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기고2023. 1. 30. 07:30

 

글은 독백이다

 

 

 

    글은 독백이다. 듣는 사람 없이 홀로 말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 여기 파도 흉용한 육지를 항행 하는 영혼들,* 그 누군가가 홀로 말하기를 선택하는 것은 소통의 균형이 깨어져서다. 들려오는 소리의 범람 속에서 말하기가 어렵다. 생각을 소리로 내는 일, 그것이 어렵다. 아주 어렵다.

 

     누구에게 말하는가, 어디에서 말하는가. 어디에서 누구에게 맘 편하게 말 할 수 있는가. 한국 평균인, 나이는 대강 45세, 그가 남자 또는 여자라고 가정하자. 173센티미터 또는 160센티미터쯤 되는 키를 하고, 직장에 다니기도 안 다니기도, 결혼을 하기도 혼자이기도 한 어떤 사람. 그는 못해도 하루 여남은 시간을 어디에선가 누군가와 부딪고 살아 갈 것이다. 어디에서 누구를 만나서 말을 하는가. 세상은 말의 대양이고, 그의 뇌는 포만감으로 이미 멍하다. 그는 실패적 순간들에 맞닥뜨린다. 다행히 머리가 좀 좋고 이성적이라면 그는 페르소나를 만들어 낸다. 페르소나는 상대가 희망하는 말을 할 줄도 알고 그만큼 행복하게 하루를 산다. 그의 페르소나가 열심히 말을 하는 동안, 그러나 그, 그의 인격은 말을 할 수가 없다. 그의 인격은 벽에 갇힌다.

 

     언어에 관해서라면 아직 읽기와 쓰기가 남아있다. 읽기에 몰입할 수도 있다. 동서고금 얼마나 많은 이들이 얼마나 많은 글들을 쏟아내었는지, 인쇄되어 남아있는 서책들을 한꺼번에 모아놓는 일은 상상을 불허한다. 온라인 시대가 되고 보니 손바닥만 한 화면에서 열리는 글들의 세계는 망망대해 아니 블랙홀, 과문한 나는 설명할 표현을 찾지 못한다. 꼭 물병자리 사람이 아니더라도, 무작정 단호하고 확고해서 한번 무엇인가에 빠지면 귀를 베어가도 모른다는 단점투성이 물병자리 사람이 아니더라도, 읽기만큼 사람을 훼손하기도 어렵다. 읽기는 시간을 죽이고 몸과 머리를 감염시킨다. 책에 쓰인 것은 진리요, 책이 삶일 것이라는 부실한 맹신으로 자라난 탓이리라.

 

     이제 하나 남은 쓰기, 그것은 우리를 구할까. 심장에서 스멀스멀 또는 쿵쾅쿵쾅 시작된 말이 긴 긴 핏줄을 돌고 돌아, 믿거나말거나 지구를 세 바퀴를 다 돌아 입술 끝에 매달려도 뱉어낼 수 없을 때, 글이다. 그때 비로소 글을 쓰기 시작한다. 쓰기 시작할 수 있다.

 

     누구에게 쓰는가. 그건 말을 못하는 사정과 다르지 않다. 그는, 나는, 누군가에게 함부로 글을 쓸 수 없다. 홀로 쓴다. 그것이 어쩌다 지면에 얹히면 작품 발표가 되고, 그는, 나는, 작가라고 불린다. 독자, 언감생심 독자를 향하여? 진심으로 말하자면, 그것은 아니다. 독자는 허상일 뿐이다.

     안도현이 「땅」 이란 시를 썼다. 내게 땅이 있다면 / 거기에 나팔꽃을 심으리 / [……] 내 아들에게는 한 평도 물려주지 않으리 / 다만 [……] 동그랗게 맺힌 꽃씨를 모아 / 아직 터지지 않은 세계를 주리 - 아들에게 땅 대신 꽃씨를? 누구는 감동해서 눈물 젖은 눈으로 나팔꽃을 심으리라 한다. 누구는 설마 진정일까 반문한다.

 

     보라! 글은 독백, 홀로 쓰는 것이다. 말을 할 수 없는 그는 외로움에 잠겨서, 마침내 외로움을 벗 삼아 홀로 쓰는 것이다. 바보같이 어떤 사명감으로, 또는 예술의 길이라는 착각으로, 그러다가 다 놓고 그냥 쓴다. 토로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을 그냥 내놓을 뿐이다. 글이라는 이름으로.

     길을 나선 글은 무심코 제 갈 길을 간다. 행여 많은 독자를 만난다 하더라도 글은 그대로일 뿐, 더 중해지지 않는다. 외면당한다 하더라도 헐해지는 것도 아니다. 글은 거기 그렇게 있을 뿐이다. 잠시 누군가의 기억에, 서가에, 그러다가 잊히고 휴지조각으로 소멸되기까지. 그렇게 글은 독백으로 시작되어 독백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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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광주문학 제 104호 특집 <나의 문학> 46~4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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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서용좌
수필-기고2010. 12. 1. 23:30

도마뱀

   꼬리를 자르고 도망치는 도마뱀입니다.

작가가, 소설가가 작품을 쓰는 일은 일종의 도마뱀 꼬리자르기라고, 한 덜떨어진 소설가가 내게 말했다.

뭡니까?

절체절명의 순간 꼬리를 자르고 도망친 도마뱀은 그 피투성이 기록으로 작품을 남기는 것입니다. 몸통을 살려낸 도마뱀은 꼬리만을 물고 허탈해하는 독사에 대해 승리감을 가질 것이고. 꼬리를 자른 선택에 관해서 의미부여를 하며.

도마뱀에게라면 위기 탈출이 절대적 선택이겠지만.

겠지만? 그 이상입니다. 천적을 만났을 때 꼬리를 자르고 도망칠 수 있는 건 분명 비장의 무기이고, 예컨대 살모사가 아직 꿈틀거리는 도마뱀의 꼬리에 관심을 기울이는 틈을 타 도마뱀은 목숨을 건질 수 있으면 되었지요. 이제 거기에 그 경험을 잘 다듬어서.

다듬어요? 죽다가 살아온 경험을 쓰면 문학작품이라는 말씀이오?

일단 꼬리 잘린 도마뱀은 특별한 경험을 했고, 그런 처절한 경험이 없는 다른 도마뱀들에 비해. 더구나 잘라진 꼬리는 나중에 다시 돋아난다고 하니까요.

그건 좀 다른 문젭니다, 제 생각엔.

다른?

도마뱀을 노리는 적이 주변에 많을수록 꼬리를 재빨리 자르고 도망치는 개체가 살아남을 확률이 높은 건 사실입니다.

그럼 되었지 뭐 또. 게다가 그것을 가공하여.

그래도 꼬리를 자르는 건 도마뱀에게 큰 부담입니다. 꼬리가 없는 동안에는, 그러니까 그 험한 경험을 작품으로 가공할 수 있다 해도 일단 잡아먹힐 위험이 커집니다. 새 꼬리를 만드는 동안에는 몸통 자체도 자라지 못합니다. 동작도 굼떠지고, 심지어 동료들 사이에서 지위도 떨어집니다. 어차피 소설가의 지위야 꼬리 잘린 도마뱀 수준이지만요. 더구나 이제 그 새 꼬리라는 놈은 더 이상 자를 수가 없답니다.

뭐요? 도마뱀 박사가 따로 없으시군요.

게다가 새로 돋아나는 꼬리는 척추가 아닌 연골조직으로 되어 있어서 다시는 자르지 못한답니다. 소설 한 권 떴다가도 평생 타작만 내놓는 소설가와 다름없지요. 도마뱀으로서도 평생 꼬리 잘라먹은 놈이라는 꼬리표를 함께 달고 사는 것이겠지요. 새 꼬리는 원래 것보다 색깔도 안 예쁘답니다.

예쁘고 안 예쁘고가 중요 하겠습니까? 소설작품은 취소하고라도 일단은 살아남아야 하니까 저는 꼬리 자르는 쪽을 택하겠습니다.

그렇겠지요. 꼬리를 조금만 물려도 그게 독사라면 금방 독이 퍼져 죽을 것이니 잘라야겠지요, 싹둑.

아니 작가님, 뭐 싹둑 잘라낼 원망 같은 것이라도 있습니까?

무슨 말씀이십니까? 그저 따라서 해보는 소립니다. 무엇인가를 끊어내고 계속 살아갈 수 있을지 아닌지는 그리 간단한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아마 누군가는 그냥 그 독으로 죽고 싶어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 일부를, 이를테면 마음, 심장, 가슴 뭐 그렇게 불리는 어떤 것을 잘라내고도 살 수 있을지, 그것을 가공하여 작품화하는 강심장을 가질 수 있을지, 그건 꽤 어려운 선택입니다. 아니 선택이기 이전에 운명입니다.

그냥 죽거나 그것을 쓰거나?

예, 실존과 방법의 갈림길입니다. 삶의 내용인가 글쓰기인가 하는 갈림길.

도마뱀과 갈림길이라. 우린 오늘도 제자리에서 맴돌고 있군요.

그와 내가 구동성으로 말했다. 그와 나는 늘 하나이면서 둘인, 둘이면서 하나인 도마뱀이다. 왜 쓰지도 안 쓰지도 못하는지 언제나 답을 모른다. (문학공간 2010.12월호 통권 253호 40-4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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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서용좌
소설2008. 9. 1. 23:30

[한국소설 2008년 9월호]

번째의 죽음


                     

라우렌츠: 앉아서 써 봐. […]

여자는 질문을 받으면, 질문으로 대답해서는 안 된다.

여자는 질문을 받으면, 즉시 대답해야 한다.

여자는 라우렌츠의 생각을 생각하려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여자는 심한 말로 라우렌츠의 문장을 끊어서는 안 된다.

여자는 적당한 장소에서 말할 줄 알고 또 침묵할 수 있어야 하고 라우렌츠를 사랑하고 착하게 대해야 한다, 그가 비록 거칠더라도 말이다.

