정도라니 눈이 휘둥그려진다. 전염성이 무섭다고, 일본, 홍콩, 베트남, 싱가포르 등, 한국인의 입국을 금하는 나라가 속출했다. 그런데 발생지라는 우한에서 교민들이 들어오고 있었다. 좋은 나라다.

    코로나? 그 역병의 이름이 그랬다. 처음에는 웃었다. 그것은 완전 유명한 멕시코산 맥주 이름이다. 아사히, 칭타오 등 수입맥주들이 들어 올 때, 레몬이랑 끼어서 마신다는 코로나맥주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워낙 애국자(?)인 남편은 수입맥주 하나 사는 것도 큰일 날 일이라서, ‘우리 라거’면 됐지, 하고 만다. 그래서 그 맛은 보지 못했지만, 코로나가 맥주인 것은 안다. 그런데 코로나19라는 바이러스가 이 봄을 완전히 집어삼켰다. 코로나라는 발음 그 자체만으로 충분히 공포를 일으켰다. 이를테면 아직도 코로나맥주를 마시는 사람이 설마 있을까?

    사실, 처음 들어본 이름의 이 전염병은 사소한 보도로 몸을 드러냈었다. 마침 설날이 1월 25일 토요일이어서 대체연휴까지 줄줄이 쉰다고 설레던 때였다. 인천 공항에서 기이하면서도 애매한 정보가 나왔지만, 다들 스치 듯 지나가는 뉴스인 줄 알았다. 이착륙 대형사고나 쿠알라룸프르공항 독살 사건쯤 되어야 눈에 띄는 세상이니까. 그런데 곧 그 기이한 낯선 것의 정체는 걷잡을 수도 설명할 수도 없는 공포의 씨앗으로 드러났다.

 

    교황님마저 감기 때문에 사순절 피정에 불참하신다는 뉴스가 떴다. 괜스레 불안했다. 교황님은 청년 때 폐를 심하게 앓아서 일부를 잘라냈다고 들은 것 같았다. 때가 때이니만큼 뒤숭숭한 소문도 있었다. 모든 일상이 멈춰선 가운데, 성당은 멀기만 했다. 일찌감치 이번 사순절 행동지침으로 나왔던 탄소금식도 생각처럼 쉽지만은 않았다. 기후회복을 위한 40일의 실천 운동이라 했다. ‘아무것도 사지 않기’, ‘플라스틱 등 일회용 제품 안 쓰기’, ‘전등 끄고 기도의 불 켜기’, ‘종이 금식’, ‘고기 금식’ 등이다. 그러니까 수요일엔 아무 것도 사지 않고, 목요일엔 전구 한 개 빼기, 다음날엔 금요일이니까 금육을 실행하면 된다. 아, 어려운 금육! 본당 신부님께서 언젠가 하신 말씀이 잊히지 않는다. 소고기 1파운드는 곡물 7파운드, 돼지고기는 곡물 3파운드로 만들어진다고. 세계의 곡물 1/3이 육류생산에 소비되고 있으니, 굶주리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곡물들을 부자들의 소, 돼지, 닭들이 다 먹어치우고 있는 것이라고. 나는 부자는 아니지만 고기를 좋아하는 편이라서, 그런 말씀이 생각나면 늘 거북해진다. 신부님도 아마, 사실 사람이라면 대부분이 육식을 좋아할 것이라고 혼자 변명도 하면서. 그래도 신부님 말씀은 신부님 말씀이다. 신부님은 날마다 한 가지씩 실천할 일을 생각하기가 힘들면 일주일 단위로 해보라고도 하셨다. 첫째 주는 아무것도 사지 않기……, 그런데 벌써 여기에서 걸렸다. 말이 쉽지, 한 주간 아무 것도 사지 않기는 어렵다. 언텍트라는 단어가 화두에 오르면서 쇼핑이나 시장보기가 어려워진 것과 반비례로 인터넷쇼핑이 너무 쉬운 일상이 되었다. 손가락 하나로 세상 모두를 살 수 있게 되었다. 사는 것이 사~는 것이다. 나는 물론 그 정도는 아니다. 나는 절약의 달인이다.

 

 

     하루하루를 조심조심 살아 넘긴다. 그리고 안도의 숨을 쉰다. 이 시절에 다 같이 무서워하고 힘들어 한다고 해도, ‘다’라는 말에는 언제나 구멍이 있다. 이런 시대에도 확실히 더 힘든 사람들이 있고, 더러는 누가 들을세라 볼세라 남몰래 속으로 웃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코로나맥주가 망하면 다른 맥주는 살아나고, 또 쉬운 말로 마스크다 택배회사다 그런 곳은 예외 아닌가. 어쨌거나 이런 때에는 대박보다는 쪽박이 더 많기 마련이다. 나도, 우리 요양보호사들도, 더 힘든 축에 속한다. 재가방문요양의 경우에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동료들은 일자리 끊긴 데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어디서 감염될지 모르는 터에 버스타고 전철타고 여기저기 일 다니는 우리들을 위험한 눈으로 보기 때문이다. 나는 그런 문제에서는 조금 낫다. 모닝이라도 내 몫의 차를 가진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매사에 아끼고 또 아끼는 남편을 인색하다고 할 수도 있지만, 내게 차를 사준 것을 보면 딱히 그렇지도 않다. 에이, 그것은 잘 모르겠다. 간단히 말할 성질의 것은 아니다.

 

    그런데 일정에 약간의 차질이 생겼다. 오전에 일 년 조금 넘게 다녔던 방문요양 수급자 어르신이 병원에 입원을 하게 되었다. 고령이긴 해도 크게 놀랄 일은 아니었다. 고관절 부상이었으니까, 무엇보다 전염병과는 무관했으니까. 나는 일단 오전을 쉬게 되었다. 입원 일정이 길어질 것 같으면 다른 자리를 찾아야 한다. 4대보험을 복지관이나 센터에서 해결해주는 조건으로 고용이 되려면, 한 달에 일해야 하는 최소시간이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이 있다. 수급자가 입원을 하게 되면 그 순간 재가방문을 딱 끊어야 한다. 실은 한 요양보호사가 병원에 입원한 수급자를 돌봐드리다가 혼쭐이 났다는 이야기가 떠돈다. 그것이 부정수급으로 간주되었고, 그동안 받았던 급여의 몇 배를 벌금으로 냈다던가, 그런 내용이었다.

    아무튼 처음에 그 노할머니가 입원한 동안에는 조금 쉬는 것이야 별 일 아니니까 싶어서 오전 일자리를 알아보지 않고 기다렸다. 오랜만에 시간 여유가 생기니까 느긋하기도 했다. 남편이 절대로 안 보는 채널의 트롯 재방송들도 보았다. 텔레비전에서는 ‘기생충’이 징그러운 단어가 아니라 환희와 축복의 단어가 되어서 떠들고 있었다. 그렇게 집에서 넉넉히 점심을 챙겨먹고 오후 방문요양 집에 시간 맞춰 도착하면 되니까 오히려 편했다. 입원 며칠 후에는 노할머니 면회도 다녀왔는데, 예상대로 병원이 온통 코로나 방역이라고 어수선했다. 그러다가 생각보다 입원 기간이 늘어났지만, 다른 자리를 찾아보기가 어쩐지 망설여졌다. 이렇게 뒤숭숭한 시절에는 두 집을 방문다니는 것보다는 한 집만 맡는 것이 안전할 것 같은 느낌도 있었다. 요양병원 근무를 택하지 않았던 것도 새삼 다행으로 여겨졌다.

    한 달은 족히 쉬었을까. 그때 좋지 않은 소식이 들려왔다. 병원에 계시던 노할머니가 알 수 없는 열감이 고열로 이어져 중환자실로 옮겼다 했다. 불안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돌아가셨다는 전갈이었다. 마지막까지 코로나19 확진은 아니고, 그냥 신장염인가 무슨 염증이 갑작스런 패혈증으로 이어져 그렇게 되었다 했다. 하긴 나이가 들어서 잠시 병원 신세지다가 떠나는 것은 지극히 평범한, 심지어 괜찮은 운명이다.

 

 

     시골집에 혼자 남은 어머니들은 할머니가 되어도 혼자서 살아간다. 그것도 건강할 때 말이다. 밤새 안녕인 것이 노년의 삶이라서 쓸쓸한 죽음을 맞기도 한다. 그것이 무서워서(?) 또는 건강 때문에 요양병원 신세가 많다. 자녀들이 어머니를 아버지를 위해서 함께 살거나 그들의 집으로 모셔가는 일은 드물다. 드물다 못해 엄청난 예외다. 요양병원 생활의 실체는 다시 집으로 돌아간다는 기대는 거의 없는 채 그저 영원히 갈 날을 기다리는 것이다. 죽음을 기다리는 시간이라는 의미에서 고려장 다름없다. 따뜻한 밥 먹을 수 있고그 나름 깨끗한 침대에서 자는 일만 해결된 고려장. 외적인 평온은 수면제 덕택이라는 해괴한 풍문들도 떠돈다. 설마 그럴까. 나는 요양병원 근무를 해보지 않아서 정말 모른다. 자신의 집이라 해도 고려장은 마찬가지다. 멋대로 좀 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고 해도, 먹기 싫은 약을 억지로 먹게 되지는 않는다 해도, 먹는 것이고 이부자리고 부실하기 그지없고, 들여다보는 자식들 없이, 혼자 이럭저럭 끓여먹다가 간다. 30년 후 내 모습은 어디에 속할까. 아니, 울 어머니는 지금 이 순간 어쩌고 계실까. 빈 집에 덩그러니 혼자서 눈을 뜨고 혼자서 눈을 감으신다. 이런저런 병력은 좀 있으시지만 정신이 아직 바르시니, 천만다행이다. 하지만 종일 무슨 생각을 하고 지내실까. 전화는 받으시겠지.

 

    나는 거그 안 갈텨. 하느님께 기도혀, 지는 알아서 갈 테니께 아프지만 말게 해주셔유, 그려. 그닝께 거그는 안 갈 텨.      어머니는 무조건 그렇게 말하신다.

    누가 어머니를 요양병원에 모신대?

    수녀님 내색이 그랴. 어무이 혼차 놔 두느니 오디께냐 거그 즈그 동네 가차이 둠사 맘 편타는 겨. 모탱이 돌면 거그라고. 그런 딸도 없긴 혀, 저는 아덜도 읎음서.

 

    수녀님이라면 둘째 딸 말씀이시다. 딸이라도 꼭 수녀님이라 부르신다. 둘째언니는 왜 수녀가 되었을까. 큰언니와 다르게 둘째언니는 야무지게 대학에 진학했다. 그때까지는 누구도 둘째언니가 수녀님이 되리라는 것을 몰랐다. 본인은 예감했을까? 그야 아무도 모른다.

    언니가 성소(聖召)라고 설명했을 때에도 나는 잘 알아듣지 못했다. ‘하느님의 거룩한 부르심’이라고 풀어 말해줘도 어려웠다. 알 수 없는 어떤 소리가 들렸고, 순간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너는 수녀로서 살라는 메시지였고, 아니, 그런 소리라고 들었고……. 그러면 수녀가 된다. 소리는 어디에서 생겨나서 들려오는가. 귀 밖에서부터인가, 안에서인가, 안이라면 머리에서인가 심장에서인가. 아무튼 어떤 소리에 큰 의미가 들어있다. 의미가 원래부터 있었는지, 의미를 싣는 것은 듣는 사람인지. 소명(召命)이라는 말이 대단한 뜻을 가진 단어인지는 언니가 수녀의 길을 선택할 때서야 느끼게 되었다.

 

 

     아버지가 몇 년 투병으로 돌아가신 후 남겨진 가족들, 큰 고생을 몰랐던, 준비 없던 어머니와 우리들은 맥없이 남겨졌다. 각자 살아남을 길을 도모해야 했던 시절에, 작은언니는 장학금을 받을만한 대학을 골라서 진학을 했다. 성당에도 다니기 시작했다. 가끔 보는 작은언니의 얼굴은 일찍 결혼을 해서 어려운 살림에 풀기를 잃은 큰언니와는 다르게 환했다. 눈은 웃음기로 인해서 더 가늘어 졌지만 얼굴은 점점 더 예쁘게 빛났다. 큰 눈이 아름답다는 선입견도 틀렸다는 것을 알았다. 작은언니, 연애하는 거야? 내가 물으면 언니는 그냥 웃었다. 그런 질문에 그냥 웃으면 긍정한다는 신호였을 게다.

    생기발랄 작은언니와 내가 닮은 것은 긍정마인드다. 나는 꼭 간호사가 되겠다고 마음먹었다. 나중에 어머니가 아프시면 도움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대학에 진학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엉뚱하게 친구 따라 상경은 했지만, 언니와는 길이 달라도 한참 달랐다. 알바를 뛰고 뛰어도 간호전문대학에도 들어갈 여건이 되지 않았고, 미리 팍 숨을 죽이고 간호학원으로 간호조무사로 실팍하게 출발했다. 그런 나와는 비교도 안 되게 언니의 꿈은 높아만 보였다. 내가 현실주의자라면 언니는 이상주의자였나? 현실과 이상 차이가 아니라 능력 차이였나? 뭐, 사람은 능력별로 사는 것이니까. 능력에 따라서, 라고 하면 기분은 좀 꿀꿀하다. 하지만 우리는 그렇게 배우면서 자라났다. 경쟁해서 능력이 좋으면 돈이든 지위든 더 큰 보상을 받는 것이라고. 그것을 스스로 포기한 것은 나다. 작은언니에게서는 대졸이니까 우리 고졸 인생과는 다를 무엇인가가 환하게 빛나보이는 것 같았다.

 

    그때 언니가 갓 들어간 직장을 덜컥 그만 두고 수녀가 되겠다고 폭탄선언을 하는 일이 일어났다. 그 예상 밖의 말은 거의 반란이었다. 태생이 순하디 순한 어머니는 하얗게 질렸다. 추석이라서 다 함께 모여 있던 우리들은 어머니가 쓰러지실까 봐서 더 놀랐다. 그런데 곧 몸을 가다듬은 어머니가 말했다.

    딸내미덜 핵교 댕기는 동안 내내 맘 안 졸인 역사가 읎어. 인저 때려치우면 오째, 늘 그랬으니깨. 츠음으루 월급 탔다구 뭐시랑 사 왔을 적으 천상 받아들고 눈물부텀 났지야. 근디 그 모탱이 막 돌고나서, 그만 혀겄다!?

    침묵이 흘렀다. 서로의 눈들을 피했다. 어머니가 말을 이었다.

    그람 그만 혀야지야. 그리혀서 낯색이 이랴?

    그러고 보니 언니의 낯빛이 영 아니었다. 윤기는커녕 부석한 느낌에 내가 다 괜히 울컥해졌다. 무슨 맘고생이 있었을까. 결정에 얼마나 어려움이 많았을까. 속없는 나는 한창 연애질에 세상모르고 맘만 두근거리고 살던 때였다. 그렇게 언니는 다른 세상으로, 성스러운 세상으로 갔다. 살아서 천국이나 비슷할 그런 세상으로.

 

    수도자 생활 – 그래, 나의 나약함과, 심지어 죄에도 기뻐 할 수 있기를 염원하는 거야.

    언니가 우물거렸다.

    죄까지 기뻐한다고……요?

    내가 잘 못 할 수 있고, 그럼에도 하느님의 사랑을 받아야 할 이유, 사랑 받을 수 있다는 믿음.

    말도 안 돼! 나는 눈을 감아버리고 속으로 저항했다. 저런 궤변이라니!

    나의 죄, 그럴 수밖에 없는 나의 나약함을 하느님 안에서 겸손한 마음으로 인정하고, 하느님을 따라나는 길 – 그것을 선택한 거야. 은아, 선택의 순간이 온 것이야.

 

    그러니까 소명은 언니가 수녀가 된 것 같은 일을 말한다. 부르심이란 뜻이란다. 하필 죄인을 불러주시는 하느님이라는 뜻은 무엇일까. 수녀님이 된 언니가 말하는 죄의 정체는 내가 어렴풋이 느끼는 그것일까? 갈림길 앞에서의 갈등. 한쪽은 집안 좋은 그러고도 꾀나 똑똑한 사람, 다른 한쪽은 외롭고 빈한한 가정의 로맨티스트. 그 비슷한 구도다. 이것은 순전한 나의 상상이다. 빈곤한 상상력이 만들어낸 도식. 돈 없는 로맨티스트와 돈 많은 모범생을 평형저울에 달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단순 무게를 비교하는 것이 아닌 동안에 저울추는 늘 흔들리게 마련이다. 선택이란 하나를 두고 할까 말까를 정할 때에도 힘들다. 하물며 무엇인가 둘을 두고 이것이냐 저것이냐를 선택해야 하는 것은 큰 고통일 것이다.

    꿈이란 이루어지지 않을 수도 있구나! 나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에 그때 처음으로 다시 한 번 가슴이 아픈 것을 경험했다. 작은언니가, 나랑은 비교할 수 없게 똑 부러진 언니가 무엇인가를 접었거나 무엇엔가 꺾였으리라는 상상으로 가슴이 미어졌다. 물론 순전히 엉뚱한 상상일 수도 있다.

    그때 나는 첫 직장에서의 내 꿈, 가슴 덜컹거리게 한 남자를 ‘오빠’라고 부르게 될 일에 몰입하고 있을 때라서, 간절한 꿈은 실현되는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하지만 작은언니의 꿈은, 적어도 그때 언니의 얼굴을 빛내던 첫 번째 꿈은 접힌 것일 게다.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은 다른 꿈들로 채워졌기를 바란다. 그랬으리라 믿는다. 근년에는 사람들이 수녀님들에게서 기대하는 맑은 윤기까지는 아니지만 정말 평온해 보이는 얼굴을 하고 있다. 의젓한 위엄까지를 갖춘 존경스러운 수녀님이 되어 있다. 우리 가족들이 가톨릭 신자가 되어 신앙 속에서 살아가게 된 것도 수녀님을 통한 부르심이리라.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고딩 때, 그땐 가족들 아무도 신앙을 모를 때였다. 그저 아버지 아프셔도 그 고통에도 아무 것도 못하는 어머니를 보면서 간호사가 가장 소중한 사람 같았다. 겨우 간호보조사가 되어서도 그 선택을 후회한 적 없는 걸 보면, 그때가 소명, 부르심이 맞았을까! 내 말은, 사명감이나 의무감, 뭐 책임감 같은 것으로 선택한 직업이 소명일수도 있겠다 싶었다.

 

    언니는 고귀한 성소에 순종했고, 나는 그저 순진한 소망을 이루었다. 언니를 젖히고(?) 결혼에 성공한 내가 그 일로 잘못한 것은 없다. 다만 그것을 차마 소명이라고는 하지 못하겠다. 나의 순진해서 평범한 그 선택이 얼마나 큰 고통을 동반하는 길이었는지는 수녀님은 영영 모르리라. 그런 의미에서 경제생활의 고통을 경험하지 않는 수도자들이란 인생을 반 밖에 살지 않는 사람들 아닐까. 이런 말 언니가 절대로 듣지는 않을 테니까 혼자서 하는 말이다. 또 우리 어려서 동네 미장가 노총각에게 사람들이 왜 말을 놓았는지 알 것도 같다. 결혼은 환상에서 시작하고 현실로 지속된다. 환상은 짧고 현실은 길다. 긴 현실 속에서 나는 철부지에서 어른으로 자란 것 같다. 우리 수녀님은 자랐을까? 한 번의 절망으로, 큰 좌절로 다 자라버린 것일까? 현실을 미리 다 건너뛰고 현실 밖, 현실 위, 반쯤 천국에서 사는 것일까? 혹시 현실에서 도망쳤다면? 그렇다면 아예 자라지 않은 상태로 몸만 어른이 되고 늙어갈까? 정말 더 순수한 영혼일까?

    대학에 가기 전부터도 언니가 성당에 가기를 좋아했지만, 그것은 수녀님에게 가서 피아노를 배우고 오는 정도라고 생각했었다. 정식 레슨이 아니고 그냥 비어있는 피아노를 치거나 수녀님을 만나서 이야기 하고 온다고, 그렇게 말할 때에도 나는 따라가 볼 생각은 없었다. 대학에 간 언니는 집에 잘 오지 않았고, 집에 오면 성당에 가 있기를 좋아했다. 결국 언니는 우리가 모르는 잠깐의 흔들림이 있었거나 없었거나, 궁극적으로는 수녀원을 집으로 정했다는 느낌이었다. 내가 결혼을 하고 보니까, 수녀원으로 들어간 것도 결혼과 비슷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일상의 집에서 다른 일상의 집으로, 이것이 보통의 결혼이라면, 수녀가 되는 일은 일상의 집에서 성스러운 집으로 옮기는 것이리라. 성스러운 집 – 그곳은 어떤 곳일까. 성스럽다는 것은 무엇일까. 생활의 죄를 뒤집어쓴 우리랑은 좋아하는 성가도 다를까?

 

 

     아차, 엄마가 아무 소리 없으시다!

    엄마, 그래 이젠 수녀님 걱정일랑 말어요.

    그랴. 우게 딸 둘이 달버도 참 많이 달버. 큰성이사 집이만 오면 안 쓰넌 그럭들도 다 끄잡아 내서 치워야. 살림 오지게 살다 봉개 그라겄제만, 사람이 살아서는 곰패기 실문 안된다 그리 생각을 한댜.

   엄마, 식사는? 혼자라도 잘 챙겨 드시져?

   암만. 아래께 큰성이 다 봐놓고 갔디야. 나 좋아허는 돌가지랑 쭐거리 하나 없이 혀 놨어야. 비가 끈첬나? 나 회관 나가볼 텨. 인저 끊고 들어가, 어여, 출근 아니여?

   안죽 아니랑개요.

    어머니 말로 대꾸를 하다보니 와락 어머니가 그리웠다. 건강 챙기시고…… 잘……, 우물쭈물 전화를 끊고는, 나도 모르게 큰언니한테 전화를 한다. 큰언니가 어머니랑 가장 지근에 있다.

 

    큰언니, 나, 은이. 별일 없으시져?

    어, 그려. 은아! 느그네도 별 일 없지야? 오늘은 너무 일찍 일어났나벼, 하루가 길어져서 어쩐디야.

    무슨 말? 하루가 길어지다니.

    남은 하루가 너무 길잖여. 한 두 시간 빨리 일어나믄 그랴.

    언니는 일부러 어리광부리듯이 사투리를 느려대었다.

    그람 더 주무셔라.

    나도 사투리로 답한다.

    너 언제부텀 전라도 사람 거진 다 된겨. 전라도 사투리배끼 안 나오잖여.

    왜 그래, 큰언니.

    승질은, 니가 원채 이뻐서여. 어무이랑은 아랜가 통화하고 인저…… 니가 혀, 조옴.

    자주 해, 한다고. 엄마, 전화로는 괜찮으시던데. 모르지 난.

    그려, 자석들은 모르지야. 혀 봐.

    알았어, 방금 했다니까. 언니. 언니도 매사 조심하고!

    그려, 워디든 조심히 댕겨!

    일찍 일어나면 하루가 더 길고, 하루가 길수록 더 지루하다고? 어라, 하루가 길어지면 이제는 더 위험하겠네! 하루가 길면 길수록 노출이 길어진다. 노출이 길면 길수록 위험도가 올라간다. 늦게 일어나고 일찍 잠들고, 한마디로 덜 살아야 덜 위험하다. 그럼 뭐야, 아주 살지 말아야 가장 위험하지 않다고? 그건 아니다.

 

 

     오후 일과는 지루하지 않다. 아니, 이상한 말이지만 약간 신이 나는 정도이다. 기분 좋은 일터다. 요양보호사 일을 한 이래 사람들이 이만큼 나를 좋아해주다니! 말을 잃었다던 수급자 어르신은 살그머니 옛날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시작하면 목소리가 커지고 한참을 이야기한다. 내가 잘 못 알아듣는 내용이어도 대강 끄덕이며 알아 듣는 양 기다려주면 된다. 가벼운 운동도 곧장 같이 하고, 산책도 날마다는 아니지만 하는 편이다. 우리가 첫 산책을 나갔던 지난겨울에도 어르신 혼자서 꼭꼭 마스크를 했던 습관이 천만 다행이다. 봄이 오기도 전에 마스크는 온 나라 사람들의 필수품이 되었는데, 이 고집스런 어르신에게 그걸 새로 따라하게 하려면 너무 힘들었을 뻔 했다. 황사를 끔찍이도 싫어해서 마스크를 박스째 사 놓았다더니, 정해진 날에만, 그것도 신분증이 있어야 마스크를 사는 배급 세상이 되었어도 이 집은 걱정이 없어 보였다. 아무튼 어르신과 둘이 다 마스크를 쓰고서 산책을 하는 동안에는 별 말을 하지 못한다. 집에 들어와서는 대화가 잘 된다. 청력이 문제되지는 않는 정도다. 그동안 못 알아들은 것은 청력이 아니라 관심을 껐기 때문임을 알았다. 관심을 끄면 청력도 꺼진다, 그런 셈법이다.

    보호자는 점심이 끝나고 나면 거의 날마다 외출을 한다. 그러니까 첫날 모두 함께 산책을 나갔던 일은 단 한번으로 끝났다. 보호자가 함께 있어 좀 불편할까 걱정했던 것과는 전혀 달랐다. 어르신을 혼자 있게 두지 않으려면, 어르신을 나에게 맡겨놓을 때만 나간다는 뜻이다. 당연히 기분이 좋다. 그런데 무슨 외출을 날마다 할까? 하긴 그것까지는 내 알 바가 아니다.

