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한국하인리히뵐학회는 하인리히 뵐 탄생 100주년 사업으로 《하인리히 뵐과 행복사회》를 펴냈다. 국제PEN독일본부, 국제PEN세계본부의 회장을 맡았고, 1972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공동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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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인리히 뵐의 독자 구하기
서용좌
내 친구는 묘한 직업을 가졌다. 그는 자신을 작가라고 말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데, 그가 정서법의 몇몇 잠재적 지식을 소유하고 있고, 문장론의 몇몇 규칙들을 막연하게나마 통달했고, 이제 타이프 한 장 한 장을 문체의 연습들로 점철하고 있다는 것이 유일한 이유이다. 그리고 그런 한 뭉치를 만들자마자, 그것을 그는 원고라고 부른다.
그는 수년 간 이 문화의 황야에서 예술이라고 하는 마른 풀만을 겨우 뜯어먹고 살다가 마침내 출판사를 찾아냈다. 그의 책이 출판된 뒤에, 나는 극심하게 낙담해 있는 그를 만났다. 그의 이야기는 사실 기가 꺾일 만했다. 출판사의 정산에 따르면, 반년 동안 350권이 비평을 부탁하려고 무값으로 배포되었고, 몇 우호적인 비평도 나왔고, 실제로는 13권의 책이 팔렸단다. 그로써 내 친구에게는 5,46마르크의 대변이 발생했단다. 그런데 그는 800마르크를 선지급 받았기 때문에, 같은 비율로 셈하자면 이 선지급금은 대략 150년이 되어야 상쇄될 수 있는 것이란다.
이제 문제는 한 인간의 수명이라는 것이 평균적으로 그만 못하다는 점이다. 그게 대략 몇몇 거의 전설적이다 싶은 터키인들을 제외하고는 대강 70살을 본다. 더러 우리 잃어버린 세대의 기념비적인 혹사를 생각할 때는 안심하고 한 십년을 더 칠 수도 있다.
나는 친구에게 두 번째 책을 쓰라고 충고했다. 책이 출판되자 전문가 권에서는 기쁘게 환대를 받았다. 비평용 책은 400권으로 급등했고, 반년이 지났을 때 판매고는 29권이었다. 나는 친구에게 담배 두 개비를 말아주고는 어깨를 도닥거리며 제안했다, 이제 세 번째 책을 쓰라고. 그런데 친구는 그 말을 아이러니로 이해하고는 모욕을 당한 듯이 물러서버렸다.
그러는 사이에 그는 “투명작가 비트”라고 문학사에 들어가게 되었고, 그에 관한 평전 한 권이 나오자 평전이 그의 작품들 전체보다 더 많이 팔렸다.
근 반년동안 나는 그를 만나지 못했다. 그러니까 그는 다시 고독한 천재성의 영역에서 맴돌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러다가 그가 내게 와서는 후회막급하다고, 그래 아무튼 세 번째 책을 쓰기로 했다고 털어놓았다. 나는 그에게 이번에는 젤라틴판 등사기로 밀어서 30에서 50권쯤을 서적상에 넘겨주라는 제안을 했다. 하지만 그는 다시 선지급금을 받았다. 둘째 아이가 태중에 있었고, 그는 말하자면 몇몇 식자공과 인쇄업자, 포장이나 발송담당 여직원들의 실직에 협조하는 죄를 짓기는 싫었다는 주장을 폈다. (그의 공익적 감각은 항상 정말로 강했다!)
그러는 사이에 그에 관한 근 100편 정도의 호의적인 비평이 나왔고, 두 권을 합친 판매부수는 90권을 넘었다. 출판사는 “독자 구하기”이라 명명한 작전에 돌입했다. 곧 각 서점마다 쪽지가 발송되었는데, 내용인즉, 비트-구매자를 확보해놓고 바로 출판사에 알려달라고, 그러면 작가와 독자 간의 소통을 개시할 수 있도록 한다는 말이다.