이걸 자주 읽는 거야, 알았지.

 


이 글의 마지막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극중의 라우렌츠(남자)와 여자는 작가죠. 집에 들어앉은 여자는 혼란과 무기력에 빠져 더 이상 글을 쓸 수 없습니다. 결국 여자는 “이젠 결코 다시는 잡아먹히지 않겠어요.”라고 말하며 남자를 떠납니다. 글을 쓸 수 있었냐고요? 우여곡절 끝에 겨우 썼죠. 적어도 남자의 글보다는 훨씬 의미 있게 언급이 되는 작품들이었죠. 그러니 근 한 세기 전 서양의 이 작품이 여기에서 인용되겠죠. 


제 이야기를 할 차례군요. 나도 글을 쓰고 싶어 하는, 얼핏 골빈 여자들에 속합니다. “적당한 장소에서 말할 줄 알고 또 침묵할 수 있어야 하는” 틀을 갖추기는 쉽지 않은 일이죠. 더구나 순간의 감정에 잘 휩쓸려서 조급하다는 핀잔을 듣곤 하죠. 조급하다 - 그 말이 내게 얼마나 상처가 되는지, 그것을 하필 나와 가장 가까운 그가 모릅니다. 그는 나랑 생일이 비슷합니다. 그럼에도 남성들의 전유물인 이성과 합리성과 또 모든 명철함을 가졌기 때문에 늘 잘난 체를 합니다. 우리의 관계는 일찍 서로를 발견한 셈이지만, 마찰은 자라면서였죠. 중학교 때, 여전히 잘 넘어져 팔꿈치와 무릎에 거즈와 반창고를 대고 다니던 어느 날이었죠. 난생 처음으로 팔꿈치나 무릎이 아닌 속옷 깊은 곳에서도 피가 흐를 수 있다는 것에 놀란 어느 날, 그는 퍼렇게 날 선 눈으로 나를 노려보기 시작했습니다. 다소 비웃음을 머금은 채, 휑하니 돌아서 나가는 그는 문이 아니라 창문으로 빠져나가서 차가운 공기 속으로 들어가는 것 같았습니다. 분명 여름날이었는데도 그가 떠난 자리로 창문을 통해 전해오는 공기는 얼음장 같았으니까요.


나: 이 첫 작품에 난 제목을 붙일 수가 없었어.

그: 제목이 없음 무슨 시. 제목이 없이 주제가 나오며, 주제가 없이 시를 쓸 수 있다고!

나: 처음이라서.

그: 넌 그냥 시를 쓴다는 폼을 사랑해서지! 생각부터 가다듬어야 했어. 생각이 있어야 글이 나오지. 글쓰기 과정은 단어를 고르는 것에서부터 문장구성과 단락 나누기 등에서…….


제목이 있을 자리에 “무제”가 뭐냐 라는 질책에서 시작하여 그는 정말로 내 첫 작품을 난도질했답니다. 그 버릇이 평생가게 된 거죠.


그: 자 시작해보자. 단어들을 준비해. 핵심단어들을. 말하고자 하는 핵심이 있을 것 아냐. 그것들을 문장으로 연결해 내는 거야. 문장의 유형을 결정해, 서사와 묘사를 구분해야지. 원인과 결과는 소설이라 해도 개연성을 위해 필수적이지.

나: 지금 시를…….

그: 담엔 소설도 쓰겠달 것 아냐! 개연성이라면 우연에서 필연을 볼 수 있을 때를 말하는 것이지. 꼭 단정할 수는 없으나 대개 그러하리라고 생각되는 만큼의 가능성 말이야.

나: 참인 것 같은 거짓말?

그: 뭐 그 정도로 이해하든지. 논리학에서는 그러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정도를 수량적으로 잴 수 있는 경우만을, 철학적으로는 확실성의 정도를 말하니까. 개연성은 어떤 논증의 전제와 결론 사이의 특별한 관계라…….


어렵사리 “개연성”의 고개를 넘었지만 아직 멀었죠. 그는 아는 것도 많았거든요. 문장들을 멋대로 자라게 내버려둬선 안 되지. 단락이라는 큰 그림을 구상해 둬. 섣불리 정의를 내는 것은 문학작품에선 금물……. 

그는 세계문학사에 남은 명작들을 독파하며 은근히 여유를 부렸죠. 그래도 난 그가 고시 쪽을 택할 것이라 믿었어요. 사법이건 행정이건 또는 외무이건. 어쩌자고 문과대학엘 진학했는지, 그건 지금도 모를 미궁이랍니다. 허영이었을까요? 뭐 정신적인 일에 탐닉한다는. 일직선의 성공을 얕잡아 보는 허영? 다음 몇 토막글은 우리의 숨 막히는 이야기랍니다.


*


독서


그: 독서로 우정을 깨긴 싫구나.

친구: 독서란 원래 우리 머리통을 깨부숴야 되는 거라며. 네 입으로 안 그랬어? 대단한 작가의 말이라고.

그: 건 지금 상관없고. 넌 그러니까 “반항적 인간”을 비난하는 거잖아.

친구: 그럼 넌 가차 없는 혁명제일주의를 단순무식하다고 내몰겠다?

그: 카뮈작품이 그런 말 아닌 것 너도 알잖아, 왜 억지야? 한 발 물렀다고 혁명 끝내자는 것도 아닌데. 생각해 봐, 볼셰비키혁명의 정당성을 위해서도 그런 반항적 인간이 더욱 요청되는 것 아니었겠냐고.

친구: 언제부터 카뮈로 돌아섰나. 혁명 대신 반항? 부조리? 웃기시네. 극한상황에선 정당한 목적만이 정의로운 것.

그: 선한 목적이 악한 수단을 정당화시킬 수 있다고 믿을 순 없어.


이건 『정의의 사람들』을 두고 벌어진 틈이었다. 이런 대화는 흔했다. 난 사실 대학시절만 해도 그를 별로 경계하지 않았다. 경계할 필요도 없었다. 그는 충분히 지적이고 게다가 사려 깊었다. 섣불리 연애한다고 마음을 내놓지도 않았고, 이슈에 따라 확신이 서지 않는 한  데모에도 동참하지 않을 만큼 줏대도 있었다. 그가 정과 혈기에 넘치는 친구들을 잃어가는 동안에도 난 걱정도 비난도 하지 않았다. 친구란 원래 남이고, 남이란 다른 존재이고 그럴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정이 없는 점에서는 우리는 무척 닮았다 싶었다.


독서목록에 스따브로긴이 등장했을 때 친구들과의 상황은 몹시 나빴다. 친구 하나가 그를 사실은 말 뿐인 퇴폐적 스따브로긴에 빗대어 비난했을 때, 독서회의 우정은 송두리째 위기에 처했다. 항상 굿이나 보던 나의 생각으로도 그 부분에선 친구들이 좀 심했다 싶었다. 그가 얼마나 금욕적인가를 친구들이 모르는 것 같았다. 그가 기름진 맛있는 음식을 죄스러워 하는 것, 그가 검소한 차림을 중시하는 것들을 다들 몰랐다. 스따브로긴은 그에겐 상처였다. 그는 한 동안 정체성 위기에 빠졌다. 그는 누구이어야 했을까?


내가 생각하기에 그는 오히려 무신론의 상태, 사람이 신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자살을 감행했던 끼릴로프에 가까운 결벽증의 인물이었다. 자아의지의 완성을 위해서라면 회복불능의 행위도 불사하리라 믿은 끼릴로프. 하긴 그것은 그가 아니라 내가 바라는 어떤 인간의 모습이었는지 모른다. 그 후 『악령』은 우리들의 터부가 되었다.


그렇게 닥치는 대로 읽어치우는 소설들 모두를 어느 정도는 이해했냐고? 천만의 말이다. 줄리앙 소렐의 터무니없는 성공집착이나 애정행각은 물론, 레날 부인의 진정한 사랑도 도저히 알지 못했다. 에마 보바리의 충동은 차라리 저열하다고, 별 증오심도 없이 남편에게 비소를 먹인 테레즈 데께루의 무감각은 어불성설이라 간주했다. 난 소설들을 그저 읽어치우기에만 급급했다. 사람이 쓴 글을 사람이 이해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못 참는 것에 불과했나? 책도 중독이 된다.


독서 때문에 그와 티격태격하는 것은 늘 일상에 속했다. 『죽음의 방식들』 3부작을 놓고는 한참 심각했다. 여자들이 남자들로 “인해서” 죽는다는 내 생각에 그는 화까지 냈다.


그: 뇌진탕과 폐렴이라는 사망진단은 뭔데! 세 번째 죽음은 죽음도 아니야, 승복일 따름이지.

나: “그것은 살인이었다.” - 이 마지막 문장은 뭔데?

그: 여자가 스스로 사라진 장면에서 어떻게 그 자구만을 고집해? 그만 왈가왈부하고 네 것을 써보라니까. 평생 주어 읽은 모든 것들을 버릴 때라야 네 글 한 줄 쓸 수 있을 걸.

나: 악담은.

그: 악담이면 어때서, 바른 말이면 바른 거지.

나: 바르고 바르지 않고, 그게 그리 쉽나?

그: 내 말이 아냐, 그건 정설이지.

나: 정설을 누가 만들었는데? 것도 누군가가 만들어 놓았을 것 아냐?

그: 정설과 사설도 구별 못해? 사설, 사삿사람의 의견이나 중요시하는 버릇이 어쩌자고!

나: 나도 사삿사람이니 그렇겠지.

그: 글을 쓰겠노라 늘 꿈을 꾸는 건 뭔데? 마냥 읽어대기만 하고, 여차하면 이런 저런 글귀나 끄집어내고…….


그렇게 무작정 읽은 것은 사실이다. 세상의 이름 있는 소설들을 섭렵하고서야 내 글을 시작할 수 있을는지도 모른다는 것은 막연한 준비심에 불과했을까? 부수적인 효과도 짭짤했는데, 그땐 책 좀 읽는 애라면 괜찮은 프리미엄이 따라붙는 시대였었다.