 

    안녕하세요! 내가 번호 키를 알아서 누르고 들어가면서 큰 소리로 내뱉는 말이다. 문간에서 출근부 태그 때문에 지체해야 하므로 일단 큰 소리로 인사를 들여보낸다. 예, 어서 오세요. 먼 데서, 그러니까 부엌에서 나는 소리다. 곧 거실로 올라가면서 왼쪽을 본다, 어르신이 누워 있을 곳이다. 첫날과 거의 다름없이 대부분 그 시간까지 누워서 아무 소리를 내지 않는다. 가까이 다가가서 신호를 보내고 부엌으로 향한다. 여기까지는 로봇이나 같다.

    점심시간이 차츰 늦어져서 이제는 내가 출근하는 시간이 점심시간이다. 보호자 혼자서는 식탁에까지 오게 하는 것이 점점 힘들다고, 이젠 아예 내가 식탁으로 모셔온다. 그러고서 세 시간, 즐겁게 지내는 편이다. 일인데 즐겁냐고? 일이지만 즐겁다. 집에 혼자 있어도 별 일도 없이 무료할 테고, 여기 오면 나를 반기는 노인들 틈에서 즐겁다. 이들에게 내가 힘이 되어, 이들이 나를 의지한다고 느낄 때의 기분, 그것은 세 시간의 수입에 비할 바 아니다. 겨우 최저임금보다는 살짝 높은 수당에 플러스알파가 너무 좋다. 돈이 아닌데도 좋다.

 

    점심 직후 커피를 마시는 시간동안이나, 어르신이 낮에도 ‘졸립다’는 눈빛으로 잠을 청할 때는, 보호자랑 잠깐 어르신 상태에 관한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이 할머니랑 잠시 떠드는 것도 재미있다. 재미있다고? 그렇다. 떠든다고? 떠든다. 내 목소리가 기본적으로 크니까 떠드는 것이고, 또 즐겁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니까 떠드는 것 맞다.

이 할머니는 요양보호사 일에도 관심을 보인다.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따서 직접 하려고 그러나? 설마. 자격증 따시게요? 그리 물어보지는 않았다. 어쨌거나 다른 동료들의 경험에 대해서도 궁금해 한다. 그러면 나는 내가 체험한 일도 다른 동료가 겪은 일처럼 둘러서 이야기를 한다. 그렇게 이야기를 하다 보면 그 일들에 관해서 생각을 하게 되고 판단을 하게 된다. 이 할머니에게는 독특한 점이 있다. 내가 무엇인가에 대해서 생각을 하게 한다. 방문요양 첫날 대뜸 사람이 한결같더냐는 질문을 해서 멈칫 놀라게 했던, 바로 그런 연속이다. 나는 그 뒤로 무심코 사람들을 대하다가도, 이 사람은 한결같은가, 한결같을까, 그런 생각을 하곤 한다.

 

 

     어느새 사순절이 끝나가고 있었다. 내 머릿속이 성가로 가득 차 있을 때, 설거지를 하던 내가 나도 모르게 콧소리로 성가를 불렀나 보다. 성가가 새어 나왔다는 말이 맞겠다. 영원을 생각 않는 인간일진대 제 몸을 죄악에다 묶고 말거늘 ~

    미미파솔 솔파미 레레미파미레~ 성가인가 봐요. 무슨 가사예요?

    뭐예요? 아시는 노래예요? 신자 아니시라면서!

    간단한 계명이니까, 반복도 되고 해서. 아무튼 가사는 어떤가요?

    아, 〈빛의 하느님〉이에요, 저는 3절을 젤 좋아해요. 영원을 생각 않는 인간일진대 제 몸을 죄악에다 묶고 말거늘 이 영혼 무거운 짐 벗어던지고 고마운 생명 안에 살게 하소서

    가사가 감동이네요. 겸손한 신자로서…….

    그렇지요. 우린 기본적으로 죄인이니까 말씀을 경청하고 말씀에 순종해야죠.

    글쎄요. 나도 좋은 말씀들 좋아해요. 카톡카톡, 건강건강, 건강하게 오래 살기, 그런 몸보신 종류 좋은 말씀들이 머리 아프게 넘치는 톡세상에서, 신앙 관련 말씀들은 진짜 좋은 말씀들이죠.

    어떻게 그런 것들도 와요? 신자도 아니…….

    친구가요, 신부님의 말씀을 전달해 줘요, 거의 매일.

    아, 그런 신앙 깊은 친구가 있으시군요. 곧 신자 되시겠네요.

    교회랑 성당 합치면 아는 신자들이야 많지요. 좋은 말씀들 풍년이고요. 한번은 그런데 내가 믿지도 않은 신앙을 통째로 의심하게 된 적이 있었어요. 전달, 또 전달된 건데, 그 신부님 본명도 세례명도 기억하고 싶지 않아요.

    대체 무슨 말씀이길래.

    실제로 있었던 일이라고 그랬는데요, 세상에나, 첫영성체를 준비하는 언니가 너무나 부러웠던 여섯 살짜리 아이의 이야기랬어요. 수녀님이 ‘넌 나이가 어려서 안 돼!’ 이렇게 딱 잘라 말했음 좋았을 걸. ‘첫영성체는 넌 아직 젖니가 있으니까 안 되고, 이 젖니가 다 빠지면 그때 할 수 있단다!’라고 예쁘게 돌려서 말을 했대요. 헌데 그 결과는 너무 끔찍했대요. 애가 집에 가서는 짱돌인가 뭔가로 젖니를 모두 빼버리고 피를 줄줄 흘리면서 수녀님한테 와서 첫영성체를 졸랐다는.

    아이쿠머니나.

    나는 그때, 어떤 신부님이 쓰셨다는 카톡, 전달이니까요, 그 글머리에 ‘찬미 예수님’이란 단어도 그날만은 끔찍했어요. 지선샘, 이빨 이야기는 사실이 아니라 그냥 이야기겠지요?

    …….

    신부님은 이 피 흘리는 아이에게 감동해서 첫영성체를 허락하셨대요. 그럴 수도 있겠죠. 규칙보다 더한 사랑으로. 헌데 이 이야기를 길고도 자세하게 써서 일반 신도들에게 전하는 신부님은 뭘까. 잔인함이라는 단어만 떠올랐어요. 신자들에게 ‘당신들은 주님을 얼마나 사랑하며, 무엇을 봉헌할 수 있느냐’고 채근하는 말씀이 이어졌다니까요! 신앙을 강화하기 위해서라면, 어린아이의 고통을 이용해도 되는지. 다른 철없는 아이들에게 본받으라는 이야긴지. 아니, 젖니를 깨부수는 멍청한 짓이 칭찬할 일이냐고요! 주님을 사랑하기 위해서라면 무슨 일도 가능하다고? 주님을 사랑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면, 어떤 잔인한 일도 해도 된다고? 사람의 생각은 늘 올바른가 말이에요.

    쉴 틈도 없이 말하는 할머니 앞에서 나는 아무 말도 잇지 못했다. 혼란스러웠다. 이 말에 공감이 갈 듯 하지만, 신부님 말씀이라는데 그걸 비판한다? 신부님은 신부님 아닌가! 신앙적으로나 무엇으로나 공동체 안에서 으뜸이신 신부님들……. 나, 세례교인인 나를 인도하시는 신부님.

 

 

     세례성사, ‘나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라는 음성과 더불어 이마에 느꼈던 물기, 아니 그 냉기를 잊을 수 없다. 정신이 난다? 식구들이 여럿이서 세례를 받았고, 각자 선물을 받았다. 나는 분리형 ‘성 가정상’을 선물로 받았다. 성요셉이 서 있고, 성모마리아가 아기예수님을 안고 계시는 조각상이다. 그러니까 10센티미터 조금 더 될까, 그런 키의 성요셉이 따로 분리되는 형상이다. 둘을 분리해 세웠다가 또 앞뒤로 나란히 세워보곤 했다. 나뭇결도 참 좋아서 사랑스러웠다.

    어차피 아이와 아버지가 무관하니까 분리된 것이라고!

    그때 세례를 받지 않겠다고 하면서도 우리의 세례성사를 보러 왔던 오빠가 불쑥 말했다.

    아버지가 아이와 상관이 없어서라고?

    없지 그럼! 예수는 인간 요셉의 자식이 아니라 하느님의 자식이라잖아!

    그야…….

    오빠가 내뱉은 말에는 진정이 아닌 빈정거림 같은 것이 느껴졌다. 속상하기도 하고 뭐가뭔지 혼란스러웠다. 정말 성요셉은 아기예수의 아버지가 아니라는 확실한 증거로서 따로 조각된 것일까. 하긴 성령으로 잉태하시어…….

    하긴 우리가 어렸을 때, 까치헌티 동생 하나 물어다 달라 혀 봐라! 하는 소리도 들었고, 동네입구의 큰 은행나무 아래 물 떠놓고 삼신할무니헌티 아들하나 점지해주라 빈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까치도 삼신할머니도 아기를 가져다 주는데, 성령으로 잉태하는 일이 불가능할 리가 없다. 우리나라에도 옛날엔 알에서 깨어난 왕도 있었고, 서양 어딘가에는 뱀에게서 태어난 왕도 있었던가, 그냥 이야기였던가. 믿음은 사실보다 더 믿을만한 것이기도 했다. 믿음 – 성령으로 잉태되시어 골고다에서 우리를 위해서 죽으신 예수님!

 

    수녀님의 사순절은 어떨까. 사생활은 금기어라서 우리는 수녀님의 일상을 모른다. 다만 수녀님이 권할 때 우리도 따라서 성지순례를 함께 다녀왔더라면…… 하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특별히 지루한 사순절이면 성지의 추억 속에 잠길 수 있을 것 같아서다. 수녀님은 수많은 순례객들의 발길에 닳을 대로 닳은 돌계단을 올라 주님의 성묘교회, 거룩한 무덤 성당으로 갔던 감회는 잊을 수 없다고 했다. ‘나는 맹세코 그 사람을 모르오!’라고 예수님을 부인했던 베드로에게 예수님은 부활하셔서 ‘너는 나를 사랑 하느냐?’라고 하셨던 바로 그곳이란다.

    아, 그래, 그거야!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예수님이 물으신다. 여섯 살 아이에게 물으신 것이다. 아니, 그 여섯 살 아이가 사랑을 보여드린 것이다.

 

    저기, 그 젖니 이야기를 너무 맘 아프게만 보시지 마세요! 사랑의 표시니까요!

    예?

    많은 신자들이 그 이야기에 감동하고 예수님을 사랑하는 일에 정진할 수 있잖아요.

    예?

    내가 한참이나 지나서 느닷없이 말한다고 느끼는지, 이 할머니는 두 번을 짧게 반문하고는 입을 닫았다. 커피만 천천히 홀짝 거린다. 내 말이 이해가 안 되는 모양이다. 말을 하기 싫든가. 나는 이런 침묵이 참 싫다. 오늘은 기쁘다가 말았다. 틈이 있어야, 한 가닥 올이라도 풀려야 대화가 가능하다. 아니면 말지! 신자가 아닌 사람하고 무슨 신앙 이야기를 해! 누가 시작했었지? 그러고 보니 콧노래 성가 때문이었으니 빌미를 준 것은 나였다. 하지만 말을 꺼낸 것은……. 치이!

신적인 본질이란 우리 인간의 감정의 본질이랍니다. 그 자체로 황홀해지고 스스로에 도취된 감정, 신의 본질이란 감정의 본질을 표현할 뿐이라고요. 의식의 무한성을 의식하는…….

    불쑥 입을 열던 보호자는 그대로 멈추고 만다. 나를 바라보지도 않고 일어선다. 혼잣말이었나? 싱겁기는.

 

 

     서둘러 거실로 나갔다, 머쓱해서다. 어르신은 화장실에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혼자 떠들고 있는 텔레비전에는 노란 옷들을 입은 사람들만 그득했다. 확진자는 10,000명을 훌쩍 넘었고, 사망자가, 세상에나, 200명이라니. 성고난의 금요일이었다. 사순절은 극도의 우울감 속에서 그 끝을 향하고 있었다.

    ‘아프지 않은 인생은 없으며, 이 고난과 고통이 저절로 구원과 은총으로 나아갈 수 없음을 압니다. 다만 우리의 고통이 침묵과 순명의 시간을 지나서 기쁨과 감사의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기도드리옵니다.’ 신부님의 기도를, 사목말씀을 되뇌어 본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이 가장 귀하게 만드신 인간이 이런 바이러스니 세균이니 하는 미물에 정복당하도록 버려두지 않으십니다. 중요한 것은, 여러분이 두려움의 바이러스에게 정복당하지 않아야 합니다. 마음을 굳건한 믿음으로 무장하십시오. 신앙만이 구원입니다…….’
    맞아, 바이러스 같은 미물이 인류를 멸망시키기야 하겠어? 우리 신부님, 평소에도 과장은 안 하신다! 믿자!

 

    하지만 사망자 숫자는 날로 는다. 세계적으로는 무서우리만치 많은 숫자다. 사망 – 자꾸 자주 들으니까 무감각한 그냥 단어로 들린다. 병원 밑바닥 근무를 오래 했던 직업병인가. 최근의 팬데믹 때문인가. 하긴 세상이 냉혹해진 때문이다. 냉혹한 죽음이 많아서다.

    남편이 엊그젠가 뜬금없이 말했다, 해마다 산업재해 사망이 몇 건인지 알아? 노동자 2천명이 파리 목숨이라고. 교통사고 사망도 3천명이 넘을 걸.

    그땐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었는데,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다 생각했었는데. 가만 생각해 보니까 죽음이 보통 단어다. 죽음이 일상이다. 열 개의 생명 끝에는 열 개의 죽음. 그러니까 세상은 생명으로 뒤덮여 있기도 하고 그만한 숫자의 죽음으로 덮여 있기도 하다. 생명을 살짝 걷어내면 죽음인가. 아주 살짝만. 죽음? 갑자기 주위가 서늘해진다.

 

    지선생! 뭘 보나?

    내가 멍때리고 서 있었나 보다. 안방 문으로 나오던 어르신이 바짝 내 코앞에 있다.

    아, 네, 네에! 양치 하셨군요! 어머, 면도도 하셨네요! 에이, 여기 살짝 피가 묻어나는데요. 밴드 가져올게요, 이리 오세요. 이리로…….

    어디로 향할까 망설이는 어르신을 일단 소파로 이끈다. 약상자가 어딨더라? 연고를 발라? 밴드만 붙여드릴까? 머릿속이 바쁘다.

 

    그렇게 ‘봄날은 간다.’ 살면서 죽어간다지만, 그동안 나는 잘 살고 있다. 주님부활대축일미사가 코앞이다. 온라인으로 할 것이란다.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주님, 저희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죄가 없어지니 사후를 걱정할 필요도 없다. 신의 본질이니 의식의 무한이니, 그런 어려운 말들이 무슨 상관이람. 

 

_______________________ 전남여고문학 7호,  197~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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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서용좌
소설2020. 12. 27. 15:10

날마다 시작


날마다 새롭게 시작하라.

묵은 수렁에서 거듭거듭 털고 일어서라.

- 법정스님

 

 

날마다 시작이야, 은아, 다시 시작이다. 힘 내, 아자!

일곱 번째 시작이다. 대부분 그렇듯이 아파트다. 차에서 내려 12월의 매서운 바람을 느끼며 단지 내를 둘러본다. 전체적으로는 낡은 느낌이지만 바깥 인상이 깨끗한 편이다. 동과 호수를 확인하면서 아파트 현관으로 들어서는 순간 안온한 기운이 돈다. 계단을 오르면 작은 대문이 기다리리라. 초인종을 누르면 어떤 사람들과 만날까. 오늘도 우리 집 대문을 나서기 전부터 스케줄을 확인했다. 내가 대단한 인물이라서가 아니다. 그 반대, 일자리가 자주 바뀌고 또는 여럿이라서 그렇다. 하지만 투잡은 아닌 것이, 한 가지 일인데 근무 시간과 일자리가 달라서다. 일자리에 따라서 우리는 다른 이름으로 불린다. 지금처럼 복지관 소속으로 재가방문요양을 맡으면 지 선생님이 되고, 요양병원에서 근무를 하게 되면 지 여사님이 된다. 직업군의 이름은 요양보호사, 나는 요양보호사이다.

 

나를 설명해야 할까, 입을 열자면 아마도 그렇겠다. 지은이예요, 그렇게 내 이름을 말하면 처음 듣는 사람들은 대개 조금 이상해한다. 어렸을 때는, 특히 학교에서는 꽤 성가셨다. 책가위에다 내 이름 지은이 석자를 쓰고 나서 책을 열어보면, 책마다 진짜 지은이가 있다는 사실에 나도 혼란스러웠다. 지금이야 유투브가 책들을 온통 삼켜버린 세상이라서 지은이가 어떤 뜻인지 아무도 별반 상관하지 않는다. 지은이라는 뜻으로 쓸 곳에도 언제부턴가는 저자나 작가라고 하니까 뭐. 물론 내 이름이 지은이인 것은 내 탓이 아니다. 우리 부모님도 영이와 순이 아래 또 낳은 딸을 은이라 이름 지었을 뿐으로, 내가 태어났을 1966년 당시에 우리 부모님이 지은이가 책이나 노랫말을 짓는 사람을 일컫는다는 것을 의식했을 턱이 없다. 자라면서 여전히 어린 내가 이상하게 여겼던 것은, 왜 농사짓는 사람은 지은이라 하지 않는가, 그런 정도였다. 밥 짓고, 옷 짓고, 약 짓고……, 여기저기 지은이가 더 많은데.

 

다시 오늘이다. 오늘 처음 방문하는 집에는 조금 어색한 일이 기다리고 있다. 보통 때라면 우리 복지관의 과장이나 담당 복지사가 함께 방문하여 나를 소개해줄 것이다. 오늘은 이 집에 혼자 오게 되었다. 혼자 들어가서 자기소개를 한다? 오랜 직장생활을 해왔지만 그건 좀 쑥스럽다. 누군가 소개를 해주면 편하다. 어르신, 안녕하세요? 이쪽은 지 아무개 선생님이세요! 어때요, 새 선생님 좋으시지요? 이제 날마다 댁을 방문해서 어르신을 도와드릴 거예요! - 지 선생님, 앞으로 어르신 잘 돌봐드리세요! 이렇게 말함으로써 요양보호사를 절대로 아줌마라 부르지 말고 선생님이라고 부르라는 다짐도 시켜둔다.

그런데 오늘은 일이 꼬였다. 사회복지사 정 대리가 하필 연가를 낸 날이라서 차 과장이 동행키로 했었는데 그것도 틀린 것이다. 나는 벌써 출발해서 가고 있는데 전화가 떴다. 운전 중이라 스피커폰으로 받았다. 어쩌나! 아무캐도 지 선생 혼자 가줘야 겠네여! 나 사고났어여. - 엥, 다친 거예요? - 아니, 아녀요. 살짝 인데 시끄럽네여. 미안해여, 그 집 오늘 꼭 가야 해여! 복지관을 나서며 차를 후진해 돌리려다가 화단 턱에 걸렸는데, 급히 뺀다는 것이 들어오던 작은 트럭과 스쳐서 실랑이가 벌어졌단다. 그렇다고 일주일 째 돌봄서비스가 끊긴 집이라서 미루기는 미안한 일이라고, 오늘 복지관에서 새 선생님이랑 방문한다고 알려놓았으니 기다리고 있을 것이고, 아무튼 그냥 혼자서 방문하랬다. 나 또한 이만한 일로 마음먹은 스케줄을 바꾸긴 싫었다. 자라서는 거의 꾸준히 직업을 가지고 살아온 나로서, 무엇이든 처음 하는 일이 한두 번이었을까. 이쯤은 약과다, 하고 마음을 추슬렀다.

 

대문 앞이다. 아파트는 어디나 역시 작은 문이다. 건물 중에서 가장 초라한 곳이기도 하다. 이 대문에는 교회나 성당 표시 대신, 입춘대길 그리고 또 하나 사자성어가 붙어있다. 입춘이 언제 적인데! 입춘은 보통 2월 4일이다. 한 해가 다 가서 낼모레면 동지고 다시 새해의 입춘이 다가올 시절인데 봄 여름 가을 지나도록 여태껏 입춘대길이란다. 이 새로 만날 어르신이 고리타분한 노인일까, 살짝 걱정이 올라온다. 그런데 아무튼 와버렸다. 초인종을 찾는다.

초인종으로 가르는 세상은 많이 다르다. 내가 일을 망치고 나온 여섯 번째 집이 눈에 선하다. 그 어르신은 혼자 사는 할머니였다. 재가장기요양급여를 받는, 곧 우리 요양보호사들의 돌봄을 받는 대상은 할아버지들 보다는 할머니들이 대부분이다. 남자는 아내가 있을수록 여자는 남편이 없을수록 장수한다더니. 하긴 이 말도 참 우습다. 앞뒤가 이렇게 맞지 않는 말이면 창과 방패라는 모순인가. 신상정보를 요약하자면, 70대로 시영아파트에 거주하는 독거노인 할머니 - 거기까지는 우리 복지관 담당에서는 흔한 조건이었다. 이처럼 보호자가 없는 경우도 흔하고, 어떠한 염려도 없었다. 그것보다 실은 신체적 조건이 문제다. 처음 소개받을 때 다행하게도 치매는 아니라 했다. 거동도 휠체어에 의존하는 정도는 아니었다. 딱 하나 걸리는 것이 있었다면 전임들이 오래가지 못하고 곧장 그만두곤 했다는 점이었다. 할머니인데 뭐 어떠랴, 그렇게 시작했는데 곧 심상치 않은 상황에 빠지게 되었다.

 

 

나는 나름대로 이 일에 자신이 있는 편이다. 우선 간호사 출신이라는 자부심이 있다. 정확히는 간호조무사다. 간호전문대에 합격을 해 놓고도 사정은 도저히 안 되고, 간호사는 되고 싶고. 나 같은 간호사 지망생은 간호학원을 거쳐서 간호조무사가 된다. 전문대를 마치고 간호사가 된다 해도 간호대학 졸업생과는 병원에서 처우가 다르다는 것은 나중에야 알았다. 무엇보다 승진이 없다. 수술실에 오래 근무를 해봐도 마찬가지, 수간호사가 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간호조무사는 더 말할 필요가 없다. 소규모 개인병원에서 자잘한 온갖 일을 하거나, 큰 병원에 가면 평생 3교대 근무다. 그러다 보니 만 나이로 50이 되었을 때, 아니 그 전부터, 남편 말이, 50까지만 일하고 그 다음엔 좀 쉬고 살라 했었다.

남편을 만난 것은 1986년, 내 나이 스물한 살, 난생 처음으로 어엿한 직장인으로서 산부인과병원에서 일하기 시작한 때였다. 그때는 병원의 규모에는 관심도 없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참 작은 병원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원무과에 새로 직원이 왔는데, 이 조그만 병원에서는 원무과 직원이면 상관이었다. 더구나 임상병리를 겸하는 것을 알고는 살짝 존경스러웠다. 공식명칭으로 임상병리사이니까 그것도 간호조무사보다는 한 단계 위다. 게다가 첫눈에 그 야무진 인상에 믿음이 갔다. 곧 소문에 의하면 출근 전에 새벽에 가락시장에 가서 한 타임 일을 하고 온다고 했다. 정말 존경스러웠다. 표정이나 동작에서는 지치거나 그런 기색도 1도 없었다. 날씬한 몸매도 근사했고, 가뿐한 걸음걸이도 멋있었다. 나이도 적당히 위로 보였다. 오빠라고 부르는 사이가 될 수 있을까, 괜히 설렜다. 무엇보다도 확실한 생활력 때문에 나를 나의 미래를 걸어도 될 것이라는 신뢰감이 생겼다.

내가 생각하는 일등 남편감은 첫째도 생활력, 둘째도 생활력이 탁월해야 했다. 아버지가 느닷없이 암 진단을 받고 투병하시다가 돌아가셨을 때, 순하디 순한 어머니는 물론 우리 형제들 모두 뭔가에 한 대 얻어맞은 멍청한 몰골들이었다. 밥은 그냥 넉넉했었고, 한 말씀 하시던 아버지의 자리도 있었고, 무엇보다 남일면 은행리는 집성촌이었기에 그런대로 도움은 있었다. 하지만 갑작스레 변화된 생활전선에서 강하지 못한 어머니는 농사를 다 내주었고, 당연히 소출은 확 줄었고, 우리에게 세상은 바뀌어 있었다. 아니, 그보다 이전에, 어머니가 우울한 얼굴로 어렵게 어렵게 진통제를 놓아드릴 즈음부터는 평화로웠던 어린 시절은 사라지고 없었다.

고향 청원에서도 남일면 쪽은 중등학교가 아예 없었다. 지금은 고향도 청주시가 되었지만, 당시로는 어렵사리 청주의 여고를 졸업한 나는 서울로 향했다. 낮에는 여러 가지 알바를 하면서 야간에는 간호전문대학 진학을 꿈꿨다. 나는 무엇보다 주사를 잘 놓고 싶었다. 아버지가 조금 더 살아계셨다면…… 기꺼이 주사를 놓아 드리고 싶었다. 만일 어머니가 아프시게 된다면 놀라지 않고 겁먹지 않고 주사를 잘 놓아 드리고 싶었다. 간호사는 희망사항이었을 뿐, 나의 현실은 불가능으로 점철되었다. 대학등록금을 마련할 길은 까마득했다. 그렇다면 일단 간호학원에 다니자! 겁 없이 절친을 따라 미리 서울에 살고 있던 친구 언니만을 달랑 믿고 상경한 여자애로서는 일 년짜리 간호학원 다니기도 쉽지 않았다. 교육비만 해도 엄청난데, 실습기간 중에도 학원비를 몽땅 내야 하다니! 무엇보다도 다섯 시 반이면 시작하는 수업시간에 맞추기가 쉽지 않았다. 그렇게 빨리 끝나는 알바가 있는가 말이다. 주말은 그래서 쉴 틈이 없이 일과를 짜서 일했다. 그렇게 해서 드디어 간호보조사란 이름으로 병원에 근무하는 꿈을 이룬 때였다. 그 남자를 만난 것은 내 인생의 푸른 신호등인 것 같았다.