이 작전의 결과는 그리 오래 기다릴 필요가 없었다. 시작해서 4주 만에 저 위쪽 북부에서 한 남성이 나타나서 내 친구의 책에 대해서 묻고 그것을 사고 돈을 지불했음에 틀림없었다. 서점주인은 곧 전보를 보내왔다. “비트구매자 출현 - 다음 지침은?” 그러는 사이에 서점주인은 구매자를 대화로 붙잡아 놓고 커피를 따라주고 담뱃갑을 권하고 그랬다. 이 모든 행동들이 구매자를 놀라게 했지만, 그는 조용히 그러도록 내버려두고 있었다. 그러자 번개처럼 빨리 출판사의 답변이 왔다. “구매자 이쪽으로 보낼 것 - 전 비용 이쪽 부담.” 다행하게도 구매자는 교사였고 마침 방학이어서 남독으로의 공짜여행을 마다할 리 없었다. 그는 첫날은 쾰른까지 갔고 그곳에서 하루저녁 좋은 호텔에서 묵고, 이튿날 아름다운 라인 강변을 따라서 남쪽으로 향하며 여행을 즐겼다.
이틀째 오후 4시경에 그는 목적지에 도착했고, 역에서 출판사까지 택시로 이동했고, 출판사에 가서는 출판업자의 매력적인 부인과 더불어 커피와 케이크를 즐기면서 조금은 들뜬 시간을 보냈다. 그러고 나서 새로 여행경비를 받아 챙겨서는 다시 역으로 돌아가서 이번에는 2등 열차로 내 친구가 뮤즈에 봉사하고 있는 그 소도시로 갔다. 그곳엔 그 사이 둘 째 아이가 태어난 지 한참 시간이 흘렀고, 친구의 아내는 영화관엘 가고 없었다. - 작가의 아내에게라면 어떤 경제적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불허해서는 아니 되는 휴식 아닌가. 구매자는 그러니까 내 친구를 마침 그가 아이들 저녁우유를 데워가지고 그들을 달래려고 노래를 부르고 있던 참에 만나게 되었다. 그 노래란 게 하찮은 어휘들로 구성되었을 밖에. 아무튼 이 말이 최근 독일문학에 언짢은 빛을 던지게 되었으니…….
내 친구는 자신의 독자에게 감동어린 인사를 하고서 대뜸 그의 손에다 커피 분쇄기를 밀어주고는 재빨리 아버지로서의 의무를 이행했다. 곧 커피 물도 끓었고, 이제 대화가 시작될 수 있을 터였다. 그러나 두 사람은 다 수줍은 사람들이어서 서로 묵묵히 감탄하면서 바라보기만 했다, 한참 동안을. 그러다가 마침내 내 친구가 외침소리를 토해냈다.
“선생은 천재이시오 - 제대로 자라난 천재이시란 말이외다!”
“아, 아닙니다,” 손님은 온유하게 말했다, “제 생각으로는 작가선생이 그렇소.”
“틀린 말씀,” 내 친구는 그렇게 말하면서 마침내 커피를 따랐다, “천재의 주요 특징은 그 희귀성에 있지요, 그리고 선생이야말로 저보다 더 희귀한 인간계층에 속합니다.”
방문객은 겸손한 이의를 달려고 했지만 혹독한 방식으로 훈시를 받고 말았다. “거 말 마쇼.” 내 친구는 말했다. “책을 쓰는 일은 그게 만들어지는 일에 비해 그저 반쯤 나쁜 일이오, 출판사를 발견하기란 장난질이요. 그러나 책을 산다는 것 - 그것을 저는 천재적 행위라 하는 것입니다. - 그나저나 우유와 설탕을 치시지요.”
그 남자는 우유와 설탕을 치더니만, 수줍어하면서 외투 오른 쪽 안주머니에서 그가 저 위 북쪽 지방에서 샀었던 책을 내밀며 헌정 사인을 부탁했다.