글쓰기


정작 글다운 글쓰기를 먼저 시작한 것은 내가 아니었다. 그는 신들린 듯이 진력을 다했다. 하지만 학보사에서 거절당했고, 신춘문예도 두어 번 탈락했다. 그러더니 또 후다닥 글쓰기를 중단했다. 도스토예프스키도 카프카도 아니라면 누구도 더는 글을 써서는 아니 된다고. 이 무슨 황당한 궤변인가. 그래서 내가 슬며시 끼어들기 시작했다. 박경리, 박완서는 왜 아냐? 수지와 수인(오목)의 이야기만으로도? 라고 반문하면서. 나는 어쩌면 그의 탈락을 당연하다고 믿었던 것 같다. 이데올로기에 충실했을 그의 글은 이 시대의 문단에서 한편으론 요청되었을지 모르지만, 그가 두들기는 문은 정반대의 색깔이었으니 말이다.


색깔? 그런 것에 관해서 말하자면 나는 아무런 빛도 아닌 회색이었을까? 그러는 동안에도 세월은 흘렀다. 밥을 해결할 직업도 갖게 되고, 연애(?)랑 결혼도 하고. 하지만 그런 이야기들은 오늘 하려는 이야기와 무관하다. 생략법은 특히 그가 좋아한 화두였으니, 그 또한 이런 생략에 찬성일 것이다. 진부함으로 이루어진 일상의 보고를 생략한다는 것.


어쨌거나 생이 더 이상 진부해질 수 없을 만큼 아스팔트바닥 위를 맴돌고 있을 때, 내가 옛날의 종이들을 헤집어 내기 시작했다. 책상으로 썼던 낡은 교자상아래 밀려들어간 먼지투성이의 원고들은 가장자리가 열 번 백 번의 물걸레질에 밀려 짓이겨 졌지만, 용케도 누렇게 뜬 내용물들을 간직하고 있었다. 얼마나 치기어린 글들인지 쑥스럽다 못해 우습기까지 한 것들. 누구라도 제 글을 읽는 것은 고문이다. 어쩌면 살인이다. 내 경우엔 심했다. 어떤 글에 비해 보아도 내겐 독창성이라곤 없었다. 너무 많이 읽은 탓에(?) 못 쓰는 나. 그가 옳은 것 같다.


처음엔 내가 빛바랜 원고지들을 넘겨보다 지쳐서 일이 그만 시작도 없이 끝나는 줄 알았다. 그러다가 세상 따라서 완전히 생경한 원고지, 줄도 없고 마음대로 변하는 백지화면에 글을 “삽입/수정”하게 되자 사정이 달라졌다. 그는 우선 원고지에 대고 훈수 놓던 일을 못하게 되었다. 내가 <내 글>을 암호로 잠가버리기 때문이다. 이런 신나는 세상.


그가 또 모르는 일로서 이 이야기를 읽고 있을 누군가에게 고백할 것이 있답니다. 나는 누군가 내게 보낸 보배 같은 글귀들을 싸구려 감상적 픽션에 섞어 짜 넣고 있었죠. 곧 사라져버릴 듯이 연필로 쓰인 것, 또박또박 예쁜 팝글씨로 쓰인 것, 편지지도 아닌 화면으로 도착한 것, 더 작은 지우개만한 화면에 떠오른 것들까지, 순간 되살아나는 타인의 글들. 타인의 글을 내 글에 섞어 쓰는 짓거리. 그 짓에 대한 가능한 변명은 오직 하나, 다시는 되풀이되지 않을 그 몇 짧은 순간들을 영원히 간직하고픈, 내가 죽은 다음에까지도 세상에 흔적으로 남기기 위한 몸부림이었다고 말하겠습니다.


나는 악마다. 그 조각글들의 주인에게는 악마다. 나는 소설을 시작한다면서 마음 한 구석으론 기껏 일기를 쓰는 수준에 머물었나 보다. 픽션 또는 팩션에 관련한 괴로움은 여전하다. 나는 물론 내 주인공을 창조하여 실존인물과 섞어 놓는다든지 해서 실존인물을 모욕하는 일 따윈 하지 않는다. 그러나 어느 한 순간 실존인물의 한 작은 조각을 잘라내어 창작된 인물의 어느 부분에 끼워 넣기 때문에 문제인 것이다. 실존인물은 그렇게 됨으로써 생명 한 조각을 도난당하고, 창작된 인물을 독창성을 잃는다. 윈-윈 게임이란 말이 유행어가 된 세상에서, 둘 다 망하자는 싸움은 분명 시대착오적이다.


싸움


너 죽고 나 죽자! - 그렇게 싸우는 사람들도 그건 그냥 하는 말이다. 마음속으론 ‘너 죽고 나 살자!’라고 싸운다. 그와 나는 죽자 사자 싸우는 사이는 아니다. 그저 그가 좀 잘난 체를 하는 편이라서, 내 우정이나 사랑의 장면에까지도 끼어들곤 한다. 그의 충고가 좋은 결과를 가져왔는지는 의문이다. 이렇다 할 우정도 사랑도 쌓아둔 것이 없기 때문이다. 경우에 따라서 남편을 또는 아내를 버려두면서 까지도 친구를 위로하기 위해 달려갈 인사가 있는가? 세상 친구들의 우정을 다 버리고라도 아내 또는 남편의 사랑에 매달릴 것인가? 어느 쪽도 경우의 수에 해당하지 않으니 모순이다.


쪽지의 글자들이 춤을 추듯이 살아난다. 퍼즐조각들이 한꺼번에 일어나면서 풍선처럼 바람을 먹은듯하다. 그것들이 다시 한꺼번에 작아지기 시작하더니 검은 바늘들이 되어 내 가슴으로 향한다. 그렇게 무수히 쏘아져 내게 꽂혀버린 바늘 끝에는 독이 묻었을까? 헤집어 뒤집어 보아도 보이지는 않으나 녹아버린 내 가슴 한 자락.


그가 읽을 수 있었다면 당장에 태클을 걸 것이다. 네 이야기를 쓰라는 게 아니잖아. 네가 창안한 이야기라야 한다니까. 그런데 지금은 암호 때문에 읽지 못한다.


헤어지기 30초 전, 어두운 밤길. 차에 타려는 동작으로 몸을 구부리려는 찰나, 그 손이 내 팔을 잡는다. 가볍게도 아니고 너무 무겁게도 아니게. 알맞은 무게로 알맞은 온기로 팔을 잡는 손. 5초, 10초…… 나는 그대로 좌석으로 몸을 내린다. 아 아까운 10초. 또는, 그 오른 손 바닥 2/3쯤이 내 왼쪽 손등에 머문 3초, 언젠가의 3분을 30분을 불러내는 마술……


걱정할 일은 아닌 것이 손의 주인과 팔의 주인, 또는 오른손의 주인과 왼손의 주인은 만날 일이 없을 것이다. 누가 15%쯤 실존인물이고 누가 30%쯤 창작인물인지 모르기 때문이다. 한 가지, 그는 내 글을 보지 않고서도 내가 뭘 쓰고 있었는지 아는 게 참 희한하다.


그: 그 순간의 그 마음의 활자화를 당사자는 절대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 잊지 마. 넌 차라리 화석화될지라도 기념물을 원했으나, 마음이란 것이 살아서는 화석이 되는 게 아니지.

나: 알고 있어, 주어 담을 수 없는 물인 줄. 하지만 아무도 모르는 채로 누군가가 누군가의 산소가 된다면, 그게 그리 나쁜 일이겠어?

그: 아니지, 네가 산소라고 들여 마시는 그것이 네겐 일산화탄소야. 일산화탄소중독.

나: 연탄가스 중독?

그: 그래, 일산화탄소.


일산화탄소중독. 그의 말이 옳을지도 모른다. 두통에서 시작하여 현기증과 이명. 그렇게 시작되었으니까. 누군가를 생각하면 두통이 일고 현기증이 인다. 희미한 한 두 마디가 귓속에서 웅얼거림이 되어 이명 현상이 생긴다. 무슨 말인가 들리는 것 같은 착각. 그 사람의 면전에서 홍조가 생기지 않았으리라는 법이 없다. 내가 나를 보지 못할 뿐. 일산화탄소중독 증세 중엔 홍조에 이어 발적도 따른다고 했다. 마음처럼 축축한 날, 이 두드러기가 발적이 아니고 무엇인가. 호흡은 가늘고 불규칙해진다.


누군가 그렇게 물은 적이 있다. 부정맥이신가요?

(속으로만) 부정맥이라고요? 그래요, 가슴이 제 템포에 맞춰 뛸 수 있을 리 없죠.


코를 골게 되는 증상을 제외하곤 영락없는 일산화탄소중독 그대로다. 저체온도 그렇다. 누군가 앞에서 알 수 없는 부끄러움에 피어난 홍조도 아무 소용없다. 누군가의 냉기는 상상을 절한다. 몇 미터 밖까지도 유효하다. 평소의 체온을 유지할 수도 없을 만큼 그 냉기는 사람을 얼리고 만다. 그러다가 호흡곤란이 오는 줄도 모르는 사이 호흡이 멈춘다. 일산화탄소중독에서처럼, 정지된 감정은 호흡곤란을 일으키다가…….



정신과 육신은 하나라고 한다. 평소에 의사는 연령에 비해 많이 촘촘한 젖이 오히려 약간 불안한 형국이라 그랬다. 의례적인 정기검진에서 젖이 아닌 갑상선에 문제가 발견되었다. 1㎝에 못 미친다지만 기분 나쁜 이상한 물체임엔 틀림없다.


의사: 조직검사 소견은 괜찮습니다. 콜로이드갑상샘종이라고.

나: 괜찮다면, 수술 그런 것…….

의사: 아 그 염려는 안하셔도 되겠습니다.