그가 내 마음에 쏙 들어온 것은 그 사람이랑은 상관없는 일이었다. 가만 보니 그는 여리여리하고 나비같이 사뿐사뿐 걸어 다니는, 말 그대로 여자애 같은 여자애들 취향인 듯 했다. 카운터 김양의 뼈다귀 같은 가느다란 손가락을 쳐다보면서 슬쩌슬쩍 말을 건네곤 했다. 자꾸 그쪽으로 귀를 쫑긋거리게 되는 내가 불쌍했다. 내 손을 내 몸을 살펴보았다. 나는 살랑거리는 맵시랑은 거리가 멀었다. 우선 나는 손도 크고 키도 컸다. 키가 크다고 해서 다 날씬한 것도 아닐 테고, 나는 아닌 쪽에 속했다. 식구들 대부분 크고 건장한 우리 집에선 누가 그리 몸매에 신경을 쓰고 그러지 않았었다. 이제 와서 어쩐다? 갑자기 다이어트를 시작할 수도 없었다. 어느 세월에?

살다 보면 예상치 못한 반전이 있다. 벙어리 냉가슴인가 하면서 내가 속을 태우고 있을 때 어느 순간 그가 나를 보기 시작했더란다. 내가 무심코 명절에 고향에 다녀오면서 보따리에 날라 온 음식들을 병원에 가져가서 나누어 먹었을 때, 나중에 그의 말로는 그것이 가장 예뻤다고 했다. 아, 어머니 - 울 엄마는 애들이 집에 들르면 말 대신 무엇이든 싸주는 옛날 엄마였다. 하나 둘 집을 떠나 각 살림을 시작할 때도 묵묵히 보시기만 했고, 다니러 가도 특별히 반기지도 않았다. 그런데 손에는 꼭 무언가를 들려주셨다.

내가 예뻤다고? 예뻐? 이 여자 살림 잘 하겠다, 생각했을지. 하지만 그도 점치는 데는 틀렸다. 내가 알뜰주부들처럼 살림 예쁘게 하는 짓은 잘 못하니까. 하지만 크게는 그의 생각이 옳았다. 젊다 못해 어린(?) 나이에도 벌써 노후 준비하자는 그의 말을 신앙처럼 믿고 살 것을 알아챘으니까. 실제로 나는 소비라거나 하는 단어를 아예 몰랐고, 사치라거나 그런 욕구도 텅 비어 있었다.

 

그랬다. 우리는 시퍼렇게 젊었던 첫 순간부터 노후를 향해서 살아왔다. 곧바로 신혼 때부터였다. 서둘지는 않았지만 곧 아이가 생겼고, 출산을 앞둔 설렘 속에는 걱정이 섞였다. 출산휴가를 석 달이나 받을 수 있었던 것은 넉넉한 원장님 덕택이었다. 하지만 받아놓은 날은 빨리도 닥쳤다. 어떻게 해, 어떻게 나가? - 은이 씨, 오늘보다는 내일이 중하지, 맘 강하게 먹어! - 그래도 6개월은 젖을 먹여야……. - 마찬가지야, 어차피 뗄 건데. 아기를 위해서 무엇이 현명한가 몰라서 그러나? 우린 빈손이야, 잊었어? 이렇게 미래를 기약해야 한다며 다독거리는 남편의 선택을 믿어야 했다. 사실 우리의 상황을 워딩 그대로 써보자면 이렇다.‘우린 양가에서 0원도 도움 받지 않았어요! 0원도!’지금에 와서 나는 거의 자랑스럽게 그리 말한다. 괜스레 떳떳하기까지 한 표정으로. 서러움의 기억을 얼굴에 달고 살 필요는 없는 것이니까.

독하게 마음먹은 우리에게 맞벌이라는 단어는 호사 중에 호사였다. 투잡이라는 말도 싱겁디싱거운 보통의 단어였다. 그의 집안에는 아들들이 우리 집에는 딸들이 많은 것 빼고는 한 치도 다르지 않게 양쪽 집안의 형편이 비슷했다. 그의 형제자매들도 각자 알아서 자신의 길을 개척하는 풍토였더란다. 이상한 평등이지만, 평등에는 불평이 따르지 않는다. 그렇게 우리는 달려왔다. 지금에 와서는 3층 건물이 있고, 작은 아파트도 있고, 또 가까운 시골에 몇 백 평 밭이 딸린 농갓집이 있다. 나를 거절한 여섯 번째 할머니보다는 내 노후가 더 확실하게 준비되어 있다.

 

아차, 막상 대문 앞에 서니 슬그머니 걱정이 인다. 이 집에 다녔던 요양보호사는 왜 그만두었다 했더라? 이 집의 펑크는 어르신이 낸 것이 아니라 우리 측에서 그만둔 경우라 했다. 그것도 갑자기. 얼핏 듣기로 장애아동돌봄으로 바꾸었다고 했는데, 이곳이 아주 만족스러운 환경이었으면 그만두었을 리가 없지 않았겠나 하는 데 생각이 미친다. 뒷북처럼 이제야.

보통은 새로운 ‘자리’가 생기면 문자가 뜬다. 100명도 넘는, 120쯤이라던가, 우리 복지관 직원들에게 공동으로 단체문자가 뜬다. 간단히 띄운 조건을 보고 관심이 있으면 지원하는 방식이다. 그러니까 이 앞 근무자는 장애아동돌봄이 뜨자 그쪽으로 옮겼다 했다. 왜 그렇게 갑자기? 정말 이 집에 문제는 없었을까? 전임자가 자발적으로 그만둔 것이 아무래도 걸린다. 실은 근무시간도 딱 들어맞지는 않아서 좀 그렇다. 이 집은 서비스를 1시 반에 시작해주기 원한다고 떴는데, 반시간 정도가 애매하다. 오전 일을 마치면 12시니까 1시 정도라야 간단한 점심과 이동시간을 따져서 알맞은 시간인 것이다. 거기다가 거리상으로 날마다의 기름 값을 고려해야 할 판에, 그러니까 잘 생각해 보면 이것저것 맞지 않는데 왜 덜컥 맡아보겠다고 나섰을까. 독거노인이 아니라 보호자가 있다고 했으니, 그것도 어떨지 모르겠다. 첫 방문에서 100% 성사는 아닐 수 있다. 조건을 따져보고, 정히 아니면 말 수도 있다. 지금처럼 오전만 일해도 월 60시간 조건은 채우니까 직장보험은 유지될 것이고.

초인종 보다 번호 키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80대 어르신이라던데 번호 키를? 차 과장이 알려준 전화번호 끝자리로 키를 눌러 볼까? 아니다, 처음 방문인데 조신하게 초인종을 눌러야지. 어라, 초인종이 둘이다. 틀리지 않고 초인종을 누르고 싶다. 아직 일을 맡는다는 확정도 되지 않았으므로, 일이 되려면 초인종부터 제대로 누르고 싶다. 왜 초인종이 둘일까?

 

 

사실 내가 요양보호사 일을 시작한지 4년이 되어 가는데, 바로 앞 여섯 번째에는 시작부터 터덕거렸었다. 초인종을 누른 순간부터 좋지 않았던 일이 마음에 걸린다. 그때는 정 대리랑 함께 갔었는데, 초인종을 아무리 눌러도 대답이 없자 정 선생이 대문을 세게 두드렸다. 사실 정 선생으로서는 우리 요양보호사들이 바뀐다 해도 한 달에 두 번씩 관리 및 점검을 다니는 집이라서 크게 생소한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화근이 되었다.

오메, 요 사람들, 대문을 아작 낼란가? 벤소도 지대로 못 가게 하네이. 근디 누구다냐, 요참에는? 이렇게 첫 만남의 순간부터 까칠하던 6번 어르신은 - 이렇게 불러도 되려나? 실명 보다는 아무래도 낫지 않을까? - 매사에 조금 심하긴 했다. 의심 많고 적대적인 것이 세상에서 인생에서 넉넉히 보상받지 못한 노인들의 특성이라 쳐도 유난했다.

요양보호사로서 일하면서 내가 요양병원 근무보다는 재가방문요양을 택한 것은 크게는 전일 근무보다는 파트타임 일을 원했기 때문이었다. 속내는 그러나 바닥에 깔리고 싶지 않아서다. 간호보조사로 근무하던 젊은 시절에 내 나름 미소를 유지하던 얼굴을 하고서도 갑을병정 끊임없는 상하관계에 질렸던 터라, 다시 요양병원에 가서 일하면서 여사님이라 불리며 맨 밑바닥에 깔리고 싶지는 않다. 거기 요양병원에서는 여사님이 최하 직급이다. 육*수 여사, 김*숙 여사라 할 때의 여사 하고는 하늘 땅 차원이 다르다. 불리는 이름이 같은 것은 아무 소용없는 일이다.

재가방문요양은 일대일 관계이기 때문에, 또 대개는 물심양면으로 어느 쪽으로든 취약한 노인들을 상대하기 때문에 심리적 어려움이 적다. 자녀들이 없지 않은데도 혼자 그렇게 외로이 살아가며, 정말 우리들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해 보이기도 한다. 말동무도 없이 입술이 말라붙어가는 노인들은 어쩌면 태고 적부터 무표정이었을 얼굴을 하고 있다가도, 내가 큰 소리로 무언가를 떠들썩하게 이야기해주면 가끔은 배시시 미소를 띠기도 한다. 기저귀 실수라도 해놓고는 새색시처럼 고개를 숙이기도 하고. 살면서 보람이랄까, 보람은 대단한 것이 아님을 느끼며 뭉클해지는 순간들이 있다.

 

일은 그러나 늘 예상을 빗나간다. 갑은 어딘가에서 불쑥 나타난다. 여섯 번째 어르신이 그랬다.

여그를 좀 딲어 조 바, 쩌그 거그는 또, 거그를 딲어주랑께!

워째 멋이던가 뿌옇고만! 노인네라고 도통 안 뵈는 줄 아남여!

나 젊었을 적에는……, 이런 것은 입에 달고 사는 화두다.

어르신, 저, 백내장 검사를 한번 받아보심…….

내가 시방도 바늘귀도 뀌는데 먼 병원이여! 돈도 쎄았는갑다!

남의 말은 아예 듣지를 않는다. 그러기를 반복하더니, 한 달도 채 되지 않은 어느 날 드디어 노인이 복지관에다 전화를 걸었다. 나 들으라고 면전에서 걸었다.

거, 복지관이제라. 보쇼이, 나 참 요상해서 못 살 것소.

어르신, 왜 또 그러세요……. 저쪽에서는 그런 소리로 응대를 할 거다.

아니, 긍께, 쓰레기봉토 안 있소, 거, 나오는 거 말요. 아, 긍께 그것이 언 날 봉께 팍 졸아져 부렀당께.

어르신, 왜 또 그러세요……. 저쪽에서는 여전히 그러고 있을 것이다.

아따, 요참 여자가 이상허게 꼭 큰 가방을 가지고 다닝께 글제. 안 의심스럽소이. 어짠다고 가방을 고롷게 큰 놈을 갖고 댕긴다요. 글고 쓰레기봉토는 졸아져 불고. 아, 몇 장 없당께. 다 없어져 부렀는디 워쩔 겨?

알만 하다. 배급으로 나오는 관급 쓰레기봉투도 손도 안 대고 알뜰하게 모은다. 어떻게 가능하냐고? 혼자 사는 내가 그 큰 봉토를 쓸 일이 어디 있간디! 그러면서 나더러, 그러니까 요양보호사더러 자잘한 쓰레기들을 나오는 대로 가지고 나가서 버리고 오란다. 어디에? 기가 찰 노릇이다. 쓰레기장에 가면 이미 쓰레기를 담아 버려놓은 관급봉투들이 수북하게 있으니까, 그것을 살짝 열어서 헤집고 ‘요까짓 것’ 쑤셔 넣으면 된다고 우긴다. 실제로 막무가내다. 그렇게 모은 봉투를 손자인가 손녀에게 주련다고. 애들이 오는 것을 보진 못했다. 겨우 3주째였으니까. 아니, 요양보호사가 없는 주말에 다녀갈 지도 모른다. 그 애들 주려고 모아둔 봉투가 없어졌다고 성화였다.

어르신, 여기다가는요, 제가 추위를 타니까 스웨터 넣어가지고 다니잖아요. 지금 입고 있는 이 스웨터요, 아시면서! 저 여기 것 봉투는 쓰라고 해도 못 써요. 우리 동네는 이 동네랑 구가 다르니까 여기 쓰레기봉투를 저 주셔도 쓸 수가 없다구요.

멋이 그래, 봉토면 봉토제. 글먼 내 것 봉토가 어디로 가부렀냐, 그 말이제.

우리 동네랑 같으면 저희 것 가져다 드리고 싶네요.

어먼 소리 말고 내 것 봉토나 내놔 보랑께. 집이 갖고 가도 못 쓴담서.

 

그것이 금요일이었다. 그 다음 주중에도 실랑이는 계속되었다. 복지관에 들르면 차 과장이 살살 미소로 나를 달랜다. 그런 식으로 계속 선생님들이 바뀌니까 어쩌겠어용! 속 넓은 지 선생이 들은 둥 만 둥 참아 주세요! 사람들은 내 속내도 모르면서 내게 속이 넓다느니 그런 말들을 한다. 듣기 좋은 말일 게다. 어쨌거나 나는 사람들의 불평에는 신경 무디게 지낼 수 있다. 큰 문제만 없으면 특히 직업과 관련해서는 참는 자가 이기는 자다. 참으면 월급이 꼬박꼬박 모인다. 그렇게 살았다. 아니, 기본적으로 세상의 돈을 내 돈이 되게 하려면서 참을성도 없이 될 일인가. 그 정도가 내가 일할 때 사람을 대하는 태도다.

이 일을 하면서는 내 간호조무사 경험이 도움이 되기도 한다. 생과 사를 가르는 수술실 근무도 견뎌냈고, 온갖 오물들을 맞닥뜨리는 과정도 찡그리지 않고 해낼 수 있었다. 그래, 이 일이 병원 내에서 가장 깨끗한 작업이다. 이 작업이 없이는 병원이 오물들로 넘쳐날 것이니까. 이 더러운 똥오줌과 피범벅이 병원을 세상을 깨끗하게 하는 일차적인 일이다. 나는 세상에서 세균과 병 따위를 없애는 정화작업의 최전선에 있는 전사다. 이 작업으로 나는 월급을 받고, 내 노후는 보장될 것이다. 괜찮은 생각이었다. 그렇게 버티어 왔다.

요양보호사 일은 수술실 근무에 비하면 거저먹기다. 시급 10,500원을 채워 정확히 계산해준다. 어쨌거나 최저임금 보다는 많고, 일 하는 시간 그동안만큼은 돈을 쓰지도 않을 것이니 두 배로 절약이 된다. 버는 것과 안 쓰는 것을 더하면 갑절의 가치가 된다. 고무줄 같은 신경 줄을 조금 무딘 쪽으로 단련하며 참으면…….

그래도 통하지 않는 때가 닥쳤다. 노인은 하루도 빼지 않고 복지관에다 전화를 해댔다. 복지관에서는 시영아파트 어르신들을 놓치고 싶어 하지 않는다. 가까운 위치 때문에 총체적으로 서비스 비용이 절약되고, 무엇 보다 큰 불만사항들이 없는 편이다. 자신들이나 또 주변 사람들도 장기요양보험이니 하는 공적인 사실들에 관해 원론적으로 아는 사람이 드물어 불평불만이 적다. 일단 혜택을, 문자 그대로 보살핌을 받는다는 느낌들을 가지고 살기 때문이다. 자질구레한 불평은 오히려 어리광이다. 나 좀 봐주라니까, 심심허다고! 나 죽겄서! 근디 나 요라다 죽는당가? 징허네이, 요라고 못 걸으믄 걍 죽게 놔두제이! 여그, 여그 좀 잡으랑께! 그렇게 저렇게 실랑이를 하면서 세월이 간다. 그런데 쓰레기봉투 민원은 끈질겼다. 나는 시쳇말로 잘렸다. 엊그제 11월 말, 하필이면 생일 하루 전날이었다.

 

 

직장에서 ‘짤렸다’는 생각에 웃음이 났다. 모처럼 외식을 하는 토요일 - 주말이라서 딸아이도 왔었다. - 해고당한 이야기는 감췄다.

왜, 식욕 떨어지는 일 있어? 식당 잘 못 골랐나? 딸아, 우리 둘이 엄마 것 다 먹자!

속 모르는 남편은 펄펄 날지 않는 나를 의아해 하며 놀렸다. 젓가락 부딪는 소리 사이로 닷새를 계속해서 혼자 내지르던 성난 목소리가 날아다녔다. 즈그 집에서는 안 춥당가. 질가 댕길라먼 얼메나 더 추울겨! 집에서부텀 옷을 입고 댕기제, 멋허러 옷을 들고 다닌다는 거여. 멋한디 울 집에 들어와 갖고사 세타를 입는당가!

사실 복지관에서도 내가 옷을 많이 껴입는 것을 보고 웃는 사람들도 있었다. 마른 체격도 아니면서 한심하다는 투다. 요새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말라깽이를 이상형으로 삼는데, 교육 있는 날 모두 함께 밥을 먹다 보면 내가 제일 잘 먹는다. 뭐야, 지 선생은 애기들 같이 먹네, 애들 반찬도 좋아하고! - 아니, 저는 그냥 무엇이든지 잘 먹어요. 살 좀 빼야 할까요? - 알긴 아시네. 해도 지 선생 귀여워요, 먹는 것도 애들 같고, 인상도 애들 같고, 하하. - 애들 같아 뭐하게요! 나도 덩달아 웃고 만다. 멋지다 그런 말은 언감생심 기대도 하지 않지만, 그래도 어른한테 애들 같다니! 뭐, 어쩔 수 없기는 하다. 여리여리한 여자애들 때문에 속앓이를 했던 것도 옛날 옛적 일이다. 예쁘면 뭣해! 나는 제법 하얀 피부에 비뚠 데 없이 좌우대칭은 된다. 열심히 살았고, 아니, 열심히 일했고, 열심히 절약했고, 지금은 마음 편하게 살아가고 있으니, 이만하면 되었다. 게다가 우리에게는 아직도 계획이 있다. 당근 재테크와 관련된 일이다. 그것을 위해서 아직은 일을 더 계속할 것이다. 해야 한다. 하고 싶다.

착실한 재테크는 세상 살아가는 기본이다. 그렇게 알고 살아왔다. 돈 관리는 따로 하지만 투자 때는 함께 한다. 결혼 초에는 다른 커플들처럼 내가 돈 관리를 맡기 시작했었지만 오래 가지 못했다. 그이의 월급을 챙겨서 적금 부으러 가던 날, 바로 그날 아침 버스에서 가방을 찢기고 돈을 통째로 털렸다. 평생 단 한 번도 찢기지 않던 가방이 월급이 통째로 들어있던 그 순간에 찢기다니. 그 일은 훔쳐간 그들에게는 마법이었고, 나에게는 우리에게는 재앙이었다. 그는 그것을 용서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얼마나 많은 땀방울로 다져진 돈인가 말이다. 그 순간, 그 이후로 나는 돈 관리자 자리에서 데꺽 잘렸다. 결과적으로는 잘된 일이다 싶기도 하다. 그이가 나보다 관리에서나 투자에서 월등하니까. 어느 집이고 아내들이 돈 관리를 하는 현실에 비춰보면 자존심이 묵사발 될까 봐 남들에게 테는 안 낸다. 누가 하면 어떤가, 결과가 좋으면 좋은 것이다. 한 푼도 허투루 쓰는 법이 없는 남편은 정말 대단한 사람이다. 당연히 노담인데, 담배는 바로 돈을 말아서 태우는 것이라 생각해서 손을 대본 적도 없을 것이다. 둘이서 내기를 하면, 글쎄, 누가 더 절약의 천재인가 모를 일이다. 아니, 내가 밀리려나? 그 만큼 신뢰를 하기 때문에 그이의 제안이나 결정을 따르게 된다.

 

성남의 끝자락 미금에 청*마을 주공 42㎡ 아파트에 입주하던 날 - 1995년, 그 때도 오늘처럼 매섭게 추운 12월이었다. - 우리는 울었다. 대충 정리하고 딸아이 재워놓고 둘이서 입주파티를 하자고 마주앉아서……, 짠! 하고 잔을 부딪는 대신 그만 울음보를 터뜨렸다. 내가 먼저였나? 모르겠다. 둘이 다 울었다. 울다가 웃었다. 반지하 - 반지하에서 갓난아이를 품고 누어있는 순간, 그것을 표현할 단어는 없다. 그런 우리에게 이 공간 전체가 우리 것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더 작은 36㎡도 아니고 42㎡ 아파트라니. 대출을 끼었다지만 우리 집이다. 요새 와서는 ‘영끌’이란 말이 유행이지만, 그런 말이 생겨나기 전에도 우린 그만큼 다 했다. 그랬다. 영혼까지 끌어 모아서 내 집을 샀다. 둘이 벌고 절약을 하며 살 테니까 까짓 대출쯤은 문제없었다. 울다 웃다를 반복했다. 이렇게 짧은(?) 시간에 내 집을 마련하다니. 아까워서 발을 크게 떼놓지 못했다. 몸무게가 한쪽으로 잘 못 실려서 바닥이 무너질세라.

꿈결 같은 세월이었다. 어느새 초등학교에 들어간 딸아이는 말 그대로 똘똘하고 키도 크고 공부도 제법 했다. 부러울 게 없었다. 머리카락은 나를 닮아서 검고 머리숱도 많았다. 머리를 묶어주면서 예쁜 머리핀을 꽂아주면서 생각했다, 나 어린 시절 보다는 더 행복하게 해주어야지. 아니, 이맘 땐 나도 거칠 것 없이 부족함 모르고 자랐었지. 아무튼 뒷받침을 더 잘 해주려면 돈도 모아야 하지만 무엇 보다 부모가 오래오래 건강하게 살아있어야 된다. 아버지가 일찍 아프시다가 돌아가신 것 말고는 내 어린 시절이 불행했다는 생각은 없다. 어머니는 책 속에 나오는 어머니처럼 온순하고 또 온순해서 우리들에게 따뜻했다. 내 검은 숱 많은 머리를 감겨주시곤 했는데, 이상하게도 젖은 채 안겼던 기억이 생생하다. 비눗물 때문에 울고 싶었던 눈이 스르르 감기곤 했다. 내 단정한 단발머리는 언제부턴가 약간 곱슬하게 변했지만 그래도 늘 단정한 머리다. 비라도 오는 날이면 곱슬이 더 나타나서, 사람들은 파마 값도 안 들게 생겼다면서 부러워한다. 하지만 난 하늘하늘한 노란 생머리가 예쁘다고 생각한다. 사알짝 흔들어서 뒤로 넘기며……. 하긴 그런 인상은 나랑은 어울리지 않는다. 처녀 적에도 안 어울렸다. 은아, 튼실한 몸과 맘으로 날마다 파이팅!

 

 

어느 평범한 날이었다. 그이가 뜬금없이 고향으로 내려가자고 했다. 고향이라고? 그러고 보니까 그의 고향은 남쪽이었다. 얘, 조심 해. 걔 라도표야! 연애, 거기까지만! 서울 여자애들이 라도표라고 시집가기를 기피했던 전라도 남자였다. 나는 특별히 전라도에 대해서 선입견을 가지지는 않았지만, 고향 제천에서나 더구나 서울에서 사는 동안에 전라도가 그리 매력 있는 고장은 아니었다. 오빠가, 그가, 결혼 이야기를 꺼냈을 때는 시댁이 전라도인가 어딘가는 안중에 없었다. 외국인이어도, 어쩌면 외계인이어도 좋았을 것이다. 막상 ‘시집가는 날’ 시댁 동네 사람들에 둘러싸여서 놀랐던 가슴은 순간이었기 때문에 곧 잊혀졌다. 신랑은 전라도 출신(!)일 뿐으로, 서울사람이었다. 아들로는 둘째였고 누이들도 있었으므로 집안을 책임질 군번도 사정도 아니었다.

