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고통과 우리들의 당혹감 - 서용좌, <배달민족>
장두영
서용좌의 중편 <배달민족>은 개인사적 고통이 민족사적 혹은 세계사적 고통과 맟닿아 있도록 조직되어 있어 고통의 무게가 육중하다. ‘아비 찾기’라는 전통적인 모티브를 활용하여 과거에서 현재에 걸쳐 우리 사회가 감당해야 할 굵직한 과제들을 던져주고 있다. 독일 남자와 한국 여자 사이에서 태어난 배요한의 아비 찾기와 배요한의 아버지 요하네스 베르너의 아비 찾기라는 두 개의 임무를 겹쳐 놓는 자리에서 이 소설은 출발한다. 배요한과 요하네스의 아비 찾기는 고스란히 배요한의 동생 배승한이 그들의 행적을 추적하면서 남긴 메모에 담기고, 형식상으로 서술자의 역할을 떠맡은 지방대 불문과 강사는 배승한의 메모를 받아 적은 필사자의 역할을 맡고 있다. 작가의 권위를 단순히 메모를 옮겨 적는 역할에만 충실한 필사자에게로 넘긴 마당에서 작품은 저자의 죽음을 외치던 롤랑 바르트를 연상하게 한다. 더욱이 배승한이 수집한 여러 인물의 회고와 기억의 파편들은 통해 20세기 독일 역사를 재구성하고, 산업화 이후의 한국 역사를 기록한다는 기획 역시 기억을 통한 역사의 구성이라는 포스트모던적인 발상을 따라가고 있다. 이것이 진리의 총체라는 권위적 언설 대신 개인적 기억의 단편들의 얽어놓은 과정에서 진실을 복원시키기 위해 한 발짝 다가서려는 노력이 자리하고 있다. 얼핏 ‘배달민족’이라는 고릿적 냄새가 나는 표제와는 달리 역사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그것을 관통하면서 흐르는 혈통에 대한 관념에 대한 통찰이 빛나고 있다는 점도 이 작품의 특징이다.
요하네스의 경우 자신의 아버지가 유대인의 핏줄과 아리안 핏줄 사이의 흔적을 지우려던 모습에서 유럽 문명의 저변에 존재하던 인종적 편견을 건드리고 있다. 나치스 협력, 친미, 사회주의의 선택 등 요하네스의 아버지가 보여준 복잡한 행적을 통해서 독일 역사에 대한 지식이 펼쳐진다. 한편 배요한의 경우 배오한의 아버지 요하네스에 대한 추적을 통해서 독일 역사 속에 내재되어 있던 고통을 한국의 역사와 결부시키고 있다. 배요한의 아버지와 어머니로 설정된 파독 노동자의 외화벌이는 곧 다문화 사회에 대한 관심이 증대되고 있는 한국 사회를 향한 일종의 거울로 작용한다. 한 세대가 지나는 동안 배요한의 부모들은 이제 이주노동자들을 수용하여 부리는 지위가 되었고, 과거의 유대인이나 한국인과 같은 디아스포라의 처지를 망각하게 되었다. 요하네스의 아버지, 요하네스, 배요한 세 사람은 가해자와 피해자의 중간지대에서 자신의 정체성에 혼란을 느끼며 여전히 유럽을 떠도는 인물들이며, 그들의 행적은 고스란히 아직까지 크게 흔들리지 않은 ‘배달민족’의 신화에 대해 의미심장한 문제 제기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 작품은 당혹감에서 시작하여 당혹감으로 끝난다. 문득 배승한이 보낸 메모들을 받게 된 ‘나’가 “그것을 머릿속에서 정렬해야 하는 숙제를 안은 느낌”을 가지게 되었다. 배승한은 어떠한 의도에서 메모 뭉치를 보냈을까. 당혹감에도 불구하도 ‘나’는 숙제를 시작한다. 메모가 하나씩 정리되는 동안 계속해서 당혹감은 밀려온다. 입양아로 여겨지던 배요한이 사실은 배승한의 친형이었다는 것을 예감한 배승한의 당혹감, 독일 혈통으로 알려졌던 요하네스의 아비가 유대혈통을 버리고 숨긴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된 요하네스의 당혹감, 그리고 배달민족이라는 정체성의 신회가 나치의 정통성으로의 강조와 닮아있다는 사실은 알게 된 독자들의 당혹감, 나아가 그러한 ‘상상된 공동체’를 향한 신화에 침윤되어 있던 우리들이 앞으로 받아들이게 될 이방인들에 대한 태도의 준비되지 않음을 깨닫게 된 우리 스스로를 향한 당혹감 등이다. 근대적 분류 체계에 너무나도 익숙한 우리들의 관념에서 혈통 문제에 관한 그들의 고통이 너무나도 소홀히 취급되어왔음을, 그리고 그러한 고통을 고통으로만 남겨둘 수 없는 상황이 되었음을 알게 된 순간 느끼는 당혹감은 작품이 끝나고 나서도 계속해서 이어진다.
공백은 너무 길었다. 그 다음을 어떻게 이어가야 할지, 갑자기 전기가 나간 것처럼 내 손가락의 작동이 멈췄다. 애초에 이 기록은 뿌리 없는 나무에 물 주기였다는 느낌이 밀려왔다. 구상도, 가닥도 없이. 흩어진 메모조각에서 무엇인가를 건져 올리기. 나는 무슨 알갱이를 향해서 이 종이부스러기를 헤집고 있었을까. 벌써 스산한 계절의 축축함이 벤다.(252면)
작품의 서술을 마무리하는 대목에 삽입된 ‘나’의 고백은 작품을 다 읽은 독자가 느끼는 당혹감과도 닮아 있다. 누군가의 치열한 삶의 흔적을 읽은 듯하면서도 한 편의 묵직한 역사서를 완독한 느낌이 곧 둔중한 무게로 머리 한 부분을 짓누른다. 기억의 파편을 모으는 과정에서 맞닥뜨리는 당혹감을 통해 목직한 여운을 감기는 이 작품은 우리에게 우리가 쉽게 해결하기 힘든 거대한 문제에 대한 화두를 던지고 있는 것이다. 이 작품이 던진 화두에 대해 명쾌한 답안을 기대하는 것은 어리석은 자의 바람에 불과하다. 개인사적 고통에 공감하면서도 그것이 민족사적, 세계사적 고통에 대한 이해로 발전될 수 있다는 ‘당혹감’을 선사하는 것이 이 작품의 의도였음을 짐작할 뿐이다. 그러한 당혹감은 곧 ‘그들’의 고통이 ‘우리’의 한 부분임을 깨닫게 되었을 때의 감정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개인사적 고통을 집단의 차원으로 승화시키는 작가의 능숙한 필치에 감탄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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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소설』 11월호 (통권 148호), 292~295,
장두영, 월평 : '고통의 상상력', 285~295 중에서.
* 장두영 : 2009년 <문학사상> 평론 부문 신인상 당선 등단.
현재 서울대 기초교육원 전임대우 강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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