이듬해 봄엔 간헐적이지만 참을 수 없는 두통이 계속되었다. 고개를 숙여 밥상을 내려다볼 수도 없었다. 검사는 아프고 길어만 갔다. 접형골이상정체낭종. 두통은 간헐적이지만 멈추지 않는다. 또 한 해가 가도 통증은 여전하다. 서울로 검사를 옮겼다. 똑 같다. 곧 죽는 건 아니란다.


다시 이태만의 초봄, 무서운 꿈에 놀라 종합검진을 받기로 했다. 갑상선기능저하. 위가 가진 대여섯 가지 병적 증상. 담낭의 용종 두세 개. 간의 물혹. 왠지 불안했던 췌장은 아니었지만, 우와! PET 검사를 했다. 죽고 싶지 않구나. 두 해 봄이 지났지만 그 상태를 유지한다. 매번 검사 갈 때마다 알 수 없는 냉대를 받는다. 예약용지를 가져가지 않았거나 무턱대고 이름을 대려다가 그런다. 종합병원에선 이름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몰라서다. 병원의 나는 여섯 자리인가 일곱 자리의 숫자다. 숫자가 인격적인 감정을 가지면 곧 불쾌한 일을 당한다. 서라면 서고 가라면 가고 기다리라면 기다려야 한다.


가장 금기는 왜? 라는 질문이다. 그 답은 미리 나 있다. 아프니까. 아픈 죄인이니까. 죽을지도 모르는 병에 걸린 죄인. 무엇보다 자신의 주인공들에 생명력을 불어넣지 못하는 죄인. 그는 병이란 건강을 해치는 생활습관 탓이라고 나를 나무라는 눈빛을 한다.


죽음


병의 다음 단계는 죽음이다. 물론 병과 관련 없는 죽음도 더러 있다. 대량죽음들이 그렇다. 예기치 못하기로는 교통사고가 가장 흔한 죽음이고, 아니 자연재해도 있다. 쓰나미와 지진들. 그건 내가 감히 기술할 범위를 넘는다. 그 의미와 무의미를, 그 우연성과 필연성을 기술할 위인들은 따로 있다. 글을 쓴다고 다 같지는 않은 법이다.


규칙들을 자신의 규범으로 삼는 인간은 몰취미하거나 질 나쁜 작품을 내놓지는 않겠지, 법규나 복지를 모델로 삼는 자가 참을 수 없을 이웃이나 특별한 악인이 될 리가 없듯이. 그렇지만 규칙이란 자연의 진실한 감정들과 그 진실한 표현을 망치고만다고 말해도 될 게야. 


그렇게 말한 위대한 작가가 있었다. 벌써 200년도 전에, 그것도 스물 몇 살에 쓴 작품 속에서 그런 말을 했다. 그러니 위대함의 크기는 글쟁이들 간에도 엄연히 존재한다. 이렇게 말한 주인공은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실연과 자살이라는 세기적인 유행의 틀이 만들어 졌다.


그리고 정말 200년쯤 지나서도 지치지 않고 죽음의 이야기들이 전개된다. 우리가 정말 심하게 싸운 건 앞에 말한 『죽음의 방식들』 때문이었다. 실제로 한 여자는 뇌의 부상으로, 다음 여자는 폐렴으로 죽는다. 처음 여자는 정신과의사인 남편과의 불화와 증오 속에서 불안과 공포에 떨면서, 웃음, 부드러움, 기쁨의 능력들을 박탈당한 채 열등한 인간으로 취급을 받았다고 느낀다. 여자는 이전의 다른 여자들이 왜 말 한마디 없이 사라졌을지 놀라워하면서, 자신이 세 번째 아내로서 자신을 수정해가는 일에 더욱 놀란다. 결혼은 양성간의 투쟁이다. 아랍 어딘가를 거치는 힘든 여행 중에 여자는 뇌를 심하게 다쳐서 죽는다.


나: 그건 단순한 뇌진탕이 아니야. 죽음으로 “밀려간” 것이지.

그: 그러니까 일부러 넘어져서 뇌를 다쳤다고?

나: 생각해봐, 이건 패러디야. 같이 살다 헤어진 유명작가의 유명작품에서도 아리따운 여자애가 그리스여행 중에 뇌를 다쳐서 죽지 아마? 여자는 어린애 같고 그러니 열등하고, 그리고 죽는 거야. 너흰 실제로도 작품에서도 여자를 죽인다!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아.

그: 그럼 두 번째 여잔 어때? 폐병을 남편인가 애인이 옮겼어?

나: 그건 아니지만. 애인이란 작자가 여자를 발가벗겨 작품을 썼으니 그게 간접살인 아냐? 그것도 “영원히 고상하고 아름다운 여성”이길 바라는 남자들의 헛칭찬에 노심초사하는 미숙한 여자를. 여잔 남자에게 몸과 마음을 주는데 남자들은 여자를 문자화한다면, 대상화된 여자는 연인에 의해 “도살된” 것처럼 느낄 밖에. 자기 고유의 역사를 박탈당한 채 한낱 소재가 되어 대중 앞에서 진열되고 있는 것처럼. 그 기분에 공감이 안 돼?

그: 그럼 처음 여잔 정신분석가인 남편이 정신분석의 대상으로 삼은 것 그것에 가장 상처를 입었단 말이야 참? 작품 이야기 말고 한번 가정해 봐, 여자들은 만일 피부과의사인 남편이 실험적으로 젊어지는 시술을 해줘도 그렇다 할 건가?

나: 난데없이 피부과는? 픽션과 사실을 혼동한다고 나를 나무랄 땐 언제고!

그: 그 부분 취소할게. 이제 넘어 가자.

나: (어라, 양보할 때도 있네!) 좋아, 세 번째 죽음을 “살인”이라고 인정한다면.

그: 또 또. 그런 일은 없을 거야. 세 번째 여자는 M이라는 이름을 가진 확실한 제 자신 속으로 스며들었잖아. 이름도 없이 “나”라던 여자는 M에서 빠져나왔던, 비정상적으로 감수성이 많은 여성성이었을 뿐이야. 유부남과 사랑에 빠진 여자. 글을 한 줄도 쓰지 못하는 작가. 그런 여자가 이제 제 정신을 차리고 원래의 제 자신, 이성적인 M으로 되돌아갔을 뿐인 것. 여기서 살인이라? 게다가 네 진짜 문제는 뭔 줄 알아? 이 작가의 죽음마저 세 번째 소설의 죽음 넘어 네 번째 죽음이라 떠드는 것이지. 꼴페 나부랑이들!

나: 꼴페? 꼴통페미니스트는커녕 그냥 페미니스트도 못된다!


다만 내게서 창작이란 채워지지 않은 사랑에 대한 보상을 위해 외부에서 유발된 상처들을 속절없이 치유하는 과정이다. 나는 그 네 번째 죽음을 흉내 내기로 했다. 세 죽음의 작가가 그 세 번째 죽음을 실 인생에서 실연했듯이. 그가 끼어든다. 아니지, 그 여잔 골초였어. 침대에 누운 채 담배를 피우다 불을 낸 것이라니까!


나는 흉내보다는 패러디를 준비한다. 그렇담 그가 사라져야 한다. 그가 내 인생에서 사라져야 한다. 그는 나를 무시하면서 군림해 왔고, 나는 그에게 종속되어 그에게 결정권을 유보한 채 공존해왔다. 그를 사라지게 하는 일에 내가 실패한다면 남은 것은 내가 사라지는 것이다. 나의 죽음이다.


다른 이야기 하나. 교도소에 선행(?)을 하러다니는 친구가 있었다. 교도소에는 일반인의 예상대로 남자수인들이 훨씬 더 많단다. 그 친구가 이야기하기 전에도 상식적으로 다 알고 있던 사실이다. 그런데 살인 등 중죄인 비율은 예상을 뒤엎는단다. 남자죄수들이 살인자일 비율을 그냥 대충 10%도 안 된다고 한다면, 여자죄수들이 살인자인 경우는 그 몇 배란다. 살인자 수가 많다는 것이 아니라 그 비율이 높다는 것이다. 그래도 예상과는 너무 다르다.


친구: 걸 여태 몰라? 여자들은 가정에서 대개는 억압을 당하는 관계에 놓여 있잖아. 부당한 일들, 억울한 일들을 참도록 길러졌으니까. 헌데 쥐가 완전한 궁지에 몰리면 고양이를 문다지 않았어? 극한상황에 내몰리면, 억수 밀리던 여자가 상대를 죽이고 만다는 것이지. 평생 기세등등했던 강한 종족을, 자신의 남편을, 애인을, 아무튼 가까이서 그녀들을 억압해온 강한 남자를. 


나도 여자다. 내가 연출할 죽음의 패러디를 분류하자면 자살보다는 살인의 가능성이 높다. 그는 언제나 옳았고, 언제나 강했다. 멋모르고 피아노연주의 추상적 음체계에 빠져들려는 순간에는 타인의 체계를 답습하는 무의미성을 강조하여 제동을 걸었다. 지하의 미술실에서 바다그림을 연습하면서도 행복했던 순간에는 구경하지도 않은 바다를 모사한답시고 그것도 덕지덕지 물감을 발라서 바닷물을 더럽히는 맹목을 조롱하여 붓을 놓게 만들었다. 소설책을 읽고 또 읽어 외우다시피 하는 밤에는 소설 속 주인공들의 긴 긴 남의 나라 이름들을 외우는 바보천치 같은 짓을 책망했다. 이름이 대수냐고. 실존한 적도 없고 그저 누군가의 머릿속에서 태어났을 뿐인 인물들의 이름이 대체 뭐냐고.


그래도 나는 때때로 소설의 인물이 실제 사람들 보다 오래 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잠기곤 한다.


그: 오래 살아? 오래 산다고 착각하는 너 때문이지. 그건 오래 산다기보다는 그냥 환영이야. 살아본 적이 없는 환영.

나: 환영은 무의미한 거야? 왜 내겐 그 환영이 실제로 살았을 많은 사람들보다 더 실제 같을까? 내가 쓰려는 이야기도 실제 같을까, 환영 같을까? 실제 같을 때 오래 사는 걸까, 환영 같을 때 오래 사는 걸까? 내 말은 이야기가…….