이제 와서 고향으로 간다고? 참으로 낯선, 한 번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그의 고향인 보성 봉*리, 선씨들만 모여 사는 동네, 하나 둘 떠나고 백 가호도 안 되는 마을로 가자고? 내 고향 제천도 우리 마을도 시골이긴 했지만, 전혀 다른 느낌의 시골인 시댁 마을은 그동안 잠깐씩 들르긴 했다. 하지만 아주 살 터전으로 받아들이라니, 날벼락이었다. 그는 공무원이니 걱정 없지만, 내가 취업할 수 있는 병원이 있을까? 설마 차밭 농사를? 무슨 말로, 어떤 말로 반대를 하지? 갑자기 눈앞이 깜깜했다. 내가 이 세월 살면서 남편 의견에 반대 한번 안하고 살았었나? 새삼 그것도 놀라웠다. 며칠을 끙끙 알았다. 언제나처럼 아무 말 않고 생글거리며 따라 나설 일이 절대로 아니었다. 병원 핑계가 그나마 통할 것 같았다. 내 직장은 어쩔……

그러다가 걱정은 전쟁 없이 사라졌다. 내 속으로는 반대의견을 들고 나서기가 전쟁준비만큼 힘든 터였다. 그런데 그이가 우선은 이곳 광주로 내려오자고 말했다. 고향까지 차로 한 시간 남짓 거리랬다. 휴, 나는 늘 운이 좋았다. 이곳에는 그이의 동창생이며 선후배들이 이렇게 저렇게 자리 잡고 살고 있었다. 나는 쉬지 못하는 습관에 잠시 알바도 했었지만, 곧 병원에 취직했다. 마침 건강검진을 집중적으로 하는 병원이었고, 광주 전남 여타 지역으로 건강검진 버스를 운영하는 팀에 들어갔다. 조금 늦을 때는 있어도 낮 근무였다. 나로서는 잘 된 일이었다. 그렇게 이곳 대도시 생활은 안정되어 갔다. 전학 온 딸아이도 서울 말씨로 친구들의 엄청난 관심을 받으며 신이 나는 듯했다. 그 나름대로 상위권을 유지하면서 예쁘게 자라고 있었다. 아이가 내 키만큼 자라는 건 정말 시간문제였다. 아슬아슬하게도 아예 고향으로 내려가자는 말은 더는 없었다.

그러자 저녁 쉬는 시간이 뭔가 아까워졌고, 나는 야간대학에 진학을 감행했다. 간호학과는 이과라서 현실적으로 어려운 벽이 있었고, 차선으로 사회복지과에 ‘등록’을 했다. 간호학전문대학에 간절히 등록하고자 했었던 옛 그 느낌이 살아나면서 가슴이 쿵쾅거렸다. 게다가 4년제 대학이었다. 사실 마음 끝 간 데 깊은 속에는 그만큼 깊은 미련이 남아있기도 했었다.

야간대학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거의 이런저런 이력들을 가지고서 늦게 대학에 오는 경우가 많아서 친구처럼 가까워진 동료학생들도 생겼다. 그때는 2008년부터인가 시작된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가 이슈가 되어서인지 사회복지과 학생 중에는 복지관이나 돌봄센터를 운영할 마음으로 와 있는 사람도 있었다. 나중에 들으니 실제로 소규모 센터를 운영하는 이도 있다고 했다. 비슷하게는 유아교육과를 해서 어린이집을 차린 이도 있었다. 하나 같이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이 복지관에서 일을 하면서는 다른 종류의 사람들도 만났다. 나이들은 대부분 나보다 많지만 살짝 철이 없다고 할까. 일은 싫고 돈은 벌어야 해서 우울해하는 사람들 말이다.

나 같으면 못 산다 하지, 지 선생! 뭣 하러 그렇게 살어!

뭐가 어떤데요?

아니, 이깟 일 고만 좀 하고 쉴 일이지, 뭐가 아쉬워 그래요. 월세 받아서 쓰니 좀 좋겠어. 그냥 쉬라고 잡아 앉히지, 남편도 참. 짠돌인 게지.

아아니, 남편 탓 아니에요. 젊겠다, 두 손 두 발 성한데 어떻게 놀아요?

남편이 벌어다 주지, 월세 나오지. 그럼 매일 사우나도 가고, 산악회, 거긴 주 1회니 바람 쐴 만한데, 으샤! 그때가 그립다, 나는.

그런 건 취미 없어요!

그럼 일하는 게 취미다요? 세상에 일이 취미인 사람 어딨다고!

힘든 일도 아니고, 살림에 도움도 되고.

못 말려, 바보 같이!

내가 사는 방식이 바보 같은가? 그런 점이 없지 않더라도, 다른 사람들의 평가에는 별 관심이 없다. 남들이 칭찬을 하든 아니든 나는 그냥 그대로 일 테니까. 나이든 동료가 바보 같다고 흉을 보건 말건 무슨 상관인가. 어느 의심 많은 할머니가 나를 잘랐거나 칭찬했거나 나는 나다. 더구나 어제는 어제다. 일곱 번째 어르신님, 어서 나오세요!

 

아차, 초인종이 두 개! 어느 것을 누른다? 폭발물을 몇 초 안에 해체해야 하는 톰 크루즈식 액션영화 장면이 떠오른다. 마지막 남은 두 개의 전선 중에서 어느 것을 자를까, 손이 떨린다. 똑딱똑딱 초시계가 흐른다. 잘 못 자르면 자신을 포함해서 사방이 날아갈 것이다. 그런 기분이다. 가만, 바른 초인종을 찾는 데 힌트는 크기가 아니겠다. 위치가 문제다. 처음부터 제 자리에 있었던 초인종은 고장이 났고, 그래서 새로 달아놓은 것은 좀 엉뚱한 자리에 붙어 있겠다. 옳거니, 요 하얀 녀석인 게로구나. 괜스레 옷깃을 한 번 더 만져본다. 새로운 시작이다. 좋은 인상이 필요해! 초인종을 보면 늘 젖꼭지 생각이 나지만, 검지 끝에는 딱딱한 플라스틱 감촉이 느껴진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2020.12. 국제PEN광주, 18호, 268-28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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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서용좌
소설2020. 11. 25. 22:54

2020.11.16. 장편소설 『숨』, 문학들, 280쪽.

[광주일보]
http://www.kwangju.co.kr/article.php?aid=1606950000709657007&search=장편소설

[무등일보]

http://www.honam.co.kr/detail/K4YzjP/6350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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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2020. 6. 21. 00:28

 

숨이 막힌다, 잠결에 전화기를 집으려다 숨이 멎는다. 소리를 들었던 것 같은데 다시 조용하다. 누구였을까. 손이 떨리는 만큼 가슴은 쿵쾅거리는데 정작 입이 열리지 않고 숨이 입술에 걸려있다. 왜 전화기를 집어 들었을까. 꿈결이었을까. 무슨 소식을 기대하는가. 기다릴 아무 것도 없다. 누군가 일 없이 이 어둑새벽에 전화할 리가 없다. 시간대가 다른 도희였나. 어머니가 시간에 좀 어눌해지셨다지만, 설마. 다시 울리지는 않는다. 불길한 생각을 미리 꾸어다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숨을 다시 크게 들이킨다. 크게 내쉬어 본다. 숨은 코로 쉬어야 건강하다고 했지만 사실일까, 결정적인 숨은 입으로 쉰다. 음파, 음파 하면서 코로 들이마시고 입으로 내쉬는 숨법을 익혀야 수영을 배우는데, 수영을 배우지 못했다. 들숨보다는 날숨이 더 어려웠다. 평상시에도 가만있으면 들숨이 되지만, 날숨은 힘을 들여야 공기가 빠져나온다. 물속에서 날숨은 물의 힘을 거슬러 내뱉어야하기 때문에 더 어려웠다. 입을 여는 순간 물이 들어와 버렸다.

 

 

입을 여는 순간 - 입을 열어야 하는 순간, 입술을 열어야 했던 순간이 있었다. 입술을 열고 싶었다. 열렸나. 어스름이었지만 교정이었고, 교정은 열린 공간이었다. 직박구리가 울어대는 은목서 아래, 그는, 선배는 나를 안았다. 선 채로였다.

아니, 라고 말하기도 전에, 아, 라고 말하기도 전에. 입술이 포개어지는 상상은 아직 빨랐다. 내가 느렸나. 전혀 준비가 되지 않았다. 목소리에 귀가 울고 있었고, 그 팔 안에서 떨리기만 했다. 고개를 살짝 쳐들게 된 것은 나도 모르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세상이 정지되었다.

달콤했었나, 여러 표현들처럼 또는 상상처럼. 아니, 모르겠다. 아무런 기억이 없다. 이 말은 거짓이다. 지금도 기억하고 있으면서 기억이 없다니. 설명할 수 있는 언어가 없다는 말이 옳다. 일 초, 이 초…… 시간에 관해서도 말할 수 없다.

나랑 결혼해, 괜찮겠지? 그렇게 가까운 소리를 흘려들으면서 나는 나무 위 새 소리를 듣고 있었다. 괜찮겠지? 너 나랑 결혼하자고! 난 정말 못 들었다. 나무 아래 함께 서 있었던 선배의 목소리는 못 들었다. 하늘을 향해 내지르던 새 소리만을 기억한다. 나뭇가지 꼭대기, 먼 데 새소리만 시끄러웠다. 입은 얼어붙어 있었다. 숨도 얼었다.

우리는 헤어졌고, 내가 도망쳤고 숨었다. 마음은 그 자리에 못 밖아 두고 숨었다. 한 치도 따라 오지 못하는 마음은 그 자리에서 얼음이 되고 바위가 되었다. 되는대로 얌전을 떨며 교실 주변만 오갔다. 가까운 친구들도 잠깐 의아한 눈초리로 보다가 말았다. 다들 무엇엔가 바쁘고 충만했다. 미래를 꿈꾸면서 부산한 친구들에 비해, 또는 갑자기 물벼락 같은 배신감에 아파 우는 친구에 비하면, 나는 평정심을 유지했다. 잘 지내야 했다. 참 어려운, 무서운 시절이었지만, 비겁하게 눈 반쯤 감고 코앞 50, 60cm만 보고 다니며 졸업을 했다. 이 아니 평정심인가.

결혼도 했다. 신혼여행도 다녀왔고, 신혼살림을 차렸다. 부엌에 가면 어려운 것이 많았지만 차츰 극복했다. 무엇보다 물고기의 눈알들이 무서웠었다. 아냐, 이건 물고기가 아니고 생선이야. 밥상을 위해 태어난 것들. 생선의 배를 가르고 내장 손질도 하고 이등분 삼등분해서 끓였다. 끓이고 나면 반찬이 될 터였다. 채를 썰면 몽둥이가 나왔고, 미나리 다발에서 깜짝 놀랄 뭉클한 어떤 생물을 떼어내는 날이면, 나도 모르게 너무 데쳐서 누런 죽이 되어 나왔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가 아니라 그대로 연속극이었다. 세상에 어려운 소금과의 숨바꼭질은 여태도 어렵다. 하지만 다들 말하는 것처럼 보금자리를 만들려고 노력했었다. 다 잘 될 것이었다. 다들 하고 사는 평범한 생을 살아가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결혼 1년차였다. 봄이었고, 만물은 초록으로 소생하고 있었다. 알맞게 익은 토마토가 갑자기 메스꺼웠다. 그러고 보니 뭔가 신호가 있은 듯 했다. 달력의 숫자를 보면서 미소와 불안이 한데 밀려왔다. 어라? 그렇게 어색한 며칠이 지났다. 설마, 제2막의 인생이 시작되려나.

른쪽 아랫배에서 둔탁한 통증을 느꼈다. 맹장은 아닐 터. 내게는 맹장이 일찍이 치워지고 없었으니까. 그때는 어리기도 했었지만 무서움이 더 컸던지, 데굴데굴 구를 정도로 아파서야 엄마에게 말했다. 바로 큰 병원 응급실로 업혀갔고, 그리고는 맹장을 떼어냈다 했다. 물, 물 물……. 며칠 계속되었던 사막의 체험은 지금도 아스라이 남아있다. 그때의 통증에 비하면 이번엔 참을만한 동통이었다. 게다가 임신이라는 경험은 처음이다 보니, 그게 혹시 이렇게 불편한 것일까, 그런 생각으로 있었다. 순간 출혈이 있었다. 피는 붉다, 그런데 붉은 선홍색이 아니었다. 불길함과 무서움을 불러일으키는 거무스레한 피였다. 망설이다가 급한 대로 산부인과를 찾았다. 어쩌죠, 보호자랑 얼른 다시 오세요! 그것이 그것이었다.

자궁외임신이라고? 자궁 바깥에 무슨 임신? 자궁강 내 임신의 경우에도 유산이 가능했겠지만, 자궁외임신이란 아주 묘한 상황이었다. 앉을 자리를 잃은 아이. 직장과 자궁 사이에 존재하는 복강의 일부분인 막힌 주머니에 비응혈성 혈액이 고였단다. 그러니 100% 자궁외임신, 그리고 난관 파열이랬다.

남이 씨만 괜찮으면 일 없어요. 우린 아직 신혼이고.

…….

고 녀석이 어쩌다 난관에 앉아버렸네 그만, 성미 급하게 시리.

…….

하지만 난관은 둘이니까, 난소도 다 괜찮고. 걱정 말아요, 일단 푹 쉬고.

…….

미처 울 수도 없이 숨 가쁘게 지나간 날들이었다. 어려서 했던 맹장 수술의 상처를 상상해 보았다. 뱃속 어딘가에 울툭불툭한 흔적이 있어 아이의 순항을 가로막았을까, 설마. 아무튼 아기가, 아기가 될 어떤 것이 제 자리를 찾아 내려가다가 무슨 턱 같은 데에 걸렸단다. 어느 순간 더는 자랄 수 없어 온통 파열하고 말았단다. 활화산처럼 분출했을까. 아팠을까. 아직 통감은 자라지 않았을 것이야. 어떤 위로도 위로가 되지 않았다. 어미가 내어준 자리가, 착상의 자리가 불안정했다니, 더는 자랄 수 없는 자리였다니. 그러고도 어미일까. 잘 못 내어준 자리에 멋모르고 앉은 태아는 세상을 보지 못했다.

내게 잉태되어 자라던 생명체가 제 모습을 갖추기도 전에 떠났다는 사실은 인정하기 어려운 악몽이었다. 울었다. 미안해서 울고 무서워서 울었다. 무조건 한없이 미안했다. 열린 창 너머로 병원 밖에서 새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따뜻한 봄 공기가 들어오는 대신 시끄러운 새소리만 건너 들어와서는 천장까지 흩뜨려 놓았다. 병실 안이 확성기를 틀어놓은 듯이 시끄러웠다. 무어라고 힐난하는 소리처럼도 들렸다. 누군가에게서라도 질책을 듣고 싶은 심정이라서 그리 들렸을 것이다.

 

나 나름대로는 누구의 아내가 되려고 노력했었다. 꽤 어려서부터 보아왔던 남자, 정확하게는 울 오빠 친구인 환희 오빠가 남편이 되었다. 괜찮았다. 따뜻한 손에 따뜻한 마음을 다 가진 좋은 남자였다. 좋은 남자다. 내 멍청한 짓거리도 다 알고 있었다. 아무 소리나 듣고 아무 소리도 못 듣는, 병도 아닌 병을 가진 나를 꺼려하지 않았다. 꺼리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아마도 나를 위해서 이비인후과 전공의가 되었다. 오랫동안 똑같은 거리로 떨어져 있었다가 결혼으로 한 발짝 다가온 좋은 사람이었다. 좋은 사람이다. 좋은 사람의 아내 노릇,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사소한 한두 가지를 빼면.

사소한 한두 가지는, 이 말을 해도 되려나, 잠자리에 동시에 가는 것을 피하는 것 등이다. 함께 자리에 들고 함께 깨어나는 환상적인 잠자리는 모든 부부에게서도 어려울 것이다. 좋은 사람인 남편은 정말 좋은 사람인 것이, 신혼의 첫 밤을 혼자 잠들게 배려해준 일로 증명된다. 평생 고마워한다. 처음으로 한 낯선 방 네모 공간에 내팽겨진 남녀, 그 상황에 쉽게 적응하지 못하는 신부를 먼저 자리에 들어 쉬라고 배려해준 사람이었다. 그 처음 상황이 어색해서 오래도록 잠이 들진 않았지만, 하릴없이 혼자 앉아있던 실루엣을 실눈으로 바라보면서, 좋은 아내가 되어야지, 그렇게 마음먹지 않을 수 없는 밤이었다.

그리고 포유동물인 우리 사이에도 도파민 작용이 일어났을 것이다. 일어났다.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잠자리라고 하는 일도 점차로 자연스러워졌다. 여자인 것이 어쩌면 다행이었다. 수동적일 수 있었으니 말이다. 사실 남자들은 그 점에서 고민스러울 수도 있겠다 싶었다. 예컨대, 입술은 포함인가, 아닌가, 포함이면 어느 순서에 어느 만큼이 가장 어울리는가. 그런 것들은 어떻게 시도해야하는지, 태어나서부터 알았을 리는 없고, 어디에서 어떻게 배워서 준비를 해야 할 것인지.

입술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나로선 그 부분이 문제였다. 잘 호응하고자 하는 의도에도 불구하고 나는 크게 잘못을 했다. 무심코 고개를 너무 강하게 돌려버렸다. 거의 반사작용이었다. 더 내밀한 부위들, 예컨대 늘 옷으로 가려지는 부위들, 항상 노출되어 있는 입술에 비해서 더 부끄러운 부위들도 결국 내려놓았다. 내려놓았다는 표현이 좀 그런가, 아무튼 감정을 실어서 호응하려했고 아마 감정이 실렸다. 그러다가도 남편의 입술이 얼굴 쪽으로 향하면 긴장감이 치밀었고, 목도 귀도…… 그러나 입술만은. 입술과 입술이 닿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입술은 나만의 것이다. 두 번째로는 누구와도 나눌 수 없는 무엇이다.

머피의 법칙은 어김없이 이어졌다. 또 다른 봄이 왔고, 이번엔 왼쪽으로 통증이 왔다. 공평함이란 이런 때 아무런 도움도 위로도 되지 못했다. 오른쪽 왼쪽의 균형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절름발이가 되어도 좋았으니, 왼쪽만큼은 튼튼해야 했다. 하지만 왼쪽 길로 등장하던 두 번째 태아도 똑같은 방식으로 나를, 우리를 떠났다. 다들 하고 사는 평범한 생을 살아가지 못할 이유가 생기고 말았다. 정성이 부족했었나. 아이를 잉태하는 순간의 정성이, 사랑이 그리 부족했었다고 자책할밖에 없었다.

 

 

메아 꿀빠.

온 몸으로 온 맘으로 잉태를 향해 두 팔을 벌리지 않은 죄였습니다. 맘은 보이지 않는다 치고, 온 몸을 통째로 다 내어주면서 새 생명을 받았어야 합니다. 입술만은 제발…… 그렇게 몸을 사리고서 너를, 너희를 잉태하고자 했다니. 나는 죄인입니다.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그 두 아이는 신실하지 못한 엄마에게서 잉태되어 온전한 생으로 자라나지 못했습니다. 길도 없는 깜깜한 벽에 눌려 온몸이 부스러져 터져 나올 땐 얼마나 아팠을까요? 물어볼 새도 없었습니다. 젖이 나오는 부드러운 주머니를 만지작거려보지도 못했고, 오옹, 으엉, 옹알이도 한번 해보지 못했습니다. 음마, 엄마, 라는 단어도 배우지 못했습니다. 시소에 슬쩍 엉덩방아를 찧어보지도 못했고, 그네에서 미끄러지는 아찔한 순간도 몰랐습니다. 아, 숨이 막힙니다. 이런 몹쓸 어미라니요.

남편은 평정심을 유지해 보였지만, 집에 돌아와서는 만 하루를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기억합니다, 그 깊은 침묵의 색깔과 침묵의 소리와 침묵의 움직임들을.

정지된 어둠의 시간이 흐른 뒤 그이는 놀랍도록 빨리 일상으로 돌아왔습니다.

아, 이렇게 자발적으로 여피족 합시다!

…….

여피, 둘 다 고등교육을 받고 도시나 도시 근교에 거주하며, 전문직에 종사하면서 그 나름대로 고소득을 올리는 젊은 부부라면 여피라 한다지만, 우린 그건 아니었습니다. 우선 내가 전문직은커녕 아무런 직업도 없었으니까요. 전업주부, 아이를 낳지 못하는, 자녀를 기르지 못하는 전업주부란 대체 뭐란 말인가요.

딩크, 더블인컴노키즈! 나중에 딩크족이란 단어가 유행할 때도 소용없었습니다. 반쯤 겨우 살아가는 여자를 분류하는 이름이, 특정 명사가 없습니다. 나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누구 엄마도 아닌 것이, 직업도 없었으니까요.

아파트 뜰에서 유모차에 앉은 아이, 우유병을 빨고 있는 아이를 봅니다. 젖을 먹이는 상상을 해봅니다. 몸에서 흘러나오는 애틋한 액체, 눈물 콧물 더러운 액체가 아닌 생명의 액체. 젖을 먹이는 어머니, 아아. 위층에서 아이들의 사근사근 발자국 소리가 나면 눈은 감기고 귀가 쫑긋, 아이들 얼굴이 떠오르죠. 싫어 싫어 - 내 꺼야 - 엄마아 형아가 - 요오놈들이…….

위층 여자, 아이엄마는 상냥합니다. 만나면 미소 짓고, 죄송해요, 애들 땜시…… 귀여운 사투리를 흘립니다. 애들이랑 함께일 때는 애들한테 인사도 시킵니다. 인사해, 아랫집 이모셔. 이모 아냐! 똘똘한 녀석이 말합니다. 응, 아랫집 아줌마! 안넝하세요이! 에이, 예쁘게,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오! 통탕거리며 앞서 가면서 큰 소리로 인사합니다. 곧 쿵쾅거리겠지, 곧 목소리가 변하겠지. 그러니까 다 옛날 일입니다.

지금은 그 아이들이 엄마 아빠가 되어 꼬맹이들을 데리고 나다니는 시간입니다. 길에서 이웃 엄마 아이들을 만나면, 할머니야, 인사해! 그런 인사를 받습니다. 그 긴 세월 동안 무슨 일을 해보려 했을지, 어떻게 그 수많은 날들을 살아왔는지 어찌 보면 신기하기도 합니다. 아무 일도 안 하고 그냥 살기.

10년 전쯤이었죠. 은혼식을 기념하자고, 다시 제주엘 가보자고 하더군요. 부끄러웠습니다. 우선 신혼여행 때의 미안했던 기억을 불러내고 싶지도 않았지만, 결혼 스무 다섯 해 동안 무슨 기여를 했다고 은혼식 선물을 받는답니까. 후손을 낳은 것도 재산을 불린 것도 아닌 아내란 - 심각한 정체성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습니다.

무엇인가를 하자. 돌이켜보니 적극적으로 뭣 하나 도전하거나 그런 일도 거의 없었습니다. 왜 못했을까요. 미리 자신이 없었던 것입니다. 하다못해 운전면허시험에도 두 번 떨어지자 더는 시도할 맘이 없어졌고, 그래서 운전도 못합니다. 코스 중에서 멈췄다가 다시 출발하는 대목에서 똑같이 또 떨어졌으니 말입니다. 멈췄다가 다시 출발하는 것이 왜 특별히 어려울까요. 처음 출발 때처럼 하면 될 일이다, 마음을 먹지만 잘 안되었습니다. 순간 멈추었다가 다음 순간 곧 다시 출발한다는 작동이 아니 되는 것을 어떡합니까. 그때 카세트 라디오처럼 이것 누르다 저것 누르다 하면서 채널 바뀌는 것이 불편했더라도, 시험에 나가서는 불편 따윌랑 잊었어야 하는데요.

그래, 뭔가 자격증에라도 도전하자. 미선의 정보 덕택에 놀라울 경험을 하긴 했습니다. 한국어교사양성과정 - 한국어교사란 국어교사만큼 탁월한 실력을 갖추지 못해도 괜찮겠다는 어설픈 안심도 살짝 있어서 덜컥 등록을 했습니다. 여름방학 낮 시간 동안의 교육이었기 때문에 굳이 남편에게 말하지 않고 할 수 있다는 것도 좋았고요. 어쨌거나 다시 캠퍼스에 간 것입니다. 새삼 국어를 공부하면서 놀란 일, 그렇게나 잘 못 쓰는 단어들이 많았다니요. 습관적으로 열쇠 자물쇠를 열쇄 자물쇄로 쓰는 버릇 등, 그밖에도 셀 수 없이 많은 오류들이라니, 누가 한글을 쉽다고 했나요? 아무튼 한글 맞춤법, 표준어 규정에 외래어 표기법까지 A4 반쪽으로 출력해서 묶어가지고 다니면서 외울 때의 경험은 특별했답니다.

그런데 한국어는 30시간뿐이니, 일반언어학과 외국어로서의 한국어 교육이론을 합쳐서 거의 60시간에 가까운 것과 비교하면 너무 적었습니다. 또 교수법이란 참 어려운 것이, 예컨대 비계 - 그것은 건축에서 쓰는 용어인줄 알았더니만 교수법에서 등장하면 전혀 엉뚱한 느낌이었어요. 아무튼 장 의존(Field Dependence)적 인간과 장 독립(Field Independence)적 인간이 있다는 것, 유형에 따라 교육도 달라져야 한다는 것도 배웠으니까요. 뭔가 유식해지는 느낌도 있었는데, 난 그럼 어떤 유형이냐고요? 그것 하나는 독립인 걸 알게 되었습니다. 운전을 하지도 못하면서 길을 찾아야할 때 간판보다는 방향을 고집하는 것이 그런 예라더군요. 세상 간판을 어찌 다 아느냐, 동서남북으로 느끼는 것이 편하다, 늘 그랬었는데.

그건 그렇고, 결과적으로 교육이론에 매우 약했던 내 시험결과는 뻔했습니다. 거의 6:1이라던 그해 응시율로 보아 합격할 확률은 없었던 거죠. 비싼 수강료에 더해서 수험료까지 함께 날린 것입니다. 양성과정 동기들은, 나이는 정말 천차만별이더군요, 한 번 더 응시 기회가 있다고 했지만, 안 될 것이라는 판단이 섰지요. 국어교사자격증을 가지고도 임용고시에 매번 안돼서 한국어교사 쪽으로 왔다는 젊은이도 함께 떨어졌으니까요.

속상해 하지 마. 다들 떨어지고 그러는데 뭐. 네가 무슨 특별한 사람이라고 그래.

