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은 우리에게 매우 고통을 주는 재앙 같은, 우리가 우리
자신보다 더 사랑했던 누군가의 죽음 같은, 모든 사람들로부터 멀리 숲 속으로
추방된 것 같은, 자살같은 느낌을 주는 그런 책들이지. 책이란 우리 내면에
존재하는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여야 해. 나는 그렇게 생각해.
- 프란츠 카프카 1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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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의 시작을 생각해 보았다. 기억할 수 없을 유년기 어느 날 ㅁ이라는 소리가 새어나오면서 시작되었을 말, 어머니를 향했을 그 말 그 언어가 한국어였다. 말을 애교 있게 재잘거리는 귀여운 아이는 아니었던 것이 말과 관련한 처음 기억이다. 첫 아이였으니 또래는 없었고, 온통 어른들로 둘러싼 환경에서 사실은 내 ㅁ자로 시작되었던 어머니 찾기도 쉽지 않았다는 기억이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 했다. 하긴 생명체라면 모두 적응을 통해서 살아남을 것이다. 세상은 경이 그 자체였고 아이에게 변별력은 최소 능력, 사물과 말의 연결은 엄청난 어려움이었다. 난생 처음 보는 사람들이며 사물들을 어떤 소리로써 지칭할 수 있단 말인가. 어른들의 팔에 안겨 시장을 구경하면서 김이 모락모락 쪄서 팔고 있는 고구마를 어찌 고구마라 말하며, 뜬 눈알 때문에 무서워 보이는 생선들을 뭐라 칭할 것인가. 한번은 소금 가게 앞 ‘소금팝니다’라는 비뚠 글자를 읽고 와서는 소금을 보면 ‘소금팝니다’라고 말해서 사람들을 웃겼더란다. 그렇게 그림책도 시원찮던 시절, 무언가를 틀리지 않기 위해서는 도망이 우선이었다. 아무 말 않기 – 그것이 상책이었다. 말 수 적은 아이는 그다지 흠은 아니었다. 머피의 법칙은 존재한다. 애가 어른 말을 먹어버리네! 어른들은 말을 먹어버리는 것이 반항이 아니라 수줍음 때문인 것을 잘 몰랐다.
학교에 들어갔다. 글자로 말하기는 새로운 방식이었다. 글자를 익히자 글자로 말하기가 말로 말하기보다 나았다. 글자로 말하기는 순발력이 없어도 괜찮았고, 글자로 말하면 기특해 했다. 말을 먹어버리는 아이에서 글을 좋아하는 아이로 살짝 변신하면서 말에서 조금 해방된 느낌이었다. 글자는 질문 같은 요구사항도 없었다. 글자를 점점 더 좋아하게 되었다. 글자들의 집합, 책은 제법 편한 친구가 되었다. 그렇게 고립이 된다는 것 따위는 누구도 관심두지 않았다. 그렇게 어른이 되었다. 어른, 대학생 말이다.
독문과 대학생 – 왜 하필 독문과? 중고등학교 시절, 즐거운 일만은 아니었겠지만 운동장 활동을 면제 받았던 터라 도서실은 무궁무진 소설책들이 살아있는 공간이었다. 명문이라고는 해도 240명이 졸업한 지방도시 중고등학교의 작은 도서관이 더 이상 소설책들을 보여주지 못했을 때, 칸트가 손에 잡혔다. 『순수이성비판』 - 한 줄도 읽어낼 수 없었을 때, 나의 기본 지식의 결함과 미진한 독해력 탓을 하지 않고 번역문 탓을 했다니. 무지가 용맹이었다. 독문과로 진학해서 기필코 이 글을 원전으로 읽으리라. 고백하건대, 독문과 시절 내내, 대학원 시절에도 그 뒤로도 칸트의 원전을 통째로 펼쳐보지 않았다. 근시안인 내게 독일어는 눈앞의 숙제였고, 독일어로 쓰인 소설들에 푹 빠져버렸다.
소설들은 경이였다.
