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이야기 셋 : 시인 기형도
욕망과 망집 없는 삶 - 그것의 허위?
죽음과 결부시켜서는 매우 생경한 나이에, 서른 해를 보지 못하고 세상을 등진 젊다 못해 시퍼런
시인/글쟁이가 남긴 시들을 읽게 되었었다, 실로 우연히 지난 겨울에.그것도 시집을 선물받아서,
선물에 참 맞지 않은 시집이었는데....
섬뜩한 몇 구절은 곧 가슴에 박혔다. 입술이나 뇌리가 아니라 바로 가슴 속에.
아아, 그래서 사람들이 시를 읽고 또 쓰는 구나!
이 봄에 책방을 기웃거리다가 그 사람의 산문집을 발견했다. 10년 가까운 세월 지나서 28쇄 째의 책을 이제서야.생각보다 -- 시구절에서 얻은 표상에 비해 -- 훨씬 훤한 젊은 얼굴, 그리고 퍼뜩 눈에 띄는 글귀가 있었다.
"욕망과 망집이 없는 평정된 삶은 어쩌면 불행한 삶일 것" |
■ 기형도 산문집 『짧은 여행의 기록』, 도서출판 살림, 2000년 28쇄, 26면에서
이 글귀는 사람을 현혹시키기에 충분하다. "무망을 목표로......."라고 하는 입버릇과는 어긋나게, 빈 들 햇살에 녹아들면서도
안에서는 냉큼 녹지 못하는, 그래서 속이 굳어지는 잔설처럼 짓눌린 욕망에 평안하지 못한 이들에게는.
그러나 그 시인은 시로써 말하였다:
그러나 부러지지 않고 죽어있는 날렵한 가지들은 추악하다. |
겨울을 났고, 이제 미련없이 나며 우두둑 꺽어지는 나뭇가지들은 서럽다. 그러나 떨어지지 않고
매달려 있으려는 "남루한" 나뭇가지는 추악하단다.
그는 그 "매달려있음"을 욕망이라 말하는 것으로 해석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그가 그랬다고
생각하는 것은 나다. 이제 산문에서 욕망없음을 위선 쯤으로 규정하는 것을 어떻게 해석한다?
시인의 글을 시가 우선하지 않을까? 산문은 지나가는 느낌일 뿐이며.
또 다른 시 한편: {우연히 시집의 좌우 페이지에 해당한다}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
두 시의 공통점은 "봄"이라는 시간이다.
봄의 이미지가 시작이 전혀 아닌 무엇인가의 끝을 말하는 것이 특징이다.
봄이 무서우리만치 생경한 것은 이 시인으로서는 너무 오만하다. 그것은 우리들의, 나의, 것이다.
그는 완성되기에는 너무 젊은 인격으로 마쳤다. 그러니 불균형이 당연하다고?
그렇지만 사람이 나이와 더불어 별 되는 것도 없다. 불균형은 다른 데에 이유가 있을 것이었다.
아니면 이 문제에 관한 한 누구라도 헤메는 것인가?
누군가와 끝까지 이야기하고 싶다. 논쟁이 되어도 좋고, 마침내 서로의 몰이해에 화를 버럭내며
나가 떨어져도 좋을 것이다. 벌써 그 "....하고 싶다"가 욕망이라고 힐난하려는 사람이어도 좋다.
누구라도 허튼 이야기를 나눌 마음만 있으면 족하리라.
이 세상 그러나 어디에 그 소용없는 일에 밤을 지샐 위인이남아 있을 것인가!
혹은 속으로 왼다: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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