그: 넌 아니야. 넌 안 되겠어. 내가 할게. 네 이야기를 내가 쓸게. 약속해, 꼭 쓰겠다고. 아무리 글을 쓸 시간이 없어도. 글을 쓸 시간이 없을 뿐 아니라 네 이야기를 쓸 생각은 전혀 없지만. 그래도 다른 방법이 없네, 내가 쓰겠어.

나: 왜 그렇게 선선히 봐주려는데?

그: 봐주고 싶어서가 아냐. 넌 안 된다니까. 이거 보아. 여기 네가 써 놓은 글들은 기껏 세 죽음의 양상이 무슨 학습과정처럼 기술되어 있을 뿐이야. 여전히 독후감 수준이네, 안 그래?

나: 정리해 본 거야. 그 다음에 이어서 내가 쓰려고, 네 번째 죽음 이야기를.

그: 아니 수십 년을 두고 싸워도 우린 아직 여기야? 남의 글 읽는 건 그만 하라니까. 네 뜻 가는 대로 글 나오는 대로 네 이야기만 창작하는 거야. 그게 안 되면 그만 두든지. 아이, 애초에 너랑 이렇게 사는 게 아니었다. 넌 그냥 나타나지 말았어야 했어.


넌 나타나지 말았어야 했어.


그것이 암호였다. 우린 상대에게 그 암호를 말하는 순간 사라지게 될 운명이었다. 암호를 내뱉은 건 내가 아니었다. 여성성은 늘 도태된다. 네 번째 죽음의 패러디도 픽션에서와 같은 패턴이 되고 말았다. “그것은 살인이었다.”


*


남편은 평상시처럼 늦은 저녁을 마치고 귀가한다. 아내가 저녁시간에 집에 없기는 드문 일이라서 의아했지만, 전혀 없는 일도 아니어서 그냥 씻고 쉬고 그러다가 시계를 본다. 메모도 연락도 없이? 한 밤이 되어도 소식이 없다. 희한한 일이로군. 별 일이야.


이튿날은 처형에게 전화를 한다. 꺼져있다. 둘이서 어딜 갔을까? 점심이 기운다. 서둘러 아내의 흔적을 뒤진다. 허나 아내의 뒷방문은 닫힌 채다. 쓰다 둔 메모지들, 원고지들 때문이라며, 아내는 외출하려면 늘 방문을 닫아건다. 연락이 된 처형이 흠칫 놀란다. 처형은 풀냄새와 흙냄새를 풍기며 들이 닥친다. 썬 캡에는 낮에 묻은 햇살이 아직 박혀 있다. 경쾌한 바지에 시원한 셔츠 차림이지만 귓불은 도톰한 풀빛 보석으로 묵직하다. 처형은 생각보다 덜 염려하는 표정이다. 얘가 또 병이 도진 거예요? 제부, 애초에 저런 작업을 말렸어야…….


다 저녁이 되어 방문이 안에서 열린다. 아내가 나타난 것이다. 한 5분 전에 방안에 들어갔다는 듯 당당한 표정이다. 왜들 그렇게 봐? 라고 묻는 듯, 아무렇지도 않게 욕실로 간다. 외출해서 돌아왔을 때처럼 욕실로 직행한다. 그 버릇은 예외가 없다. 나설 땐 오히려 준비 시간이 짧지만, 귀가해선 화장실을 오래 쓴다. 한참 만에 말끔해진 얼굴로 소파를 기웃거리고는 곧 부엌으로 향할 태세다.


아내: 여보, 미안해요. 얼마나 잤는지. 언니, 공치다가 왔구나. 배고픈데 뭘 빨리 만들지?

처형: 나 일어서야 해, 이리 좀 와 앉아. 어쩌자고 제부 걱정하게 만들어?

남편: 어디 걱정 정도인가요? 어떻게 꼬박 하루를 게 박혀있어? 뭘 좀 먹기는?

아내: 그냥. 일은 진척이 안 되고, 주말이 되었나 싶고, 실컷 잠 좀 자려던 게. 사실 비몽사몽으로, 그래도 한결 개운해요.

처형: 그래도 그렇지, 방에 틀어박혀 있더라도 알리긴 해야지. 요즘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말없이 사라진 줄 알았지 모두.


*


내가 가끔 완전히 변덕인 것을 동기간의 정으로 언니가 제일 못 참아 한다. 혼란된 나와 그의 싸움을 어렴풋이나마 아는 건 사실 언니뿐이다. 언니는 부엌으로 향하는 내 꽁무니를 따르며 눈을 치켜뜨며 묻는다.


언니: 그런데 너 누구야? 어느 쪽으로 갔느냐구, 그 장난 때문에 내가 다 아슬아슬해 죽겠다. 네 남편 좀 그만 괴롭혀라.

그(나): 남편을 괴롭혀요? 직장 다니고 깔끔하게 의식주 마련하고, 틈틈이 내 일하는 것이 누굴 괴롭히는 건 아니죠.

언니: 아 또 논리 시작이구나. 그럼 그쪽으로 가버린 게야? 너 그럼 제발 그대로 살아. 더는 왔다 갔다 하지 말고. 나도 그쪽이 훨씬 편타. 반듯하고 질서 있고…….

그(나):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만 염려마세요.

언니: 왜 염려가 안 돼? 너 보면 뻔해, 네가 어질러 놓은 것. 사람이 방구석에 들어서 그리 지내다니. 종이쪽지들에 벗어던진 옷가지에 슬리퍼는 또 왜 이리 짝으로 굴러. 아무리 너 혼자 쓰는 방이라지만.

그(나): 됐거든요. 그냥 택배 방쯤으로 해 둬. 택배 받은 것, 택배 보낼 것……. 아직 완전히 내 것이 되기 전의 물건들이 쌓여 있는 창고.

언니: 게서 네 글을 쓸 수 있게 되었노라고 눈물 글썽일 땐 언제고! 택배는 또 무슨 암호야?

그(나): 그게, 물질이란 게 나의 소유라는 것이 좀 애매하죠. 내게 온 선물도 상자를 열어서 내가 나와 관련시킬 때만 내 것이 되죠. 기차가 서울 부산을 아무리 오가도 서울 것도 부산 것도 아니듯이 말이야. 내 밖에 있는 것은 사람이든 물건이든 택배처럼 왔다가 갔다가 그러는 것이죠.

언니: 뭐야, 그 궤변들 보니 정말 본업에만 충실하기로 작정한 것이구나. 잘 되었네.

그(나): 아니 뭐. 남아있는 저 작업들은 잘 마무리할 거요. 다음 일은 모르겠어, 저 창고를 저리 놔둘 일이 있을지. 회사일로도 벅찬 시간에, 저기 태반은 불필요한 일들이었고.

언니: 회사라고? (아니, 본업을 회사라고 에둘러 말하는 저 말투. 이 애가 이젠 그 애가 되었구나. 내가 걱정할 필요 없는 오달진 애.) 그래, 사람이 온갖 일을 다 할 순 없지. 너 좀 정신이 개운해진 듯하니, 하루 이틀 잠에 빠져도 좋은 구석이 있네.


뒷방 서랍 속에 갇혀버린 원래의 나는 사람들이 있는 어디에도 없을 것입니다. 언니는 염려와 다르게 당찬 내 현재의 그와 대화를 나누면서 안심을 합니다. 그렇게 우리 집을 나서는 언니는 나의 네 번째의 죽음을 서러워해주지도 않습니다. 나이고 싶은 나는 다만 네 번이 아니라 열네 번을 스물네 번을 죽었지만, 언니는 물론 아무도 더는 알지 못합니다.(끝)

 


...................................


작가의 말 (창작노트)


글을 읽고 또 읽다가 겨우 글쓰기를 시작한 사람은 부지중에 대선배 작가들의 글을 훔칩니다. 동서고금 위대한 작가들의 모범은 남성들이 태반입니다. 새내기가 만일 여자라면 더욱더 모범들에서 탈피하려고 무진장 애를 씁니다. 형편없는 작품이라 하더라도 자신의 것이고 싶어서죠. 그러나 오랜 관습의 눈에 비추어지는 자신이 초라해져서, 번번이 대부분의 남성작가들의 현란한 모범에 휘둘리고 맙니다. 언어의 구조조차도 합리적이거나 분석적인 가치로 해부된 세상에서 자신의 언어를 발견하려는 일은 늘 좌절에 부딪습니다. 작가로 살자면 자칫 여성성을 포기해야할 위기에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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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서용좌
수필-기고2006. 9. 20. 20:52

직이는 림자

 

<문학공간> 2006, 9월호 (202호)


“너는 왜 쓰는가? 너는 왜 쓰지 않을 수 없는가?” ― 젊어서든 아니든, 글을 쓰는 세계로 ‘떨어진’ 사람들에게 쏟아지는 첫 질문이다. “글이 밥 먹여 주느냐? 글이라는 것이 대체 인간사에 무엇이냐?” 말로 하지 않더라도, 의심은 눈길에서 눈길로 아프게 찔러온다. 선뜻 대꾸할 말이 없다. 곰곰 생각해 봐도 없다. 정말 아무 것도 ‘들여놓는’ 것이 없어 보인다. 글은 홍수로 고립된 계곡 마을에 식수 하나 건네지 못한다. 쓸려 무더기진 쓰레기더밀랑 까딱도 못한다. 커피잔 늘어놓고 줄담배 입에 물고서 책상에 죽치고 있는 문사들이라니, 장맛비 피해를 외면하고 골프나 친 위인들보다 한 치도 더 낫지 않다.

