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풍놀이 다녀와서 푸르름이 더 낫다?
시월의 마지막 날, 해발 900미터 적상산, 단풍은 아름다워야 할 시절에도 그리 아름답지 못했다. 여름 강수량의 부족 때문이란다. 우리는, 인간은 우주에도 가지만 자연에다 대고는 단풍 색 하나 조절할 수 없다. 인공호수 주변에 단풍과 푸른 소나무가 함께 하고 있었다. 솔이 의연하더라...... 그런 말이다.
단풍 대신 반가운 옛날을 만나고 왔다.
조성왕조실록 사고지유허 -
임진왜란 이후, 조선왕조실록은 하나 남은 전주본 원본과 교정인쇄본을 합쳐 실록 5부를 만들어 춘추관, 마리산, 태백산, 묘향산, 오대산에 각각 보관했다고 한다. 후금의 위협이 고조되어 묘향산본 관리가 어려워지면서 1614년(광해군 6)에 적상산에 실록전을 건립하여 옮기기 시작해서 1633년(인조 11)에 모두 적상산 사고로 옮겼다. 그 후 1641년(인조 19) 이곳에 선원전을 건립하고 선원록(璿源錄)을 보관하게 되었다. 실록 824책, 선원록, 1,446책, 의궤(儀軌) 260책, 잡서 2,984책으로 총 5,515책이 보관되어 있다가, 1910년 이후 일제가 왕실 규장각으로 옮겼고, 6·25전쟁 때 북한으로 반출됐으며 김일성 종합대학 도서관에 보관 중이다. 완전 훼손되어 1992년 무주양수발전소 상부댐 축조로 물에 잠길 위험에 처하자 현재의 위치로 옮겼고, 1997년 선원전을, 1998년 실록전을 복원하였다고 한다. 현재는 <조선왕조실록> 복본 34권(왕조별로 1권씩 27권, 무주에 관한 기록 7권)과 왕실 족보인 <선원록> 복본 5권이 비치되어 있다고 한다.[출처 무주군청]
광해군은 죽어서도 후대에도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다. 광해군이니까. 그의 치적은 실록이 아닌 <일기>로서 남아있고, 연산군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뿐만아니라 사초 문제로 무오사화등 사화가 일어나기도 했고, 당쟁의 결과로 『선조수정실록』, 『현종개수실록』, 『경종개수실록』 등이 있었지만, 수정본과 정본을 함께 간직해왔음에서 우리가 배울 것은 크다. 명불허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