그럼, 젊은 애들이나 붙지. 못 붙어도 수료증으로 취업이 된다면서. 외국에 나가서는 한국어 인기 짱이래.

내가 무슨 외국에를 간다고…….

이런 불발도 친구들은 잘 달래주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적어도 누구 엄마고, 미선인 싱글이지만, 해서 누구 엄마는 아니지만 선생님입니다. 박미선 샘!

 

그러고는 다른 시험에 도전은 안 했다니까요. 무엇엔들 엄두가 나질 않아서지요. 낮 동안에는, 아니 거의 쉬고 있는 컴퓨터를 열면 무궁무진, 거의 블랙홀이더군요. 장욱진의 가로수 그림을 컴 화면에서 보고 숨이 멎을 것 같은 순간이 있었지요. 예술성? 그런 건 아예 모르지요. 집들을 수관 꼭대기에 이고 서있는 나무들이라니요, 네 그루의 나무들. 그림은 말이구나, 그리는 사람이 소통하는. 그래, 민화를 해볼까? 민화라고 접근이 쉬울까? 주위엔 민화 프로그램이 없었어요. 연필 스케치를 다녀보았죠. 선부터 어려운 것이, 손이 바들바들 떨려요, 딱히 죄 지은 것도 없이 말입니다. 아무튼 준비물이 많은 것도 싫고, 몸을 많이 움직이는 것도 싫고, 이것저것을 피하다보니 나다닐 마땅한 프로그램이 없는 겁니다. 이런저런 취미도 없으니 맹물 인생입니다. 취미가 아닌, 어떤 보람을 찾아서 생산적인 일을 해 본 경험은 아예 없었지요. 어쩌다가 이리 되었을까요. 일 년 삼백예순날, 십년, 이십년…….

 

 

그날도 그저 그렇게 모여 앉아 커피를 차를 홀짝이고 있을 때였습니다.

사는 것 허무하네. 손에 잡히는 것이 없어.

왜 내가 신소리를 했을까요.

나는 뭐 별다르게 산 줄 알아? 너 보담 좀 나았나? 싸돌아다니기라도 했으니까.

그러던 정인이 갑자기 시무룩해집니다. 동글한 얼굴로 동글게 웃고 동글게 말하는 그 애의 시무룩한 얼굴을 보니까 나도 따라 시무룩해집니다.

왜 그래, 정인아. 안 어울리게 왜 그래!

어울리는 게 어딨어! 나 우울하고 싶어, 폼 잡고 우울하고 싶다고!

왜 그래, 왜 그래. 다들 눈이 커집니다. 휘둥그레집니다. 설마 얘네도 무슨 문제가? 다들 놀라서 눈에만 힘이 들어갑니다.

아들이 없잖냐. 요즘 들어 우리 그인 은근히……. 아냐, 나 좀 봐.

아들은커녕 딸도 없는 내가 눈에 들어오는지 정인이 순간 멈칫 합니다. 곧 표정을 바꾸더니 득달같이 내뱉습니다.

아니, 그러니까 좀 나와! 나오라고! 어디서 허무를 읊어대느냐고! 쏘셜 싫으면 라인댄스는 어때? 누구 붙잡고 그런 것 없어요, 이 결벽증 아줌마야!

정인인 회복이 빠릅니다. 그래서 우리가 다 좋아 하는가 봅니다.

힘들다는 말도 하지 마! 그래 누가 너더러 히말라야를 오르재냐, 산티아고를 걷재냐. 그냥 좀 나와.

아, 히말라야!

히말라야라는 단어에 꿰인 성주가 한탄스럽게 말합니다. 히말라야를 가보고 죽을 수 있을까…….

여기서 웬 히말라야! 너무 멀리들 간다. 미선이 궤도를 다잡습니다.

그래, 갑자기 웬 걱정들이야. 나 너희랑 가끔 만나잖아. 봄나들이도 꼭 하고. 벌써 몇 년째인데 우리도 참 대단하다. 꾸준히, 무슨 약속처럼 봄이면 캠퍼스를 다시 가서 확인하고. 나무들 잘 있었어? 그런 인사도 하고.

얘 좀 봐, 캠퍼스 이야기 나오니 평상심 찾네. 남아, 넌 유난히 학교 나무들 좋아해, 응.

오, 그래, 봄나들이. 봄마다 캠퍼스 다시 돌아보는 사람들도 흖진 않겠구나. 우리 봄나들이 몇 년째냐, 누가 좀 세어봐라. 남이가 기억하는, 기대하는 모임도 있구나, 참.

기대가 아니라, 기다려. 저절로 기다려지네.

기다려? 정말? 신기하다. 왜? 그런 말 잘 안 하더니.

 

응, 그 사람, 이태 전이던가, 우리 가던 카페에서 믿어지지 않은 파면 이야기를 하던 여자 말이야. 이젠 안 오나 봐. 이런 말은 절대로 못합니다.

파면이었어요, 파면되었다고요. 당신은 이 순간 부로 파면이요. 그러니 교무실로 소지품도 가지러 가지 말고 그대로 현관으로 나가서 이 학교 근처에 얼씬도 말라…… 그랬어요. 아무리, 설마. 하지만 난 분명히 그렇게 말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숨을 멈추면 다른 데로 먼 데로 갈 수 있다니까요. 지금도 그리로 간 거죠.

파면 - 그 사람 다시 한 번 봤음 좋겠어.

내가 만일 그렇게 말하면 친구들은 벌집처럼 일어날 것이 뻔합니다. 무슨 파면, 무슨 소리야. 누가 있었다고? 그때 언제 누구? - 옆 자리에 두 사람? 어떤 두 사람? - 아니, 어느 봄날 어느 카페에서 스쳐 지난 사람을 무슨 수로 또 어느 봄날 어느 카페에서 같은 시간에 마주치느냐고! 그런 확률이라면, 너 수학 좋아하면 한번 계산해 보시지요! 아니, 미선아, 네가 좀 계산해 주라. 얘 정신 좀 들게. 그렇게 쏘아댈 장면이 무섭습니다. 미리 무섭습니다.

나이 들어가나 보다 뭐. 옛 것이 그리워지네.

그렇게 말을 돌립니다. 정답입니다. 사람은 꼭 해야 할 말을 꼭 해야 할 순간에 잘해야 예쁩니다. 그 정도는 압니다.

나 이쁜 것 아냐?

얘 좀 봐, 점점.

그래, 이쁘디이쁘다. 근데 왜 이리 요상한 유머를 떤다냐, 너 무슨 말 감추고 있지?

감추기는. 말 하면 한다고 나무라면서, 안 하면 안 한다, 못하면 못한다니!

그렇게 그만 주눅이 들고 맙니다. 그런 하루도 지나갑니다.

 

 

저녁입니다. 금요일 저녁에는 이 사람이 더러 늦습니다. 간단히, 아주 간단히 저녁을 먹습니다. 얼마나 간단하냐고요? 햇반 130g, 오이 반 개와 고추장 티스푼 하나, 무김치 두 쪽, 다른 아무 것이나 조금. 뭔가 조리를 하지 않으면 냄새가 별로 없어 좋습니다. 살짝 추운 느낌은 뜨거운 보리차로 해결합니다.

창은 닫았고, 또 다른 창들도 열지 않고 있습니다. 요즘엔 영화관에도 잘 안 가지만 텔레비전 열기가 겁이 납니다. 내가 소화하기에는 너무 격한 장면들의 연속입니다. 픽션이 아닌 뉴스도 마찬가지입니다. 사건마다 전대미문, 보도 행태도 서로 질 새라 무섭습니다. 손바닥 꼬마 창은 늘 닫혀 있습니다. 생각해 보니 톡톡 노크가 들어오거나 울리기 전에 스스로 여는 일은 드문 것 같습니다.

 

하릴없이 생각에 잠깁니다. 어쭙잖게 거창한 말 같지만, 사람들은 시대 속에서 삽니다. 일제 때를 피했고, 전쟁도 넘어갔고, 사랑들이 넘쳐서 아이를 제일 많이 낳았다는 그해 태어난 우리는 복이 많은 편이죠. 90만 명이 땅! 하는 신호 소리에 맞춰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세상에 나온 것이랍니다. 숫자를 상상하기는 너무 어렵죠. 90만도 상상하기 어려운 바글바글 많은 숫자인데, 뉴스에서 1조원 어쩌고 하면 머리가 아픕니다. 대체 1조원은 얼마나 많은 돈일까요. 하루에 100만원을 모으면 100만 날이 걸리는 돈이 1조입니다. 100만 날은 대체 얼마나 될까, 나눗셈을 찍어보니 2,740년쯤이더군요. 하도 실감이 나지 않아서 하루에 1,000만원을 모은다 해보았더니 그래도 274년이 걸립니다. 세상에, 사도세자가 뒤주 속에서 죽지 않고 오늘까지 살아서 모았다 해도 될까 말까 하는 돈입니다. 사람은 살아생전에 1조를 모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1조는 널려있습니다. 사람이 아니면 무엇이 모았을까요.

숫자란 정말 가장 머리 아픈 것들 중 하나입니다. 아무튼 생선알처럼 무수히 태어난 우리는 기억하는 한 뼈저리게 가난하지는 않았고, 깔깔댔고, 대나무 밭에 대 자라듯이 빼꼭하게 자랐습니다. 오빠만 해도 중학교 들어갈 때 시험을 봐서 힘들었다지만, 우린 중학교 고등학교도 편하게 들어갔지요. 물론 갑자기 대학 문턱에 이르러서야 경쟁률 덕에 혼쭐났었지만, 그건 아무것도 아닌 걸 알게 되었습니다.

남이 너네가 대입 경쟁할 때 아예 예비고사를 포기한 사람이 얼마였는지나 알아? 셋 중 두 명은 대학을 생각하지도 않았어. 꿈도 못 꾼 애들이 더 많았다고.

경쟁에 참여하지 못한 나머지 60만 동기들에 대한 부채감을 심어준 사람은 온갖 풀 이야기를 나무이야기를 들려준 그 사람이 그 사람이었습니다. 내 말을 듣지도 않고 큰 소리로 혼자서 이야기를 할 때의 진지함이라니. 선배는 아주 듣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장애였으니까 말소리가 컸지요. 머쓱해서 소리를 줄이곤 하던 선배는 그렇다고 청각장애를 심각하게 장애로 느끼지는 않았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각자 나름대로 장애를 가지고 있다고도 했어요.

내가 숨바꼭질처럼 숨어버린 뒤, 나 또한 엉뚱하게 듣고 엉뚱하게 못 듣는 일이 심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약간 익살맞은 - 익살인지 샤덴프로이데인지 - 도희는 걱정인 듯 위로인 듯 내 마음을 찔렀습니다.

언니야, 알아? 청각상실이 시각상실보다 더 불행하대. 시각상실은 사람을 사물들로부터 고립시키지만, 청각상실은 사람들로부터 고립시킨대. 헬렌 켈러 말이니 확실한 거지!

알다마다, 네가 말해준 것만도 몇 번인데. 프럼 띵스, 프럼 피플. 그런데 그건 핑계란다, 도희야. 못 보고 못 듣는 것이 핑계가 될 수도 있어.

핑계라고? 그럼 부러 못 듣고 못 본다는 거야 뭐야.

아예 못 듣고 못 본다기보다는 그냥 피할 수도 있다는 말이지.

언니는! 눈이야 감을 수 있다지만 귀를 어떻게 감냐? 사람이 사람을 왜 피해? 그걸 말이라고!

적극적인 도희다운 발상입니다. 적극적이 아니라면 누가 감히 그 시절에 국적을 뛰어 넘어 결혼에 이르렀겠어요. 도희는 한국이 아니라 세계에서 살기 때문에 우리랑은 많이 다릅니다. 어쩌다 엄마 곁에 와 퍼질러 앉아 김치찌개나 장떡을 먹어댈 때는 그냥 사람 같기도 하죠. 우리 딸, 김치 먹고잡아도 못 먹고, 말까지 넘의 말 하면서 어떻게 산다냐. 염려 마세요! 성질나거나 앓아눕기나 하면 우리말 실컷 해요, 엄마. 그래 놓고는 다음 순간 쏜살같이 아줌마 아닌 미세스로 되살아납니다. 가끔은 혼잣말을 한다는 도희, 혼잣말은 말 아니거든, 이라고 쏘아줄까 보다. 아니, 그냥 무조건 보고 싶을 때가 많습니다.

입 다물듯이 눈 감듯이 듣기도 피할 수 있다고 말은 했지만, 무슨 뜻이었는지는 나도 모르죠. 그냥 소통이 잘 안 되는 것, 그것은 그냥 내가 어느 한 중요한 문제를 넘어가지 못하고 있어서 다른 것들이 잘 안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 문제들을 잘 듣지도 보지도 못한다 그 말입니다.

 

나랑 결혼해, 괜찮겠지? 나랑 결혼하자고!

그 말에 답을 할 수 없었던 것은 그땐 잘 몰랐지만 여러 이유에서였습니다. 우선 말소리가 갑자기 작아져서 잘 못 들었을 수도 있었습니다. 평소엔 목소리가 엄청 컸던 선배가 그날따라 아주 작은 낮은 목소리였거든요. 긴가민가 내용을 이해했을 때에는 그게 너무도 갑작스러워서, 낌새도 못 챈 질문이었기 때문에 숨이 멎었지요. 어떤 면접에 나가더라도 최소한 문 밖에서부터 준비는 하잖아요. 전혀 무방비로 질문을 받은 나로서는 아무런 준비도 없이 문제의 핵심에 찔려서 비명을 지를 밖에요. 소리 없는 비명은 목에 걸렸습니다.

게다가 물리적으로는 입술 때문이었습니다. 내 입술은 무엇엔가 천근 바위 느낌에 눌려서 움직일 수가 없었습니다. 숨을 쉴 수도 없었습니다. 당연히 답을 할 수 없었지요. 그러니 입술 또한 미완으로 남았습니다. 그 입술에 답을 했던가? 아무리 생각해도 잘 모르겠습니다. 입술을 받아들였는지 응답을 했었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몇 십 년을 생각해도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 뒤로는 다른 어떤 질문도 잘 들어오지 않

는 것입니다.

 

 

남아, 이제부터 널 남이 씨라고 부를게. 환희 오빠 하지 말고 환희 씨 해 봐.

…….

울 오빠의 친구 환희 오빠가 갑작스레 나더러 나남이 씨라고 호칭을 바꾼 이래, 더 이상은 남이야 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아주 어린 시절은 아니라 해도 늘 남아 남아 그렇게 부르던 환희 오빠가 갑작스레 나남이 씨라고 호칭하는 것을 들으니 어색하기 짝이 없었지요.

남아, 이제 그만 침묵을 깨, 깨라고! - 그래도 놀랐을 것입니다.

남이 씨, 이제는 그만 침묵을 깹시다. 큰 소리로 말하고 큰 소리로 웃고 삽시다. - 이건 더욱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저 남이 씨랑 결혼하겠습니다. 많이 말하고 많이 웃게 하겠습니다, 어머님.

울 오빠가 어머니라고 했으니 망정이지, 엄마라고 했더라면 울 엄마에게 엄마라고 했을 환희 오빠가 갑자기 어머님이라 부르는 소리에 울 엄마도 놀라셨겠지요. 그렇게 환희 오빠의 나남이 씨가 되어 수십 년이 흘렀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결혼반지가 사라졌어요. 커서 헐거워졌다 싶었는데, 한번은 욕실에서 빠져서 깜짝 놀라 다시 끼었죠. 그때 다시 낄 것이 아니라 고이 모셔두었어야 하는데, 금은방에 가서 줄이거나. 그 다음 언젠가는 아예 사라졌어요. 오늘 저녁에도 잠시 또는 멍하니 길게 나를 빤히 쳐다볼 남편의 눈빛에 움찔합니다.

침묵, 침묵에서 깨어나요, 깨어나야 해요. 그렇게 말하는 눈빛을 압니다. 평생 압니다. 지금도 변함없는 눈빛, 침묵에서 깨어나요, 깨어나야 해요. 기쁨, 슬픔, 즐거움, 심지어 우울, 후회, 불안 아니면 절망이더라도 말 좀 해요. 말을 좀 하라고요.

내 귓가에 울려 퍼지는, 귓속으로 들어오지는 못하는 소리들, 소리들. 소리들은 바글바글 거품처럼 뭉쳐서 부딪거나 흩어집니다. 말 하라고? 그 청혼을 받아들이려 했었는지, 받아들이고 깨졌는지, 아예 거부했었는지, 말을 하라고? 잘 모르겠는 것을 어떻게 말하라고?

못했습니다. 평생 말하지 못했습니다. 그 첫 번째 말을 내뱉을 수 없었으므로 다른 말들도 진솔하지 못했습니다. 바람직한 말들을 고르고 바람직한 말들을 하려고 애쓰면서 살았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는 바람직한 것이 무엇인지 구별하기가 점점 어려워 졌습니다. 내 입은 바람직한 소리를 말하기 위해서 부단히 부단히 노력합니다. 힘이 듭니다. 또 내 입은 다른 입을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무심코 무심코 반응합니다. 자동적인 움직임이지만 역시 너무도 힘이 듭니다. 이렇게는 살고 싶지 않습니다. 사는 것도 아닙니다.

숨은 저절로 쉬게 됩니다. 답답하면 내쉬고 또 어느 결에 들이쉽니다. 내가 숨을 쉬는 것일까요? 아닌 듯합니다. 나 아닌 다른 자동 기계가 내쉬고 들이쉬는 숨, 그것 하고 싶지 않습니다. 숨을 내쉬지 않으렵니다. 가슴이 터질 듯합니다. 숨이 터져 나오려 합니다. 입이 벌어지고…… 다음 순간 물이 밀려들어옵니다. 웬 수영장에 와 있을까요. 필사적으로 물을 들이키지 않기로 합니다. 멈춥니다. 멈추……

 

 

숨을 안 쉬려고 해요? 날숨은 나오는데 들숨을 거부해요? 반댄가? 이런 균형이 깨지는 일은 난생. 어쩌다 이런 상태가…….

숨 쉬죠. 당연히 쉬어지지요. 다만 이 사람이 자기는 숨을 안 쉰다고 믿는 겁니다. 많이 아픕니다. 오래 아프고 있었는데, 얼마 전 결혼반지를 잃어버리고는 더 나빠졌어요. 마르더니, 손가락이 얼마나 말랐는지 그만 반지가 빠져버렸겠지요. 버리고 그럴 사람은 절대로 아니지요. 근데, 어느 날 멍 하니 있더라고요. 나를 보더니 손을 슬그머니 감추는 거예요. 빈 손가락을 손을 계속 감추려니 더는 아무 것도 못하죠. 아픈 마음을 어쩝니까.

그러게요, 뭔가 균형이 깨지면 그게. 그나 유 원장이 힘들어서 어쩐답니까.

아아뇨, 제 인생인 걸요.

하얀 가운의 두 의사가 마주보고 서서 한숨을 쉰다. 다른 한 사람은 나가고 유 원장만 남는다. 닫힌 창문너머로 반쯤 감은 눈길을 보내는 아내의 눈을 들여다본다.

어쩌면 비자발적 패배였을지도 몰라. 신부로서, 마치 신입사원들처럼 뭔가 잘못해서 질책을 당할까 하는. 어려서도 씩씩한 데는 없었거든. 하지만 신부의 침대가 프로크라테스의 침대가 아닐진대 왜 그리 겁을 먹었을까. 어떻게 더 안심을 주나. 왜 한 발짝도 다가오지 않고 뒤로 뒤로만 물러설까. 밖으로 나오는 건 시늉뿐이었어. 오히려 자발적? 설마 자발적 패배?

 

창문을 가려 놓은 입원실 밖에는 아직 따뜻한 햇살이 낙엽을 싣고 살랑거리고 있다. 두툼한 은목서 잎들도 말라 떨어질 때는 가벼운 모양이다. 이름이 무슨 소용, 금목서일지도 모른다. 모양을 다듬는다고 사람들이 톱질을 해대지만 않는다면 나무들은 더 오래 서 있을 것이다, 살아서. 톱질에 수관들이 잘려나갈 때, 뿌리들도 함께 오므라드는 것을 사람들은 모른다. 그래도 빛을 좋아하는 벚나무를 하필 잎 넓고 키 큰 너도밤나무 밑에 심지는 않는다. 하기야 너도밤나무는 병원의 뜰이 아닌, 책 속에나 있다.

마른 잎들은 제 위에 앉아서 사랑의 알들을 낳고 새끼들을 키워 날아간 새들을 기억하고 있을까. 너무도 흔하고 너무도 시끄러운 직박구리 같은 새들을 기억하는 나뭇잎은 없을지도 모른다. 하물며 너무도 시끄러운 새들 소리에 섞인 짧은 청혼의 말을 기억하는 잎들은 결코 없을 것이다. 행여 기억한대도, 떨어진 잎들이 밟히고 으스러져 먼지가 되면 기억들도 먼지가 되어 흩어질 것이다. 아마도, 아니 어김없이, 남는 것은 없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

 

2020 6.1. <한국소설> 251호. 한국소설가협회, 54-7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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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서용좌
소설2020. 6. 21. 00:07

 

                                                           모순

 

모순, 당신 참, 순수한 모순일까, 라고 말하는 그의 눈을 피할 수밖에 없었다. 그날도 비릿한 미소로 얼버무렸다. 말을 하자면 길어질 테니까. 말이 아닌 눈빛에 말로 대답을 할 수도 없으니까. 우선 모순에 쓴 순수하다는 덧말은 오류이니까. 내가 알기로는, 예컨대 순수한 물이라고 할 때 쓰는 것이 순수함이다. 그러니까 순수한 모순이라고 했을 때 순수는 모순을 설명하는 말이 아니라, 나더러, 아내더러, 순수한 것 같다가도 모순적인 사람이란 뜻으로, 둘 다로, 어쩌면 비난으로 들어야 한다. 아니, 말로 하지는 않았으므로 그리 읽어야 하리라.

그런 생각들도 일상을 크게 방해하지는 않는다. 모르는 것이 새삼스레 그것뿐일까. 저녁이 깊어지면 밤이 오고, 밤이 깊어지면 잠을 청한다. 잠을 청하다 보면 잠이 들게 된다. 잠은 좋은 것.

그렇게 또 날이 밝는다. 아침에는 아침을 먹고, 나갈 사람은 나가고 그냥 있을 사람은 그냥 있다. 바깥 하늘은 맑을까. 물론 흐릴 수도 있다. 밝거나 흐리거나 관심이 없으니 바깥을 내다보지 않아도 된다. 창밖을 내다보지 않고, 또 다른 작은 창들을, 텔레비전과 스마트폰을 켜지 않으면 세상이 조용하다. 오늘도 세상은 조용하다.

 

모순적이 아닌 인간 - 그런 존재가 가당키나 한가. 무모순적 명제 자체가 없다, 사는 일에서는.

말 한번 거창하게 하시네.

삶에서 크기를 말하는 것도 그래.

이게 크기 이야기야?

그러게, 크기가 아니지. 네가 그 쪽으로 갔지, 거창하다니 뭐니…….

아무도 없다. 내가 말하고 오른쪽 귀로 듣고, 내가 말하고 왼쪽 귀로 듣는다. 어차피 한 입으로 말하니까 너는 너다.

이런 나를 가리켜 모순적이라는 말을 그이가 하고 싶었을까? 한 사람이 다른 두 생각을 하는 일이 이상하단 말인가? 한 사람이 평생 일관적일 수는 없지. 아니, 평생 그렇기는 어렵겠지만 한 순간에 이리저리 흩어지는 것이 문제지. 그렇다고 내가 모순적인 사람은 아니다. 그렇게 생각한다. 나는 모순적인 사람이 아니다 - 이 말은 참인가? ‘무모순적인 사람임’이 증명되기 위해서는 ‘모순적인 사람임’이 부정되어야 한다. 어떻게? 수학이라면 귀류법이라도 들이대지.

귀류법? 그런 단어는 어떻게?

그거야 어렵고 모호한 단어들이 오래 남아서지.

매사에 서툰 자가 서툴음을 인지 못하고, 미친 자가 미쳤음을 인지 못하고…….

그런가? 내가 모순적임을 모르므로 모순적이다, 그 말인가? 알면 모순적이지 않다는 말인가? 너는 네가 모순적임을 아는 거야, 모르는 거야?

 

톡! 작은 창이 부른다. 정말 작은데 실은 한없이 넓은 창이다.

뭐지? 손바닥 창을 열까, 말까. 열면 바깥이고, 오늘 해를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되면 하고 있던 생각은 끊길 것이다. 무슨 생각이었더라? 이미 끊겼다. 문은 벌써 열렸다.

친구들, 잊지 않았슴? 10시 반 역 2층 집합! 매표소 근처.

아차, 나는 시커먼 텔레비전 앞에 앉아있고, 폰은 내 옆에 누워 있다가 나를 불렀다. 고맙다, 톡아. 너 아니었다면 멍하니 그렇게 오늘 나들이를 놓칠 뻔했겠지. 시계를 본다. 서둘러야겠네.