“단 한 가지 전제조건이 있습니다,” 내 친구는 단호하게 말했다, “단 한 가지, 선생이 제 원고에다 헌정 사인을 해주는 조건이오!”
그는 서가에서 바인더를 꺼내더니 거기서 빼곡히 쓴 원고뭉치를 꺼내 와서 손님의 커피 잔 옆에 놓고는 말했다. “부디 저에게 기쁨을 주시오!”
손님은 혼란스러워 만년필을 덜덜 떨면서 원고뭉치 마지막 장 맨 아래 여백에다 머뭇머뭇 썼다. “진정한 존경심을 담아서 - 귄터 슐레겔!”
그러나 내 친구가 잉크를 말리기 위해서 그 원고를 난로위에서 흔들고 있던 한 30초쯤이 지나서 손님은 이번에는 외투 왼쪽 안주머니에서 타이프가 되어있는 종이 다발을 꺼내더니 내 친구에게 청했다, 그가 최근 독일문학에 대한 기여라고 간주하는 이 결과물을 출판사에 감정 의뢰해달라고.
내 친구는 내게 이야기해주었다, 자기는 실망감에서 몇 분간 말을 잃고 있었노라고. 이 남자의 운명에 대한 걱정이 그를 깊은 비통에 빠지게 했었노라고.
그리하여 두 사람은 다시 몇 분간을 묵묵히 건너다보고 앉아있었다. 마침내 내 친구가 나직이 말했다. “제발 간청하건대 그만 두십시오 - 선생의 독창성을 처분하는 일이외다!”
손님은 고집스레 침묵하고 있더니 자기의 원고를 쓸어 모았다.
“선생께선 여행경비를 받으실 수 없을 겝니다,” 내 친구는 말했다, “생크림케이크가 나오지도 않을 것이고요. 출판인의 부인은 찡그린 낯빛을 할 것이구먼요. 선생을 위해서 간청 드리는 것이니, 제발 그만 두시지요!”
그러나 손님은 찡그린 채 고개를 갸우뚱했는데, 내 친구는 거기서 물러서지 않고 한 인간을 구한다는 뜨거운 노력으로 출판사의 정산서를 가져오는 일까지 감행했다. 그러나 그 모든 것도 슐레겔의 관심거리가 되지 못했다.
여기에서 내 친구는 이야기를 중단하고자 했지만, 나는 그가 방문객과 그만 드잡이를 했을 것이라 추측한다. 어쨌거나 여기에서 휴지부가 발생했고, 그 동안 내 친구는 불끈 쥔 주먹을 생각 깊게 내려다보면서 알아들을 수 없는 말들을 저 혼자 중얼거렸다. 내가 들은 것은 슐레겔이 짤막한 인사와 함께 떠났다는 것이고, 그의 원고는 놓아두고 갔었더란다.
그러는 사이에 슐레겔의 장편 『슬프도다, 페넬로페여!』가 귀향소설로서 전문가 권에서 상당한 주목을 이끌어냈다. 슐레겔은 교사직을 떠났고, 그러니까 제대로 된 직업을 떠났는데, 말하자면 다른 직업에 종사하기 위해서다. 나로서는 여전히 직업도 아니라고 간주하는 그런 직종에 종사한답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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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자 구하기 Die Suche nach dem Leser」는 하인리히 뵐이 1954년에 함부르크의 《일요신문 Sonntagsblatt》에 발표한 단편이다. 여기에서는 Böll, Heinrich: Romane und Erzählungen 2. Hrsg. von Bernd Balzer, Köln 1977을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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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 공선옥, 곽정연, 사지원, 서용좌, 안은영, 원윤희, 이화경, 정인모, 정찬종, 최미세 공저,《하인리히 뵐과 행복사회》, 한국문화사, 13~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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