인생의 동반자, 반세기를 함께 한 동반자가 곁에 있지만, 나의 뇌 속에는 소설들이 녹아 살고 있다. 어려서 만났던 글자들은 뇌의 딱딱한 표피를 뚫고 증발해버리지 못하는 것 같았다. 더하기, 철학이 녹아있는 독일 소설들은 소설 이상이었다. 칸트 철학은 2천년 본질주의적 존재론에서의 대전환이었고, 비로소 개별자가 된 인간들이 진리와 정의 그리고 아름다움을 판단하는 기준이었다. 그 인간들이 소설 속에 살아있었다.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라는 사르트르의 혁명적 사고는 2차 대전 직후 빈곤한 독일 정신세계에 폭발적으로 수용되었다. 실존에 대한 탐구는 무궁무진한 보고인 것 같았다. 아니, 주체로서가 아닌 구조로서의 인간! 욕망 또한 타자의 욕망! 현대독일소설은 작은 뇌세포 하나하나를 풍선처럼 부풀게 하는 작용으로 들끓었고, 다른 어떤 것, 현실 속 인간에게 필요한 다른 많은 것들에 대한 관심을 꺼버린 아이러니로 작용했다. 겉으로는 숨길 수 있었을지 모르나, 내면은 불균형의 존재로 살고 있었다.
그러다가 문득, 소설이자 문학이자 예술의 세계는 언어종속적인 무엇이라는 진리가 뇌를 때렸다. 카프카가 말한 의미에서 ‘우리 내면에 존재하는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 같은 말이었다. 외국말로 된 외국 소설들을 파먹으며 살아가던 나는 스멀스멀 꼬리가 돋아나는 느낌에 화들짝 소스라쳤다. 다른 누군가가 사냥해 놓은 시체를 뜯어먹는 하이에나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어느 날, 내 말로 내 글을 쓰고 있었다. 소설이라는 이름의 무엇을 쓰고 있었다. 왜 사람들은 시작의 무서움을 모르는가. 누군가가 읽을 수도 있는 글자들을 어쩌라고 내놓는가! 내가 나이고 싶어서 나의 말로 나의 글을 썼노라는 변명은 서툴고 못나기 그지없었다. 한국문학의 대양에 수영의 초보 지식도 없이 구명조끼도 입지 않고 뛰어든 이방인이었다. 잘해야 의붓자식이었다.
겁이 났다. 가장 무서운 것은 독자라는 존재다. 미지의 누군가가 글을 읽는다는 상상은 두려움 그 자체였다. 아니, 누군가 읽기나 할까, 그것도 무서웠다. 글을 쓰는 작가들 중에도 더러 지인이 생겨났고, 누군가는 스스럼없이 진심을 털어놓기도 했다. 솔직히 독자로서 정말 재미는 없더군요! 긴박한 갈등이 있어야……. 엄청 고마운 일이었다. 읽었으니까.
그렇게 소위 문우들을 만났다. 내가 공부했던 존경하는 소설가 하인리히 뵐이 서독과 세계 PEN International 에서 활동했다는 기억으로 PEN을 기웃거린 늦깎이는 이화동창문인회라는 공동체에 받아들여졌고, 서울 그리고 고향에서도 더러 동지들을 만났다. 누구나 문학소녀였다는 그 옛날 중고등학교 시절의 선후배들과도 의미 있는 공간을 나누게 되었다. 의미는 늘 무의미를 동반하지만, 어찌되었건 큰 범주로 문인으로 분류되고 있었다. 외국문학 연구보다는, 취업 효율성 떨어지는 강의보다는 소박한 소설가로의 변신이면 괜찮을 것도 같았다.
그러나 피는 피다. 정신의 묽은 피는 몸속의 빈혈과 마찬가지로 현기증과 무기력으로 이어진다. 전혀 괜찮지가 않다. 짝사랑 출판사는 무심하고, 자존심과 품위를 무기로 활동을 하는 위상 드높은 작가를 만나기라도 하면 무참히 상처를 받기도 한다. 나이하고도 키하고도 비례할 리 없는 낮은 함량의 속아지 때문에 앓는다. 그러니까 문제는 나다. 덜 떨어진 나다.
우물 안 개구리, 개구리도 되지 못한 우물 안 올챙이 – ‘우올’로 생긴대로 살아가기로 한다. 하늘과 해를 달을 별을 볼 수는 있겠지. 늘 평강을 빈다! 스스로 안부를 한다. 그런데도 편치는 않다. 외부의 어떤 무엇보다 빈약한 글 때문에 앓고 있다. 글과의 만남은 진정 숨쉬기의 단초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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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0. 『아름다운 만남』, 이화동창문인회, 317~32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