 

 

모순 어쩌고 하던 그날 밤 남편의 걱정을 덜려고 말했던 찔레꽃집 나들이는 자꾸 미루어졌다. 찔레꽃이 다 진다고 어서 다녀가라는 채근을 듣고서야 날이 잡혔다. 오늘이다. 나이가 들면 차츰 삶의 무게가 가벼워질 거라 기대했지만 그건 아닌가 보다. 모두들 이런저런 일들에 발목을 잡힌다. 처음 약속했던 날엔 바람잡이 정인이가 딸애한테 가 있었다. 애는 아니다. 제가 아이를 낳는 자식들을 그 어미는 애라고 한다. 또 딸이라고…… 낳기 전까지는 투덜거리더니, 갓난이를 보고와선 완전 날고뛰고 좋아했다. 다음엔 성주 남편이 컨디션이 나빠져 기다려주기로 했다. 그러는 사이 내가 어머니한테 며칠 다녔다. 어머니들은 아무 때나 넘어진다. 화장실에서 살짝 미끄러진 것만으로도 팔목이 골절되셨다. 임시 깁스를 했고 며칠 뒤 제대로 깁스를 하자 불평이 수그러들었다. 고관절이 아니라서 천만다행이라고들 했다. 고관절이 왜? 듣고 보니 고관절 수술을 하면 자리 잡고 눕게 되고 그 길로 일어나지 못할 확률이 높다고 한다. 그렇구나. 누구에게나 알 수 없는 가벼운 사고며 병들이 빈발한다. 갑자기, 섬뜩하게 큰일도 날 수 있겠지.

얼마 전엔 또래 선배가 동맥류로 떠난 놀라운 일도 있었다. 병명도 생경했고, 서울에 거뜬하게 애들 보고 왔다는 사람이 며칠 새 저 다른 나라에 가 있다니 그저 놀라웠다. 갑자기 미스터리 소설을 쓴다, 자연사일까? 남편이 의사이면 극과 극이다. 애처가라서 처와 처가가 호강하거나, 여차하면 사팔뜨기라서 속을 태우며 산다. 지구상의 능력남들은 더러 무서운 능력도 함께 갖추어서……. 도파민인지 뭔지가 분비되는 몇 년이 지나면 예뻤었던 아내를 치울 궁리를 한다는데, 눈빛을 잘 보고, 아니면 재빨리 괜찮은 조건에 도장을 찍어야 한단다. 너절하게 퇴출당하기 전에! 영화를 너무 보았나? 하지만 영화가 하늘에서 떨어진 이야기들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니까.

 

시계를 보니 친구들과의 약속 시간에 대려면 더는 미적거릴 시간이 없다. 설거지 겨우 끝내놓고 멍하니 앉아있던 참이었다. 점심나들이에 따로 준비랄 것도 없지만, 기차 시간이란 엄중한 것이니까 대충 입고 가방을 챙긴다. 모기 기피제랑 계관은 필수지. 아차, 손수건과 칫솔……. 그러고서 나선다.

어? 친구들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설마 오늘이 아닌 거야? 180°를 돌아다 봐도 아무도 없다. 반대쪽으로 돌아도 없다. 늦지 않고 빠른 게 다행이다. 발은 커피숍으로 향한다. 급히 나오느라 커피를 담아오는 걸 잊었더니 그 향에 끌렸나 보다.

톡! 매표소 올라가지 말고 그냥 아래 있어! 기사님 뜬다.

기차로 가자더니 예정이 바뀐 모양이다. 일회용 용기에 받아왔다고 미선이 또 혼내겠지. 그래도 넉 잔을 조심히 들고 역 마당으로 내려오니 성주가 보였다.

짝꿍 괜찮아?

응, 그런 대로. 이제 출근하는데 뭐. 어머니는 어떠셔?

계속 아프다시지, 애기처럼. 마침 왼쪽 손목이라 그런대로. 다음에 나타난 건 차를 가져온 미선이었다. 5시 기차로 돌아옴 내가 넘 늦겠어서, 니들 좀 빨리 와도 괜찮지? 근데 정인이 가시나는. 차보단 먼저 와서 기다려 줘야……. 말을 하다말고 미선인 다시 차에 올랐다. 깜박이만으로 정차 할 수 없는 곳인가 보다. 순간 저쪽에서 정인이 보인다.

뛰어, 뛰어 와! 성주가 두 손을 높이 들어 불러도 정인은 느긋하게 걷는다. 정인을 기다렸다가 밀어넣은 다음에 성주가 올라타자마자 차가 출발한다.

야, 너 차를 길에서 기다리게 할래!

꼭 해야 할 말을 꼭 해야 할 시간에 내뱉는다. 정작 운전수가 아니라 조수석의 성주다.

미안혀요, 떡이 안 오잖어유. 시골에 가면서 빈손으로 가남유. 언니도 떡 좋아하고. 정인은 아예 느실거린다.

무슨 언니? 친구라 안 그랬어?

나이가 좀 있어, 친구하기는 해도.

너스레를 떠는 정인의 보따리가 그러고 보니 두 개나 된다. 무거워서 못 뛰었구나.

 

찔레꽃 향기는 정말 대단했다. 골목길이자 큰 길로 나가는 좁은 길 쪽으로 담장 전체가 찔레꽃으로 덮인 집인데, 일상의 집은 아니었다. 버려진 도자기 공방이라나. 꽤 넓은 잔디밭 어디에도 도자기의 흔적은 별로 없었다. 공방으로 썼다는 동굴 같은 초막에 들어서서야 주인장이 제작했거나 수집했을 소박한, 크기에서 소박한 그릇들이 엉성하게 진열되어 있었다. 진열이라고도 할 수 없으리만치 그냥 자연스럽게 널려 있었다고 하는 것이 맞는 표현일 터.

정인아, 막상 어려운 친구들이랑 오면 내가 좀 부끄러운데 어쩌나. 어쩌나요.

별말씀을. 우리 안 어려운 애들이에요. 정인이가 가끔 이야기할 때면 우리 모두 한번 와보고 싶었던 곳이죠.

찔레 향이 정말 대단하군요.

어떻게 이렇게 가꾸세요?

한 마디씩 감탄에 주인장은 겨우 대답할 틈을 찾는다.

가꾸다니요. 그냥 내버려 두죠. 잔디밭인지 풀밭인지 그냥 파란 대로 살라고 내버려 두네요. 염색물 떨어져도 편하라고.

어머, 염색도 하셔요?

도자기는 몇 년째 방학이지요. 염색도 어쩌다가, 그저 취미 정도죠.

그럼 농사를?

농사라뇨. 뭘 할 수 있겠어요. 시골서 태어난 것도 아닌데다가 뒤늦게 시골 내려와서 뭘 할 줄 아는 게 없죠. 여기 오이, 고추, 미니토마토, 이런 것 한두 개 따먹는 것이 전부인걸요.

그래도 시골인데.

저 아래 논 조금, 중간에 누가 자꾸 사래서요. 저 아랫집 텃밭, 텃밭에 뭐가 있더라. 가지랑 뭐 좀 있죠. 언덕에 호박 몇 구덩이. 감나무, 매실나무들. 그냥 저절로 있는 것들이나.

한 십년 넘은 것 아녀요? 언니, 처음 우리 발라드반들 여기 불렀을 때는 내 기억으로는 언니 의욕이 넘쳐 보였더랬는데. 정인이 보조설명자로 나선다. 저 아랫집 살 때만 해도 조금 손질해서 북카페 그런 것도 가능하댔잖아요.

아, 내가 그런 게 아니라, 팔고 나가는 사람이 꼭 팔고 나가야 하니까 동네사람들이 내게 희망적으로 권하는 말들이었죠. 어떻게든 타지 사람이 또 사들어 오는 것 보담 이왕 발붙인 우리가…….

그럼 여기 이 마을이 배타적인가요?

아아뇨. 그렇진 않아요. 도공들 마을이었으니 자존감 내세울 처지도 아니고. 중간에 문화재다 뭐다 인정받기도 하고, 정통 뭐 그런 것에 대한 우대적인 분위기도 옛날보다야 낫다지만.

암튼 공기가 엄청 다르네요.

정말 살 것 같아.

이 엄살, 어디선 죽을 것 같았냐.

이상한 해방감에 우린 그냥 맘대로 소리 나는 대로 지껄였다.

논밥들 알아요? 우리 오늘 논밥 먹을 거예요.

주인의 말도 신기하기만 하다.

논밥요? 누가 논밥을 내오나요? 왠지 솔깃해서 내가 물었다.

내오다니, 배달이겠지, 배달의 민족! 미선인 늘 정확하고 빠르다.

맞아요. 여기 논일이고 밭일 하면서 식당에 핸폰으로 전화하면 점심 배달 다 된답니다. 놉 얻어서 일하더라도 밥은 절대 안 해주요. 기대도 않고요!

놉? 놉이라뇨?

장소가 바뀌니 단어들이 생경하다.

놉이라는 말, 그게 어째 노비처럼 들리네요.

맞아. 놉이라는 말은 노비라는 말이 반절음화해서 생긴 것이지. 하지만 노비와는 다르지, 시대가 다르니까. 날품, 일꾼, 삯꾼, 품꾼, 품팔이, 여러 말들 모두 하루하루 품삯과 음식을 받고 일을 하는 건 마찬가지야. 요즘 시골에서는 일손이 귀하다보니 놉이 오히려 갑일 수도 있을 걸.

미선 씬 시골 일을 잘도 아네요. 그래서 놉이 아니라 주인네가 죽었나 싶네요. 놉 때문은 아니었지만.

누가 죽어요? 부러 죽었다고요? 정인이 울상이다. 언니, 지난 번 말씀으로는 시골 살기가 괜찮다 하셨잖아요.

괜찮지, 전반적으로는.

전반적으로는?

기본적으로 지원금이 나오죠, 이 동네는 집들이 있어도 전원 다 해당되죠.

언니만 빼고요?

에이. 뭔 그런 소릴. 저쪽 마을회관에요, 거기 가면 한더위에도 완전 시원하죠. 밤 열시까지 에어컨 빵빵, 아예 썰렁하게 틀고 살죠. 오전엔 열한 시나 되면 반찬이 와요,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 그럼 진작에 와 있던 쌀로 밥을 짓는 거예요, 나라미라 해도 매일 새 밥을 지어먹는 거예요.

나라미? 정부미 말인가요?

예, 나라미. 한글로 나라 다음에 한자로 쌀미자가 쓰여 있어요. 나라 쌀로 거저먹는데, 공짜에다 해주는 밥을 먹으니 나름 호사죠. 그 중 젤 젊은이가 밥을 짓는데, 물론 수당을 받고 하죠. 이리저리 꽤들 받아요. 누군가 가끔 파스다 뭐다 이런저런 약들도 가져다주고, 또 집으로 노인돌보미 나오죠, 어떤 집엔 목욕도우미도 와요. 이발비까지 나오니 살만한 거죠. 어떤 자녀가 그런 효도를 하냐고요.

주인언니는 우리보다 한참 위라고 들었는데, 말투가 전혀 노인 편이 아니다.

그렇다고 노인들 세상은 아니죠. 여전히 인간적 존엄성 유지가 안 되잖아요. 난 어쩐지 노인 편으로 말한다.

존엄성이 뭔데요. 월급처럼 수당을 주어 자식들 눈치 덜 보게 해주는데요. 농지만 있으면 건보료 그런 것들도 다 감면 혜택을 주죠. 결과적으로 땅 뙈기 가진 노인들이 더 혜택이라니까요.

농지가 있으면 외려 감면된다고요?

그래요. 믿거나 말거나 그렇다니까요. 집도 연금도 수준이 넘어서 상당한 건보료를 내야한다, 그럴 때 농지를 소유해서 농사짓는 농부로 등록되면 감면에 해당되는 거죠.

뭐가 뭔지.

아무튼 농지 소유자가 우대?

여러 가지예요. 장애인 처우도 대단해요. 저 위에 어려서부터 약간 다리를 저는 아줌마가 살아요. 얼핏 보면 모를 정도로 살짝. 한데 무슨 차량이, 복지관 차량이겠죠, 일단 데리러 와서 맨날 나들이죠. 한번은, 언니, 나 볼링 갔다 오네, 그러죠. 한번은 수영 다녀온대요. 세상에 승마도 다녀온다니, 그게 장애인이 할 만한 운동인가 말예요. 한번은, 언니 나 요것 좀 사주쇼, 그러는 거예요. 무슨 복지 상품권인데, 다 사용하기가 많으니 나더러 현금화해 달라는 거죠. 모르긴 몰라도 좀 과한, 좀 치우친 지원인가 싶기도 하고.

수중 운동이다 특수체육이다 그런 걸 하게 돼서 기본적으로는 복지가 향상…….

미선이 끼어들다 말꼬리를 내린다.

 

아름다운 찔레꽃 마을에 오면 찔레꽃에 푹 빠져서 꽃가루 범벅이 된 호박벌 이야기라도 들을 심산이었다가, 무언가 평등 같은 불평등을 체감하는 이야기를 듣게 될 줄이야. 우리 모두는 조용했다.

일을 하지 않는 사람들은 이래저래 도움을 받고, 죽어라 일하는 한창 아저씨들이 죽어나가는 거라서.

우리가 머쓱해 하자 잠시 말을 끊었던 주인네가 계속했다.

놀고먹는 사람들은 느는데, 일손은 모자란다고 하고. 일당도 그게 적은 건지 많은 건지 알다가도 몰라요.

무슨 말이세요?

일을 가는 입장에서야 말이 하루 8시간 8만원이라 그러고들 가죠. 하지만 새벽부터 해 넘어 가야 일어서니 시간 초과는 기본. 그런 일도 날마다도 아니니까, 그러니까 일당이 많은 게 아니죠. 허나 일을 주는 입장에서는 사람 하나 쓰기가 무섭다고 그러더라고요. 하루 양파작업 하면 산지 값으로는 양파 열 포대 스무 포대 값을 한 사람 노임으로 주는 것이니까, 열 사람 쓰면 100포대 200포대 값이 그 자리에서 나간대요. 올해도 양파 풍년이라 여기선 다들 죽을상이더라고요. 그런 노임 다 주고 출하를 해도 양파값은 바닥이니까.

모순이네요, 모순. 풍년에 죽을상이라니. 양파 따는 사람 좋으면 양파 주인 망하고…….

무슨 모순씩이나! 게다가 누가 양파를 딴다냐, 캐지!

모처럼 끼다가 다시 핀잔소리를 듣는다. 성주는 말 틀리는 꼴은 못 참는다.

다 알아듣고서 왜 그래, 정확한 단어가 입술에 걸려 머뭇거리기도 하지, 우리 나이에.

얘 또 나이 타령이네, 남아, 제발 조옴!

내 말은 보편성이 그리 없는지, 친구들 사이에서 좀 뒤떨어지는 느낌을 받게 된다. 대놓고 형광등 취급이다.

 

넌 그래 여태 그걸 몰랐어?

알았다니까. 지금 알면 어때서! 그래 나 형광등이다.

얘 좀 봐, 자신을 좀 아시네. 헌데 실은 고장난 형광등이다.

그러기 십상이었다. 언제나 별 일도 아니었다. 다만 다들 아는 이야기를 몰랐다는 것인데, 좀 억울했다. 예컨대, 미남 사회 선생님이 미녀 음악 선생님하고 그렇고 그렇게 비밀연애중이라거나, 좀 자라서는 우리 반에서 제일 얌전한 차옥순이 벌써 대학 다니던 중 살림을 차렸었다는 등, 그게 무슨 대단한 일이어서 내가 꼭 알아야 하는가 말이다. 어떤 이야기는 알려고 해도 알 수 없기도 했다. 아무개가 약(?)을 먹었고 죽진 않았고 그래서 입원 중인데, 온갖 이유들이 너풀거렸을 때다. 열아홉 나이에 어떻게 정답을 아는가 말이다. 나중에, 훨씬 나중에, 우리들 마흔 아홉에 그 앤 정말로 떠났다. 비행소녀처럼 날라리처럼 옥상에서 아래로 순간에 죽었다. 누가 그 이유를 아는가. 모르면 형광등인가. 고장난 형광등.

 

멀쩡한 양파밭을 갈아엎는데……. 주인이 얼른 화제를 챈다.

왜 멀쩡한 걸 엎어요, 좀 잘 못 된 걸로 갈아엎는 것 아녜요?

그게, 아주 잘 된 상품이라야 보상금이 나와요. 안 좋은 건 갈아엎어도 소용없고요. 그러게 양파가 폭락이었으니, 이제 고추라도 잘 되어야 할 텐데.

고추가 왜요?

여기 사람들 양파 해내고 고추들 따는데요. 그게, 작년에도 양파 완전 망치고 나서 고추농사나 기대했다가 것도 안 되니까 그 사단이 난 거예요.

사단이?

탄저병 알죠, 타들어가는 병. 거기다가 컬러병이라나 노란 반점들이 생기고 그랬다네요. 양파에 고추에 둘 다를 망친 어떤 집에서 그만, 그만 세상을 떴죠.

어머나, 그렇게까지. 정인인 곧 죽는 소리다.

분통이 터지면 그럴 수도 있나보죠. 의욕이 완전 바닥이 났을 수도 있고.

맞아요, 주인네가 계속한다. 그런데 사람 목숨 모기 목숨이에요. 탁 하고 때려잡은 모기 잊어버리듯, 죽은 사람 금방 잊어요. 완전 잊죠. 바로 그러고 나서 벼농사 목돈 나왔으니까 덩실덩실이죠. 그때 태풍 차바던가, 암튼 벼들이 다 쓰러져 누어버렸잖아요. 그럼 관에서 나와서 피해 정도를 조사해 가죠. 몇 퍼센트 어쩌고, 다 죽었다고 적어가죠. 그런데 실은 다시 일어나는 벼들도 있어요. 꺾이지는 않고 살짝 눕는 경우죠. 그럼 수확이 외려 약간 느는데, 관에선 조사해간대로 보상금이 나와요. 그러니 복불복이죠.

그렇구나. 얘들아, 복중에서 최고의 복은 뭘까, 전화위복이래. 금세 기분이 좋아진 정인의 말에…….

 

글렀네.

뭐가, 나남이, 뭐가 글렀냐고? 전화위복이라니까 글렀다니!

아차, 또 들켰다. 나는 여기 들판을 본 처음 순간에, 만일 다음 생이 가능하다면, 내 죽은 양분이 모여서 다시 사람으로 태어나는 일이 행여 가능하다면, 땅 넉넉한 곳의 농부로 태어나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남자로 여자로? 그건 상관없겠다. 남자 여자 차이가 무슨 대수라고. 다만 지금 생에서보다 튼튼한 몸과 맘으로 태어나서, 투박하고 든든한 집을 지어, 지금처럼 단 둘이서가 아니라 아이들을 여럿 낳아 왕창왕창 떠들썩하게 함께 살며, 무심해 보이는 땅과 대화하면서, 뭔가 씨를 심어 넣고 자라는 것을 바라보다가, 다 자란 놈들을 먹기도 하고 내어다 팔아서 다른 소용되는 물건들을 사기도 하고. 운전면허시험에도 합격하고, 튼튼한 차 하나 있음 가끔은 아이들이랑 어쩌면 읍내 문방구에도 서점에도 가고……. 그런 생각을 하다가 들킨 것이다.

아니, 나는.

너는 뭐? 시골 살 생각을 하려다가 글렀다 이 말이지? 성주는 뭐 넘어가 주는 법이 없다. 제 남편도 칼칼한 아내가 성가셔서 자주 아픈가.

남이가 어떻게 시골 살아. 얘는 벌레라면 질겁하는 걸 몰라. 파리모기도 호들갑인데. 쟤 지금 가방 속에 모기약 잔뜩 있을 걸. 더구나 흙속에 숨어 있다가 꿈틀거리며 나타나는 것들이라면. 얘가 어떻게 시골에서 사냐고! 정인은 모르는 것도 두둔해주는 애다.

누가 시골 산댔냐. 나는 그저.

그저 뭐냐니까.

그저, 땅이란 것도 온난화다 자연재해로 힘들 거다, 뭐. 엉망으로 작물이 안 되고, 또는 트렌드에 밀려 외면당하고. 시골도 이상향은 아니구나, 그런 정도.

그래, 남이 그냥 내버려 두자. 시골에 살고픈데 살고 싶지 않다. 이 애 모순인 것 한 두 번이냐.

누가 모……, 미선에게 대꾸하기도 전에 말은 끊긴다.

시끄럿! 그리고, 이상향이 어딨다고! 너흰 어디 이상향을 알아? 유토피아란 말의 뜻이 어디에도 없는 곳이니까, 이론상으로도 없는 거라고! 없으니까 이상향!

왜 그래, 미선아. 무섭게. 누구라도 가고 싶은 곳, 가서 살고 싶은 곳, 그런 건 있잖아. 성주도 놀랐는지 이번엔 구겨진 나를 돕는다.

그래, 그것까진 아니라 해도 가보고 싶은 곳들은 있지. 왜 버킷리스트라고. 우리 나이쯤이면 그런 것 있잖아. 언니, 안 그래요? 슬쩍 주인을 쳐다보는 정인이는 말도 동글다.

그러게. 다들 어디로 떠나고 싶어하는 건 아닐 거예요. 난 이곳이 이상향은 아니지만 이곳으로 만족하는 편이예요. 사람들 가끔 오고, 것도 나쁘지 않죠, 외톨이란 느낌을 없애주니까. 시골 사람들, 이제 정 들고, 음식에도 따라가고. 건 그렇고, 밥 오기 전에 …….

 

주인은 저쪽 부엌에 가더니 냄비를 들고 나왔다. 처음 내어 놓은 옥수수 쟁반에 이어서 두 번째다.

바지락 먹어볼래요?

바지락이요? 요즘 먹을 생각을 안 했는데요.

가까이 싱싱한 수산시장이 있어요, 버스터미널 근처요.

어머나, 알들 굵다.

국물 엄청 시원하네요.

돌아돌아 도시로 나간 놈들보다는 싱싱하겠죠. 그런데 누구 바지락 알러지는 없겠지요?

설마요.

은근히 음식 알러지들 많더라고요. 여기 가끔 오는 지인 중에 낙지 알러지 있는 사람 봤어요, 목포 살면서.

무안 사람 아니어서 다행이네요.

그게 아나필락시스라고, 알레르기 질환이지만 중증이죠. 원인 물질에 노출되면, 먹거나 뭐 그렇게, 벌에 쏘여서도 그렇지, 그럼 심각한 전신 증상이 나타나는 거예요. 은근히 땅콩 같은 식물에도 큰일 나는 사람들이 있어요. 심하면 혈압이 떨어지고, 호흡곤란, 숨이 막히죠.

봤어?

아니, 쓰여 있어.

얘 미선인 우리 도서관입니다, 언니. 정인이가 또 너스레다.

사람 무안하게시리. 미선인 웃고 만다.

아나필락시스 뭐? 음식물 알레르기 종류이겠지, 좀 심한. 복숭아 만지지도 못하는 애들 많았잖아. 우유 못 먹는 애들도.

다르지, 우유 알레르기라 해도 두드러기나 피부염 정도이지만 아나필락시스는 쇼크까지 오는 경우라니까. 다시 미선이다.

우유 참 희한 해. 우유로만 크는 아이들이 대부분인데.

그래도 우유 못 먹는 사람들 은근 많다. 소화를 못 시켜 종일 더부룩하거나 배 아프고…….

그건 또 좀 다르지. 그건 유당불내증이라고 장내에 유당분해효소가 부족해서 그러는 것이고.

미선인 아는 것도 많다. 공부를 하는 사람은 어느 분야에서도 탁월해지는가 보다. 아마 공부가 재미있어서 이것저것 다 공부하는 것일 테다. 난 뭐가 재미있을까.

 

내 나이, 나이 탓하며 멈춰 있는 건 나이 탓하기 딱 좋은 나이라서 일까. 58년생들은 아직 법적으로 노인은 아니다. 더하기 65를 하면 2023년이 되어야 노인이다. 노인에 대한 인상은 대부분 부정적이다. 아리스토텔레스라던가, 그런 옛날 옛날에도 그랬다. 노령자는 지나치게 비관적이고 불신이 강하고 악의적이며 의심이 많고 편협하다, 그랬다던가. 어느 시대 어느 나라이고 노인은 노인이다. 너는 거의 노인이다.

우린 거의 노인이야.

남아, 갑자기 노인은? 그리고 거의 노인이 뭔데?

그게, 우리가 거의 노인이 되어있다는 말.

재미있네. 노인이면 노인이고, 아니면 아니지, 무슨 거의 노인?

그, 그게 말이야, 임신은 거의 임신 조금 임신 그런 말이 안 맞지만, 노인은 조금 노인 거의 노인 그런 말 되는 것 아냐?

그래서? 남이 너 거의 노인 하겠다고? 난 안 할래.

하련다고 하고 뭐 그런가…….

시끄러. 바지락 국물이나 좀 마시자.

 

바지락 국물 - 별로다. 싫다. 음식들 중 싫은 음식이 많다거나, 무엇에서도 재미를 느낄 수 없다는 말은 하지 못한다. 친구들은 차마 비정상이란 말은 하지 않지만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 것이다. 타고난 음식불감증, 재미불감증, 그런 것도 있을까.

아차, 불감증이란 단어는 금기어인 것을. 왜 불감증이란 단어가 금기일까. 단어 그 자체로는 감각이 둔하거나 익숙해져서 별다른 느낌을 갖지 못하는 일에 불과한데. 예컨대 도덕적 해이 비슷한 말로, 도덕적 불감증이 문제다, 뭐 그런 데에도 사용한다. 그러니까 재미불감증이란 말을 좀 쓰면 어때서. 말 하자!

 

미선아, 우유 소화 못하거나, 재미 소화 못하거나 뭐가 달라? 난 재미를 소화하지 못한다, 그 정도. 소화불량증이라 그럴까 보다.

나남이 히트다, 오늘. 유당불내증은 아니고 재미불내증이시다고?

재미있는 말이네. 재미있는 것을 몰라?

이 정도가 무슨 재민데. 재미없어, 하나도. 재미불감증이라지 뭐. 내가 고집했다.

그렇구나, 나남이. 나남이는 오늘 재미가 없으시단다.