그런데 왜? 인류가 있고 문자가 아직 없던 시대까지 거슬러 가도 ‘문학’이 사람들과 더불어 살았던 흔적이 남아있다. 헬레니즘, 헤브라이즘 그리고 다시 휴머니즘 ― 도도히 흐르는 인류의 정신사 어느 시대에도 문학은 우리를 동반했다. 제대로 학문도 아닌 그것이, 제대로 예술도 아닌 그것이. 그것이 그렇게 된 것은, 문학이 현실과 꿈 사이의 매개체와도 같은 존재인 때문일 것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삶은 고달팠고 여전히 고달프다. 방탕에 이르는 부패한 황제 아래서도 고달팠고, 금욕적 수도사가 지배하는 신정정치 아래에서는 신의 나라가 가까이 왔음에도 고달팠다. 자유와 평등과 박애의 기치 아래 신분제가 철폐되었어도 고달프다. 언제나 다시 태어나는 귀족들. 혈통귀족 양반님네가 사라지기도 전에 돈귀족이 새 양반님 행세다. 지배하는 일부가 있는 한 지배당하는 일부가 자동으로 생성된다. 결핍으로 고통당하는 일부가.

그러나 결핍은 외부에서만 연유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바람직한 사회화는 본래 다양한 개성의 인간을 위축시켰다. 개인은 인류역사의 진보를 위해 본성의 충족을 포기(당)해왔다. 그래서 내면은 늘 ‘다른 현실’을 꿈꾼다. 이 꿈이 언어예술작품으로 빚어나온 것, 그것이 문학작품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지지리 밥도 못 먹여주는” 문학이 이 첨단과학의 세상에서 명줄이나마 보전하겠는가?

이때 행여 우리는 문학의 효용성 논란에 풀이 죽어서는 안 된다. 세상에는 쓸데 있고 없는 것이 따로 없음을 성현들은 벌써 알았다. “있는 것이 좋은 것이 되는 것은 없는 것을 씀으로서라.” 혹은 “땅이라는 것은 턱없이 넓고 크지만 사람이 걸을 때 소용되는 곳이란 기껏해야 발이 닿는 지면뿐이요, 그렇다고 발이 닿는 부분만 재어가지고 그 둘레는 황천에 이르도록 깎아 버린다면 사람들에게 그 땅이 그래도 쓸모가 있겠소?”라고. 디디고 선 땅을 디디고 설 수 있기 위해 무수한 땅이 필요하듯이, 현실을 살아갈 수 있기 위해서 우리에겐 상상력이 만들어내는 가상의 공간이 절실하다. 아니면 우리는 질식하거나 로봇으로 전락할 것이다. 결핍과 갈등은 우리의 내면세계를 더욱 깊어지게 하고, 이 내면을 끌어내는 것은 상상력의 힘으로서만 가능하다. 상상력은 자신조차도 공감하기 어려운 내면을 개연성으로 설명해낼 줄 아는 힘이다. 상상력이 우연과 혼돈을 필연성으로 바꿔낼 때, 작품세계는 리얼리티를 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어쩌나, 문학에게 이 시대는 우호적이지 않다. 그렇다고 글쓰는 이의 열악한 생존조건이 문학을 위태롭게 하지는 않는다. 진정한 위협은 우리가 현실에 순응하고 꿈을 꾸지 않을 때, 우리의 상상력이 더 이상 깊은 내면의 샘을 퍼 올리지 못할 때, 그 파국이다. 상상력은 꼬마아이가 움직이는 긴 제 그림자를 발견하고서 신명이 났을 때부터 시작된다. 그림자 없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면, 문학을 놓아선 안 된다. 읽건 쓰건, 그 차이는 그림자를 몸 앞에 두는가 뒤에 두는가 일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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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서용좌
수필-기고2004. 3. 1. 21:43

 서정인 선생님 서재 탐방기 
                                      영어로 글읽기와 한글로 글쓰기 

                                                                  
소설시대 7호

심부름


전주시 덕진동, 사람들이 호반촌이라 하는 곳, 전화로 길 안내해주신 호반2길을 찾다보니 아담하고 질서정연한 주택가가 나온다. 오가는 사람 드문데, 길까지 마중 나오신 분이 『달궁』의 서정인 선생님이시리라.


이미 누렇게 찌들은, 87년 초판 열흘 뒤에 나온 2판『달궁』을 들고 선생님을 뵈러온 터다. 실로 십수 년이 지나 작가와 마주앉은 곳, 전기스토브가 막 켜진, 차라리 서늘한 거실이다. 누렁이와 흰둥이가 힘차게 짖던 햇빛 밝은 바깥 풍경과는 다르게 현학의 무게가 내린다. 서재에 쌓여있는 고서들의 무게일 것이다. 난생 처음 하는 숙제를 위해, 마음 다잡고 준비한 말문을 연다. 일천한 역사의 한국작가교수회에서 그나마 새내기인 제가, 평소 말을 안 듣는 사람이지만 이건 기꺼이 하고 싶은 심부름이라서… 더듬더듬. 선생님은 작가와 교직을 겸하는 같은 종의 운명에 일단 우호적이시다. 되었구나!



우선 가장 진부한 수순으로 여쭙는다. 사상계에 발표된「후송」으로 등단하실 때, 이미 대학원에 진학하셨고 또 교직에 계셨다 했는데, 어떻게, 왜, 글 쓰는 일에 투척하셨나요? 보통 말하는 60년대 당시 특유의 미학적 자의식에 관해서는 제 개인적으로는 경외감을 지니고 있습니다만, “문학이라는 것에 기꺼이 자기 삶을 던지고 싶은 욕망, 그 근원적인 생의 충동”을 무한히 존경한다는 뜻입니다.


왜 썼냐? 그냥 썼다. 그렇게 말씀하실 차례다. 정성들인다고 치장해서 내놓은 우문에 현답으로. 말씀 대신 『달궁가는 길』을 가리키신다. 정년을 기념하여 문단과 학교의 동료와 후배들이 출판한 책이다. “서정인의 문학세계”라는 부제답게, 선생의 “작품세계를 총체적으로 재조명”하는 편집이다. 머리글에도 나와 있다. “삶과 문학을 총체적으로” 되돌아보려던 기획 의도를 방해하고 간섭한 큰 훼방꾼이 바로 선생님이셨다고. 그런데 “술친구 서정인”만 예외로 삶을 들려준다. 글쓴이의 기우와는 달리, 절대로 옥에 티가 아니라 청자연적의 여유다. 여기 부록에 읽어 보세요.


예, 읽어 보았습니다, 한국일보에서. “나는 왜 문학을 하는가?” 시리즈로 볼 때보다는, 여기 이 책에 “왜 써?”라는 제목으로 나오니 더욱 선생님 말씀답습니다. “아무 것도 모르고 평생의 업이 된 글쓰기에 뛰어들었어요. 중학교 때 몰래 읽었던 연애소설이나 삼국지가 재미있어서, 고등학교 때 국어선생님의 칭찬에 고무되어서. 어쩌면 내가 잘났다는 것을 과시할 방법이, 아니, 내가 이 세상에 있다는 것을 나타낼 방법이 달리 없어서, 또는 어떤 갈증 때문에, 어쨌든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일판이 벌어졌다” 그 비슷하게 말씀하셨지요. 왜 쓰냐? 그동안 그저 글을 써왔다고.


누구는 노름 빛을 깊기 위해, 누구는 혁명가와 그 혁명가가 처형한 왕의 아들 둘 다를 위해서 시를 쓰기도 했다는 일화를 들며, 심지어 가슴 속에서 화산이 폭발하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서 썼다는 바이런, 목이 잘리는 것같이 느꼈을 때 살아남기 위해서 시를 썼다는 에밀리 디킨슨의 이야기를 (다들 이름 없이) 예로 들면서도, 자신은 “그냥” 썼다고 하셨다.


그렇습니다. 말을 하래서 하지만, 문학 공부를 하고, 책을 읽고, 글 쓰는, 쓰려는 사람들은 이유가 없습니다. 좋아하니까. 갑자기 다소 고조된 어조이시다. 최근에 어떤 상업학교 교장선생님이 말하기를, 자기 학생들이 무척 자랑스럽다는 것입니다. 생산성이 높으니까. 문학이 뭐 필요하냐. 시, 소설 그런 것은 뭘 생산해 내는가. 아무 것도 아니다. 아무 필요 없다, 그러는 겁니다. 이래서야 되겠어요? 바로 그런 사람들을 위해서 글을 써야 합니다. 하긴 또 어떤 학생이 그럽디다, 아무개작가는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 쓴다고, 써야 한다고 말하는데, 그 정도라야 작가의식이라 말할 수 있지 않겠냐고. 누구를 지칭하는지 알만 합니다. 하지만 주먹을 쥐고 혁명에 나서는 것과, 주먹을 쥐어야 한다는 생각의 전환을 가져오게 하는 것, 그것은 차이가 있습니다. 작가는 의식의 변화를, 행동가는 행동을 꾀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자기의 분야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 작가라면 사람들로 하여금 보게 만드는, 볼 눈을 가지게 하면 됩니다. 문학이 왜 필요한가, 바로 그것입니다. 


무엇을


선생님께선 무엇을 쓸 것인가를 보기 위해서 눈을 가져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욕심에 눈이 어두우면 눈이 있으되 못 본다. 마음을 비우면 물건의 덧없음이 보인다. 욕심을 버리기가 어렵다.” 그럼 마음이 욕심입니까?


세상 많은 일들이 별들의 운행처럼 틀림없이 필연일 것이오. 허나 내게는 우발적인 사고들로 여겨져요. 그러니 나는 길을 잃고 어둠 속을 헤매고 있지요. 왜 쓰느냐는 이 캄캄한 미로를 벗어나기 위해서고, 어떻게 쓰느냐는 그 길을 찾는 것. 이 세상은 그것의 의미를 그것을 볼 눈을 갖춘 사람에게, 그 갖춘 정도에 따라서 조금씩 다르게 보여주는 것이오.