아니, 그런 단어들 재미없다고!

그래도 오늘 여기 나들이가 재미없지는 않다고! 그렇게 정리하자고! 정인이는 무엇이든 동글게 끝내려 한다.

미안해도.

이 얘 말꼬리 좀 봐, 기어코 재밌다 그러지는 않으시네.

친구들 참 재밌다. 참 재미있게들 사네요. 자주 와요, 여기. 난 오랜만에 이렇게 편하게 떠들고 하는 것 보면서 신나는데요. 주인 언니가 거든다.

우리, 좋아 보이죠?

그럼, 그러믄요.

 

 

좋아 보이는 얼굴들을 하고서 하루가 간다. 툭 터진 정자에서 시골 옥수수도 먹고, 싱싱한 바지락에다 논밥을 먹으면서 담소한다. 그렇게 좋아 보이는 얼굴들로 헤어진다. 좋아 보인다는 것이 꼭 좋다는 말이 아닌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다. 더 좋아 보이는 얼굴의 미선이 늦을 새라 서둔다. 모태싱글로 똑 부러지게 잘 헤쳐 나가는 미선이 보기 좋다. 보기에 좋다. 속으로는 어떤지 아무도 모른다. 표리부동이 꼭 나쁜 말도 아니다. 속마음 다 내비치고 살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살자면 그 나름대로 표리부동일밖에. 그러니까 엉큼한 표리부동은 경계해야겠지만.

 

오늘은 무슨 행사냐? 토론이야, 강연이야?

차에 오르자마자 정인이 캐물어도 미선은 대꾸가 없다. 전문적인 일에 관한한 우리들하고 별반 나누지 않는다. 답답하리라.

내가 화제를 바꾸었다. 난 외려 자꾸 뒤가 켕긴다. 양파 값, 일 값, 시소처럼 오르고 내리고 연결되어 있잖아. 양파 값이 내려도 임금은 올라야 하고, 임금 오를수록 양파 주인은 내려가고…….

미선이 곧장 들어온다. 최저임금 올라가면 영세 고용주를 죽이고, 고용주 살리려면 최저임금 못 올리고. 정책 입안자들의 기본 고민이지. 모순이기도 하고. 도처에 이해 충돌이지!

시소가 바닥을 친들, 그래도 땅속으로까지 들어가는 건 심했어. 뭔가 잘 못이야. 왜 죽어! 일 년 내 농사 지어놓고! 성주가 잽을 넣는다.

잘못인 것 한둘이냐! 어찌 보면 사는 게 다 잘못이지.

남아, 뭔 말을 그렇게 해. 켕긴다며. 그런데 죽은 게 잘 한 거야? 사는 것이 왜 잘 못! 볼에 부드러운 바람 느끼면서 한낮 살았으면 좋은 날 아니냐고! 정인이 속상해 한다.

이게 무슨 좋은 날이야, 그저 그런 날이지. 있어도 없어도 되는 숱한 날들 중 하루.

그렇다고 오늘을 버리냐, 예까지 자알 살고서.

잘 살지 않았다니까, 그냥 살았지. 나도 버틴다.

그렇다고 버리냐고! 오늘을 버리면 어제에서 내일로 어떻게 건너 뛰냐. 내일로 안 갈 거냐고?

내가 안 간다고 내일이 안 오는 것도 아니고, 있으나 마나 한 날들, 있어도 없어도 그만인 시간들이 허무해서 하는 말이지. 쓸모없는 생은 이른 죽음이라고 했어.

누가? 명언이야?

앗, 괴테의 이피게니다! 나남이, 그건 좀 다르지. 미선은 정말 박사다.

뭐가 달라. 아무짝에도 쓸모없이 숨만 쉬고 있으면, 이미 죽음이 와 있는 거라고. 죽은 거라고. 형용사 빼고 말하면, 생은 죽음이다.

누가 이애 좀 말려라. 또 시작이다. 말 수 적고 얌전하던 애가 이상한 말 터뜨리는 것 가끔 심하더라. 이것도 모순이냐?

너까지 왜 이래. 모순 소린 자꾸 듣다보니 어째 거슬린다. 찔레꽃 향기 듬뿍 묻혀 가면서 웬 철학들이냐고.

힘들어서 그래. 넌 괜찮아? 하루하루가 괜찮아?

어때서?

미선아, 분위기 좀 바꾸자, 음악 큐! 경쾌한 하루를 마치고 귀가하는 우리들……

 

음악 소리가 들려오자 감긴 눈 안쪽에서 정인이 모습이 솟는다. 신발 소리가 사뿐하다. 앞뒤가 함께 닿는 발걸음은 맨발인 듯 가볍다.

박자 말고 선율을! 선율을 타라고요! 예, 그렇게. 아니, 고개는 들고요. 배를 등 쪽으로 민다고 고개를 내밀진 마시라고요! 앞가슴 활짝, 화알짝 펴서 쇄골까지 당기도록! 에이, 뒷가슴은 견각과 함께 앞쪽으로 밀고…….

 

선율이구나, 멜로디…….

남아, 무슨 소리? 무슨 선율?

어디에 가 있냐고! 얘가 점점…….

또 들켰다. 요즘에는 생각이 튀어 나와서 속마음을 들키는 일이 부쩍 늘었다. 싱그러운 정인이가 부러웠나? 허리를 뒤로 젖하고 걷는 모습이 우아하다.

뭐냐니깐!

아니, 갑자기 정인이 신발 소리가 멋져서. 마술이야, 천천히 걷고 싶음 천천히 사뿐히 걷고 싶음 사뿐하게.

발걸음 소리가? 어디서? 네 옆자리에 푹 앉아계신 정인이 발자국 소리가 지금 들린다고?

응. 선생님 목소리를 따라 나긋나긋, 박자가 아니라 선율을 타면서 사뿐사뿐.

박자 말고 선율을 타면서 사뿐사뿐 - 너 우리 댄스교실 와봤어? 정인이 놀란다.

아니, 그냥 생각이 난 거야. 생각하면 안 되냐 그래? 우물쭈물 변명으로 간다.

실은 우리들 다 댄스교실 다녀야 해. 운동 중에 최고라잖아, 음악이며 상대와의 교감이며, 단순운동과는 비교가 안 돼. 미선은 댄스에 관해서도 정답을 안다.

그게 쉬운 일은 아니지.

정인아, 그게 그런데 아침 아홉시라고?

아, 그만 둬. 새벽밥 먹고 춤추러 갈 일 있남요? 정인인 취미가 되시니까 쭈욱 하랍시다!

갑자기 음악이 꺼지며 차가 멎는다.

내려, 얘들아, 오늘 여기서 한꺼번에 푼다. 알아서들 흩어지라고! 씨유!

너 여기 미국 아니다. 잘 가라고, 라이드 고마웠어.

오염된 한국어구만. 하긴 단일민족도 아닌데 뭐. 샬롬!

나마스테!

 

 

지하철 타러 내려갑니다. 오고 가는 것을 혼동하는 일이 없겠습니다. 여럿이 함께 내려가기 때문입니다. 실은 지난번에 문화전당역에서 금남로 쪽을 탔어야 했는데 남광주 쪽으로 갔다가 당황한 적이 있었습니다. 잃어버린 시간 때문보다는 낭패감 때문에 더 속상했었던 기억을 지하철 탈 때마다 하게 됩니다. 방향을 잃는 일이 어디 지하철에서 뿐이겠습니까. 처음 순간 1°만 살짝 틀어져도 엄청 달라져버리는 인생길을 살아가노라면.

그런데 인생이 직선은 아닙니다. 아예 꺾어 가기란 쉬운 일이 아니겠지만, 슬쩍 각도를 옮길 수는 없는지요. 과제를 수행하는 중에 주위의 사물이나 상황에 영향을 받지 않는 집중력은 우수한 성질이죠. 하지만 도가 넘으면 병입니다. 인생이 과제인 한 그렇지요.

귀를 베어가도 몰라요, 쟤가!

어려선 숙제를 하거나 책을 읽다가 핀잔 듣기가 일쑤였답니다. 그때는 핀잔 속에 칭찬의 냄새가 끼어 있었습니다. 지금 와 생각하니 그게 꼭 칭찬받을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결국 길을 바꾸어 갈 줄 모르는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가는 길이 가고 싶지 않다면, 바꿀 수도 없다면, 어찌합니까?

모순에서 찔레꽃으로 앙파로 춤으로 숨 가쁘게 상념을 옮긴 오늘, 오늘 하루가 갑니다. 들고나는 이 없이 닫혀있기 일쑤인 현관문을 벗어났으니, 조금은 더 사는 것 같은 하루였습니다. 여럿이 섞여서 슬금슬금 앞으로 갔을지요. 앞이란 어디일까요. 목적지를 앞이라고 해야 할지요. 목적지는 어디일까요.

남은 날들 중에서 하루가 사라지고 있습니다. 몇 날이 남아있을지 누가 압니까. 모르는 것에 대한 불안으로 숨이 막힙니다. 모르는 것은 흔히 어둠이라고 표현합니다. 창밖에 어둠별이 떠오릅니다. 오늘밤이라는 이름의 밤이 올 것입니다. 어쩌면 밤새 숨이 막히겠지요. 아니면 내일 밤에, 어느 밤에. 아득히 혼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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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전남여고문학> 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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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2020. 3. 20. 1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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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시대는 한국작가교수회에서 발행하는 소설전문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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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서용좌
소설2019. 9. 11. 12:57

http://www.kyosu.net/news/articleView.html?idxno=33809


아무리 생각해도 <교수신문>으로부터 과분한 대접을 받았다. 
30회 걸쳐 가벼운 칼럼을 쓴 일밖에 한 것이 없는 나에게.
2년이 지나서,  <방송통신대학 위클리>에 역시 가벼운 글 하나를 쓰고서 생각이 난다.

장편 <흐릿한 하늘의 해>가 출판되었을 때, 그리고 그 작품으로 "놀랍게도" PEN문학상을 받았을 때......

 

‘글쓰기’ 절실해 떠난 강단 … “오늘 가능한 일에 몰두할 뿐” - 교수신문

때로는 한 국가의 지식인으로서 냉철하고도 날카롭게, 때로는 어머니 같은 마음으로 따뜻한 시선으로 이 나라, 이 사회를 바라보며 글을 쓰는 교수가 있다. 현재 에 ‘서용좌의 그때 그 시절’을 연재하고 있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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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kyosu.net/news/articleView.html?idxno=40455

 

“과분하고 기적 같은 受賞 … 쉽지 않지만 예술의 길 계속 갈 것” - 교수신문

2017 PEN문학상 소설 부문 수상의 영예는 서용좌 전 전남대 교수에게 돌아갔다.에 인기 연재칼럼 ‘서용좌의 그때 그 시절’을 집필했던 서 명예교수는 이화여대 독문학과 1회 졸업생으로, ‘글쓰기’에 좀더 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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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서용좌
소설2019. 8. 26. 11:23

나무

 

나방이나 채소밭의 상추도

밤에 달을 쳐다보면서

어쩌면 꿈을 꿀 지도 몰라요.

- W. G. 제발트,

『아우스터리츠』에서

 

나무를 사 올까봐. 나무 심는 식목일이네, 벌써.

퇴근길에 말예요?

응. 작은 꽃나무를 고를까? 낼 쉬는 날이고. 아차, 낼은 마침 산소에 가는 날이네, 4월 첫 토요일. 이번엔 한식과도 맞아 떨어졌으니 딱 좋네. 산에다 심을 거면 좀 큰 나무를 살까?

산에다 나무를?

그냥. 사방에 산불도 나 쌓고. 올핸, 낼 한번 같이 다녀올까? 생각해 둬요.

 

닫히는 문과 함께 사라지는 말꼬리에 대꾸를 하지 않았다.

우선 소파에 털썩 앉아서 달력을 들여다본다. 오늘 식목일은 청명과 겹치고, 낼은 한식, 다음은 음력으로 집는 삼짇날이다.

언제부터인가 시월상달의 시제는 봄으로 옮겨졌다. 음력 시월이면 눈 내리던 풍경일 때도 있었다. 시월 보름치는 ‘꾸어다’라도 한다 했던가? 보름께 올 눈비가 미리 올 때도 있었고, 바람까지 부는 언덕은 늘 추웠다. 나무들도 칼바람을 가려주지는 못했다. 음복이라고, 바깥에서 먹는 음식들은 다 식어 빠지고 말랐어도 유쾌하게들 먹었다. 밥은 그런대로 스티로폼박스에 보관해서 미지근하지만, 코펠 두 개로 끓여대도 국물을 데우기가 문제였다. 어떻거나 세월은 흐른다. 집안마다 어른들이 세상을 뜨시고 땅 속으로 자리를 옮겨갔다. 차츰 세대가 바뀌니 참석자들이 점점 줄었다. 방식에서도 이것저것 원칙을 지키려는 뜻이 수그러들었다.

우선 축문을 한자로 쓰거나 읽을 수 있는 사람들이 드물었고, 한글로 써오기 시작했지만 그것도 어색해했다. 소지(燒紙)를 두고서도 의견이 분분했다. 축문을 잘 못 읽더라도 분축(焚祝)이 대신해주니까, 우리들 기원이 충분히 전달되라고 하는 것이제. 암, 연기와 그을음이 하늘 높이 오를수록 감응이 크시지요. 손바닥으로 축문을 들어 올리는 시늉을 해가면서 소지를 생략할 수는 없다는 의견도 있었다. 반대도 만만찮았다. 밭두렁에서만 산불이 비화되는 것 아니라고, 축문 태우다 산불 내는 것을 조상님들이 원할 것 같냐고. 축문을 못 태울 거면 쓰지도 읽지도 말라요 뭐요, 설마. 갑론을박에서는 매사에 매우 이성적인 사람들이 결정권을 쥔다. 그래도 그쪽도 향불까지는 어쩌지 못했다. 절이 끝나면 향대 가득 생수를 부어 향을 끈다. 아예 불씨를 말린다, 아니 적신다. 꺼진 불도 다시 보자, 좋은 일이다. 상차림도 완전히 간소화되어 주과포로 한정되었으니 따로 불 피울 일도 없다. 삼삼오오 차들로 나누어 타고 어느 식당에 가서 함께 점심을 나눈다. 이만하면 되었지, 조상님들도 우릴 기특하다 여길 것이네. 조상님들 아니라면 이리 모이기가 쉬운가. 옳은 말이다. 크게 나눌 것 없으니 다툴 것도 없는 일가들, 화기애애하다.

 

부엌은 아직 널브러져 있다. 아침 차리고 먹고 설거지, 점심 차리고 먹고 설거지, 저녁 차리고 먹고 설거지. 꼭 밥을 먹고 나면 그때야 오는 거지가 뭘까요? 답은 설거지! 며칠 전 라디오 영어방송에서 느닷없이 한국말 아재개그가 흘러나왔으니 웃을 밖에. 오늘은 그리 웃고 싶지 않다. 설거지하면서 벌써 다음 끼니 반찬 생각이라니, 무얼 먹을까. 무얼 먹을까. 무얼 먹을까. 무얼…….

삼짇날엔 진달래 화전이 얌전하다지만 맛은 여린 쑥을 따다 섞어서 찐 쑥떡이 일품이다. 내일 쑥떡이나 좀 해서 따라 나설까. 근년 들어서는 주과포라 해서 약식 시제를 드리니까 여자들이 음식에 매달리는 일은 사라졌다. 혹시 쑥떡을 하게 되면 오미자차나 보온통 하나 가득 담아가면 되겠지. 오지랖도! 뭣 하러 종일 부엌에 틀어박히나. 시키지도 않은 짓을 사서 할 것까지는 없지. 봄날을 즐기면 될 일이다.

 

봄은 4월이 되어야 봄 같다. 소프라노로 불리던 4월의 노래가 떠오른다, 4월의 시다. ‘돌아온 사월은 생명의 등불을 밝혀든다.’ ‘빛나는 꿈의 계절아’ 하더니, 왜 또 ‘눈물어린 무지개 계절아’라고 읊었을까. 이 행은 앞뒤가 맞지 않다. 내가 원래 시적 감흥력이 낮아서겠지만 이해가 잘 안 된다. 빛나는 꿈이 눈물어린 무지개가 된다!? 시인들을 시를 곧장 이해하기란 난수표 해독이나 다름없다. 세기의 시인이라는 한 시인은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 내고……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우는’ 시간이라면서 4월을 왜 가장 잔인한 달이라 읊었을까. 100년쯤 흘러 먼 나라에서 막 피어나는 라일락 송이들을 몇 백 송이 째로 깊은 바다 속에 수장할 것을 미리 감지라도 했다는 말일까. 시인은 예언자도 신도 아닐 텐데.

아서라. 4월은 자연스럽게 무엇인가 움트는 시간임이 분명하다. ‘머리맡에 씨앗을 두고 자는 달’이란 긴 이름으로 4월을 부르는 인디언도 있다고 했다. 비슷한 다른 인디언들은 ‘생의 기쁨을 느끼게 하는 달’이랬다지. 씨앗을 뿌리며 느끼는 기쁨만 한 것이 있을까. 내 손으로 뿌린 씨앗이 뭐였더라? 있기나 한가? 분꽃 몇 알? 먹을 것이 아닌 볼 것을 위한 씨앗이지만, 귀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새까만 씨앗에서 어찌 그리 예쁜 꽃이 피어날까. 경이롭다는 말은 씨앗이 싹을 틔우는 것을 보는 일에 쓰는 게 가장 적합하다. 게다가 꽃잎이라니! 유용성은 다음 일이다. 먹을 수 있는 것만 유용한 것도 아니다. 배가 불러도 불러도 불행한 사람들도 있으니까. 나 또한 배가 불러서 이러고 꼼짝 않고 앉아만 있는 것인지.

 

 

전화다. 집 전화다.

핸폰 왜 안 받아? 카톡도 안 보고!

안 받았어? 가만, 어딨더라? 충전기에 안 꽂혀 있는데 어딨나! 미안. 그런데 왜? 아침부터 급해서 전화야?

티비 안 보고 있냐고!

왜?

밤새, 아니 아침에도 티비 안 보냐고!

뭐, 산불 말야?

텔레비전을 켜니 불길이 아직도 훤하다. 무서우리만치 타고 있다. 밤새 손을 쓸 수 없었단다. 동 튼 지가 언제인데 여태도 못 잡았을까? 아니, 그 이상이다. 소나무 가지들이 송진으로 불타며 비화해서 100km를 날아갔단다. 설마 잘 못 들었나? 강 건너 불구경이라고, 텔레비전을 보고 앉아서는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없다.

은숙이, 은숙이 강릉 간 거 알지?

뭐야? 강릉엘? 지금 강릉엘?

그래, 어제 갔잖아. 케이티엑스 덕에 아침은 서울에서 먹고 강릉 가서 여유 있게 점심 먹고 있다고 자랑질이더니. 오후엔 경포대 바다를 볼 거라고 하더니만.

이 봄날 무슨 바닷가.

바닷가 타령이 아니라니까. 강릉 일박이라고 했으니 이 불길 속에 강릉에 있었다는 말인데, 지금 연락이 안 된다니까.

호들갑이네. 그곳 사람들 집들이 문제지, 관광객들이야 빠져 나왔으면 된 것 아냐?

설마겠지만, 여자들만 갔다는데 일단 걱정이 되잖냐.

별일이야 있을라고.

하긴. 그런데 올케가 발언권이 세서 좋은 일도 있더라고. 그 집은 시누올케들만 남자들 다 떼어놓고 잘도 뭉치더라고. 해외도 가요, 며칠씩이나. 하긴 해외여행이야 어차피 여자들이 대세 아닌가. 남자들은 직장에 매어있는 동안에.

그러니 어쩌자고?

몰라 몰라. 그냥 연락이 안 되니까 여기 저기 돌리고 있지.

뉴스를 보면…….

친구가 불길 속인데 뉴스만 보고 있어? 매정하긴! 끊어!

성주는 전화를 걸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급하게 돌아선다.

 

매정하긴! 그래, 매정하다. 나는 매정한 편이다.

남이 씨, 그렇게 매정한 사람 아니잖아.

아뇨, 나 매정해요. 인정머리 없고 매정한 사람, 그게 나예요.

매사에 이런 식이다. 내가 따뜻함 넘치는 푸근한 전업주부의 인상을 주지 못 함을 알고 있다. 지적인 커리어우먼도 아닌 것이 따뜻한 사람냄새도 없으니, 뭔지 누구에게라 할 것 없이 미안하다. 함께 살아가는 이웃들 모두에게? 똑부, 똑게, 멍부, 멍게! 누가 그런 분류를 해 놓은 것인지. 멍게는 나를 두고 하는 말이다. 멍청하고 게으르고. 공감하는 일조차도 멍하고 게으르니까.

게으르지 말자. 멍청한 건 못 고쳐도 게으름은 개선할 수 있겠지. 우선 설거지나 마저 끝내자. 점심은 굶자. 간단하다. 간단한 하루가 흐른다.

조용한 한낮이다. 넷플릭스 - 영화의 세상으로 가보자. 두 시간은 좋게 지나갈 것이다.

텔레비전에서 영화이야기가 진지하게 흐르는 것을 본 적이 있다. 거기서 들었던 어떤 제목을 검색해 보았더니 아직 넷플릭스에 들어오지 않았다. 눈에 띄는 제목들도 있다. 〈내가 너를 사랑할 수 없는 10가지 이유〉- 셰익스피어의 ‘말괄량이 길들이기’의 변형이라는데. 아니, 청소년 버전인 모양, 패스! 〈첫 키스만 50번째 〉- 뭐야, 기억상실증인가? 정말 그렇다네. 단기기억상실증으로 매일 만나는 남자를 매일 처음 만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여자의 이야기란다. 첫 키스? 사랑은 키스로 시작되는가? 그럼 나에게 사랑은 없는 것이다. 고개를 젓게 된다. 입맞춤이 그리 쉬운가. 그것이 사랑의 충분조건인지 모르겠지만 필수조건은 아니다. 머리카락을 만지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듯이 입맞춤을 싫어하는 사람도 있어 마땅하다.

 

조용해! 엘뤼아르가 말한다. ‘포도로 포도주를 만들고/ 숯으로 불을 지피며/ 입맞춤으로 인간을 만드는 것/ 그것이 인간의 뜨거운 법이다.’

‘쇼드 르와’, 엘뤼아르님, 죄송합니다. ‘입맞춤’은 그냥 상징으로 쓴 거죠? 진짜 묻고 싶은 것, 물을 수 없는 것은 그 제목이다. ‘좋은 정의’라고? 좋지 않은 정의가 있다는 말인가요?

 

 

아차, 이건 아니다. 헛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게 된다. 대문 밖으로 나가자. 아스팔트를 조금만 걸으면 흙길도 나온다. 길이라기보다는 도로 아래 천변의 산책로에 오솔길만큼 흙길이 남아 있다. 치유로서의 흙길을 찾아보자. 맑고 따뜻한 봄 날씨라더니 변덕을 부린다. 빗방울 냄새가 난다. 벌써 빗소리가 들린다. 몇 걸음 걷지 못하고 집으로 향한다. 천변으로 오르내리는 층계 근처에 노점상이 있다. 오징어튀김과 어묵이랑 떡볶이를 판다. 요샌 김밥도 있다. 봄날 어울리는 메뉴는 없다. 봄날엔 봄날엔 봄날엔……. 봄날에도 배는 고프다. 아침에 뭘 먹었더라? 지금은 몇 시나 되었을까. 오징어튀김과 어묵과 떡볶이를 보다가 김밥을 집어들고 들어왔다.

점심 거른다는 거짓말. 김치 통에서 큰 무쪽만 달랑 하나 꺼내서 김밥을 씹는다. 아, 역시 여러 가지 맛이 서로를 죽인다. 왜 김밥에는 여러 가지가 한꺼번에 들어갈까. 우엉김밥, 계란김밥 그런 것은 왜 없을까. 일본사람이 하는 초밥집에서 오이김밥을 먹었던 기억을 떠올린다. 수십 개 메뉴 중에서 오이김밥을 주문했는데 정말 오이만 들어있었다. 일본어는 완전 깡통에 영어도 별로라서 겨우 큐컴버를 알아보고 시켰을 뿐인데, 너무 괜찮았다. 평소에 내가 김밥을 헤집고 속을 빼내면 함께 먹는 사람들이 으레 한마디씩 한다. 자장면이나 비빔밥을 비비지 않고 먹을 때도 더러 궁시렁댄다. 이렇게 혼밥이니 누가 나를 탓할 일은 없겠다. 이럴 거면 그냥 묵은 김치를 잘 씻어 물기를 빼고 햇반을 하나 덥혀서 김밥을 말 걸 그랬다는 후회가 스민다.

 

톡! 은숙이다.

내 걱정했었다고? 미안. 강은숙 완전 무사함다. 서울서 온 팀들 따라서 어제 강릉 철수, 서울 가서 밤새 놀았지. 늦잠 자고 뭐 좀 먹고 톡 볼 시간이 어딨어.

됐다, 그만. 우리 모두 성주 등쌀에 괜스레 놀랬지 뭐.

성주 미안! 고맙고! 울나라 기차 엄청 대단해. 새벽에 눈 비비고 출발했지만, 서울서 아침 먹고 강릉서 점심이 상상이 돼? 경포대가 당일 된다니까!

옹심이 맛 워뗘?

메밀전병 먹고파.

마음대로 드쇼! 직접 가서 먹어보삼! 강릉역서 시티투어도 있더라. 10시 전에 강릉역 도착해야 하니 당일로는 불가. 2박3일 한번 가자. 오죽헌, 주문진수산시장, 도깨비 촬영한 해변가, 물론 정동진 포함. 제대로 못 보고 와서 서운타.