선생님께서 말씀하시는 “볼 눈”을 우연히 제가 공부하는 독일 작가도 똑같이 말했습니다. “보는 눈을 가진 사람에겐 사물이 뚜렷해진다. 그런 사람에게는 사물을 통찰하는 일이 가능해질 것이며, 그러면 언어를 수단으로 통찰하고 그 안으로 꿰뚫어보는 일을 시도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같은 의미로 보아도 되겠습니까? 전후 독일 작가로는 처음으로 72년에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하인리히 뵐인데, 그는 인간적인 “촉촉한” 눈을 권했습니다. 라틴어의 “유머”가 독일어로는 “습기, 촉촉함”을 의미한다고.


열두시, 아니 『아홉시 반의 당구』, 그 작가 말이군요? 영역된 것을 읽었지요. 누구라도 작가는 우선 자신이 잘 보아야 합니다. 사물을 볼 수 있는 것, 독자에게 사물을 볼 수 있게 하는 것, 그런 것이 쓰는 이유와 또 목적이 되겠지요, 만일 목적이 있다면.



어떻게


그런데 어떻게 쓰냐? 이것은 나의 평생 문제입니다. 쓰기는 항상 새로운 실험이다, 이 말은 나로서는 형식이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형식? “형식과 신념”이란 제목으로 선생님의 한국문학창작상 수상소감이 있다. “형식과의 싸움은 끊임없는 실험으로 나타나지만, 이때 실험이라는 말은 처음 해 본다는 뜻이고, 그 처음이 마지막입니다.” (“처음의 낙하산도 반드시 펴져야 하는 것처럼 반드시 작동한다고 믿는 신념” 아 그런 것을 가질 날은 멀구나. 큰일이네.) “달을 그리되 달을 그리지 않고 구름을 그리는 것은 구름에 뜻이 있는 것이 아니라 달을 보이게 하기 위해서다”고 인용하신 것이 얼마나 어렵고 오묘한 주문인가. 시시각각으로 변화무쌍한 구름을 그려 달을 그린다?


형식미라면 선생님의 작품 중에서도 특히 「강」은 “현대소설사에서 가장 모범적인 단편소설 중의 하나”로 정평이 났지 않습니까? 절제된 문장, 단일한 인상과 효과, 통일된 구성, 인생의 한 단면을 통찰하는 능력 등으로, 교과서적 단편소설 미학의 최고봉으로 격찬되고 있는데, 그것을 대표작이라 생각하십니까? 아니면 누구든 떠올릴 『달궁』입니까? 혹은 시기별로 등단작「후송」이나 「강」을 거쳐, 『달궁』의 고지, 그리고 「베네치아에서 만난 사람」등을 통해 어떤 특징과 차이 또는 변화를 의식하십니까? 아니면 그저 가장 좋아하시는 작품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어미한테 어떤 자식이 제일 예쁘냐는 식이지만.


속으로는 내가 처음 빠져든 『달궁』이라 하시길 기대한다. 그런데 잠시 머뭇거리신다. 그게 굳이 말한다면 「뒷개」, 그리고 「벌판」… 그 언제 목포엘 간 적 있었어요. 종점 분위기, 싸한 비릿내가 늘 코끝에 머무는… 그런 것 잊을 수 없는 곳이 바로 뒷개지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읽고 해설해 놓은 것만 따라 읽어요, 다른 것들 좋은 것 많은데….


‘뒷개’는 선생님의 회상에 잠긴 듯한 설명으로 어디 부둣가로 상상이 되지만, ‘벌판’은 어디 멜까. 선생님 작품들도 다 모르면서 여기 선 것이 부끄럽다. 「뒷개」는 『달궁』의 “바다 횟집” 분위기를 떠올립니다, 아닙니까? 그런데 (저부터도) 사람들은 한번 명이 나면 몰리는 경향입니다. 「강」은 아예 학교 숙제의 표적이 되었고, 예컨대 「후송」만 해도 이명증 같은 병리현상이 개인적인 불행의 수준을 넘어서 어떤 사회적, 정치적 성격을 수반하는 고통의 표상으로 평가되었습니다. 아마 그때부터 사람들은 병약함이나 정신이상을 더 이상 낭만적으로 해석하지 않고, 병의 도덕적, 정치적 알레고리에 대해 관심 갖기 시작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달궁』의 사설조는 아예 서정인체라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독창성은 문체만이 아닌 어휘들에서도, 예컨대「무자년 가을 삼일」의 “무자년”, 또는 “움직이는 계단”을 “도롱태”를 끌고 다니는 사람들 이야기, “얼음과자”를 빨고, “영상띄”를 감상하는 군상들, 어찌 보면 구태의연한 말들을 자연스럽게 쓰시고.


이번에도 대답 대신 『문화예술』(문예진흥원, 2003년 10월호)에 실린 선생님의 글을 보여주신다. “한글로 글쓰기: 한국말은 한국인의 운명”이라는 글의 시작부분은 이렇다.


“나는 우연히 한국말로 글을 쓰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나의 운명이 되었다. 나는 한국 땅에 태어나서 한국말과 만났고, 그것을 통해서 세상과 만났다. 그것이 준 것 말고는 나에게 세계가 없다. 그것은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었지만, 그것이 나의 삶을 결정했다. 나중 커서 외국어를 배우고, 제이, 제삼 외국어들과 접하자, 그것들은 나의 첫 말이 만든 세상을  넓혔다. 외국어 하나를 알면, 세계를 하나 더 사는 것과 같다고 한다.” 


운명으로서의 한국말을 쓰는 사람과 그냥 한국말을 쓰는 사람은 다르겠다 싶다. 부끄럽게도 나는 후자에 속한다. 



글읽기 - 글쓰기


그러기에 영문학 공부와 한국말로 글쓰기를 병행하시는 것이 득인지 실인지, 혹시 상충이 될 것인지, 실로 그것이 궁금합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영문학 공부한 것을 나는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대학 진학 할 때, 그래요 영문학을 택한 것은 아마 고등학생의 눈으로 읽던 우리 소설에서 뭔가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해야겠지요. 손창섭의 「비오는 날」같으면 참 좋았는데 (나는 「잉여인간」을 읽었는데), 별로 많지가 않았어요. 지금은 달라요, 연전에 순천대학에 문예창작과에 교환 교수로 갔을 때 박지원의 「호질(虎叱)」 같은 것도 잘 번역되어 나와 있어서 함께 공부했어요. 그러나 50년대 당시엔 국문학은 별로다 그리 생각했었지요. 하여간 노문학과가 있었으면 좋을 걸 그랬어요. 그래 영문과 밖에 없었어요. 독문학, 불문학은 고등학교 때 안 배워서 어렵고. 여담이지만, 참 독일어 그렇게 어려운 것을 어떻게 하는지 모르겠어요.


독일어가 어렵다 하셨습니까? 아주 우연입니다만, 어제 한 밤중도 넘어서 켜져 있는 텔레비전에서 너무도 아름다운 독일어가 흘러나오고 있었습니다. 클레멘스 브렌타노라고, 낭만주의 시인입니다, 영화는 물론 불행한 결혼생활을 다룬 우울한 이야기이지만, 그가 시를 쓰다가 일어서서 읊어 내려가는 독일어가 어찌나 아름다운지, 환상적인 한편 내면의 황홀과 고통을 함께 노래하는 시라서 그랬겠지만, 너무 감동적인 순간이었습니다. 하필이면 이제 제가 독문학에 대한 평생의 짝사랑을 접고 나의 언어로 나의 글을 쓰겠노라 작정한 이 시점에서. 저의 배신에 대한 시위였을까요? 하필이면 존경하는 소설가를 만나 뵙기 꼭 열두 시간 전에 들려오는 아름다운 독일어.


톨스토이 또한 제대로 원 텍스트로 읽는다는 것은 얼마나 좋았겠어요? 어쨌거나 영어로 제정러시아의 소설들, 프랑스 소설들을 읽었지요. 텐느의 불어저서 『영문학사』도 영어로 읽었지요. 제 자신은 전공하는 영시들 이외에도 많은 책들을 영어로 읽을 수 있었던 것을 행운으로 생각합니다. 외국문학을 읽어야 합니다. 무엇이건 우선 많이 읽어야지요, 그런데 많이 읽는다는 것은 주체성을 그르칠 우려가 있지요. 그래서 다독(多讀), 다작(多作), 다상량(多商量)이라 하지 않습니까? 많이 읽고 많이 생각해야지요. 학이불사 즉망 (學而不思 則罔)이라….


허나 요새는 내용 없이 떠들기만 하니, 사이불학 즉태 (思而不學 則殆)라는 말씀이시군요. 선생님의 경우, 많이 읽을수록 상아탑에 들지 않고 평범한 인물들에 관심을 가지게 되셨고, 외국문학을 읽을수록 한국적이 되셨다고 이해해도 되겠습니까?


그래요, 내가 영어로 영문학 작품을 넘어 다른 책들까지 읽으니 얼마나 좋아요? 지금은 톨스토이를 노문학하는 분들이 제대로 번역해 놓았더군요.


톨스토이를 좋아하십니까?


좋아하는 작가는 말할 것도 없이 러시아의 두 사람, 톨스토이와 도스토예프스키, 그리고 고골이고, 좋아하지 않는 작가는 헤밍웨이입니다. 『해는 또다시 떠오른다』에서 보면, 미국 신문 파리 특파원과 함께 피레네 산맥 계곡에서 낚시를 하다가, 국경 너머 스페인에서 투우 구경을 하는 여자가 나오지요. 가만히 세어보니 여러 남자, 마지막에는 아마 투우사와 놀아났습니다. 그게 원 소설인지. (우와, 내가 중학교 때 『해』를 소화 못한 것이 그냥 무식이 아니었구나.) 요즘 잘 팔리는 젊은 여자 작가들, 다들 재치 있고, 너무 멋있고, 세부에 대한 풍부한 자료도 돋보이고, 감각도 세련되어 훌륭합니다만, 집요함, 깊이, 객관성, 자기 아닌 딴 사람 이야기, 폭, 능청떨기나 시침 떼기, 뭐 그런 것이 조금 아쉬운 것 같습니다. (나는 젊지도 않고 잘 팔리기는커녕 이름도 없으니 다행이다. 내게 나무라심은 아니니까.)


그런데 선생님, 저희 미술대학에 오래 전에 화가교수가 역시 화가인 아버지의 훈계로 교수직을 그만둔 경우가 있었습니다. 화가는 오로지 제 그림만 그려야지 무슨 남 가르칠 시간 있느냐는 호통에 고개를 숙였다는 후문이.


화가가 미대에 있었는데 그랬나요? 그런 의미에서 작가교수, 혹은 교수작가를 ‘주말작가’라 그러기도 하지요. 그렇지만 시간 없어 못쓴다? 글쎄요, 이점은 확실합니다. 부지런만 하면 가르치면서도 쓰고, 게으르면 시간 많아도 못쓴다. 간결하고 단호하시다.


하긴 다시 독문학 얘기라서 죄송하지만 조금 안다는 게 그거라서, 에.테.아 호프만이란 역시 낭만주의 작가가 있었습니다. 그는 스스로 “평일에는 판사요 기껏 약간의 음악가, 일요일 낮에는 그림을 그리며, 저녁이면 깊은 밤까지 매우 위트 있는 작가”라 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불안한 사회상황이나 혹은 필화사건으로 법관직을 잃으면 시립극장의 악장을 많았을 수준이었고, 모차르트를 존경해서 세례명을 아마데우스라 개칭까지 했답니다. 아무래도 옛사람들이 전인적인 경우가 더…….



어리석은 질문


선생님 작품을 읽다가 갑자기 느낀 점입니다만,「베네치아에서 만난 사람」에서 미로와 마이욜을 왜 혼동된다 하셨을까 의아했습니다. 마이욜 하면 우선 ‘누드의 조각가’를 떠올리지만, 중요한 것은, 로마 시대 이후 종교적 테마를 일체 사용하지 않은 첫 번째 조각가라는 점 아닙니까? 그가 표현하는 여성은 더 이상 신화 혹은 성서에 나오는 인물이 아니라, 여성은 그 자체로 여성이었으니까요. 그는 “우리들의 시대는 이미 신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단지 자연을 따르는 것이다” 했습니다. 같은 작품에 이런 구절, “믿음심판은 물론, 기독교가 시들해지고, 종교 자체가 희미해지자, 이상하게도 평화가 왔어요. 종교가 가르친 것이 종교가 없어지자 실현된 셈이지요. 종교가 사랑과 평화를 가르친 것은 그것이 가는 데마다 미움과 싸움이 있었기 때문이겠지요. 종교가 살신성인했어요.”라는 대목도 함께 눈에 띄었어요. 그래서 특히 시대적 초미의 관심사와 관련하여 종교관을 살짝 여쭤 보고 싶어집니다. “대 이라크 전쟁은 이슬람교도에 대한 새로운 십자군 전쟁”이라 규정하는 이슬람의 관점 등에 대해서 어떤 생각이실지? 지금 종교가 성해서 싸움이라고 보십니까?


사실은 선생님께서 최근에 한 신문에 연재하시는 칼럼을 본 기억이 있다. 그 기억 때문에 나오는 질문이다. 선생님은 이 비극을 “크게는 문명의 부딪힘이고, 작게는 종교의 다툼일 것이다. 이 전쟁은 미국의 9.11 때 정해진 것이 아니고, 아주 먼 옛날, 어쩌면 예수와 마호멧이 태어날 때부터 예정되었는지도 모른다.”고 쓰셨다. 가슴이 아프게 공감되는 부분이다.


기독교인인가요? 조심스럽게 말문을 여신다. 기독교를 우선 우리 정신의 말살 때문에 좋아할 수가 없어요. 하지만 영문학교수로서 기독교문화를 열강하곤 했지요. 기독교문화 없이 영문학이 없으니까. 또 기독교에서 가장 기본적이고도 내가 말할 수 없이 존경하는 것, 그것은 겸손과 굴종(사실은 단 한번 영어를 쓰셨는데 ‘휴밀리에이션’이라고, 정확한 번역인지 모르겠다)입니다. 하나는, 온갖 바라는 것 해주십사 기도 후에, 그러나 주님의 뜻대로 하옵소서. 둘은, 무조건적 신 앞에의 굴종.


그러나 이 본질적 기독교는 원시기독교 공동체에서만 가능했다고 보신다. 현대의 타락한 기독교를 배제한 톨스토이의 원시기독교, 혹은 함석헌씨의 무교회주의를 말씀하신다. 현대에는 ‘기독교적’이란 말이 침략적, 자본주의적, 미국적 변주를 하고 있지만, 여전히 양심적인 기독교 사회는 존재한다고. 예를 들면 에즈라 파운드, 미국 시인이면서 『사서』를 탐독하고 이탈리아에 살고, 미국 군인들을 일컬어 “루즈벨트와 그의 유태인들," “유태인들과 그들의 루즈벨트"한테 속아서 전장에 나왔다고 반전방송을 했던 노익장에 대해. 역사적으로는 미국 건설 초기의 중농주의에 대한 중상주의의 승리와 그 이후의 주류를 형성한 세력들에 대한 심도 높은 강의가 펼쳐질 기운이 넘치신다.


양심적인 서양인이 하필 매우 동양적이라는 말씀이십니까? 파운드 비슷한 연배였던 극작가 브레히트도 노신을, 그의 제자들의 경우에는 『아큐정전』을 개작하기도 하고.  


그건 중국의 고전을 뒤집는 방향이잖아요. 오히려 헤세 같은 반전주의자도 동양사상에.


예 물론, 다른 이데올로기에서도 ‘양심적'이라 할 서양 작가들의 경우 동양을 또는 소위 제3세계를 결코 무시하지 않는다는 생각일 뿐입니다. 독일 시인 에리히 프리트는 유태인으로 「들어라, 이스라엘이여!」라는 시를 발표했지요. 팔레스타인인들을 불시에 사막으로 내몬 이스라엘에게 경고였어요. “우리가 박해받을 때/ 나는 너희 중 하나였다./ 너희가 박해자가 되면/ 내 어찌 그대로 있을 수 있나?// [중략] 패배자들에게 너흰 명령했다/ “신발을 벗어라!”/ 속죄양들처럼/ 그들을 황야로 내몰았다.// 황야의 모래 위/ 그 맨발의 기억은/ 너희들 폭탄과 장갑차의 흔적 보다/ 더 오래 가리라.” 양심적인 서양인들은 사해동포주의로 돌아갈 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최소한 호전적인 조국에 무조건적 순응하지는 못하는 것이 시인들의 생리입니까? 그렇게 조국에게서 곤욕을 치른 파운드 외에도, 선생님 작품 속에 “현대 영어시인 천오백 명을 상대로 조사해봤더니, 스물일곱인가가 신경파탄을 일으켰고, 열다섯이 자살했고, 열다섯이 술중독됐고, 열넷인가 전사했고, 감옥에 간 사람도 근 스물이…”라는 대목에서도 멍해졌습니다만.


꼭 시인보다도, 의식이 강하다 보면 충돌하는 경우가 흔하지요. 대중매체의 언어와 싸우는 것도 그렇고. 거기 보면….


다시 가리키시는 “한글로 글쓰기”에는, 말을 잘 못하면 방송이나 텔레비전에 나오지 말아야 한다는 지론이 쓰여 있다. 예를 들어 ‘피해’는 ‘해를 입다’이니 ‘피해 입다’는 잘 못이다. “이런 글 백 번 써 봤자, 방송매체에서 태풍 매미가 입힌 피해라고 한 번 말하는 것을 당할 수 없다.”


축구 못하면 운동장 안나오는 것이 기본이지요. 그것을 지키니까, 인맥이고 학연이고 다 무시하고, 축구 잘하는 선수만 뛰게 하니까 월드컵 때 일이 되었지요. 그러니 한국말 못하면 방송 안나와야지요. 예상보다 단호한 어조로 한글의 오용을 나무라신다.


그 글에는 ‘미국 들어간다’는 틀렸고, ‘미국 나간다’가 맞다고 쓰여 있다. 맞다. 미국 나가계실 때, 하버드와 털사 대학에 몇 년 씩 계실 때, 영시 공부와 한글로 소설쓰기 두 가지를 다 하실 수 있었나요? 속으로만 물었다. ‘미국 나간다’라는 표현을 써보기 위해서.


그 밖에도 속으로만 물은 것이 많았다. 선생님이 애지중지하시는 오래된 책들에 가만히 손을 얹어보고 싶은 마음도 속으로 접었다. 출입문과 창문을 빼고는 모두 책으로 둘러싸인 서재. 소장서 중에는 영어권 책은 차치하고라도, 고전의 영역본들이 모두 19세기 책이다. 『오위디우스의 변신과 헤로이데스 선집 축자 행간 번역』(필라델피아 1861년), 『‘에픽테투스 전집』(보스턴 1865년), 『유리피데스의 비극들』(뉴욕 1875년, 1863년), 다 열거할 수가 없다. 텐느의 불어 저서 『영문학사』(뉴욕, 1879년)와 『실러의 생애』(런던 1883년)를 영역본으로 가지고 계신다니. 하지만 무엇을 더 욕심내랴! 『용병대장』의 후속이자 결미부라고 하신 『말뚝』을 선물로 받았지 않은가.


겨울 해는 일찍 진다. 강아지들이 새삼스레 짖는다. 선생님의 배웅으로 문간을 나서도 여전히 이방인이니까. 솜씨 소문난 전주의 저녁밥, 곁들일 소주 한잔을 아쉽게 사양한다. 이름모를 한국 차의 향기가 옷에 베어있으니 되었다. 『달궁』의 산실 그 서재를 혹시 모를 두 번째 방문을 위해 다 헤집지 않고 아껴두길 잘했다. 사람들이 하이델베르크를 다시 찾게 되는 것은 그곳에 심장을 떼어놓고 오기 때문이라고 하질 않는가. 믿거나 말거나.          


                                        2003년 12월 30일 화요일


 소설시대 7호 , 한국작가교수회, 평민사 2004. 9-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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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서용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