못 보고 나오길 천만다행이지. 불구덩이 속에서 어쩔 뻔!

아슬아슬하지도 않아? 거길 다시 갈 맘이 난겨? 언제 불똥이 날아올지 모르는 그곳엘?

이 불이 여름까지 계속 타고 있다고 하냐?

비화! 날아다니는 불! 그거 소나무라 더 그렇다네. 옛날에 불쏘시개로 송진을 썼잖아.

완전 벌거숭이라니, 새까만 숲, 상상이 안 돼.

암튼 벌거숭이 숲 보려고 관광객 밀릴 일은 없을 테니 한번 가자.

밀리긴. 관광지가 유지되려나 모르겠네. 웬만히 타버렸어야지.

그러니 더 가보자. 숲 말고, 시티투어도 말고, 경포대 가자니까.

누구 경포대 목매는 사람 있다냐?

한 두 사람 카톡에 따라 붙더니 곧 수다로 수선스러워진다.

나! 라고 하려다가 말았다. 친구들이 그때 그 옛날 일을 기억하고서 저러는 걸까. 강산이 서너 번 바뀌기 전 옛날이었다.

 

 

경포대로 갈 거다, 우린.

철없던 그때, 내게서 뜬금없이 튀어나온 말이 경포대였다.

어딘데? 언제? 왜?

동해안 말이야, 여기선 꽤 먼 곳이라서 가보고 싶을까.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래사장이래. 1㎞도 넘는 해변을 거닐며…….

뭐야, 누구랑?

아니 뭐, 언젠가 결혼을 하면 말야.

결혼? 너 결혼 생각하는 누군가 있어? 그런 거야?

이 엉큼이 응큼이!

누구였더라, 날 막 때리는 시늉을 했었지…….

신혼여행을 경포대로? 꿈꿈스럽게 웬 동해바다야?

기껏? 신혼여행이면 제주도엘 가야지. 서귀포의 낭만을…….

아니, 대체 누구랑! 지금 장소가 문제가 아냐, 누구냐니까!

 

그때 벌써 우리는 전통과 서양이 뒤범벅되는 시절을 살고 있었다. 전통혼례는 촌스럽게 받아드려지고, 새하얀 웨딩드레스가 로망이었다. 명화극장에서 본 《졸업》에서처럼 하얀 웨딩드레스를 입고. 물론 도망은 아닌, 처음부터 마음에 드는 신랑과…….

우리는 《졸업》의 마지막 장면 때문에 유난히 개똥철학을 폈었다. 버스에 올라앉은 둘을 위한 테마음악이 ‘침묵’이었기 때문에, 마지막 그 애매모호한 표정 때문에, 그 불안한 눈빛 때문에. 하긴 젊음이란 개똥철학을 먹고 사는 시간이었다.

 

누구나 그 나름 새로운 출발을 두려워하기 마련이다. 출발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변혁이다. 그럼에도 출발은 생각과는 다른 출발이기 십상이다. 나도 처음으로 새로운 출발을 생각했었던 경우와는 전혀 다른 출발을 했다. 경포대에서의 출발을 접었기 때문에 신혼여행지는 정 반대쪽 남쪽이었다. 마침 겨울이라서 남쪽이 안성맞춤이기도 했다. 그런데 밤새 눈이 많이 쌓였다. 남북을 관통하는 큰 도로에 차가 오르질 못해서 호텔 근처 정방폭포만 봤을 뿐 종일 호텔에서 어슬렁거렸다. 찬바람에도 해변을 거닐면서 경포대 바닷가 생각을…… 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귀가 윙윙거렸다. 하늘이 바다 속으로 곤두박질쳤다.

남이 씨, 나남이 씨!

허겁지겁 나를 부축하여 일으키는 신랑을 밀치며 다시 한 번 고꾸라졌다. 호텔 로비 쪽으로 들어오자마자 그는 나를 긴 의자에 눕혔다. 그리고는 곧 얼굴 양쪽을 붙잡고 흔들었다. 제가 의삽니다, 신랑이고요. 걱정들 마십시오. 자, 비키세요. 사람들이 몇 모여들었는데, 제복을 입은 직원들도 있었던 것 같다. 괜찮습니다, 저리 좀 비키세요!

그렇게 곧 동서남북을 회복한 내가 어찌어찌 앉을 수 있게 되자 그때서야 사람들이 흩어졌다. 그렇게 더 얼마를 앉아있던 내게 그는 뜨거운 커피를 가져왔다. 괜찮은 거죠? 괜찮죠, 남이 씨?

 

괜찮은 거냐, 남아! 너 괜찮아? 너 정말 괜찮은 거냐고!

시간을 거슬러 가면서 가슴이 떨려온다. 나는 정말 괜찮다! 나는 그때도 괜찮았고, 지금도 괜찮다. 그 뒤로도 어쩌다 이석증이 일어나 성가신 일이 있었지만, 그건 아무래도 좋았다. 지나가면 흔적이 없으니까. 내가 처음 이석증을 일으킨 그날, 그 남쪽 바닷가에서 들은 소리들, 그런 소리들이 문제였었다.

남아, 춥지 않아? 우리 이 모래밭 끝자락에서 순비기나무꽃 찾아볼까? 중부 이남에 피는 꽃이라지만 난 꼭 경포대 바닷가에도 피는지 찾아보고 싶었단 말야.

왜 하필 순비기?

아니 뭐. 내한성, 내염성을 다 갖췄으니, 좀 춥더라도 이 바닷가에서도 살아있지 싶어서. 있더라도 잘 안 보여서 세심하게 찾아봐야 해. 회색빛 잔털에 벽자색 자잘한 꽃망울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는데, 얼른 눈에 띠지 않지. 꽃을 보려면 여름에 한 번 가자.

벽자색이 뭔데? 푸른 자색?

푸르스름한 회색빛. 푸르스름 보라스름 그런 회색.

보라스름이 다 뭐야! 응, 알겠어, 보라 냄새!

보라 냄새는 또 뭐야. 색깔에 무슨 냄새!

색깔마다 냄새가 왜 없어! 어떤 보라에서는 제비 꽃 냄새, 어떤 보라에서는…….

에이, 그거야 나도 알지. 핏빛에서는 피 냄새!

그만 해. 그건 아냐.

 

나는 정말 괜찮고, 순비기나무꽃을 찾던 선배도 괜찮을 것이다. 우린 경포대에 간 적도 없으니 괜찮지 않을 이유가 없다. 우리는 입술을 살짝, 아주 살짝 스친 것만큼만 가까웠고, 입술을 아주 살짝 포갠 사이란 아무 사이도 아니니까. 다만 더는 누구와도 입술을 포갤 수 없는 것, 그것은 그냥 내 문제다. 곰곰 생각해 보면, 어느 두 사람 사이에서 입술을 포개는 것은 대단한 접촉인 것 같기도 하다. 입술이야말로 싱그러움과 관련된 어떤 신성한 곳이니까. 그에 비해 남녀의 접촉이라고 할 때 흔히 떠올리는 거기 그 곳은 생명의 창조와 관련된다 하더라도 적나라한 열기와 혼돈과…….

 

 

아이스 블루 톤이다. 톡이 아닌 전화소리다.

남이야, 나.

그래 은숙아, 왜? 톡 봤는데, 보고 있었어. 산불 용케 피했으니 잘 됐다 뭐.

남이야, 나.

뭐? 왜?

나, 누굴 슬쩍 본 것 같아.

누구를?

그 선배, 식물인간.

뭐라고? 선배를? 언제, 어떻게?

강릉에서지 어디야. 바닷가에서 나와서 감자옹심이 먹으러 가는 중에. 길에 지나가는 사람인데 왜 그리 닮았는지.

설마.

지나가는 모습이 틀림없었어. 옆의 사람이 귀에 올려대고 말을 하는데, 약간 오른 쪽으로 기우뚱 하고 그렇게 들으면서 걸어가는 모습이…… 그 뭔가 독특한 자세 있잖아.

시끄러, 잠시 지나가는 사람 모습을 보고 웬 옛날 생각을 해. 세월이 언젠데.

가슴이 덜커덩, 내가 왜 덜커덩이었는지, 암튼 틀림없었다니까. 애들 톡방엔 쉬쉬할게 염려 마.

 

 

약간 기우뚱 하고서…….

그랬다. 그는 그때 젊은 시절에도 약간 기우뚱 기울고서 걸었다. 키가 비쩍 커서이기도 하지만, 사람들의 말을 잘 듣기 위해서다. 실루엣을 보면 피사의 사탑이었다. 가까운 친구들은 그를 가리켜 피사라고도 했다. 물론 식물인간이라고 돌려서 말하는 게 보통이었다. 그 시절 우린 참 너무나 순진해서 남자친구 이름들을 대놓고 부르지도 못했었다. 식물인간이라고 하는 것은 그가 뭔가 동물적인 에너지를 발휘하는 화끈한 멋이 없었기 때문이었지만, 또 그가 입만 벌리면 식물 이야기를 했기 때문이다.

 

식물 이야기. 나는 지금도 식물 이야기를 듣는다. 그의 입을 통해서가 아니지만, 식물 이야기는 널려있다. 『나무수업』이라는 책도 재밌다. 『동물 속의 인간』 보다 더 먼저 번역된 책이다. 둘 다 독일인들이 쓴 것이 흥미롭다. 아니, 둘 다 인간적 식물과 인간적 동물에 대해서 쓴 것이 더 흥미롭다. 동물만 인간적인 것이 아니다. 나무들도 인간적이다. 인간적이라고 하는 부분은 우리 인간들처럼 공감능력이 있다는 것을 넘는다. 경쟁하고 부대끼며 지혜를 발견하면서 살아간다는 점에서도 인간과 닮았다. 정말이냐고? 식물도 설마 그러냐고? 내가 식물 관련해서 책들을 다소 무조건 사 보는 습관이 있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런 책들의 광고를 보면 그 식물인간이 저자일까 흠칫 놀라기도 하는 이 심정을 부정하지는 않겠다.

나무가 경쟁을 하는 것쯤은 우리들 감각으로도 안다. 햇빛은 중요한 경쟁대상이고, 햇빛 잘 드는 자리를 위해 다툼 할 것이라는 것을 안다. 다들 햇빛을 향해 키를 키우고, 햇빛 쪽으로 굽는다. 이태 전이던가 『나무수업』을 처음 읽었을 때 친구들에게 무슨 말을 하다가 그때도 호들갑이란 핀잔을 들었다. 5월 초 학교 후문에서 만나 점심 먹고 캠퍼스 내를 산책하던 때였다.

 

아, 이 이팝나무들 좀 봐. 곧 전체가 하얀 천지가 되겠네. 아카시아도 곧 만발할 테니까. 감탄사는 대게 정인이가 시작한다.

그러게, 이건 팥배나무 아냐?

팥배건 콩배건, 난 정말 하얀 꽃들이 좋더라. 어쩜 이렇게 싱싱하게…….

나무도 영양분을 두고 친구들과도 적들과도 나눈대. 『나무수업』이란 책에서 봤어.

미쳤냐. 움직일 수도 없는 그놈들이 무엇을 나누고말고 해.

아니, 막 움 터서 자라나는 새끼들에게 직사광선을 가려주려는데, 옆의 나무들과 합세해서 큰 가지들로 가려준대. 지나친 햇빛을 막는 거라고. 너무 빨리 자라서 아무 것도 학습하지 못하는 것을 방지하는 것이지. 겁 없이 막돼먹지 말고 느리게 자라기, 뭐 그런 것. 느리게 자란 놈들이 장수하는 거래.

말도 안 돼.

아스팔트 가로수들이 왜 빨리 죽냐면…….

죽냐면?

숲을 떠난 아이들은 말하자면 집 나온 아이들이래. 처음엔 햇빛도 마음대로 누리고 뿌리도 맘껏 뻗지. 그러나 곧 아스팔트 속 단단한 물질들에 길은 막히고, 살려면 하수도관이라도 뚫어야 할 지경이 돼. 하수도 뚫리면 도로는 범람하고. 몇 백 미터도 자랄 뿌리들인데 막혀서는, 참 불쌍도 하지. 우린 숲의 나무를 데려온 순간 그들을 고아에 장애자로 만드는 것이야.

야, 여기 인간적 인간 나셨네. 얘가 요새 점점 더해요.

왜 그래. 일리 있는 말이다야.

그렇지. 동물애호가들도 더 나아가 식물애호가가 되어야 해. 난 물론 이기적 동물이라서 겨우 내 몸 내 주변 관리도 잘 못하지만.

그러니까 나무들에게도 알맞은 삶의 형식이 있다는 말이지. 간단하네. 아스팔트로 끌려오지 말고, 그건 유배니까. 아니, 사람들 좋으라고 기쁨조 노예로 끌려온 거니까. 완벽한 흙, 적당한 온도와 수분을 갖춘 흙 속에서, 숲 속에서 사는 것이야. 가능하면 같은 종끼리 모여서. 그러니까 사회적 욕구를 실현할 수 있도록, 완벽한 흙을 갖춘 진짜 숲에서 성장하는 거야. 언제 책 가져와 봐, 나도 좀 보자. 미선이 거들어줘서 너무 다행이었다.

그렇다니까. 그렇게 해서 터득한 생존 지식을 후손에게 물려주지.

뭐야, 식물들이 자녀교육까지?

아니란 법 있어? 나무의 자녀교육, 참 좋은 말이네. 나무답게 사는 법, 그런 책이 있을 법 하네. 바람소리로 전달되는 책이.

날아가라 날아가, 상상은 자유다!

상상 아니라니까. 숲 전문가, 동물 전문가들이 쓴 책이니까.

이 애가 아직도! 너 책을 100퍼센트 신뢰하는 거야? 까만 글씨면 무작정 모두 믿느냐고!

난 글씨를 믿는 편인가 보다. 까만 글씨, 인쇄되어진 말은 확실히 무겁다. 말은 다소 즉흥적으로 튀어나오니까 독이 묻어도 살짝 묻은 것이지만, 글은 다르다. 곰곰 생각했고, 썼고, 아마 다듬었고…….

 

 

나무들 일단 들여올까?

대문을 여다 말고 그이가 말만 먼저 들여보낸다.

어, 왔어요? 나무들 큰 거예요? 뭘 샀는데! 뭐가 되었건 들여오세요. 현관에 두든지 발코니에 내놓았다가 가져가야죠. 차 안에다 두면 불쌍해.

그런 남이 씬 불쌍찮게 집밖에 나갔나요? 오늘도 집안에만 있었어?

그냥 좀. 빗방울 때문에.

그렇다니까. 사람이 바깥바람을 쐬야, 통풍이 돼야……. 내 무서운 말 한번 할까? 외로움은 치매의 지름 길이예요!

치이!

미안, 미안. 여기 봐요, 자잘한 것 두 종류. 둥근 측백, 이것들은 양쪽 앞 쪽으로 심을까 해서 둘. 또 배롱나무가 좋을 거래서 하나 샀네, 자손들이 우애를 한다나 뭐라나. 장소가 아직 마땅치는 않지만, 낼 보고서 심으면 되겠지.

배롱나무는! 가로수로 널려 있는 게 배롱나무들 아녜요? 새삼스럽네.

좋은 게 좋은 거니까.

 

대충 씻고 와요! 저녁이 좀 늦었네요.

아무래도 나무들 고르다 보니까.

반찬은 밖에서 장만해 왔으니 걱정 없네요.

내가? 내가 반찬 장만을?

예, 울 할머니가 ‘가만 있거라, 반찬 장만해서 먹자’ 그러시면, 좀 기다렸다 시장하거든 먹자는 말씀이셨거든요. 실은 아버지 기다리시면서.

그런가. 시장이 반찬이다, 그 말이군. 그런데, 와우, 이 부추전! 이런 거면 배가 안 고파도 맛이 넘치겠네요. 물오징어에 알새우까지 넣어주니 입이 호강이군. 내가 오늘도 뭘 그리 잘 살았나!

애 많이 쓰셨죠! 환자 보는 의사님들 모두.

감기 환자들 기침 냄새 가래 냄새 맡고……. 이런 말은 밖으로 내뱉지는 않는다. 그런 생각만으로 난 벌써 음식이 목에 걸린다. 애를 써서 먹을 양식을 버는 일이 짠하다. 남편 뿐 아니라 세상 누구나 다 짠하다. 먹을 것을 벌어야 하는 숙명이라니!

 

대강 치우고 앉으니 텔레비전에서는 여전히 불길이 활활 타고 있다.

속초 의료원 큰 일 날 뻔 했더만. 세상엔 괜찮은 사람들이 더 많아. 지성으로 환자 대피시키고 보호하고.

어쩌냐. 숲이 저렇게 완전히 타버리면 개미가 돌아오는 데에도 13년이 걸린다네요.

그러게나. 그런데, 개미? 개미라고? 남이 씨 개미 무서워하지 않았어?

무서워하기까지는. 예, 개미 무섭죠. 어딘가로 옷 속으로 스며들 것 같은 느낌. 스멀스멀, 그래서 숲 속에 잘 안 가죠.

안 가기는, 아예 못 가지. 우리 그러니까 숲 속에 가 본지 얼마나 되었을까.

갑자기 숲 속은! 숲 속에 꼭 함께 가야되는 것도 아닌데 왜 안 가시고 그러시나?

아, 나야 가죠. 더러 가 봤죠. 남이 씨랑 숲 속에 함께 갈 수 있을지 이제부터 희망을 가져도 되나 싶어, 반가워서 하는 소리지. 가까운 축령산 편백 숲이라도 함께 가는 거요! 점심 먹고 거기 가면 피톤치드 확확 뿜어져 나오는 시간이니까 딱 좋을 텐데. 40킬로쯤인가, 한 시간도 안 걸려. 개미 무서우면, 가자마자 비닐천막 깔개를 넓게 깔고 삥 둘러서 모기 진드기 약을 뿌리면…….

아서요. 누가 개미 무서워 안 간다고 했나요.

그럼 왜?

 

새삼스럽다. 내가 숲을 피한다는 생각을 왜 할까. 산소에 갈 일 있으면 대강 따라 가는 편이다. 그러니까 일이 있으면 간다. 숲이나 밭이나 엄밀하게 말하자면 흙속에는 작은 동식물들이 섞여있는데, 그것들에 가끔 놀란다. ‘나방이나 채소밭의 상추도 밤에 달을 쳐다보면서 어쩌면 꿈을 꿀 지도 모른다’ 비슷한 말을 읽은 기억이 난다. 그렇게 꿈꾸는 상추를 밟기도 하고 뽑아서 먹기까지 하면서 나방 애벌레를 보면 무섭다. 사람, 아니 어떤 위협적 생물의 발자국을 느끼면 동그랗게 몸을 말고서 도망가는 작은 생명들, 어쩌다가 으깨어져 뒹구는 물컹한 어떤 것들이 무섭다. 나를 해칠까 봐서 두려운 것이 아니라, 너와 내가 바뀌었을 상황이 생각나면서 무서운 것이다. 나는 너를 무심코 밟았고, 어쩌면 내가 너였을 수 있고, 그런 것 말이다. 동물들과는 동일시가 되나 보다. 그러니까 생명이 무섭다. 곧 또는 조만간 손상되거나 사라질 생명이 무서운 존재다.

남이 씨, 나남이 씨!

응, 예.

올봄엔 정말 숲에 한번 갑시다. 아스팔트로 계속 달리다가 잠깐 숲에 들어가는 건데 못 갈 것 없겠죠? 쌍계사 벚꽃 길을 섬진강 따라서 종일 걷는 사람들도 있대요. 우린 그냥 어디로든 30분만 걷다가 딱 뒤로 돌아 하고 오면 될 텐데.

그렇게 유명한 델 어찌 가려고요. 꽃구경은커녕 사람들에 떠밀리고.

사람 참. 사람이 사람 속에 섞이지 그럼 코끼리 사이에 섞일 테요?

철새 따라 섞이지, 날 수만 있다면.

철새라고? 철새라!

아니, 만일 우리가 어딘가 다른 동물 그런 데 섞일 수 있다면, 그런 상상이라도 해본다면, 새가 낫죠. 것도 철 따라 이동하는 철새가.

웬 철새 찬양!

지금이 철새 대이동 시기니까 서해안에 가면 엄청난 새들을 볼 수 있다던데. 우리나라 새들이 500종이면 텃새는 100종류도 안 되고.

어, 거의가 다 철새네!

왜 철새들은 이 시기엔 북쪽으로만 나는지. 두루미 기러기는 벌써 시베리아로 떠나고, 어떤 놈들은 일단 우리나라에 들렀다가 시베리아까지 올라갈 것이고. 삼짇날이니 제비도 남쪽에서 올라오겠네. 바다제비며 슴새들 번식지도 따로 있대요, 가거도. 이름도 예쁜 가거도에.

남이 씨, 참. 워낙 방콕이 취미인 사람이라 철새 같은 건 전혀 관심 없는 줄 알았네요. 몇 십 년을 함께 살아도 모르는 것이…….

그거야, 사람이 변해서죠. 누구라도 변하죠. 할 일 없이 앉아서, 뜸부기다 뭐다 노랫말 때문에, 아니면 시 같은 데에서 귀에 익은 새 이름들 찾아보다가. 그런데 난 파랑새가 진짜 새인 줄도 몰랐다니까요. 파랑새는 그냥 상징으로, 파란 꿈에 대한 상징 같은 것으로 알았죠.

직박구리 그 이름을 찾느라고 온갖 새 이름을 뒤졌다는 것은 말하지 않았다. 말할 수 없었다. 말할 수 없다. 새 울음소리 때문에 내 생전 처음 듣는 청혼을 흘려들었다고, 아니, 새 울음소리를 핑계로 청혼을 흘려들었노라고, 그것을 누구에게 말 할 수 있단 말인가. 나랑 결혼해, 괜찮겠지? 난 정말 못 들었다. 괜찮겠지? 너 나랑 결혼하자고! 그렇게 가까운 소리를 흘려들으면서 나는 나무 위 새 소리만 듣고 있었다. 하늘을 향해 내지르던 새 소리, 나뭇가지 꼭대기, 먼 데 새소리만 들었다. 키 큰 은목서 위의 그놈들은 직박구리였다. 내 첫 이별의 자리에 함께했던 새, 새 이름을 뭣 하러 애써 찾았는지, 누가 알랴. ‘훌우룩 빗죽새’라고도 불리는 시끄러운 직박구리, 그 울음소리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

우리 남이 씨, 나는 한 마리 파랑새 되어 저 푸른 하늘로 날아가고파~ 그런 것이네.

뭐예요. 그 노랫말을 어떻게?

어떻게 외우냐고? 남이 씨 노래인데, 당근 나도 외우지. 사랑한 것은 너의 그림자, 지금은 사라진 사랑의 그림자~.

무슨 내 노래가 있고 그런가.

그러게 말도 안 되는 소릴 왜 해요. 날 수 있다면 철새 따라간다는 소리는 뭣 하러. 죽었다 깨나도 사람이 날 수 있는 것도 아닌데.

말이 그렇다는 거죠 뭐. 찹쌀이 있으면 팥을 빌어다 찰밥을 해먹을 텐데 시루가 있어야지, 그런다잖아요.

뭐예요? 찹쌀도 시루도 암 것도 없다고? 우리 말 참 재밌네. 옛날이야기들엔 밥 타령이 많아.

좋아요, 말 나온 김에 찰밥을 찌죠. 낼 찰밥 해서 따라갈게요, 산소에.

어, 정말? 웬 찰밥! 여럿 먹이려면 남이 씨 힘들 텐데.

맛으로 나눠 먹을 것 좀 하는걸요. 다른 건 잘 못해도 찰밥 찌는 건 쉬워요. 찹쌀도 팥도 시루도 다 있는데요 뭐.

어마무시 고마워요!

낼 몇 시에 출발? 10시쯤 나갈 거죠? 그럼 시간 충분해요. 가만 나물 감이…….

혼잣말을 하면서 다시 부엌으로 향한다.

 

오늘 밤은 길어질 것이고, 그런대로 시간이 잘 갈 것 같다. 곡식들 꺼내려 뒤편 발코니로 나가 밖을 본다. 살짝 내리던 비는 멎었고 바람이 살랑거린다. 나무 잎들도 살랑거린다. 여전히 비를 품은 냄새일까. 낼 산소 가는 일이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비가 내려야한다면 비가 내려야 한다. 먼 데 불을 끄기 위해서라면 우리도 비를 맞자.

그 땅의 나무들은 언제나 돌아오려나. 개미들 돌아오고 나서도 또 그만큼의 시간이 흘러야 새들이 날아든다는데, 나무들은 또 몇 년을 더 기다려야 움터서 자랄 것인지. 그렇게 새로 자란 나무들을 보게 될 일은…… 아마 없을 것이다. 그들은 느릿느릿 저절로 자라나서 하늘을 가리도록 무성한 잎들을 낼 것이다. 누군가가 숨죽이고 자신들을 기다렸을 것일랑 꿈도 꾸지 못할 것이다. 훗날 새파란 아기들이 태어나면 그들 선조가 겪은 대재난을 이야기해주려나.

얘들아, 세상엔 피할 수 없는 재앙도 있는 법이란다. 불이라는 게 비화하면 우리 나무들은 속수무책으로 타버린단다. 다만 그 잿더미 속에서 부활하는 기적을 꿈꾸는 거야. 어째도 꿈은 꾸는 거야. 살 떨리는 긴 기다림으로, 후훗, 살 한 점 남아있지도 않았지. 그래도 흙은 우리를 영원히 버리지는 않는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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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여고문학 2019, 5호, 222~24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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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서용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